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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 탐방/북한산

북한산성 계곡으로 오른 후 의상능선으로 하산

by 즐풍 2020. 7. 12.

2020-50

 

 

2020.7.11. (토) 07:05~13:54(6시간 49분간 14.1km 산행, 휴식 69분 포함, 평속 2.3km/h) 맑은 후 흐림

 

 

작은딸은 일정이 있다기에 큰딸과 아침 7시에 만나 산행하기로 했다.

큰딸네 집으로 출발하기 전 전화를 하니 어제 오후에 커피를 먹어 잠을 못 자 산행할 수 없다고 한다.

커피에 너무 예민한 걸 보니 아빠와 똑같다.

즐풍도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잠을 잘 못 잤는데, 지금은 좀 나아졌다.

 

큰딸과 산행하면 북한산성계곡에서 부왕동암문으로 올라가 의상능선을 탈 생각이었다.

힘들면 중간에 가사당암문에서 국녕사로 하산할 예정이었다.

즐풍 혼자 산행하니 대남문을 거쳐 문수봉에서 의상능선을 타기 딱 좋다.

어제 비가 내린 끝이라 아침 날씨는 청명한 게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북한산 의상능선 등산코스

북한산성 2주차장에서 보는 의상봉과 용출봉

 

늘 의상봉부터 올라갔는데, 오늘은 북한산성 계곡으로 문수봉까지 오른 후 의상능선으로 하산할 생각이다.

비석거리의 산영루이다.

 

어제 비가 내렸다고 하지만, 습기도 별로 없고 아침이라 아직은 덥지 않다.

의상능선만 탈 경우, 오늘처럼 산성계곡으로 오른 후 능선으로 하산하면 체력 소모를 많이 줄일 수 있겠다.

계곡 숲길도 의외로 운치 있는 게 걷는 맛이 난다.

조망 좋은 능선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

 

이곳은 행궁권역이다.

북한산성 행궁을 중심으로 경리청 상창(위쪽 창고)과 관성소, 호조창 등이 있던 곳이다.

행궁은 전란시 왕이 임시 거처하는 별궁이다.

관성소는 산성 관리를 총괄하는 주관 부서인 경리청의 산성 내 현지 관청이다.

상창과 호조창은 산성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식량 창고였다.

이런 주요 시설이 조성된 '행궁권역'은 북한산성에서 제일 중요한 장소였으며,

위치상으로도 산성의 중심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안내문)

 

금위영 유영지

 

이곳은 북한산성이 축조에 성곽 수비와 관리를 맡았던 금위영 유영(留營: 현지 주둔부대)이 있었던 곳이다.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이 축조되었을 때 금위영 유영은 지금의 대동문 근처에 있었으나,

그곳의 지세가 높고 바람이 심해 1715년에 보국사 아래인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북한산성 중앙 군영인 훈련도감·어영청·금위영 등 삼군문(三軍門)의 주관 아래 각 군문이 전체 성벽을 축조하고,

축성 이후에도 해당 구간을 그대로 맡아서 수비하였다.

금위영의 축성 수비 구간은 응암봉에서 보현봉까지였다.

그중에서 창고가 54칸으로 가장 큰 건물이었다.

금위영 유영지에는 1715년에 이곳으로 금위영 유영을 옮긴 내역을 기록한 금위영이건기비가 전해온다. (안내문)

 

북한산 금위영 이건기비(北漢山 禁衛營移建記碑)

 

임진왜란 이후 중앙 군영인 삼군문(훈련도감·어영청·금위영)을 설치하여 서울 도성을 직접 방어하게 하였다.

이들 중앙 군영을 동원하여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을 축성하고,

현지 주둔부대인 유영(留營)을 두어 산성의 수비를 구간별로 나누어 맡게 하였다.

이 삼군문의 유영 중에서 금위영 유영만이 높은 곳에 위치하여 비바람에 무너질 위험이 있기에

1715년 지금의 대동문 근처에서 이곳으로 옮기며 세운 석비이다.

