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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 탐방/치악산

큰무레골로 오른 동치악산

by 즐풍 2019. 6. 27.

 

 

 

 

산행일자 2017.08.27.일 09:22~16:03(이동시간 06:40, 이동거리 14.73km, 평균속도 2.6km/h, 휴식시간 58분)  날씨: 흐림

 

선친께서 돌아가신 지 벌써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기일을 맞아 고향인 원주에 오는 김에 치악산을 타기로 한다.

작년 10월에 개방한 부곡공원지킴터에서 큰무레골과 천사봉을 거쳐 비로봉으로 오르는 코스를 이용한다.

신설된 코스이다 보니 요즘 한창 뜨는 핫한 코스로 치악산국립공원에서는 난이도 "상"으로 안내한다.

반대편인 구룡사에서 오르는 사다리병창만큼 힘들지 않아도 제법 경사가 있다는 말씀인데, 직접 부딪혀보자.

 

부곡공원지킴터로 가자면 강림면 소재지에서 계곡과 나란히 난 도로를 이용하게 된다.

이 계곡은 치악산 큰무레골과 작은용골 등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 강림면을 가로지르는 부곡계곡이다.

치악산에서도 부곡계곡은 조선의 개국 당시 이방원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조선 3대 왕인 태종 이방원이 정안군일 때 하륜의 제안에 따라 스승이었던 원천석을 여러 차례 불렀으나 나오지 않았다. 

치악산에 있는 그를 친히 찾아와도 자리를 피했고,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나서야 서울로 와 태종을 만났다고 한다. 

 

정안군이 원천석을 만나러 가야 하는 시대적 배경과 과정을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이방원은 조선을 개국하기 전 포섭에 실패한 정몽주를 죽였고, 개국 후엔 이색의 아들 이종학이 의를 굽히지 않자 옥사시켰다.

두문동 72현 등 백성의 민심이 새 정부를 등지자 동문수학했던 야은 길재와 스승이었던 원천석을 포섭하여 민심을 돌리기로 한다.

먼저 포섭하려던 길재는 벼슬을 받지 않겠다고 단박에 거절하며 고향으로 돌아가자 지조만 높여준 꼴이 되었다.

다음엔 강원도 원주 사람으로 치악산에 은거한 원천석을 만나기 위해 시종 두어 명만 데리고 길을 떠난다.  

 

고려말 과거를 본 선비가 임관되면 병역이 면제되는 제도가 있었는데, 원천석은 시험을 치루자 단번에 장원급제를 한다.

장원급제하여 진사가 되었지만, 벼슬에 뜻이 없던 원천석은 고향으로 돌아가 글을 읽으며 농사를 지었다.

고려말 이성계는 우왕과 창왕이 신돈의 아들과 손자라는 누명을 씌워 죽이자 이를 비난하고 반박하는 시를 짓기도 했다.

물론 이방원은 운곡이 이성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시를 지은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방원이 원주에 도착하자 강원감영에서 마중을 나오고 원주 군수가 영접하는 동안 소문은 운곡초당으로 들어갔다.

 

풍헌, 즉 오늘날 면장이 찾아와 "운곡선생은 의관을 정제하고 계시오. 아마 큰 벼슬을 주려나보오."하며 알린다.

아직 한양으로 천도하기 전이라 멀리 송도에서 제자 이방원이 찾아왔지만, 이미 운곡 원천석은 몸을 숨긴 뒤였다.

이튿날도 그다음 날도 다시 찾았으나 종적을 감춘 스승을 끝내 만날 수 없자 수확 없이 송도로 돌아간다.

훗날 뒷사람들은 운곡을 기다리고 앉았던 반석을 나중에 이방원이 태종이 되자 태종대(太宗臺)라고 부른다. 

치악산 들머리인 부곡공원지킴터 5km 앞에 있는 이 태종대와 노고소를 먼저 둘러본다. 

 

 

태종대 

 

 

 

태종대(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6호)

태종대는 운곡 원천석과 조선왕조 3대 임금인 태종에 관계되는 유적이다.

운곡 원천석은 태종 이방원의 스승이었다.

태조가 고려를 전복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자 모든 관직을 거부하고 개성을 떠나 이곳 강림리에 은거하였다.

치악산 정상에 제단을 만들고 흩어진 두문동 72인을 모아 고려왕조의 영령을 위하여 제사를 지내며 초근목피로 생활하였다.

