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2. 토 12:05~16:52(전체 시간 04:47, 전체 거리 6.7km, 평균 속도 1.5km/h) 흐린 후 점차 갬
소위 말하는 고전문학이나 명작 영화는 언제든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다.
산도 고전문학처럼 가고 또 가도 질리지 않는 명산이 있다.
북한산은 지금까지 260여 차례 다녔어도 늘 시시각각 변하는 새로움에 자주 가고 싶다.
정부가 보증하는 국립공원이나 지자체가 선정한 도립공원, 군립공원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설악산이나 북한산만큼 내가 손에 꼽는 명산에 월출산이 있다.
월출산이 가깝다면 등산화 몇 개쯤은 간단하게 갈아치울 만큼 자주 다닐 멋진 산이다.
그렇게 멋진 산임이 틀림없는데 지금까지 겨우 다섯 번 밖에 못 갔다.
너무 먼데다 가야 할 산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천성이 입이 짧아 가리는 음식이 많은 데다 편식이 심하다.
가끔 아내는 차려준 반찬에 손도 안 댔다고 타박할 때가 있다.
먹고 싶은 것만 먹을 때 다른 음식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는 편식 습관 때문이다.
이런 편애는 산에서도 그대로 적용돼 설악이나 월출산 같은 화려한 암릉 산행을 좋아한다.
이번 월출산은 지난번 갔을 때 안개로 제대로 못 본 곳을 다시 찾는다.
양자봉에서 달구봉, 천왕봉을 거쳐 형제봉, 장군봉으로 하산할 예정이다.
산성대 능선을 정비 끝에 개방했듯이 이 구간도 어렵지 않게 등산로를 정비할 수 있다.
개방되면 산행 인구 증가는 물론 지역 경제에도 보탬이 되는 시너지효과를 볼 것이다.
월출산 등산코스
잠시 후 오르게 될 양자봉
이번에 갯버들님과 월출산을 함께 오게 됐다.
회원들은 산행 들머리인 경포대에서 구정봉으로 오른 후 정상 찍고 구름다리 또는 바람골로 하산하게 된다.
전에 제대로 못 본 양자봉능선과 장군봉 능선을 갯버들님과 함께하기로 한다.
전에 왔으나 입구가 헷갈려 잠시 두어 번 두리번거리다 전에 오른 트랭글 기록을 따라 올라간다.
고도를 높일수록 주차장에서 보던 모습과 달리 더 많은 풍경이 잡힌다.
처음 이곳을 오를 때 이 바위 뒤로 올라왔는데, 등로를 따라 서두르다 보니 길을 놓쳤다.
이 바위를 오르면 제법 풍경이 멋지나 바위를 내려갈 땐 자일을 내려야만 하는 구간이다.
다시 내려가 오르기엔 시간이나 거리 부담이 있어 아쉽지만 생략한다.
이 암봉 맨 위 우측이 양자봉이다.
양자봉이 이 능선의 마스코트기에 양자봉 능선으로 불리기도 한다.
좀 전에 지나치며 오르기를 포기했던 암봉을 진행하며 위에서 조망한다.
이 자리에서 점심을 먹는데, 부는 바람이 서늘해 차에 내려놓고 온 덧옷 생각이 간절하다.
차에서 검색한 영암 지역의 날씨는 20℃ 전후였으나 지상과 달리 쉴 때는 찬 기운이 서려 좀 으스스하다.
양자봉이다.
섬처럼 우뚝 솟아 오르기 어려워 보여도 길이 다 있다.
양자봉에 오르면 등로 선상에 있는 암봉 라인과 달구봉과 만나는 스카이라인이 멋지다.
양자봉 오르며 보는 바로 아래 암봉
올라온 능선
올라온 더 아래쪽 능선
바로 앞 암봉이다.
양자봉을 내려가 저 첫 번째 암봉까지 간 다음 뒤로 아슬아슬게 바위를 타고 내려간다.
월출산 정상
이렇게 깨끗한 얼굴은 하산할 때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
갯버들님 작품
이 암봉 라인을 따라 오르게 된다.
왼쪽 양자봉
오른쪽 달구봉
지난번엔 습기가 많아 미끄러워 못 올라갔던 암봉이다.
그때 걸려있던 자일이 없어진 데다 오늘도 맘이 내키지 않아 패스한다.
그냥 패스한 암봉의 뒷편도 내려서기가 만만치 않다.
가운데 암봉만 포기하고 양쪽 암봉은 오르내렸다.
오른쪽 양자봉과 그외 이름 없는 암봉군락
사실 양자봉보다 이 암봉군락의 생김새나 난이도가 훨씬 좋고 높다.
월출산에서 이 정도면 평범하게 지나갈 수 있는 바위다.
이 바위도 어렵지 않게 오르고...
달구봉이다.
제일 높은 바위 상단부가 닭 벼슬처럼 생겨 "닭의 벼슬봉우리"가 줄어 달구봉이 되었다.
딱 이 위치에서 보는 게 가장 닭벼슬 모양에 가깝다.
달구봉 아래쪽 암봉
지난번엔 달구봉을 조망하기 위해 맨 왼쪽 바위에 올라갔었다.
오늘은 시간상 생략하고 바로 정상 쪽으로 방향을 튼다.
양자봉능선 정상으로 이동하며 한 번 더 조망한다.
한결 가까워진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
왼쪽이 달구봉인데, 이 위치에서 보면 닭벼슬이 한 군데 모아져 일반 봉우리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번엔 오른쪽 봉우리에 올라가 달구봉을 조망했다.
정상에서 구름다리 가는 방향의 암봉군락
바위 사이에 박힌 바위 쐐기
왼쪽 높은 바위가 쐐기바위다.