비문에는 금위영이 용암봉에서 보현봉까지 성곽을 쌓고 축성이 완료된 뒤에도

해당 구간을 수비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시단봉에 금위영의 지휘소인 동장대(東將臺)를 세웠다는 것과 보국사·보광사·용암사·태고사를

금위영 유영의 관할에 두었다는 사실도 함께 새겼다.                                   (안내문)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을 쌓을 때 전국에서 승병을 동원했다.

이때 승병이 머물 사찰 11곳과 암자 2곳을 새로 짓거나 고쳐 지었다.

이곳엔 승려 설휘가 창건하였다는 71칸 건물의 보광사라는 승영사찰(僧營: 승려들이 조직한 군대가 주둔)이 있었다.

승영 사찰은 산성이 완성된 후에 삼군문(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의 군사시설을 보조하여 산성 수비를 맡았다.

법당과 같은 신앙 공간도 있었지만 무기고와 군량 창고 등과 같은 군사시설이 더 중시되었다.

승영 사찰은 강보개혁(1894) 때 승병이 강제로 해산되어 쇠락해졌다.

한국전쟁 당시에 대부분 파괴되어 지금은 석축만 남아 있을 뿐이다.    (안내문 편집)

 

보광사 터 앞길은 얼마간 이런 너덜길을 걸어가야 한다.

 

주차장소에서 대남문까지 6km를 두 시간 만에 도착했다.

유순한 계곡을 따라 쉬지 않고 올라온 결과다.

몇 달 동안 대남문 수리공사를 하더니 이렇게 홍예문 석축을 하나 교체했고 단청도 새로 칠했다.

돌기둥 하나 교체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기술이 들어갔겠다.

새로 단청한 대남문

 

대남문과 가까운 문수사를 잠깐 들리기 위해 이동하며 찍은 보현봉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바위도 막상 타려면 험하기 그지없다.

 

문수사에 있는 천연동굴로 제법 넓고 큰 규모다.

부처님이 모셔졌으나 입구에서 찍은 게 잘 안 나와 사진은 생략한다.

 

삼성각 가는 길에 잡은 건너편 연화봉 능선의 횃불 바위 일대

 

문수사는 1109년 탄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

스님은 주위의 기암괴석이 이루는 경관과 천연 동굴에 매료되어 이곳에 사찰을 지어 문수암이라고 하였다.

동굴은 문수굴이라 하였다.

이후 여러 번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문수사 대웅전

문수봉 전망대에서 다시 보는 횃불바위

 

 

문수봉

 

문수봉은 의상능선의 마지막 봉우리이자 북한산성 주능선의 끝자락이다.

동남쪽은 서울이고 반대편은 고양시이다.

서북쪽으로 의상능선이 펼쳐지고, 남쪽으로 사모바위, 비봉을 거쳐 향로봉으로 연결된다.

 

문수봉 정상에 올라와서 다시 보는 연화봉 방향

북한산에서 가장 기가 센 지역이라 사이비 종교인의 놀이터인 보현봉이다.

점점이 박힌 바위 이름이다.

문수봉 전망대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 일대의 고봉 이름

문수봉 정상에서 본 아래쪽 바위는 이름조차 없다.

바로 위 사진의 바위를 문수봉에서 내려와 옆에서 본 모습이다.

 

왼쪽은 나한봉이고 오른쪽 봉우리는 흔히 715봉 또는 716봉으로 더 많이 불리는 상원봉이다.

봉우리 높이가 정식 명칭이 아니므로 상원봉으로 제 이름을 찾아주자.

올려다본 문수봉

 

 

 

상원봉에서 바라본 문수봉이다.

바위 왼쪽 끝에서 올라갈 수 있다.

상원봉에서 보는 나한봉

 

의상능선 봉우리 명칭

 

의상능선만 당기면...

 

나한봉 치성

 

치성(雉城)은 성곽 일부분을 네모나게 돌출시켜 밖으로 내어 쌓은 구조물이다.

적군의 접근을 초기에 관측하고, 전투할 때 접근하는 적을 정면이나 측면에서 격퇴하기 위해 설치한 방어 시설물이다.

'치성'의 '치'는 꿩이란 뜻인데, 성곽 구조물의 생김새가 꿩의 머리처럼 돌출되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며,

성곽의 역할이 몸을 숨기고 주변을 살피는 꿩의 습성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해발 688m에 조성된 나한봉 치성은 성곽의 남서쪽을 관측하기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양을 비롯한 한강 유역을 한눈에 관측할 수 있으며, 서쪽의 한강 하구와 멀리 강화도까지 조망할 수 있다.

