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캔 날 2018.9.24.~9.26.(추석 연휴 3일간)
지난봄 형제들이 모여 경운기로 한 번 간 땅에 고랑 만들고 비닐 씌우고 물 줘가며 오지게 고구마를 심었다.
평생 농사는커녕 호밋자루 한 번 안 잡다 농사를 짓는 시늉만 하고 몸에 밴 알이 빠질 때까지 며칠 고생했다.
이번에 형네 집에서 추석 차례를 지내고 여자 형제도 각자 차례를 지낸 후 서울서 고구마 캔다고 원주로 모였다.
형이나 자형은 칠순이 넘었고 누나도 칠순을 바라보고 매부도 벌써 환갑이 지났으니 호미 들기도 벅찬 중 늙은이다.
그중 젊다는 시누올케 사이인 아내와 여동생도 나와 같이 저질 체력에 농사의 농자도 모르고 자라긴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겨우 호미만 잡은 오합지졸끼리 모여 고구마를 캐자니 한숨보다 웃음이 먼저 터진다.
고구마는 왼쪽처럼 큰 거 보다 바로 옆에 있는 거처럼 손에 잡고 먹기가 좋은 게 적당하다.
12줄 중 거의 네 줄 캔 첫날 풍경
봄에 고구마 순이 처음 나와 가장 비쌀 때 순을 사다 몇 고랑 심고 그다음에 다시 모여 나머지 고랑을 마저 심었다.
먼저 심은 순은 추위를 못 이겨 거의 죽다시피 해 형이 다시 심었으니 비용이나 노력만 축났다.
그리고 몇 달을 버려둔 채 지들끼리 그냥 자라 이렇게 수확하게 되니 공으로 얻는 기분이다.
근방에 살면 고구마 순 뜯어다 무쳐 먹고 데쳐 먹고 할 텐데, 순 하나 뜯지 않았으니 여북 오지게 잘 컸을까.
올여름 지속된 가뭄에 펌프로 물을 끌어 올려 스프링쿨러로 물도 뿌려주었다고 한다.
대부분 과일이나 채소는 눈에 보이니 작황을 알 수 있지만, 땅콩이나 무, 고구마는 캐봐야 내용을 알 수 있다.
잘 여문 고구마는 이렇게 주렁주렁 열렸는데 보통은 잔챙이가 더 많다.
작년에 고구마를 캔 아내는 일부 진흙이 지속된 가뭄에 딱딱하게 굳어 호미로 찍어도 제대로 먹히지 않아 고생만 했다고 한다.
그 여파로 얼마나 허술하게 캤는지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허락받고 이삭줍기로 캐 간 고구마가 몇 가마 잘 된다고 한다.
이왕 수확하는 거 고생이 헛되지 않게 이번에 넓고 깊게 파 알차게 수확해보자고 의지를 다지고 고구마 캐기에 돌입한다.
다행히 요 며칠 전 비가 내려 호미가 잘 들어가는 편이라 어렵지 않게 고구마를 캘 수 있었다.
고구마 캐기는 대체로 수월해도 밭고랑이 길다 보니 진도가 잘 안 빠진다.
경운기에 고구마 캐는 기계를 달면 어렵지 않게 고구마를 캘 수 있나 본데, 워낙 소작농이다 보니 맨손으로 캘 수밖에 없다.
첫날은 형이 고구마 줄기를 제거해 그 작업이 얼마나 힘든 줄 몰랐지만, 이틀째부터 내가 제거하니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줄기가 무성한 데다 서로 엉켜있어 고랑마다 낫으로 쳐내고 한 줄기 한 줄기씩 제거해 옆 고랑으로 넘긴다는 게 고역이다.
고구마를 캘 땐 별로 흘리지도 않던 땀이 줄기를 제거할 땐 비 오듯 전신을 적신다.
작년 보다 네 줄이나 더 심었는데 수확량은 작년과 비슷하다.
처음 심을 때 냉해를 입어 교체 작업을 한데 다 잘 크라고 비료를 너무 줘 줄기만 무성하고 고구마는 잘 열리지 않았다.
농사를 짓고 수확한다는 건 지난 세월의 정성을 거두는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한시 중에 생각나는 시가 있어 더 잊기 전에 인터넷 검색으로 소환한다.
쌀 한 톨 콩 하나의 낟알도 다 농민의 고생으로 지어진 것이니 함부로 버리지 말자.
민농(憫農) 전문은 못 외워도 粒粒皆辛苦(입립개신고) 한 줄만 기억하자.
〈민농(憫農)〉
* 이신(李紳) *
鋤禾日當午 김을 매다 보니 해는 벌써 한낮
汗滴禾下土 땀방울이 벼 아래 땅을 적신다
誰知盤中飧 뉘 알리오 그릇에 담긴 밥
粒粒皆辛苦 낟알 하나 하나마다 수고로움이 배어 있는 것을
마지막 날 고구마를 다 캐고 늦은 점심을 먹으로 치악산 아래 황골이란 데 순부두전골을 먹으러 가며 찍은 느티나무
장소 :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777
수령 : 1,000년 높이 : 22m 나무 둘레 : 8.5m 느티나무 보호수 지정일자 : 198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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