이방원은 떠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스승인 운곡을 찾았으나 운곡은 태종과 만남을 꺼려 피신하여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곳은 태종이 운곡을 찾아왔을 때 머물던 곳이라 하여 '주필대'라고 부르다 후대에 '태종대'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태종대 비각 안에 '주필대'라고 새긴 비석이 있고 절벽 아래쪽 바위엔 1723년(경종 3년)에 새긴 태종대 등의 글자가 있다.

근처에 운곡이야기와 관련된 노구소, 횡지암이 있다.

치악산에는 운곡이 은거하던 곳이라 전해지는 변암과 누졸재가 있다.                      (안내문 편집)

 

 

 

주필대 

 

 

태종대는 냇가에 있는 커다란 암봉에 세워져 있으며, 아래쪽에 태종대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부곡탐방센터 앞에 승용차 10여 대 댈 정도의 공간이 있는데, 내비를 잘못 찍어 800m 아래인 이곳 종합체험장 공터에 주차했다.

한 가족이 저곳 평상에 텐트를 치고 비박을 했는데, 이곳만 해도 날씨가 서늘하여 간밤에 잠을 잘 잤는지 모르겠다. 

 

 

탐방센터와 주차장 

이곳으로 들어오는 도로가 좁아 산악회에서 오는 버스는 이곳까지 진입을 못해 하산하고 보니 내 차 옆에 산악회버스가 주차해 있다. 

 

 

부곡탐방로 입구 

 

 

부곡탐방로를 지나 약 500여 m를 오르면 왼쪽으로는 고둔치로 가는 길이다. 

이 큰무레골 탐방로로 오르면 바로 능선을 잡아타고 치악산 정상인 비로봉으로 오르는 최단거리 코스다.

부곡탐방센터에서 정상까지 거리는 약 4.3km 

 

 

사실 골짜기가 그리 큰 편이 아닌데도 이런 계류가 흐른다는 게 참 좋다.

오르는 길은 진흙이 많이 깔린데다가 낙엽이나 솔잎이 많아 폭신폭신한 느낌도 좋다.

간간이 이런 돌밭을 지날 때도 있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워낙 숲이 우거져 공기는 맑고 청량한 느낌이 좋은데다 날씨 마저 흐려 숲이 어두컴컴한 느낌이 든다. 

 

 

나무를 구부려 숲의 요정을 만나러 가는 길처럼 만들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설악산 한계령코스에도 제법 큰 나무가 이렇게 개선문을 만들고 있었는데... 

 

 

능선을 만날 때까지 약 2km를 오르는 동안 경사는 완만하여 힘든 줄 모른다.

워낙 숲이 우거져 조망은 열리지 않고 걷는 내내 푸른 숲만 보며 상쾌한 치악산의 정기를 흠뻑 마시게 된다.  

 

 

멀리서 볼 땐 축대인 줄 알았더니 바위가 이런 모습으로 깨진 틈을 이용해 나무가 자라고 있다. 

 

 

정말 산의 시원함과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치악산에서도 이 큰무레골이 최고로 좋은 곳이다. 

 

 

본격적으로 능선을 잡아타기 전에 이 나무계단을 오르게 된다.

이렇게 1부가 끝나고 능선을 잡아타게 되면 커다란 나무를 가로로 자른 다섯 개의 통나무 의자에서 잠시 쉴 수 있다. 

주차 장소부터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천천히 걸어서 71분에 거리는 2.9km

 

 

치악산 정상까지 오르는 동안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자연을 느끼며 걸으려고 했다.

그러던 중에 몇 년 전 '북한산매니아'란 산악회에서 잠깐 만났던 회원 한 명도 만나게 된다.

그는 서울의 어느 산악회를 따라 왔는데, 원점회귀 산행으로 향로봉까지 다녀오는 걸로 오후 5시에 마감한다니 충분한 시간이다.  

 

여기가 천사봉이다. 치악산에 천사가 산다고 천사봉이 아니라 고도가 1004m라 어감이 좋은 천사봉이라 붙였다.

오르던 길에서 이 천사봉을 밟으면 2시 방향을 방향을 틀어 정상으로 향하게 된다.

천사봉에서 처음으로 하늘이 열리며 그 틈새로 치악산 정상인 비로봉을 조망하게 된다. 

