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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충청도·대전·세종

아산 외암마을의 가을 풍경

by 즐풍 2021. 11. 10.

2021_161

 

 

2021.11.5 (금) 12:40~14:30, 1시간 50분 탐방

 

 

안개로 아쉬웠던 천안 독립기념관을 뒤로하고 인근인 아산 외암마을이 궁금해 들어선다.

독립기념관에서 외암마을까지 27km 거리이니 30분이면 왕래할 수 있는 짧은 거리다.

중간에 은행나무 단풍이 멋지다는 아산 곡교천 거리에 도착했으나 단풍은 한참 멀었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바로 외암마을로 들어선다.

 

 

 

□ 외암마을의 유래

 

중요 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되어 있는 충남 아산 외암 민속마을은 약 500년 전부터 부락이 형성되어

충청 고유 격식인 반가의 고택과 초가 돌담(총 5.3㎞), 정원이 보존되어 있으며,

다량의 민구와 민속품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가옥 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신 지명을 따서 참판댁, 병사댁, 감찰댁, 참봉댁, 종손댁, 송화댁, 영암댁,

신창댁 등의 택호가 정해져 있으며,

마을 뒷산 설화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끌어들여 연못의 정원수나 방화수로 이용하고 있다.

 

 

□ 마을 이름 「외암」의 유래

 

설화산 남서쪽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외암마을은 왜 외암이라고 불렸을까?
'외암'이라는 마을 명칭을 외암리의 서쪽에 있는 역말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 역말에는 조선 초기부터 이미 시흥역이 있었고, 외암마을은 이 시흥역의 말을 거두어 먹이던 곳이라서, 

오양골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 오야에서 외암이라는 마을명이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_외암민속마을 홈피]

 

 

 

외암마을은 외암천 건너편에 있다.

매표소에서 1인당 2,000원씩 내고 다리를 건너 외암마을로 들어서며 탐방을 시작한다.

 

 

외암리 마을은 입구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개천으로 인해 '안'과 '밖'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개천의 다리를 건넘으로써 마을로 들어간 것이고,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아직 마을밖에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개천은 마을의 경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런 경계 구분이 없는 마을에서는 마을 어귀 적당한 곳에 장승을 세우거나 솟대를 세워

자연스럽게 마을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마을 후면에 해발 441m의 설화산이 우뚝 서있고,

그 산줄기가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몇 개의 가닥을 뻗어내려 마을 주변을 감싸듯 펼쳐져 있다.

그 산줄기 중 하나는 마을의 남쪽에 불쑥 솟아 면잠산이 되었다. 

면잠산의 한 능선이 북쪽으로 흘러 마을 앞쪽에서 작은 동산을 만든 것이 바람 동산이다.
마을로 진입하는 다리 앞에는 송덕비, 장승, 솟대가 세워져 있다.

마을 입구를 상징하는 표시 역할을 하는 것과 동시에 마을의 안녕과 질서를 지켜주는

신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 정려는 원래 다리를 건너 마을 안에 있었으나 옮겨져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정려 또한 선조의 선행을 누대에 걸쳐 모범으로 삼으려는 교육적 의미를 담고 있다.   

                                                                                                            [출처_외암마을]

 

 

나무뿌리를 처리하지 않고 세운 장승이 인상적이다.

 

많은 지붕을 초가지붕으로 덮었다.

지붕 속은 몇 번에 덧댄 이엉이 그대로 있어 제법 무게가 나가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지붕이 두꺼우면 단열효과는 좋겠지만, 장마 땐 머금은 빗물로 무게가 만만치 않겠다.

오랜 숙성으로 미생물이 많을 테니 다 걷어내 거름으로 쓰고 새로 덮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든다.

 

 

은행 열매가 가지에 덕지덕지 붙었다.

차도에서 제법 거리가 있으니 중금속 걱정 없이 식용으로 써도 좋겠다.

 

초가지붕은 운치가 있고, 기와는 깔끔한 느낌이 좋다.

 

옛날 농가에선 새끼 쓸 일이 많아 새끼를 만드는 틀이 필요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새끼가 그저 욕인 줄 아는 사람도 많겠다.

 

올해는 유독 화살나무 단풍이 눈에 자주 띈다.

화살나무는 클수록 화살의 깃이 잘 안 보여 맞추기가 어렵다.

키가 별로 크지 않아 정원수로 그만이다.

 

제법 규모가 있는 기와집이니 재산이 많거나 지체가 높은 가문이었겠다.

 

□ 사당

 

사당은 돌아가신 조상의 위패를 안치하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이다.

