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_59
2020.9.5. (토) 06:36~15:00 (산행 시간:8시간 24분, 전체 거리: 18km, 한 시간 50분 휴식, 평속 2.3km/h) 흐림
서암사 경내로 들어서며 카메라를 꺼내 들고 준공된 사찰을 찍으려고 셔터를 누른다.
그런데 웬걸, 아예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며칠 전 조선왕궁 탐방 후 배터리 충전을 안 했어도 적어도 200여 장 찍을 분량의 배터리가 남아 있어야 정상이다.
전원을 켠 상태에서 30초 후 자동 꺼짐을 설정해 놓아 문제가 없는 데, 어떻게 된 거지?
배터리 통을 열어 보니, 헉~ 배터리가 없다.
배터리를 충전하고 안 꽂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충전한 기억이 없다.
기억을 원망하며 카메라를 보는 순간, 카메라를 잘못 가져온 걸 알았다.
그동안 쓰던 카메라가 바위에 긁힌 부분이 흐리게 나와 요즘 딸의 카메라를 갖고 다녔다.
카메라가 보이는 대로 갖고 나오다 보니 안 쓴다고 배터리를 빼놓은 즐풍 카메라를 가져온 것이다.
사진 찍을 땐 몰랐는데, 사진도 못 찍는 카메라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진다.
왜 안 그럴까.
두꺼운 구경의 탐론 렌즈로 교체하여 제법 무게감이 있다.
카메라를 어디에 숨기면 홀가분하겠는데, 비 온 뒤라 습기가 많다.
땅에 숨기고 은폐하자면 아무래도 비닐 속에 넣어야 습기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비닐봉지가 없으니 그냥 배낭에 넣기로 하고 배낭 상단의 수납함을 여니 얇은 비닐 우비가 있다.
순간 쾌재를 부른다.
비닐 우비로 카메라를 둘둘 말아 바위 뒤에 숨기고 덮는 낙엽엔 물기가 제법 많다.
꿩 대신 닭이라고 휴대폰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북한산 산성계곡~의상능선 등산 코스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에서 올라갈 땐 늘 산성계곡을 이용한다.
아스팔트는 걷기가 불편한 데다 가끔 차량이 지나가면 매연을 오롯이 들이켜야 하니 불편하다.
며칠 전 비가 내려 수량이 제법 많다.
북한산 정상을 보려고 일부러 돌아왔는 데, 카메라가 없으니 사진이 별로다.
동장대를 복원한 후 오래돼 단청 색이 다 빠졌다.
단청이라도 새로 칠하면 근사하겠는데, 이족 예산 편성을 따로 세우지 않는 모양이다.
칼바위 능선
대동문 공터에서 이른 점심 먹고, 보국문으로 넘어왔다.
보국문 안쪽에는 건설 당시 이렇게 글자를 새겨 넣었다.
탁본을 떠야 글자가 제대로 보고 해석할 수 있겠다.
대성문 천장엔 구름 모양의 단청을 넣어 산뜻한 느낌이 난다.
카메라에 다 잡히기 힘들던 대성문 지붕이 폰에 거의 다 들어간다.
폰 사진도 그런대로 화각이 넓은 편이다.
보현봉 일원
새로 복원공사를 마친 대남문은 단청까지 새로 칠해 산뜻한 느낌이 좋다.
주능선에 있는 이 대남문은 종로구와 고양시 경계에 있다.
행궁이 고양시 관내라 그런지 대남문도 고양시에서 복원비용을 댔다.
문수봉 정상
연화봉
연화봉으로 내려가는 능선
대부분의 등산객이 715봉으로 알고 있는 상원봉에서 바라본 나한봉이다.
누군가 상원봉에 있는 이정표에 715봉이라고 매직으로 써놓았다.
상원봉이란 이름이 있음에도 많은 등산객이 715봉으로 잘못 아는 나쁜 결과를 부른다.
나한봉을 내려가며 바라보는 의상능선 전경
에스컬레이터 바위는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우측 바위에 어깨가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조심 지나가야 한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구간은 낭떠러지라 처음 다니는 사람은 켕기기도 한다.
맨 앞사람이 벌벌 떨며 내려오면서 처음이라 그렇다고 멋쩍어한다.
뒷사람이 여기만 지나면 위험한 고비는 다 넘긴다며 안심시킨다.
증취봉을 지나 용혈봉으로 가는 길이다.
저 바위는 즐풍도 아직 오르지 못한 바위인데, 저 바위에 올라갈 정도면 바위를 잘 타는 사람이다.
