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_12(지하철 산행 순례_04)
2021.2.19. (금) 08:27~13:53(전체 시간 5시간 25분, 30분 휴식, 14.6km 산행, 평속 2.9km/h) 맑음
그제와 어제는 아침 기온이 영하 10℃까지 떨어지는 반짝 꽃샘추위가 엄습했다.
겨울이 가고 눈이 녹아 비나 물이 된다는 우수가 어제이고 보면 날은 춥다지만 봄은 봄이다.
24절기가 고대 중국의 황하 주변인 화북지역에서 만들어졌다니 우리와 1주일 정도 시차가 난다.
절기상 봄이라지만 게으름을 핑계로 꽃샘추위를 피해 날이 풀린다는 오늘에야 현관을 나선다.
등산하려면 아침부터 움직여야 하니 직장인 출근시간과 겹친다.
대부분 수도권으로 출근하는 번잡함을 피해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가까운 천안지역을 찾는다.
이리저리 이어지는 산줄기 전부를 하루에 돌 수 없으니 그중 일부만 타고 나머지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그렇게 선정된 곳이 상명대 천안캠퍼스를 들머리로 왕자산, 태조산, 흑성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왕자산 태조산 흑성산 산행코스
평소처럼 여유를 갖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데, 건너편에 버스가 신호 대기 중이다.
정류장까지 거리가 제법 되므로 열나게 뛰어 버스에 도착하니 두 명 태우고 막 출발한다.
버스를 쾅쾅 두드려 세운 후 겨우 탈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전철 도착 3분 전이라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 평소처럼 걸어 전철 출입구에 도착했다.
전철 도착시각인 24분인데, 안내판엔 출발이란 글자가 보인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핸드폰 시각은 21분이었는데, 초침이 아닌 다음에야 1초인지 59초인지 알 도리가 없다.
다음번 전철을 기다려야 되겠거니 했는데, 연착으로 2분 늦게 전철이 들어온다.
전광판에서 보여준 건 전역 출발 상태를 보여준 걸 당역에서 출발한 것으로 오인한 촌극이다.
상명대 천안캠퍼스 생활관을 지나 이 법인사무국 건물 앞 계단을 오르며 산행이 시작된다.
능선을 잡아타면 우측엔 상명대와 호서대 천안 캠퍼스, 좌측엔 백석대가 자리한다.
뿐만 아니라 건너편엔 단국대 천안캠퍼스가 있고, 좀 더 멀리 공주대 천안캠퍼스도 있다.
불과 4km 원 안에 다섯 개의 대학이 있으니 젊은 열기가 가득한 지역이다.
잠깐 폭넓은 산책로를 타다가 오솔길을 따라 능선으로 올라가야 한다.
왕자산도 큰 범주의 태조산에 든다는 뜻일까?
2020년 12월에 소나무 재선충병 예방주사를 맞았다는 표식이니 불과 세 달 전 상황이다.
인간 세계에선 코로나로 백신을 맞아야 내성이 생긴다는데, 산에선 소나무가 집단으로 백신을 맞았다.
인간 세상이나 나무 세상이나 모두 집단면역이 필요한 시점이란 말인가.
소나무조차 재선충병에 골머리를 앓아 머리끈 질끈 두른 듯 보인다.
버스정류장에서 상명대 통과해 왕자산까지 2.8km 거리로 꼭 한 시간 걸렸다.
흔히 왕자(王子)산으로 알기 쉬우나 王字산이다.
왕字는 인공위성 사진으로 분석해야 알 수 있다고 하니 옛날 사람들은 크게 볼 줄 알았다는 얘기다.
높이라야 겨우 342m에 지나지 않으니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높이다.
산이 낮아 천안시 홈페이지에선 안내가 없어 중앙일보 기사로 왕자산 소개를 대신한다.
□ 왕자산(王字山)
우리 고장의 역사 연구가 윤종일 선생은 천안의 진산이 왕자산이란 책을 펴냈다.
그는 발로 뛰며 고금의 자료와 사진,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해 성거산·태조봉·흑성산·취암산을 합한
산줄기들의 모습이 왕자임을 밝히고 왕자산이 진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구전돼 오는 이야기에도 ‘지세가 임금 왕자인 이곳에 왕씨 성을 가진 사람이 거하면
반드시 천하를 통일하고 왕이 된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어쨌든 우리가 살고 있는 천안이 천하의 명당이라고 하니 더없이 좋다.
