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04. 화(설 연휴) 08:43~17:34 (전체 거리 15.0km, 전체 시간 08:51, 휴식 시간 47분, 평균 속도 1.8km) 맑음
설명절이라 도로가 막혀 고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내비양이 알려주는 도착 예정 시각은 의외로 빠르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려 아침을 먹고도 일산에서 치악역까지 170km를 두 시간 40분밖에 안 걸렸으니 평소보다 일찍 도착했다.
명절에 고향 도착 시각치고는 역대 가장 빠른 시간이라 올 한 해도 모든 일이 오늘처럼 순조롭게 잘 풀리면 좋겠다.
작년 12월 외삼촌께서 위중한 고비를 넘기셨다기에 형제들과 함께 문병을 다녀왔다.
그때 제천 가는 길에 치악역 뒤로 보이는 치악산 능선이 멋져 보여 이번 설명절에 그 능선을 타야겠다고 다짐했다.
오기 전에 등산 지도를 보고 블로그 등을 통해 검색했으나 오르는 길이 마땅치 않다.
치악역은 산의 마지막 끝부분을 깎아 철길을 낸 곳이라 옆으로 돌아 오르기 시작하지만 길은 보이지 않는다.
옆으로 돌아 능선을 잡아타고 산행을 시작하는 데 잡목이 없어 진행은 수월하나 워낙 가파른 데다 낙엽이 많아 미끄럽다.
어제 비가 내렸어도 날이 푹해 눈은 쌓이지 않았으나 그래도 얼어붙은 낙엽을 밟는 소리는 크지 않다.
치악산 등산코스
봉평 사현님의 리본은 엊그제 설악산에서 봤는데, 이곳에서 다시 보니 인연이 생긴다.
이 능선은 수리봉이 두 개나 있으니 수리봉능선이라 부르면 되겠는데 바위가 많은 능선이라 산행이 수월치 않다.
이곳 능선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모양인지 비를 세웠다.
벌써 26년 전의 일인데 처음엔 묘라고 썼다가 나중에 비로 수정한 흔적이 보인다.
부디 편안히 영면하시길 빈다.
조그만 굄돌 하나가 거대한 바위를 지탱하니 세상일도 작은 계기가 큰 흐름을 만드는 것과 같다.
고도 600여 m에 이런 묘를 만들었으나 지금은 전혀 관리가 안 돼 비석으로 묘지를 짐작할 뿐이다.
무거운 상석이나 비석을 험한 이 산속까지 인력으로 운반하기 힘드니 주변의 바위를 다듬어 만들었겠단 생각이 든다.
바위가 많은 데다 이렇게 높은 곳이 길지인지 모르겠으나 이 묘지로 인해 자식들 발복은 잘 됐는지 궁금하다.
막상 이 소나무를 봤을 땐 제법 멋진 소나무였으나 사진은 그 기백을 담아내지 못하니 아쉽다.
오름은 계속 바위거나 돌밭이라 위험해 비탐으로 묶인 거 같다.
그래도 누군가 이렇게 돌탑을 쌓으며 기원과 희망을 돌 하나하나에 아로새겼으리라.
키 작은 돌탑 하나가 까칠했던 암릉구간에 여유와 휴식을 주는 상징을 한다.
여기에 노란 표지로 수리봉이란 팻말을 걸어 놓았다.
한참을 더 올라가면 파란색 표지로 같은 이름의 수리봉이란 팻말이 있으니 이곳은 작은 수리봉이겠다.
그래도 이런 표식이라도 걸어놓으니 혼자 하는 산행이지만 누군가 내 곁을 지켜준다는 포근한 느낌이다.
본줄기가 잘려 옆으로 길게 자란 소나무가 기형적인 느낌이다.
불편한 몸이라도 제 수명 다하길 빌어본다.
여기까지 올라오며 많은 암봉을 만났으나 처음으로 제대로 된 모습을 담는다.
아래에 있던 도로에서 본 암릉미를 몸으로는 체험하나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함이 아쉽다.
지나온 능선
돼지코 같은 바위
다시 더 높은 곳에서 만난 수리봉이다.
이 바위를 끝으로 사실상 수리봉 능선은 끝난다.
수리봉 능선을 오르며 멀리 치악산 주 능선을 하얀 설국으로 만든 겨울 왕국으로 들어갈 생각에 발길을 옮긴다.
낙엽이 진 데다 등산로가 뚜렷하지 않아 길을 잃었다.
어느 쪽이든 능선으로 건너뛰면 되겠지만 계곡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기엔 업다운이 너무 심하다.
하여 능선을 쫓아 돌고 돌아 시명봉에 오른다.
지나온 능선의 굴곡미
마지막 시명봉에 오를 때 바위를 딛고 오르는 곳에 발 디딜 공간이 없는 데다 얼음이 얼어 제법 애를 먹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등산 경험으로 나무 밑동을 잡아당기며 몸을 솟구쳐 겨우 오를 수 있었다.
시명봉이 백운지맥임을 이 팻말 하나로 알게 된다.
올겨울은 유난히 날이 따듯해 어제 내린 비도 지상엔 눈 하나 남기지 않았으나 산정엔 거센 바람이 서리꽃을 만들었다.