비교적 넓은 공간을 만들고 그 위에 이렇게 멍석을 깔아놓은 데다 옆에 간이 의자가 있어 산악회원들이 조망을 즐기거나 쉬며 요기를 하고 있다. 

 

 

작년 10월에 개방한 코스라지만, 사실 전부터 알음알음 한두 명씩 다니던 길로 나만 몰랐을 뿐이다.

그 길에 계단이나 로프 등 안전시설을 설치해 뒤늦게 열며 비공식을 공식화했다는 느낌이다. 

 

 

 

 

 

이 로프는 겨우 무릎 정도의 높이도 채 안 된다.

적어도 허리 정도의 높이는 되어야 폭설이 내렸을 때 눈 속으로 삐져나온 저 나무를 봐야 길을 잘 찾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상까지 오르며 두 개의 헬기장을 만난다.

바로 정상 턱 밑에 있는 헬기장에서 비로봉을 바라본다. 

마지막 헬기장은 정상에서 약 300여 m 아래 있으니 이 헬기장에 올랐다면 이제 거의 다 오른 셈이다.

반대편 사다리병창 만큼 힘들진 않지만 능선을 잡아타면서부터 은근히 압박을 받는다. 

 

 

 

 

 

정상과 연결된 마지막 구간인 나무 계단 

 

 

주차한 장소부터 두 시간 10분 걸려 도착한 정상까지 거리는 5.4km이다. 

어제만 해도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는데, 오늘은 비가 올듯 잔뜩 흐린 날씨다. 

그래도 날씨가 많이 내려가 땀도 별로 흘리지 않고 무난하게 오를 수 있었다. 

 

 

바로 이 능선이 큰무레골이다.

사실 "골"은 산골짜기의 골과 같은 뜻이란 생각인데, 이 능선을 왜 골이라고 했을까?

처음 시작하던 장소도 골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냥 큰무레능선, 아니면 큰무레골능선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날씨가 흐려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한다. 

 

 

정상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한다.

집에서 나올 때 준비한 것은 쵸코파이 3개, 영양바 2개가 전부라 올 때 떡집이 보이면 떡을 사려고 했다.

그런데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길을 따라오다 보니 안흥면을 들어가지 않고 강림으로 바로 가는 길이다.

중간 한두 개 안흥빵집이 보이긴 했으나 속도가 있어 그냥 지나치고 강림면에 도착하니 이곳엔 아예 빵집이나 떡집이 없다.

한껏 들어간 슈퍼에도 사람이 없어 바로 건너편 슈퍼에 들렸더니 이 집도 말이 슈퍼지 가게가 서너 평 남짓한 작은 구멍가게에 불과하다.

처음엔 할머니가 하대를 하더니 내 백발을 본 다음에야 말을 높인다.ㅋㅋ

하긴 이 머리를 갖고 지하철에서도 자리를 양보받는 데 할머니가 잠시 눈이 어두웠던 모양이다.

둘러봐도 도도체 간식으로 적당한 게 없어 결국 건빵을 집어들고 나온다.

올라오는 동안 능선을 잡아탄 후 바로 쵸코파이 두 개를 먹은 상태라 정상에선 나머지 쵸코파이와 영양바 두 개로 점심을 대신한다.  

 

 

고둔치로 내려가며 다시 보는 비로봉 

 

 

 

 

 

이곳에서 소나무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우리민족을 상징하는 소나무도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니 이제 소나무를 만나는 산은 대단하게 보일 정도다.  

 

 

고둔치로 가는 길에 높낮이야 있겠지만, 능선길이라 걷는 데 큰 문제는 없다.

주능선이다 보니 좀 전에 올라왔던 큰무레능선과 달리 길이 잘 나 있다. 

 

 

쥐넘이고개 전망대

이 쥐넘이고개에서 삼봉과 투구봉을 거쳐 구룡탕방지원센터로 하산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내가 바빠 함께 하지 못하는 바람에 차량 회수를 위해 고둔치로 내려가야 한다.  

 

 

사진에 보는 삼봉으로 내려가는 능선은 오래 전부터 막혀 있는데다 여름철 수풀이 우거져 밀림으로 변했다.

두어 번 다녔으니 길이야 잘 알지만, 이런 여름엔 철망 휀스로 지나야 하니 차라리 다음 기회로 미루는 게 오히려 잘 됐다. 

 

 

이곳은 어깨까지 올라올 만큼 자란 조릿대로 길이 안 보인다. 