[출처: 중앙일보 기사 일부 발췌]
왕자산에서 보는 천안시
산줄기 왼쪽에 상명대, 오른쪽에 백석대, 좀 더 우측에 단국대가 보인다.
이렇게 대학들이 들어서며 10여 년 전부터 천안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동남향 묫자리 1대와 2대가 사이좋게 명당을 차지했다.
이젠 시대가 바뀌었으니 산을 갉아먹는 이런 매장보다 납골로 산림 훼손을 막는 장묘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산소에서 약 50~60m 오르다 보면 속이 보이지 않는 좁고 작은 수직 굴이 나온다.
굴이 궁금해 안으로 들어서니 4~5m 정도 아래쪽엔 밖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
거의 수직형 동굴이라 위험하므로 굳이 내려가지 않는 게 좋다.
이틀 전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은 곳도 있다.
여기서 직진하면 성거산,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태조산이다.
오늘은 짧게 끝낼 생각이므로 태조산으로 이동한다.
전국에 몇 개 보이지 않는 m 단위의 이정표다.
각원사는 5m까지 단 단위로 표시했으므로 신뢰도 98%에 오차범위 ±1~2% 정도로 정확하지 않을까?
이 정도면 믿음이 간다.
또 뽀드득 소리를 즐기며 눈길을 걷는다.
태조산 방향은 이렇게 펜스를 쳐 갈 수 없다.
"태조 왕건"이란 드라마 속 이야기로 천안의 지리적 장점을 나열했다.
즐풍은 사극을 포함해 연속극은 보지 않아 그 재미를 모르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사극을 즐기는 모양이다.
천안이 삼국통일로 고려를 세우는 전초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다.
□ 태조산
태조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 위업을 실현시킨 오룡쟁주 지세를 가진 천하제일의 명당이자 명산이다.
천안에는 고려 태조와 관련한 전설이 많은데, 그중 하나는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공략하려고 할 때,
술사 예방이 ‘이곳은 다섯 마리 용이 여의주를 얻으려고 서로 다투는 오룡쟁주의 지세이니
이 땅에 만약 삼천호읍을 설치하고 군사를 훈련하면 백제가 장차 항복하리라’하고,
‘삼국을 통일하고 왕이 되는 것은 서서 기다려도 될 만큼 속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태조에게 고했다.
풍수지리를 신봉하던 태조 왕건이 이 산에 올라 실로 오룡쟁주 지세임을 확인하고
천안 도독부를 설치해 후삼국 통일의 전진기지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태조가 올랐던 곳을 태조봉, 머물던 곳을 유왕골, 유려왕사,
군사를 주둔시켰던 곳을 고정이라 하며 태조와 관련된 옛 지명이 더러 남아 있다.
[출처: 중앙일보 기사 일부 발췌]
실제 태조산은 250m 거리에 있는데, 철책으로 막아놓고 이곳에 태조산 표지석을 세우고 정자를 만들었다.
지나온 태조산
태조산과 흑성산 경계인 고갯마루를 지나는 도로에 생태통로를 만들었다.
□ 흑성산
흑성산(해발 519m)은 동쪽으로 산방천을 넘어서 은율산이 솟아있고
북쪽으로는 천안시의 진산인 태조봉을 거쳐 성거산이 바라다 보이며
서쪽에는 마점산 너머로 천안시가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승천천을 건너서 취암산과 고려산으로 연결된다.
흑성산 정상에는 석축 둘레 2,290척, 높이 6척의 성터가 있었으나 지금은 일부만 남아있다.
흑성산의 본래 이름은 검은산인데 이 산을 중심으로 김시민, 이동령, 이범석, 유관순, 조병옥 등
많은 구국열사가 배출되었으며 일제 때 '검다'는 뜻을 그대로 옮겨서 '흑성산'으로 바꾼 것이다.
풍수지리상 이곳은 서울의 외청룡에 해당되고 금계포란형
즉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의 명당 길지로서 '좌우동천승적지'라 하였다.
여기서 좌우동천승적지는 석천리와 지산리의 승적골을 말하는데
석천리의 승적골은 5목(덜목, 제목, 칙목, 사리목, 돌목)의 사이에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 있기 때문이며
이곳에 독립기념관이 들어서게 된 것과 관련하여 암행어사 박문수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영조 때 암행어사 박문수가 죽자 그의 묘소를 지금의 독립기념관 자리에 정하였는데,
이때 어느 유명한 지관이 이곳은 2~3백 년 후에는 나라에서 요긴하게 쓸 땅이므로 그때 가면 이장을 해야 되니
이곳에서 십여 리 동쪽에 묘를 쓰라고 권하여 지금의 북면에 위치한 은석산에 묘소를 정하였다고 한다.