앞서 810m인 시명봉엔 낙엽만 겨우 서리가 남았을 뿐 나무는 휑한 가지밖에 안 보였다.
그러나 영상인 날씨인데도 이곳 시명봉부터 향로봉까지 서리꽃 비경이 계속되니 산행을 고단함도 잊게 된다.
시명봉에 올랐을 때가 정오를 지나 12:44인 데다 지상은 영상 5~6℃라 서리꽃이 한순간 사라질 수 있다.
서두른다 해도 신기루처럼 사라지면 낭패라 서둘러 길을 내보지만, 정상 능선에 눈이 제법 쌓인 그 눈길에 첫발을 디딘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처음으로 러셀을 하는 셈이라 힘은 들고 오르내림도 심해 더디기만 하다.
향로봉까지 가는 동안 이 비경을 통과해야 하는 데 어찌 될까?
시명봉에서 조망하는 남대봉과 향로봉 방향의 서리꽃 절경
왼쪽은 서북쪽이라 바람이 심해 서리꽃이 그대로 남아 있고 오른쪽은 반대편이라 햇볕이 들어 나뭇가지만 앙상하다.
같은 산이라도 이렇게 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니 정상에 올라야 비로소 바라볼 수 있는 비경이다.
어딘가 암봉이 제법 멋져 오르려고 보니 다소 애매하다.
그래도 용기를 갖고 조심조심 바위를 잡고 오르다 발이 미끄러워 추락했다.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으나 무사히 착지했다.
높이라야 겨우 1m가 조금 넘는 높이였으나 스틱으로 땅을 짚으며 넘어지지 않았다.
더 높은 곳의 낭떠러지였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앞으로 조심하라는 경고로 알고 발걸음 하나라도 신중하게 디뎌야겠다.
뒤돌아 본 풍경
점입가경이다.
적어도 보이는 능선 모두 밟아 볼 수 있으니 다행이다.
가까이서 보면 얼고 얼기를 반복해 두께를 더한 서리꽃이 볼만하다.
세존대는 고도가 다소 낮아 서리꽃이 거의 없다.
가을엔 단풍도 멋진 곳이니 가을 산행지로도 참 좋다.
세존대의 가을 단풍이 풍금하면 ☞ http://blog.daum.net/honbul-/1130
점점 오후가 될수록 서리꽃이 녹아 위용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 서리꽃이 다 지기 전에 향로봉까지 닿아야 하는데...
수리봉 능선에서 시명봉을 거쳐 이곳 남대봉까지 길이 뚜렷하지 않은 데다 시명봉부터 러셀한다고 고생 좀 했다.
그래도 남대봉부터는 이미 지나간 등산객 발자국으로 걷기가 수월하다.
뒤쪽에서 다시 보는 세존봉
저기 보이는 바위에 올라서면 제법 조망이 좋다.
치악산 주능선을 살필 수 있는 전망대에서 지나온 구간을 조망한다.
서리꽃이 한 폭의 그림이다.
가야할 방향
까치설날이라 고향을 가거나 가족, 친지들과 함께하기 때문인지 치악산을 걷는 동안 이곳 전망대에서 단 한 명의 여성만을 만났을 뿐이다.
이런 비경을 겨우 두 명이 만끽한다는 게 다소 아쉽다.
지그재그로 보여주는 능선의 서리꽃과 대비되는 음영이 제법 볼만하다.
이 풍경을 오늘의 사진으로 선정한다.
향로봉이 가까워지며 헬기장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이다.
벌써 오후게 된 지 제법 시간이 지나 때라 서리꽃도 많이 녹아 처음과 달리 허전한 느낌이다.
올겨울 들어 최고의 서리꽃 풍경을 고향 하늘 아래 치악산에서 맞았다.
주말에 설악산에서 설경이나 서리꽃을 다시 보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최고의 풍경이었다.
처음 길도 없는 수리봉을 느낌으로 시작했으나 제대로 길을 잡은 것에 감사하고
수리봉 능선에서 길을 놓쳤으나 시명봉까지 안전하게 오른 데 감사하며
비록 낮은 바위에서 떨어졌으나 다치지 않은데도 감사하며
시명봉부터 향로봉까지 올해 들어 최고의 서리꽃을 본데 감사드린다.
향로봉에서 시루봉까지 갈 길이 멀어 바로 하산한다.
행구동 방향으로는 전에 다닌 적이 있어 이번엔 한가터로 하산한다.
한가터로 가는 능선은 제법 길고 때로 급하게 떨어지나 안전하게 하산했다.
이 능선은 워낙 나무가 우거진 데다 특별한 풍경이 없어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반곡동으로 내려왔으나 이 지역이 혁신도시로 개발되면서 모교인 봉대초등학교도 수용돼 지금은 없어졌다.
바로 학교 입구로 아내가 픽업하러 왔으나 모교가 없어져 허전한 느낌이다.
짧게 산행을 끝내려던 계획은 수리봉 능선에서 바라본 치악산 주 능선의 서리꽃에 빠져 예상외로 긴 산행을 감내해야 했다.
덕분엔 올해 들어 최고의 설경 아닌 서리꽃 비경을 보는 행운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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