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일자 2017.3.18.토 10:59~16:06 (이동시간 5:07, 이동거리 13.3km) 날씨: 맑고 미세먼지 많음
지난 3월 1일 출발하는 칠갑산을 신청했으나 성원 미달로 오늘 출발하는 칠갑산을 다시 신청했다.
나는 2주 전에 신청했지만, 금주 초까지도 겨우 세 명만이 신청했을 뿐이다.
이번에도 역시 성원 부족으로 산행하기 어렵겠단 생각에 전북 장수군에 있는 장안산을 겹치기로 신청했다.
장안산도 성원 미달이 확실해 보여 어느 쪽이든 성사되는 곳에 가면 되겠단 생각도 빗나간다 .
하여 장안산에서 선유도, 장자도, 무녀도로 행선지를 갈아탔다.
봄이 시작되자 광양의 매화꽃을 시작으로 봄꽃 산행이 시작된다.
이번 주말까지 광양의 매화꽃은 절정을 이룰 것이므로 산악회마다 광양 백운산은 신청자가 넘쳐난다.
금요 무박, 토요일, 토요 무박, 일요일 등 백운산은 모집 걱정이 필요 없을 만큼 쉽게 자리를 메운다.
그러다 보니 별 특징 없는 칠갑산이나 장안산은 뒷전으로 밀린다.
사실 칠갑산은 계륵이다.
칠갑산이 비록 도립공원이자 100명산에 들었다 해도 여러 검색을 통해 확인한 결과, 별로 볼 게 없다.
어차피 산행하다 보면 어느 산이든 가겠지만, 칠갑산은 봄꽃 축제가 다 끝난 다음에야 차례가 오겠다.
주병선의 칠갑산이란 노래 하나로 칠갑산을 끌어들이는 흡인력도 봄꽃 소식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무녀도 선유도 탐방안내도
군산에서 12km에 달한다는 새만금 방조제를 따라 신시도를 거쳐 무녀도로 들어왔다.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에 속하는 군도(群島)는 선유도를 비롯하여 야미도·신시도·무녀도·관리도 등 47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섬 중에 오늘은 무녀도에서 선유도와 장자도, 대장도를 한바퀴도는 17.8km의 긴 여정에 나설 것이다.
먼저, 무녀도에서 해변가 길을 따라 걷는다.
해변가로 걷다 보니 어느새 작은 봉우리로 올라가다 다시 내려간다.
이때 해변이 보이길래 바로 해변으로 내려가보니 여느 산에서 느끼는 것과는 사못 다른 절경이 눈에 들어온다.
결국 이런 해안의 절경에 심취되어 오늘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를 도는 일정을 포기하고 해변을 따라 걷는다.
어딜 보아도 함께 온 회원들은 보이지 않으니 나홀로 정처 없이 무턱대고 걷는다.
오랜 세월 파도와 비바람에 깍여 이젠 바위만 남아 그 운치를 더해준다.
이런 해안선은 산과 다른 풍경과 정취를 보여준다. 어느 명산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다.
사실 이런 해안을 혼자 걷는다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나면 대처하기도 힘들고 자칫 길을 잃을 염려도 있다.
하지만 산에서는 볼 수 없는 바위와 절벽이 바닷물과 어우러진 이런 풍광을 보기는 쉽지 않다.
오늘은 파도가 없어 바다는 잔잔하니 파도에 대한 걱정은 없다.
이런 멋진 비경을 혼자만 감상한다는 게 큰 기쁨이다.
이렇게 멋진 곳에 트레킹코스를 만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절경을 즐길 수 있는데...
그러나 때로는 이런 단애가 갑작스레 나타나 더 진행을 못해 절벽을 타고 위로 올라온 다음 이동해야 하는 불편도 많다.
막상 위로 올라가면 남쪽의 숲은 북쪽과 달라 가시가 박힌 수풀과 잔 나무가 많아 숲을 헤치고 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온몸은 가시에 걸려 찔리고 긁히기 일쑤라 상처가 많이 생긴다.
모처럼 만나는 잔모래가 예쁜 해안이다.
이동 구간마다 다른 형태의 바위를 보는 즐거움을 혼자만 독점한다.
갑작스레 단애를 만나 한참동안 나무숲을 뚫고 다시 해안으로 나오는데 상당히 고생했다.
해안에서 뒤돌아 보니 제주 올레 7코스의 외돌개처럼 생긴 바위가 보인다. 절벽으로 가보지 못하는 곳이다.
이 절벽은 또 벽돌이나 레고를 쌓아올린듯 가지런한 형태가 특이하다. 지질학자들이 좋아할만 한 코스다.
여기서 더 진행하지 못하고 어렵게 산으로 올라간다.
여전히 뚫기 어려운 숲을 지나 겨우 산길을 만나 선유대교를 건넌다.
이런 해안에 정신이 팔려 무녀도의 무녀봉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갔다.
잠시 후 가게 될 건너편 선유도의 선유봉
이순신 장군, 명량해전 승리 후 12일간 선유도에서 휴식을 취하다
흔히 이순신 장군의 역사는 전남 목포와 여수 그리고 남해안만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 5일 후인 1597.9.21. 고군산 군도 선유도에 상륙했다.
명량해전 직전 조정의 극심한 당파간 다툼으로 희생돼 파직된 이순신 장군은 감옥에 갇혔다.