과연 '검은성'이라는 이름 그대로 국가적 사업에 의한 독립기념관이 들어서니
풍수지리상 명당 길지인 이곳이 제구실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출처_천안시청]
천안시청 안내문을 보면 암행어사 박문수 묫자리를 쓸 때 지관이 2~3백 년 후 앞날까지 예견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대단한 지관의 예측력이다.
흑성산 정상엔 통신시설이 있어 통과할 수 없다.
하산 후 천안 독립기념관을 둘러볼 생각에 이 MBC흑성산 중계소 앞으로 난 도로를 따라 이동한다.
이 차는 4륜 구동 트럭인 듯싶은데 눈길을 이기지 못하고 배수로에 빠졌다.
이번 눈에 바퀴 자국이 없는 걸 봐선 지난번 눈길에 당한 것 같은 데, 아예 버리고 간 건 아닐까.
견인비가 없다면 돈 좀 빌려줄까...
차도로 가다 보니 지루하길래 "국립중앙 청소년수련원"으로 들어오며 거리를 줄였다.
어렵지 않은 육산이라 모처럼 송림제화 수제 등산화를 신었다.
빌어먹을 등산화가 어떻게 된 건지 양말을 계속 끌어내려 몇 번씩 등산화를 벗고 양말을 다시 신어야 했다.
9년 전 50만 원이 넘는 거금을 주고 맞춘 것인데, 꼬락서니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청소년 수련관 조형물
단풍나무숲길은 도로 양쪽 주변 3.2km에 1,200여 그루의 단풍나무를 심었다.
10월 중순부터 약 한 달간 많은 사람이 찾는 단풍 명소가 되었다고 하니 가을에 다시 와야겠다.
드디어 독립기념관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겨레의 집
겨레의 집은 독립기념관의 상징이자 광복절 경축식 등이 거행되는 국가적 기념공간이다.
건물 높이는 126m, 폭 68m로서 축구장 크기에 15층 높이의 동양 최대의 기와집이다.
지붕 면적만 9,9917㎡로 43,100장의 동기와를 이었다.
지름 1.8~2.4m, 높이 15~29m의 기둥 40개가 지붕을 받치고 있으며,
독립기념관 현판은 서예가 김충현이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안내문)
불굴의 한국인상
독립기념관의 상징적 조각으로 불굴의 독립정신과 강인한 한국인상을 표현한 것이다.
무게 3~4톤이 나가는 화강암 274개를 쌓아 하나씩 조각 작품을 미루어 냈다.
8명의 성인 군상은 우리나라 8도의 전민족을, 어깨에 올려 안은 어린아이는 민족의 미래를 나타낸 것이다.
뒷면에 부조된 백두산 천지로부터 연결되어 용솟음치듯 자유·정의·인류평화를 향해 전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발밑의 출렁이는 물결과 굳센 바위는 우리 민족이 어떠한 시대적 격랑 속에서도
민족 공동체에 대한 의무·단합·용기의 반석을 딛고 굳세게 나가는 것을 나타낸다.
뒷면 양쪽에 억압의 사슬을 끊고 자유와 독립을 위해 나아가는 맨손의 독립만세 시위대와 무장독립군 용사상이다.
조각 김영준 (안내문)
독립기념관 건물 뒤 1 관부터 7관까지 전시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일제와 맞서 싸우던 독립군이 겨울 눈밭에 신던 신이다.
광목천에 짚신을 신고 새끼줄로 묶은 형태다.
방수가 안 돼 물이 스며들고 동상 걸리기 일쑤인 열악한 환경에서 조국을 지킨다는 일념으로 일제와 맞섰다.
선열의 이러한 희생으로 지금의 우리가 있다.
한 시간 정도 관람하고 독립기념관을 나선다.
영원불멸의 민족 기상을 표현한 "겨레의 탑"이다.
간단하게 끝낸다는 산행이 흑석산을 끝으로 시멘트 도로 약 3.5km를 걷는다고 고생 좀 했다.
흑석산에서 MBC 중계소 반대편으로 돌았으면 산길이라 좀 더 편했을지 모른다.
산행보다 독립기념관을 본 게 더 가슴에 남는다.
가을 단풍철에 다시 들려볼 명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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