강아지 바위
용혈봉에서 바라보는 용출봉
용출봉과 의상봉
용출봉을 목전에 두고 '자명해인대(紫明海印臺)'가 새겨진 바위가 보인다.
용출봉 오르며 뒤돌아 본 용혈봉
용출봉 오르는 마지막 구간의 바위
이 소나무는 겨울엔 잎이 누렇게 변해 죽는 줄 알았는데, 여름엔 비가 자주 내리니 건강하게 잘 자란다.
몇 백 년이고 이 자리에서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좋은 기운을 주길 바란다.
국녕사
의상봉 남벽
의상봉에서 정규 코스로 내려가지 않고 대서문 쪽으로 방향을 튼다.
등산할 때 카메라를 바위 뒤에 안 보이게 숨겼는데, 이 코스로 내려가야 가장 빠른 코스다.
예전엔 이곳을 이용하는 등산객을 위해 와이어로프를 설치하기도 했다.
원효봉 서암문에서 내려오는 산성은 수문을 지나 대서문으로 연결된다.
대서문에서 올라오는 산성이 여기서 잠시 멈추고 바위가 산성 자리를 차지한다.
의상능선으로 올라가면 바위와 성벽이 서로 자리를 내어준다.
위험한 바위엔 이렇게 바위를 파 계단을 만들기도 해 어렵지 않게 다닐 수 있다.
산성 축성 당시엔 바위에 계단을 만들었으나 이후 우측으로 안전하게 와이어로프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 전망 바위에서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한다.
전망 바위에서 보는 백운대 일원의 거대한 암봉 군락
한 칸 아래 원효봉
대서문 물받이인 용두
무량사를 지나 카메라를 무사히 회수한다.
산행을 끝내고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에서 「국립공원 스탬프 투어 여권」을 하나 받았다.
22개 국립공원 중 제주특별자치도에서 관리하는 한라산 국립공원만 제외되었다.
여권 크기의 「국립공원 스탬프 투어 여권」은 왼쪽 면엔 각각의 국립공원이 소개되고,
오른쪽 상단엔 스탬프와 방문 날짜를 날인하고 하단엔 간단한 추천 여행지와 먹거리, 즐길거리가 소개되었다.
국립공원은 진작에 탐방을 다 마쳤으나 하나씩 다시 다니자면 제법 시간이 걸리겠다.
여권의 유효기간은 2023년 9월 30일까지 3년 한정으로 스탬프를 찍어 주겠단 말씀이다.
도봉산까지 포함된 북한산 국립공원은 스탬프를 찍어주는 곳이 열 군데로 가장 많다.
변산반도와 월출산, 경주 국립공원은 두 군데로 가장 적으니 스탬프를 어디서 찍어주는지 방문 전에 미리 알아야 한다.
이 여권에 10개 공원을 인증받으면 「잎새」로 기념 메달과 패치, 인증서를 받게 되고,
21개 공원 전부를 돌아 「나무」가 되면 기념 메달과 패치, 완등(완주) 인증서를 받게 된다.
여권에 스탬프를 받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으로 국립공원이란 학교에 막 입학한 순한 학생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한동안 국립공원 투어를 위한 착한 학생들로 국립공원이 자못 활기를 띠겠다.
표지
오늘 찍은 스탬프와 일부인이다.
스탬프는 보통 쓰는 감색이 아니라 진한 갈색이라 무척 예쁘다.
스탬프 찍을 자리에 울산바위가 명도 약하게 인쇄되어 기준점이 된다.
설악산
지리산
다도해해상 국립공원이 가운데 페이지라 한 번 더 찍었다.
여권을 들고 가다 큰길을 건너기 전 벤치에 앉아 배낭에 집어넣고 차 열쇠를 꺼냈다.
막 건널목 신호등 앞에 도착했을 때 주머니에 열쇠가 없다.
배낭 주머니를 열어 열쇠가 있는지 확인해야 되는 데, 마침 신호가 떨어져 그냥 건너가 확인하니 열쇠가 없다.
얼른 벤치로 가 찾아야 하는 데, 신호가 너무 길게 느껴진다.
급하게 뛰어 벤치에 오니 열쇠가 안 보인다.
그 짧은 순간에도 여러 등산객이 지나갔으니 이를 어쩐담...
다행히 열쇠가 바닥에 떨어진 걸 회수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요즘 생활은 늘 이렇게 좌충우돌이다 보니 집에서 난리가 났다.
치매 초기이니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라, 정신 차리라는 등 말이 많다.
사실상 은퇴하고 나니 긴장이 풀어져서 그런가.
한두 번은 웃으며 넘어갔는데, 이젠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처방받아야 노후를 치매 없이 보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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