나한봉 치성의 구조는 3~4단의 성벽이 있고, 삼면이 모두 깎아지른 자연 절벽이다.

북서쪽은 30cm 내외의 흙을 사용해 바닥을 평탄하게 했으며, 외성 벽 아래쪽은 계단식으로 만들어 성벽을 보강했다.

치성의 길이는 10m, 너비 4.4m이며,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1m 내외다.

내부에서는 건물지로 추정되는 초석 1기와 초석을 받친 유구 2기가 발견되었는데, 130cm 내외로 간격이 일정하다.

지붕을 만든 재료로 보이는 기와도 발견되었다.                                                       (안내문)

 

 

가운데 뒤에 있는 바위가 나월봉 정상이다.

나월봉 뒤쪽엔 에스컬레이터 바위로 올라가는 구간이다.

나월봉 정상 바위로 오르기가 워낙 어려워 아직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위치를 이동해 다시 잡은 나월봉 정상(우측)

 

에스컬레이터 바위

 

 

 

에스컬레이터 바위로 이동하는 산객

비봉능선

나월봉에서 바라보는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

,

산꿩의 다리

돌채송화

 

어느 놈이 줄기고 어느 놈이 가지인지 헷갈린다.

 

왼쪽 용출봉과 오른쪽 용혈봉

강아지 바위에 10만 불짜리 이끼로 된 눈이 떨어져 나간 뒤 가치가 급락했다.

화룡정점의 점이 떨어졌으니 더 이상 용은 승천할 수 없게 됐다.

매직으로 눈을 그려 넣어야 하나?

 

오늘 큰딸과 부왕동암문으로 올라와 의상능선을 잠깐 맛보고 가사당암문을 이용해 국녕사로 하산할 생각이었다.

혼자 의상능선을 온전히 탄다.

 

증취봉을 지나니 용혈봉이 눈앞이다.

 

 

 

용혈봉을 지나 용출봉을 맞는다.

 

용출봉과 의상봉

 

용출봉 오르는 마지막 두 번째 바위다.

이 바위 왼쪽에 "자명 해인대(紫明海印臺)"가 새겨져 있다.

 

자명해인대(紫明海印臺)는 산자수명(山紫水明)과 해인삼매(海印三昧)에 따온 말이다.

산수의 풍경이 아름답고 고요한 바다가 삼라만상을 비추듯이 번뇌를 없애고

우주의 모든 것을 깨닫는 경지에 이르게 하는 풍광을 지녔다는 뜻이라고 한다.

의상능선뿐만 아니리 북한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어디 하나 자명 해인(紫明海印)이 아닌 곳이 없다.

 

용혈봉을 내려가며 보는 왼쪽 계곡에 있는 삼천사

 

용출봉을 내려가며 테트리스 바위를 우회하는 지능선으로 내려가며 잡은 의상봉과 원효봉이다. 

산행 시작할 땐 무척이나 청명하고 미세먼지도 없어 조망이 좋았다.

오후엔 구름이 몰리며 조망도 점점 나빠진다.

용출봉 한쪽 암봉이다.

 

이곳은 막힌 지역인 데다 봉우리도 낮아 이름도 없는 지능선이다.

이 능선을 끝으로 백화사에서 가사당암문으로 연결되는 지점의 계곡으로 하산한다.

계곡은 짧아 물도 거의 흐르지 않는데, 다행히 샘물이 제법 콸콸 나오는 곳을 찾아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샘물이다 보니 물에 담근 발이 시려 오래 서있지 못할 정도다.

이렇게 땀을 식히고 차량을 회수하며 산행을 끝낸다.

 

요즘 즐풍의 인생은 딱히 하는 일 없이 등산하는 나그네 인생으로 산다.

산은 한가로운 인생의 쉼터인 셈이다.

늘 다른 느낌과 감정이나 가끔은 같은 생각일 때도 있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계절에 따른 산색과 공기가 다르다.

산행할 땐 언제나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느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