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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립공원 탐방/군립·시립공원

통영 수우도 함박산에서 함안 방어산으로 변경한 산행

by 즐풍 2021.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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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22. (화)  07:39~11:32(3시간 53분 산행, 6.5km 이동, 평속 1.9km/h) 맑음

 

 

거제도는 3일 여행으로 좀 부족하다 싶어도 제법 많은 곳을 다녔다.

통영에서 신거제대교를 거쳐 반시계 방향으로 농소 해변까지 왔으니 북부권과 내륙지방은

빠트렸어도 부족하지만 웬만큼 관광한 셈이다.

마지막 일정으로 거제현현아를 볼 생각에 거제현아를 찍고 도착하니 현아미용실이다.

글자 하나 빼먹었다고 엉뚱한 데로 왔으니 헛웃음만 나온다.

현아미용실에서 거제현 현아까지 23km에 30분 걸리므로 포기하고 삼천포로 넘어간다.

 

거제 여행을 끝내고 부산을 이틀 정도 관광할 생각이었으나 워낙 큰 도시라 이틀로는 부족하다.

부산은 다음에 가기로 하고 통영의 수우도에 있는 은박산을 갈 생각에 삼천포항에 도착한 것이다.

아침 여섯 시에 출항하는 배를 타려고 했으나, 첫배가 9시에 출발하기에 너무 늦다. 

결국, 수오도는 포기하고 함안군에 있는 방어산으로 급히 이동하며 한 시간을 허비한다.

삼천포의 뱃시간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잘못으로 어제 오후부터 계속 헛발질이다.

여행 계획을 잘 짜지 않으면 이런 예기치 못 한 돌발변수가 많이 발생한다.

 

 

 

□ 방어산 시립공원

 

방어산은 함안군 군북면과 진주시 지수면을 경계 짓는 해발 530m의 산으로 

웅산이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정상인 서면 지리산이 아득해 보이고 동남쪽에는 여항산과 백이산이, 동복에는 상봉산이있다.

산은 높지 않으나 군데군데 암반이 많고 능선이 제법 굴곡져 있다. 

방어산 절벽에는 5m 높이의 거대한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보물 제159호)이 선각되어 있다. (안내문)

 

 

방어산은 진주시 시립공원으로 알고 있었는데, 방어산 주차장을 찍고 오니 함안군이다.

진주에서 오르는 등산로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등산 편의상 함안의 마애사에서 출발하나 보다.

마애사에는 함안군의 봉안시설이 있어 주차장이 크고, 등산로에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이있다.

방어산을 산행하려면 보물인 마애불을 보아야 하므로 마애사를 산행 기점으로 삼는 게 좋다.

 

 

 

봉안시설의 벽화

 

방어산 대법당인 극락보전

 

산신각이다.

산신각 왼쪽 길을 이용해 본격적으로 방어산 등산을 시작한다.

 

장독대에 장딴지가 비교적 많다.

판매도 한다고 하니 사찰에서 정성스럽게 만든 장을 사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마애약사여래삼본불까지 724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산행 경력이 많지 않고 단순히 마애불까지 다녀가실 분은 약간 압박을 느낄 수 있겠다.

 

돌탑을 휘감은 용의 몸통 

 

드디어 마애약사여래삼존불을 만난다.

양각이 아니라 선각된 형태인데 1,200여 년이 넘어 비바람에 마모되어 선이 뚜렷하지 않다.

아래쪽 도형과 비교해 보는 게 도움이 된다.

 

 

 

 

□ 함안 방어선 마애약사여래삼존불입상 - 보물 제159호

 

함안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불입상은 절벽 바위에 약사여래와 보살이 새겨져 있는 마애불이다.

바위에 새겨놓은 부처를 마애불이라 한다.

약사여래는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는 부쳐인데 왼손에 약 그릇을 들고 있다.

약사여래 양쪽 옆으로 해와 달을 상징하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약사여래를 향해 서 있다. 

약사여래의 오른쪽에 있는 월광보살의 오른쪽 암벽에는 801년(애장왕 2)에 제작되었다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통일신라시대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가장 크게 새겨진 약사여래입상은 머리에 *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양 어깨를 덮은 옷을 입었으며, 왼손은 배꼽 앞으로 올려 약그릇을 들고 연꽃 좌대 위에 서있다. 