제주도 한라산은 조릿대로 생태계가 파괴되어 골머리를 썩고 있다던데, 국립공원 등산로 주변의 잡풀은 예초기를 말끔하게 밀어주면 좋겠다. 

 

 

촛대바위에 올라 가야할 방향을 바라보지만 워낙 숲이 좋아 길을 찾기도 어렵다.

어릴 때 어른들 한테 듣기로는 치악산 숯이 유명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여전히 숯의 재료인 참나무가 산을 덮었다. 

 

 

정상인 비로봉에서 하산기점인 고둔치까지 약 4.6km이다.

어제 산행 후 연 이틀을 산행하기 때문인지 평소라면 어렵지도 않을 이 거리가 길게 느껴진다.

아무리 걸어도 좁혀지지 않을 거 같던 고둔치까지 두 시간 동안 하염없이 걸은 끝에 겨우 도착했다.

다시 시장기를 느껴 비장의 무기인 건빵을 뜯는다.

구황식품으로만 생각했던 건방이 기름에 튀긴 거라 의외로 고소한 게 맛있다.

몇 개만 먹고 말려던 건빵에 짜꾸만 손이 가 제법 먹었다고 생각될 때 갑자기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비를 꺼낼까 말까 생각하며 내려가다 보니 숲이 우거져 비를 맞을 새도 없이 금새 그치니 다행이다. 

 

 

 

고둔치를 300여 m 앞두고 왼쪽으로 잣나무 숲에 제법 크다.

그 아래로 잣잎이 떨어진 곳엔 풀도 자라지 않는다. 

잣나무는 관리가 안 돼 잣이 열리는지 모르지만, 잣 송이 몇 개가 떨어져 있다. 

 

잣나무 숲과 경계엔 이런 잡초가 시작되고... 

 

 

고둔치에서 부곡계곡으로 하산하며 만나는 나무 중에 낙엽송 보다 더 곧고 자란 참나무 숲을 봤다.

활엽수라 참나무란 표현을 썼지만, 참나무도 아닌 게 가지 하나 없이 그렇게 크고 굵게 자라는 지 제법 가치가 있어 보인다. 

 

 

 

 

 

부곡계곡 상류에 있는 "하경폭포"다. 

지난 주 원주에도 제법 비가 내렸는지 수량도 풍부한 게 보기 좋다.

고둔치 고개에서 조금만 내려왔을 뿐인 데도 물은 제법 졸졸거리며 흐르더니 이곳에 도착하자 제법 많은 물이 흐른다. 

 

 

 

 

 

또 다른 계류 

 

 

부곡계곡은 예날부터 원주와 강림을 잇던 최단거리다.

나도 어린 시절 강림에 사시던 이모 할머니댁을 두어 번 이 고둔치를 넘어 걸어다녔던 경험이 있다.

여전히 치악산의 주요 코스 중 하나라 아래로 내려갈수록 길은 제법 잘 나있다. 

 

 

 

 

 

위 아래가 다 부곡폭포다.

위쪽에 있는 하경폭포가 더 멋져보이나 길에서 멀어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데, 이 부곡폭포는 아래쪽이라 수량이 더 풍부하고 규모도 크다. 

하지만 사진으로 본다면 하경폭포가 더 근사하다. 

바로 위 사진은 전망대에서 본 것이고 아래 사진은 전망대를 내려가서 찍은 사진이다. 

 

 

 

 

 

드디어 아침에 오른 큰무레골 입구를 만난다.

잠시 쉬고 있는데, 어느 산악회에서 온 아줌마도 일행과 쉬면서 이젠 돈 주고 오래도 못 오겠다며 힘들어 죽겠다고 한다.

난 연 이틀 산행이라 힘든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들도 힘들다고 하는 걸 보면 치악산은 어느 쪽으로 올라도 "를 떨며 에 받치는 "인가 보다. 

 

 

노소고 이정표가 따로 없으니 태종대 아래 있는 이곳이 노고소인지 잘 모르겠다.
운곡은 제자 이방원이 떴다는 말을 듣고노고소에서 빨래를 하던 노파에게 누가 날 찾으러 오면

저쪽으로 갔다고 말하라며 반대편으로 몸을 숨겼다.
나중에 노파는 임금을 속였다는 자책감이 이 물에 몸을 날려죽었다고 하여 노고소란 이름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