불 타는 단풍과 정상인 천황봉의 조화
왼쪽 사자봉
정상인 천황봉은 300m만 진행하면 되지만, 시간상 생략한다.
잠시 산성대 능선으로 내려가며 보는 산성대 능선 하단부
조금 더 가까워진 사자봉
당겨 본 사자봉
키재기하듯 여러 바위가 밀집해 있어 형제봉 또는 육형제봉이라 부른다.
월출산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명물인 출렁다리
육형제봉이니 팔형제봉이니 하는 말이 있으나 육형제봉이 대세다.
갯버들님 작품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다른 봉우리가 나타나며 은근히 자기가 제일 멋진양 자랑하기 바쁘다.
갯버들님은 한때 야생화 탐방에 많은 시간을 보냈으나 이젠 명산 탐방으로 주말은 늘 바쁘신 분이다.
나에게도 그런 열정이 샘물처럼 솟아나길 기대한다.
왼쪽 암봉 위에 두 개의 바위가 있어 더 형제봉처럼 보인다.
뒤돌아가서 다시 보는 형제봉
태양이 중천에 있는 한여름이면 이런 그림자가 생기지 않아 붉은 출렁다리가 돋보일 텐데, 지금은 영 아니다.
여기까지 오니 오늘 산행의 피날레를 장식할 장군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려가는 길은 겨우 한 사람이 다닐 정도로 좁은데, 한 발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기에 십상이다.
어느 순간 자갈을 밟았다고 느낀 순간 미끄러지며 몸이 허공으로 붕 뜨더니 절벽에서 추락했다.
1991년 어느 날 예비군 훈련이 소집돼 야간 훈련을 마친 후 자정이 넘어 귀가 중이었다.
그 시각, 원주에서 춘천으로 가는 길은 외진 곳이라 차량이 뜸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코너를 돌 때 갑자기 차량 두 대가 상향등을 켜고 나타나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다급하게 급브레이크를 밟자 차량이 중심을 잃고 전복되며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이젠 죽었다고 생각할 때 지나간 일생이 찰나의 순간에 고속 필름처럼 지나간다.
이렇게 죽는다고 생각했으나 다행히 모내기하려고 삶아놓은 논에 처박히며 충격을 그대로 흡수해 간단한 타박상 정도로 끝났다.
결국, 처음 산 차량은 이렇게 폐차해야 했다.
이번엔 절벽으로 떨어지며 순간적으로 죽을 만큼 높지 않다는 느낌에 그런 고속 필름은 펼쳐지지 않았다.
떨어진 순간, 갯버들님이 "괜찮냐."는 다급한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목과 팔, 다리 모두를 움직일 수 있다.
일단 살았다는 안도감에 희열을 느꼈으나 왼쪽 얼굴에 타박상을 느끼며 손등으로 훔쳤을 때 장갑 위로 조그만 살점이 묻어난다.
살점이 묻어난들 대수랴, 살아난 것만으로도 천행이다.
나중에 보니 양쪽 팔꿈치와 무릎에도 긁히긴 했으나 워낙 얼굴에 신경이 집중되다 보니 그런 건 신경 쓸 일도 아니다.
손목 끈을 감아쥐었던 스틱 하나는 한 칸 더 아래쪽 절벽으로 떨어지고 한쪽 스틱은 여전히 손에 걸려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높이는 대략 4m 정도이다.
떨어진 곳이 약 1~2m 정도의 공간이 있었기에 다행이지 그 아래쪽으로 20m가 넘는 2차 절벽이 있었다.
배낭이 1차 충격을 흡수하며 거꾸로 처박히지 않아 목에 상처도 입지 않았다.
산행을 끝내고 탐방지원센터에 들러 간단하게 응급처치를 받으니 재생 크림을 발라야 상처가 크게 남지 않는다고 한다.
귀가하여 밤 11:40 병원 응급실에서 상처에 들어간 흙을 거즈로 닦아내는데, 살점을 파헤치는 고통이 말이 아니다.
살아있기에 이 고통마저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며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나 문득문득 아찔한 생각에 현기증이 난다.
바로 이 절벽에서 추락해 가운데 소나무 앞으로 떨어졌다.
이 장군봉으로 바람재까지 장군봉능선이란 이름을 갖는다.
뒤쪽에서 보는 두 형제바위
지난 7월 이곳에 왔을 때 태풍이 지나가며 많은 비를 뿌려 입산 통제로 대둔산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다행히 통제가 풀려 다시 월출산으로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예정 시간보다 40여 분 늦은 12시에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은 단풍 막바지로 도로가 막혀 지난번과 같은 시간대에 산행을 시작했다.
그런 데다 입동을 눈앞에 둔 시점이라 건너편 능선에 햇빛이 가려 출렁다리와 암봉을 비추지 못한다.
햇빛만 있으면 출렁다리가 근사할 텐데, 제 색깔을 찾지 못해 많은 아쉬움이 생긴다.
까마득한 절벽을 타고 오를 때 짜릿한 감정과 쫄깃쫄깃해지는 심장의 박동을 온몸으로 느낀다.
산을 오르내린다는 건 가끔 칼날 위를 걷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 칼날이 너무 날카롭다고 느껴 손이나 발을 떼는 순간 굴러떨어지게 된다.
이번 추락은 그렇게 바위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작은 자갈 하나에 미끄러져 절벽에서 추락한 것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밟은 셈이다.
이번 주말 설악산에서 가장 험난한 곳 중 한 군데를 가는데, 미리 조심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인다.
한 발 한 발 진중하고 안전하게 딛자.
지난 7월 21일의 같은 코스 다시 보기 ☞ http://blog.daum.net/honbul-/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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