약사여래의 왼쪽에는 일광보살이 연꽃 대좌 위에 서 있으며 남성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월광보살은 머리를 위로 올려 묶었으며, 

양손은 손바닥을 맞대고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특히 월광보살의 양 눈썹 사이에는 월광보살을 상징하는 달이 새겨져 있다.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불입상은 정확한 조성시기를 알 수 있으므로 통일신라시대 

조각 편년 연구 등에 귀중한 자료이다.

 *육계:  원래 인도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올려 묶던 상투에서 유래했으며,

              부처의 크고 높은 지혜를 상징한다.

 

 

이 마애삼존불에서 왼쪽으로 50m 지점에 비로자나부처님이 계시다기에 갔는데, 실히 100m 정도의 거리이다.

 

비로자나부처님 앞에 조성한 원추형 돌탑은 많은 정성을 들여 쌓아 불심이 높아 보인다.

 

비로자나부처님이 모셔진 이 바위가 더 멋지다.

마애삼존불을 이곳에 모셨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중에 방어산 정상을 찍고 돌아와 이곳에서 직진하여 방어산을 둥근 형태로 돌아 원점 회귀한다.

 

 

방어산이라고 알람이 울려 잠깐 올라가 보니 정상엔 돌탑이 표지석 대신 정상임을 나타낸다.

사실, 정상은 여기서 500여 m를 더 가야 하니 이곳은 가짜 정상이다.

 

멀리 보이는 능선의 우측 봉우리가 방어산 정상이다.

 

□ '군립공원’ 떼고 → ‘방어산 시립공원’ 제 이름 찾았다

 단디뉴스: 2018.08.16 09:36

 

방어산 군립공원의 명칭을 ‘방어산 시립공원’으로 바꾸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진주시 시립공원 관리’ 조례안이

13일 공표됐다.

진주시는 이제야 시(市)에 맞는 시립공원의 명칭을 제대로 찾았다고 보고 방어산 시립공원 활성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와 통합했지만 20여 년이 넘도록 진주시 지수면에 위치한 방어산 군립공원은

‘군립공원’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었다.

시민들은 진주시가 군(郡)이 아닌데, 군립공원의 존재에 대해 의아해했다.

사실은 이랬다. 그동안 자연공원법에 ‘시립공원’ 자체가 없었다.

자연공원법 2조에 “자연공원이란 국립공원·도립공원·군립공원 및 지질공원을 말한다”고 해 놓고,

군립공원 안에 시립공원과 구립 공원을 포함시켰다.

시장·군수·구청장이 지정·관리하는 공원은 자동적으로 군립공원이 됐다.

그러니 진주시 방어산 군립공원도 법적으로 ‘군립공원’이 맞았다.

하지만 2016년 5월 29일부로 ‘자연공원법’이 일부 개정돼 해당 공원 명칭이 보다 세분화됐다.

개정된 자연공원법 4조에 “군립공원은 군수가, 시립공원은 시장이, 구립 공원은 자치구의 구청장이 각각 지정·관리한다”

라는

조항이 신설됐다.

진주시 방어산 군립공원도 진주시장이 시립공원으로 지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새롭게 마련된 것이다.
군립공원이 시립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됐다고 해서 공원 격상(格上)이 높아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립공원·군립공원·구립공원의 지위는 같다.

위로 광역 시립공원, 도립공원, 국립공원 순으로 위상이 달라진다.

하지만 진주시로서는 시(市)에 맞는 시립공원의 명칭을 23년 만에 찾았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현재 전국에 27개의 군립공원이 있다.

시 지역에 있는 군립공원은 남양주시의 천마산 군립공원, 포항시 보경사 군립공원, 사천시 봉명산 군립공원 등이 있다.

위에 언급된 지역들은 현재까지도 군립공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진주시로선 타 자치단체에 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주시는 먼저 시립공원위원회를 두어 공원 계획의 결정과 관리에 필요한 중요 사항을 논의할 계획이다.

진주시는 현재 ‘공원조성계획 수립 용역‘을 통해 방어산 조성 방안을 마련 중에 있다.

