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기타 등등/생활 속 발견

장사의 신, 김주영의「객주」를 읽고

by 즐풍 2018. 10. 8.

 

 


 

 

       대하장편소설이 있다.

       예컨데, 전라도를 배경으로 한 최명희의 대하소설인「혼불」10권은 신동아

       에 만 17년간 연재한 소설이다. 전북 남원 양반가의 흥망성쇠와 혼인 · 장례

       풍속을 완전히 그려냈을 뿐 아니라 미려한 문체에 콤마 하나까지도 신경

       쓴 예술작품이다. 나도 이렇게 글을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냈던 예술소설이다.

 

       작가는 자신의 혼을 처음부터 끝까지 실타래 풀듯 몽블랑 만년필로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집필을 끝내고 얼마 후 난소암으로 꽃도 피워보지 못 한 채 

       영면했으니 「혼불」에 들인 인고의 각고가 어떠한 지 알겠다.

      

 

 

 

                                             

  벌교를 배경으로 여순사건부터 6.25전쟁 마무리 시점까지 민족의

  고난을 그린 조정래의 「태백산맥」 10권도 현대문학에 연재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빨치산을 다뤘다는 이유로 꼴통 보수

  단체의 고발에 따라 검찰에 불려가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나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아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조정래는 이밖에도 「아리랑」「한강」등을 장편소설을 일간지에

  연재하기도 했다.

 

 

       더 멀리는 벽초 홍명희가 1928년 11월부터 1939년 3월까지 10년 넘게 조선

       일보에 「임꺽정」을 연재했다. 그가 월북인사라는 이유때문에 한 동안 금서로

       묶이는 수난을 겪다가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해금되기도 했다.

       이렇게 신문과 문학지에 연재하는 소설 대부분이 대하소설로 연재되며 열렬

       한 독자층을 끌어들이기에 신문사는 구독자를 늘린다. 작가는 자신의 문학적

       소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기에 상호 공생관계를 유지시키며 낙양의 지가를

       올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작업이 얼마나 힘든 지 끝내는 절필을 선언하는

       작가도 있다.

 

       이 밖에도 박경리의 「토지」, 황석영의「장길산」이니 김홍신의「대발해」

       등 기라성 같은 명작이 무수히도 많으니 이들을 다 읽으려고 한다면 한동안

       책속에 파묻혀 살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세상이 급변하다 보니 이런

       부류의 대하소설을 끝까지 본다는 것도 일종의 고행이나 사치라고 생각한다.

       이젠 두세 권도 길다고 하여 단행본이 유행이라니 세상이 그만큼 가벼워

       진 건 아닐까.

 

     

 

 

        

 

 

 

      하기야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TV만 해도 수없이 많은 채널이 있는 가 하면

       인기있는 프로그램은 굳이 본방을 사수하지 않아도 다시보기로 언제든지

       열어볼 수 있으니 깨알 같은 활자체를 따라가는 것보다 화면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훨씬 편하다. 그러기에 독서는 뒤로 미루고 화면으로 정신을

       뺏기고 있는 지도 모른다.

 

       밤 늦도록 tv에 매달리고도 부족하여 출퇴근 하면서도 고개를 숙인 체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 시선을 박으며 눈을 혹사시킨다. 장년층 이상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의 눈 건강이 심히 걱정된다.

       이 덕에 제철 만난 곳은 안과나 안경점이니 동전의 양면을 보는 듯 하다.

 

       나만 하더라도 최근 몇 년 동안 인터넷에 빠져 눈을 혹사시킨 데다 급속히

       노안이 와 책을 볼 땐 안경을 벗고 봐아 한다. 누진다초점 안경을 맞추긴

       했으나 깨알같은 책을 읽는다는 건  언감생심 욕심 낼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러 신문을 끊은 지 벌써 오래 전 일이다.