양반집에서는 별도로 사당을 두지만 서민주택에서는 마루방이나

안방 한쪽에 감실을 만들어 위패를 모셔두기도 한다.
조상숭배 사상이 강했던 조선시대에는 선조의 은덕을 고맙게 여겼기 때문에

집안에서도 주로 지대가 약간 높은 동측 후면에 사당을 앉혔다.


외암마을에는 현재 외암선생 사당 외에 건재고택, 교수댁, 참판댁(큰댁), 참판댁(작은댁),

감찰댁(이동식가옥)에 사당이 남아 있다.
외암사당은 불천위 사당이다.

불천위 사당이란 국가에 큰 공을 세우거나,

학문이 높은 학자가 죽으면 나라에서 후손 대대로 제사를 지내도록 허락한 사당이다.

외암 선생은 당시 학문이 뛰어나 나라에서 불천위를 허락하여 지금도 이 분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출처_외암마을]

 

 

제상에 놓인 제기접시, 아래 향상엔 향로가 놓였다.

사당은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4대 조상(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의 신주를 봉안한다.

 

 

 

안채 살림살이

 

 

 

부엌 살림살이

 

혼례 장소 

 

사랑채

 

광(창고)

 

 

 

베를 짜는 베틀

 

 

 

 

 

 

 

마을길

 

 

 

 

 

□ 외암마을의 지세

 

온양 고을의 안산(案山)인 설화산은 금북정맥(錦北正脈)에 속하는 광덕산에서 갈라진 지맥이다.

다섯 봉우리가 솟아서 오봉산이라고 한다.

설화산 반대편 자락에는 조선 초기 청백리(淸白吏)로 유명한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 선생이 살았던

맹씨행단(孟氏杏壇)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고려말) 살림집이다. 
설화산의 서쪽에는 충청도 양반 마을을 대표하는 외암 민속마을이 있다.

이웃에 역 마을인 [시흥역(驛)]의 말을 거두어 먹이던 외양간이 있어서 오양골이라 전해진다.
동구에 물막이 기능도 겸하는 마을숲은 큰비가 내리면 강당골과 설마리에서 흘러내려온

두 개울이 합하여 넘실댄다는 이곳 반계(磐係)는 풍수에서 말하는 마을의 수구(水口)가 된다.
반계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강당골 유원지가 나오는데, 외암 선생이 [외암기]에서 기록된

후학을 가르치는 터로 삼았던 석문용추(石門龍湫)이다.

 

지금도 관선재(觀善齎)의 바깥채는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고종 때 서원을 없애려는 소용돌이를 피해 불교 사찰로 모습을 바꾼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선생이 가르칠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외암서사(巍巖書社)' 편액은 외암마을 건재고택에 그대로 전해진다.

용추로 가는 길목에는 외암마을이 예안 이씨 집성촌이 된 유래가 있다. 

이사종(李嗣宗)이 평택 진씨 참봉 진한평(陳漢平)의 사위가 되어 이곳에 들어와 일가를 이루었다.

이사종은 봉수산에 선친의 묘를 정하고, 마을 밖에 정자를 세워 '열승정(閱勝停)'이라 하였다.

정자는 오래전에 없어졌지만, '열승쟁이'라는 지명은 지금도 전해지며,

그 기문(記文) 또한 건재고택에 온전히 남아 있다.

 

마을 정면의 야트막한 산은 면잠산(眠蠶山)이다.

주민들은 '먼적산'이라고도 하는데, 누에가 잠자는 형상이다.

멀리 유곡리에 우뚝 솟은 마을의 조산인 봉수산은 한 달음에 갈 수는 없지만,

차량으로 지나는 길이라면 잠시 멈추고 외암마을 사람들이 대대로 묻힌 명당을 음미해 보자.

                                                                                                       [출처_외암마을 내용 편집]

 

멀리 보이는 산이 설화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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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암민속마을

 

아산시 송악면 설화산 밑에 위치하고 있는 아산 외암마을에는 약 5백 년 전에 이 마을에 정착한

예안 이씨 일가가 지금까지 주류를 이루어 살고 있다.

이끼 낀 나지막한 돌 담장이 인상적이며, 집집이 쌓은 담장 길이를 합하면 모두 5,300미터나 된다.

60여 호 남짓 되는 이 마을은 직접 이곳에서 살고 있는 마을 주민들과 만나게 된다는 점이

박물관에서 옛 흔적을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마을 입구의 장승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디딜방아, 연자방아, 물레방아, 초가지붕 등이 보존되어 있다.