‘시립공원’으로 변경된 명칭을 기회삼아 방어산을 진주시 대표 자연생태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진주시 허현철 산림과장은 “사실 방어산은 진주시민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곳”이라면서도

“자연환경과 경관이 좋다는 세간의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시립공원으로 변경된 게 방어산 활성화의 첫걸음”이라며

“월아산처럼 진주시민께 사랑받는 진주의 산(山)이 되도록 애써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출처 : 단디뉴스]

올라갈 데가 없어 가냘픈 털중나리꽃을 타고 올라간 넝쿨 

 

□ 방어산

 

방어산은 이름 그대로 병란(兵亂)과 왜구를 무찌르고 방어했다는 산으로 정상에는 옛 성의 자취가 있으며 서쪽에는 장군당, 

그 아래는 마제현(馬蹄峴 말발굽 고개), 북쪽에는 장군철상(將軍鐵像), 동쪽에는 옛 절터가 있었다. 

절의 이름은 망일암(望日庵)이라고 했으며, 장군의 이름은 묵신우(默神佑)로서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깎아지른 듯한 

골짜기 절학(絶壑)을 날아다니면서 3백 근짜리 활을 잡아 벌리는 힘을 지녔다고 한다. 

때마침 변성(邊城)에 큰 병란이 일어나자 장군은 3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혜성(慧聖) 스님의 도움을 얻어 

산봉우리에 성을 쌓고 적을 방어했다. 

적은 방어산 맞은 봉우리에 진을 치고 도전해왔으나 장군은 성문을 굳게 닫은 채 한 달을 버티다가 비로소 영을 내려 

화전(火箭)을 빗발처럼 퍼부으니 화전에 맞아 타 죽은 적이 부지기수였다. 

적은 장군의 지략을 보고 이것을 필경 신병(神兵)의 병술(兵術)이라 하여 버텨보다가 도주했다. 

사람들은 그러한 장군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장군과 중 혜성의 철상과 철마를 세웠다고 전하며 

정군의 군마(軍馬)가 전쟁 때 흘린 핏자국이 아직도 바위에 선연하다고 한다. 

 

산 이름을 방어(防禦), 봉우리를 산성(山城), 마을 이름을 승어(昇禦 지금의 승산)라 일컬음은 방어산의 전설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지금의 승산리는 일제가 방어산의 지기(地氣)를 차단하기 위해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승어산리를 병합해 

승내리라 했다.

광복 50주년을 맞이해 우리의 고유 지명을 찾고 지기를 되찾는다는 취지에서 1995년 11월 1일 시 조례 제149호에 의해 

승 내리는 승산리로 개칭됐다. 

실제 방어산의 기록은 고려 우왕(禑王) 5년(1379) 5월에 왜구가 반성을 거쳐 이 산에 올라 목책을 세우고 진을 쳤다. 

이때 상원수(上元帥) 우인열(禹仁烈)은 박경수(朴憬修), 오언(吳彦)과 더불어 왜구를 포위, 공격해 산을 탈환, 

왜구를 방어했다는 기록이 있다. 

                                                                  [출처 : 경남도민신문 2016.03.03]

 

 

아래에서 본 방어산 암릉

 

 

 

방어산 정상

지도에는 너른 바위라고 되어 있으나 실질적인 방어산 정상이다.

더 진행해도 좋으나 산세가 무난하여 더 갈 생각이 없어 차량 회수를 위해 되돌아간다.

 

정상을 어렵게 찾아왔다고 털중나리꽃 몇 송이가 잘 반긴다.

 

 

 

 

좀 전에 본 방어산 지도에서 '함안 3-라' 지점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이용하면 마애사로 내려가는 길이라고 안내했다. 

 

길을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갈 길이 없다는 듯 숲이 우거져 잠시 고민에 빠진다.

이쪽을 이용하는 등산객이 별로 없는지 내려가는 동안 고생 좀 했다.

 

마애사가 가까워지자 예전에 민가가 있었는지 돌담이 보인다.

 

이건 경계선 돌담인지 제법 길게 쌓았다.

 

마가목 열매처럼 생긴 붉은 열매가 간간이 나타난다.

 

 

 

 

드디어 마애사에 도착하며 방어산 시립공원 탐방을 마친다.

방어산은 신문 기사 내용으로 보면 제법 역사적인 의미가 강한 산이긴 하나 산세가 약하다.

산행하실 분은 참고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