      

 

 

 

 

    

  

그러다 요즘에 김주영의 「객주」9권을 다운 받아 글자크기를 옥수수체

로 굵게 변환하여 읽으니 한동안 시간 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객주」는 임오군란을 전후로 한 조선후기 보부상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이다. 쇠살쭈인 천봉삼을 주인공으로 지역 풍물시장을 돌며 시대의

사랑과 반목, 자신의 정의로운 행동으로 참수형에 당할 처지에 놓이는

가 하면 주변인들의 부침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요즘 경기가 나쁘다 보니 이제 우리 세대보다 아들 세대가 더 살기

힘들고 신분상승 하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하지만 「객주」에서

보여주는 시대는 이른바 사농공상 중에서도 상인이 가장 천대받던

때다. 그날 그날 자기직분에 충실하다 해도 겨우 끼니나 때울 정도로

열악한 시대였지만 주인공인 천봉삼과 주변인들은 불의와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에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길소개를 비롯한 몇 명은 세상을 탐하며 독자로 하여금 분노를

자아내게 만들지만 인과응보라고 결국 스스로의 함정에 빠져 침몰하고

만다.

 

 

이런「객주」에 빠져드는 재미가 쏠쏠하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거의 안 쓰는 언어와 한자를 제법 안다는 나도 때로는 한자에

막혀 사전을 찾아보거나 그마저도 귀찮으면 흐름상 앞뒤 구절로 대략 꿰 맞춘 문맥도 많다. 그러기에 웬만한 인내가 아니면

중간에서 손을 놓아버릴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의외로 상황 전개가 재미있고 다음 상황이 궁금하여 책에서 손을 놓지 못 했다.

 

「혼불」을 읽을 때도 비슷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억세게 배어 있어 거의 표준어로 생활한 일반인은 몰라서 넘어갈 말들이

많았기에 큰 아이에게 일독을 권했으나 도도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못 읽겠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표준어 정책으로 지역 사투리에

약하다 보니 다른 나라 말이 된 것이다.

 

 

       큰 산맥으로 구분되는 지방 사투리는 지역색이 고스란히 반영될 뿐만 아니

       지역성향까지도 나눈다. 이상용이 전에 '우정의 무대'에서 늘 코끝  시큰하게

       만드는 '그리운 어머니'에서 항상 어머니의 섭외대상은 대게 전라도 어머니

       였다고 한다.

 

       충청도나 다른 지역 어머니에겐 말을 붙여서 대답도 잘 안 해 진행하는 데

       애로가 많은 데, 전라도 어머니들은 구수한 사투리가 술술 잘도 나오니 시청

       자들을 웃고 울리기 좋아 항상 단골메뉴로 등장했던 걸 중장년층 이상이면

       지금도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언어 중 대부분이 경제력이 부족하거나 개방의 정도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서 소멸되고 점차 영어와 중국어로 재편되고 있다.

       나라의 언어가 그러할진 데 우리나라의 지역 사투리야 말해 무엇하랴.

 

       제주도 방언뿐만 아니라 지역 어디라도 이젠 그곳 노인네가 아니면 지역

       언어가 더 이상 사용되지도 않으니 머지않아 사투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도 작가는  최근에 「객주」제10권을 출간하여 불완전 했던 내용의 대미를 확실하게 마감했다고 하니 읽어봐야 겠다.

뿐만 아니라 내용을 현대 언어에 맞게 다시 편집할 의사도 비치고 있으니 재출간 된다면 다시한번 공전의 히트를 기대하며

tv드라마로도 다시 제작되면 좋겠단 생각도 가져본다.

 

        ◈◈◈◈◈◈◈◈◈◈          ◈◈◈◈◈◈◈◈◈         ◈◈◈◈◈◈◈◈◈          ◈◈◈◈◈◈◈◈

 

 

우연찮게 서울신문에서 객주 제10권을 연재하는 걸 읽고 있는 중이다.

천봉삼이 도적의 소굴에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나오다 발각되어 초주검되는 과정에 다리까지 골절되어 눈속에 죽다시피

쓰러진 걸 소금장수들이 발견하고 병구완에 살려냈다. 그런데 간단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 한참이나 찾던 끝에 겨우 찾아내

저간의 사정을 알고 도적들의 토벌할 계획을 세우는 데까지 읽고 있다.

 

신문에 연재되는 하루 분량이라야 책 두세 쪽 정도에 불과하니 연재가 끝날 때까지 서너 달 걸리겠지만 전편에 미진했던

객주의 결말을 이번에 완결하는 셈이니 많은 기대가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