팜스테이가 가능하고, 취화선,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화가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출처_외암강당]

 

 

 

외암 마을에도 물은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고 있다.
외암마을에서 물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자연적인 형태로 보는 물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적인 형태로 보는 물이다.

자연적인 형태로 보는 물을 설화산 계속에서 마을 옆을 지나 하부로 흘러가는 실개천을 말하는데,

풍수에서 이를 내수구(內水口)라고 한다.
인공적인 물은 마을 상부에서 물길을 인위적으로 터서 마을 안을 통과하도록 만든 물길이다.

이 물줄기는 마을 내 여러 집들을 통과하면서 생활용수로 쓰이고 마당을 지나면서 

곡수(曲水)와 연못을 만들어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 주기도 한다.
이 인공수로를 풍수에서 '염승(厭勝)'이라고 한다.

 

전통 오행(五行) 사상에서 화(火), 물(水)은 서로 상극이다.

이 마을에서 주산인 설화산(雪火山)의 뜻과 발음이 불을 상징하는 '화산(火山)'과 같다

이 때문에 옛사람들은 마을에 그 '화(火)'의 기운이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마을 내부에 화(火)와 상극인 '물(水)'을 끌어들여 불기운을 제압하려고 했던 것이다.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에 스스럼없이 적응해 나가기 위한 선조들의 빼어난 지혜인 셈이다.
이처럼 외암마을에서는 자연적인 지형은 그대로 둠으로서 자연을 살리고,

불의 기운은 물을 끌어들여 인위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려 하였던 것이다.

                                                                                                                   [출처_외암마을]

 

 

 

 

마을 주택 대부분에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옛길이지만, 차량통행이 가능해 차량이 지나간다.

 

돌담은 정교하게 잘 쌓았을 뿐 아니라 폭도 넓어 위에서 보면 1m가 넘는다.

 

 

 

맨땅인 마당이라 보기 좋다.

 

 

 

오래된 마을인 데도 골목길이 제법 넓어 보기 좋을 뿐 아니라 차량통행도 가능하다.

 

이 가옥은 차와 부침개를 파는 카페 형식으로 다과를 제공한다.

차를 마시며 잠시 정원을 둘러본다.

 

 

 

선인장

 

이 작은 꽃에서도 꿀을 따겠다고 달려든 꿀벌

 

 

 

선인장이나 다육이의 일종인 데, 꽃이 앙증맞은 게 귀엽다.

 

설화산의 화기를 누르려 인공적으로 마을로 끌어들인 수로

 

 

 

 

외암마을은 예안 이 씨 중심으로 구성된 마을이다.
마을 앞쪽으로 넓은 농경지를 두고, 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막아주는 사이의 구룡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이 처음에는 넓은 농경지로 인해 자연발생적인 듯 하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 예안 이 씨가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인물이 나타나자

점차 예안이씨 후손들이 번성하여 집성 마을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이 마을은 입구의 물(다리)을 건너면서 약한 구릉지에 집들이 길을 따라 독특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마을 가운데로 안길이 있고 이 안길은 올라가면서 좌우로 샛길을 뻗치고 있다.

이러한 모양은 하늘에서 보면 마치 나뭇가지와 같이 큰 줄기를 따라 올라가면서

작은 가지가 뻗고 가지 끝에 열매가 맺어 있는 것과 같은 자연 형태와 같은 마을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듯한 마을이지만 거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원칙이 있다.

즉 마을의 동북쪽에 위치한 산을 주산이라 하는데 주산인 설화산과 서남쪽에 위치한 봉수산을 잇는

긴 선이 이어지는 축선에 일정한 영역을 만들어 그 영역 안에 집들을 배치해 두었다.

마을의 전체적인 모양은 동서로 긴 타원형이다.

동북쪽의 설화산 자락이 마을에 이르러서는 완만하게 구릉을 만들면서 마을 앞쪽으로 흘러 내려간다.

따라서 서쪽의 마을 어귀는 낮고 동쪽의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동고서저(東高西低) 형상이다.

이러한 지형조건에 맞추어 집이 앉은 방향은 거의 서남향이다.

                                                                                     [출처_외암마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온 의암마을은 무척이나 고즈넉해 마음이 포근해진다.

마을을 감싸는 설화산이 가깝고 개울은 개울대로 흐르고,

마을 안쪽으로 인공적인 물길이 흘러 세탁기가 없던 시절에 빨래하기도 좋았겠다.

문을 열면 문전옥답이 펼쳐 저 농사짓기도 수월했을 테니 마을 인심도 후했을 것이다.

아산 설화산 등산 후 맹씨행단과 이곳 외암마을은 여유를 갖고 탐방하기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