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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경상도·부산·울산·대구

함안박물관과 아라홍련 시배지, 고인돌공원

by 즐풍 2021. 7. 4.

 

 

 

2021.6.22. (화)  함안 말이산 아라가야고분군 탐방 시 함께 탐방

 

 

역사를 전공하지 않는 한 삼국시대의 세 나라가 아닌 변방의 가야국에 대한 공부는 거의 하지 않는다.

가야는 그저 경상도 한 귀퉁이에 잠시 존재했던 나라로 치부되기 일쑤다.

요즘은 가야문화에 대한 재평가 문제가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

오늘 함안 말이산 아라가야고분군을 보면서 가야는 부족 국가 수준을 넘어선 문화 찬란했던 국가라는 걸 알게 됐다. 

 

말이산 아라가야고분군을 둘러보다가 같이 있는 함안박문관과 아라홍연 시배지, 고인돌공원도 둘러봤다.

같이 올리기엔 양이 너무 많아 박물관과 아라홍련 시배지, 고인돌공원을 따로 뺀다.

그 각각의 사진은 많아야 서너 장 밖에 안 되니 다 합쳐봐야 몇 장 되지도 않는다.

그래도 번잡하게 섞인 것보다 좋다는 생각에 별도로 올린다.

 

 

함안박물관에 가면 가야고분군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거란 생각에 들어섰으나

코로나 때문인지 문을 닫았다.

아쉽지만 아라홍련 시배지로 발길을 돌린다.

 

 

 

 

□ 수레바퀴모양토기(말이산 4호분 출토)

 

이 모형은 5세기 때 아라가야 왕의 무덤인 말이산 4호분에서 출토된 수레바퀴모양토기를 약 10배 크기로 

확대하여 만든 청동상이다. 

수레바퀴모양토기는 아라가야의 뛰어난 토기 제작 기술과 미적 감각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토기이다.

원래의 용도는 장례식이나 제사를 지낼 때 술과 음료를 담아 마시는 잔의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보이나 

수레바퀴 장식을 하였다는 점과 무덤 부장용의 유물이란 점에서 죽은 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실어 나르는 

운반 도구를 토기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아라가야의 수레바퀴모양토기는 굽다리 위에 뿔을 형상화한 U자 모양의 원통형 용기를 올려놓고 

그 양쪽에 수레바퀴 한 쌍을 배치한 형태이다. 

바퀴는 원형판의 가장자리에 선을 그어 나타내었으며, 

그 내부의 방사상으로 직사각형 구멍을 뚫어 바큇살을 표현하였다.

또한 바퀴의 중앙에 구멍을 뚫고 굴대와 연결함으로써 수레바퀴가 실제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안내문)

 

 

아라홍련 시배지는 작은 연못에 연꽃을 심었는데, 지금 무슨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 없다.

철책선 밖에서 사진 두 장을 찍는다.

연꽃도 700여 년 전의 씨를 발아시킨 것이라 화장 안 한 시골처녀를 보는 듯 예스럽게 보인다. 

 

□ 아라홍련 시배지

 

전국 최고·최대 목간 출토지로 잘 알려진 함안 성산산성(사적 제67호) 내 연못에 대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 과정에서 옛 연씨가 수습되었다.

함안박물관에서는 수습된 연씨 중 일부를 인수받았으며, 이 중 두 알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의뢰하여 

연대를 분석한 결과, 지금으로부터 약 700여 년 전, 즉 고려시대의 연씨임이 밝혀졌다. 

이에 함안박물관에서는 농업기술센터와 공동으로 연씨에 대한 씨 담그기와  싹틔우기를 시도하였고, 

이후 분갈이 등을 통해 2010년 7월 처음으로 ‘붉은빛이 감도는 연꽃’을 피우는 데 성공했다.

이 연꽃을 아라홍련이라 이름 지은 것은 함안이 고려시대에도 여전히 과거 융성했던 아라가야의 옛땅으로 

기억되고 있었음에 착안한 것이다.

아라홍련은 한 해 중 7~8월에 꽃이 피며, 하루 중 오전 6~11시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다.

함안박물관에서는 아라홍련의 고유종 보호를 위해 이곳(가야읍 도항리 649번지)에 약 500여 평의 부지를 마련하여 

‘아라홍련 시배지’를 조성했으며, 처음 핀 아라홍련의 씨 뿌리 150 측을 2011년 5월 옮겨와 심었다.

아라홍련은 많은 관심과 노력이 속에 시배지에 뿌리를 잘 내렸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다.  (안내문)

 

   

아라홍련 시배지 옆 고인돌공원이다.

 

□ 기반식 고인돌 

 

기반식 고인돌은 우선 땅을 파고 판돌을 세우거나 깬돌을 쌓아 올려 무덤의 네 벽면을 만든 다음 

그 주위에 고임돌 4~8개 정도를 놓고 커다란 덮개돌을 덮어 만든다. 

이는 마치 큰 바둑판처럼 보여 기반식 고인돌이라  부르며, 

주로 우리나라의 영호남 지역에 분포하기 때문에 남방식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무덤의 형태는 일정은 형식이 없으며, 큰 덮개돌을 구하거나 운반하기 쉬운 평지나 구릉에 주로 분포해 있다. 

드물게 좁은 평지가 있는 계곡 사이나 산의 경사면 또는 산 정상부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이 기반식 고인돌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남 화순지역의 고인들을 모방하여 시작하였다.   (안내문)

 

 

 

□ 암각화 고인돌 

 

바위 면이나 절벽 면 또는 동글 벽에 사람, 동물 등의 모습을 쪼으기, 새기기, 색칠하기 등의 수법으로 그

린 것을 암각화라 하는데, 드물게 고인들의 덮게 돌이나 선돌과 같은 거석기념물 등에서도 확인된다.

암각화의 내용은 대략 세 가지로 정도로 구분되는데,

① 사람이 얼굴 또는 신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 

② 사냥하는 모습 등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표현한 것 

③ 동심원, 마름모꼴 선 무늬 등 각종 기하학적 무늬를 표현한 것이 있다.

암각화는 주로 풍요와 다산을 목적으로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통해 청동기시대인의 신앙과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다.

 함안에서는 도항리 다호 고인돌의 덮개돌에서 암각화가 확인되었는데,  

많은 알 구멍과 함께 여덟 개의 동심원 무늬가 새겨져 있다.  (안내문)

 

 

□ 도항리 가호 고인돌 

 

이 고인돌은 가야읍 말이산고분군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1991년 가야시대 고분(일명 암각화고분)에 대한 발굴 조사가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실시되었는데 

그 과정 중 고분 주변에서 청동기시대 무덤 여덟 기(덮개돌 2기 포함)와 집터가 확인되었다.

도항리 가호 고인돌은 덮개돌이 경작에 의해 유실된 상태였으며, 확인된 무덤칸은 캔 돌로 네 벽을 축조한 돌덧널이었다.

벽면은 가로 쌓기와 세로 쌓기를 섞어서 하였으며, 바닥에도 판돌을 깔았다. 

무덤칸의 규모는 길이 182cm, 너비 50cm, 깊이 75cm 정도이다.

상부와 내부가 파괴되어 출토물은 없었으나 주변에서 무문토기편이 채집되어 청동기시대 무덤임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짧게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