한 달여 만에 특사로 풀려나 도원수 밑에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통제사 원균이 대패하자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됐다.
이순신 장군은 남아있던 전함 12척에 한척을 추가해 겨우 13척으로 1597년 9월 13일 명량해전 울돌목전투에 나선다.
수적으로 불리한 여건에서 왜장 마다시가 이끄는 133척의 왜선과 맞선 이순신 장군은 지형을 이용한 전투를 벌여 승리를 이룬다.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그 유명한 울둘목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풍전등화의 조선을 구한다.
소위 말하는 명량해전이다.
이후 이순신 장군은 서해안을 북산해 부안 위도를 거쳐 전투 5일 후 선유도에 닻을 내린다.
12일간(1597. 9. 21. ~10. 3.) 선유도에 머물다가 10월 3일 선단을 남쪽으로 돌려 법성포 방면으로 내려갔다.
선유도에 머무는 동안의 행적은 난중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명량해전의 승전 장계를 조정에 올린 이순신 장군은 나주 목사와 무장 현감 등을 만났고,
전투에 지친 심신을 돌보며 다음 전투의 전략 구상과 함께 잠시 동안의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아산 본가가 왜적들로부토 분탕질을 당해 잿더미가 됐고, 아들 면이 왜적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통해 했다.
함께 있던 아들 회를 본가로 보낸 후 잘 도착했는지 걱정했다는 내용도 있다. (안내문 편집)
아래 사진에서 노란 점이 이순신 장군이 머물며 장계를 지어 올리던 장소
삼도귀범(三島歸汎): 고군산군도 중심섬인 선유도 3개 섬의 모습이 만선이 들어온 것 같은 모습에서 유래됐다.
선유봉에서 바라보는 대장도의 대장봉은 142.8m로 선유봉 111m 보다 훨씬 높다.
대장봉은 시간이 없어 포기하고 사진만 찍는다.
선유봉의 한 봉우리
건너편의 거대한 돌바위는 망주봉이다.
그 앞에 작은 철탑처럼 생긴 구축물은 "스카이sun라인"은 공중 하강 레펠 시설이다.
활처럼 둥글게 휘어진 명사십리 해안과 망주봉, 산 능성이 잘 어울리는 그림이다.
선유봉에서 바라보는 해안 절경
다시 보는 대장봉
오른쪽 "스카이sun라인" 마지막 층은 45m 높이로 건너편 작은 섬까지 700m를 연결한 공중하강 체험시설이다.
비용은 2만원으로 배낭을 메고 갈 수 있는지 물어보니 안 된다기에 이용할 수 없었다.
선유봉에서 내려와 스카인sun라인으로 걷는다. 가다보니 초분(草墳)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있다.
초분은 섬이나 해안지방에서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특이한 전통 장례 풍속이다.
섬 주민들 중 누군가 사망했을 때 조상이 묻혀 있는 땅에 생(날)송장을 묻을 수 없다는 믿음과 정월에는 사람이 죽어도
땅을 파지 않는다는 전래 풍습으로 2~3년간 가매장을 했다가 육탈된 뒤에 땅에 묻는 이중 장례의 형태를 말한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초분의 관행은 장례 풍속의 하나인 빈(殯/세골장법)에서 유래한다.
빈(殯)이란 장사 지내기 전에 시신을 관에 넣어 일정한 장소에 암치하는 행위다.
고구려에서는 "집안에 죽은자를 빈하고 3년이 지나면 길을일 택하여 장례를 치룬다."고 하였다.
백제는 무년왕이 죽은 후 2년이 지난 후에야 왕릉에 묻히는 이중 장례를 행하였다고 한다.
이런 유래를 지닌 이중 장례의 다양한 외래 장례 방식이 도입되면서 육지에서는 사라졌지만,
지역적으로 고립되었던 서남해안의 해안이나 도서지역에서는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왔다. (안내문 편집)
안내문으로만 읽어봤지 지금은 이런 초분은 실시되지 않고 있다.
망주봉까지 걸어왔으나 망주봉을 오르내리기엔 너무 시간이 촉박하다.
결국 등산은 포기하고 걸어가자니 거리가 멀어 카카오택시를 호출해보지만 아예 택시가 없는 지역이다.
마을까지 걸어가 버스 타는델 물어보니 조금 더 걸어가라고 안내를 한다.
마을 주민이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봉고차에 5천원을 주고 잠깐만에 아침에 하차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다음에 다시 오면 1만원에 자전거 한 대를 빌려 섬 곳곳을 샅샅이 탐방하는 게 편하고 더 많이 볼 수 있겠다.
군산 선유도와 망주봉 문화유적
금강과 만경강, 동진강 물줄기가 한데 모이는 고군산도는 선사시대부터 줄곧 동북아 해양문물교류의 허브였다.
기원전 202년 제나라 전횡이 군산 어청도로 망명 온 뒤 백제가 남조와 일본, 후백제가 오월, 고려가 남송과 국제교를를 할 때 최대의 기항지로 번영을 누렸다.
1123년 송나라 휘종이 고려에 파견한 국신사(國信使)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영접행사를 주관하기 위해 김부식이 선유도를 방문했다. (안내문 편집)
이후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 호남 지역의 질 좋은 쌀 등을 수탈하기 위해 군산항구가 생긴 이후 군산은 몰라보게 발전했다.
이렇게 급속히 발전했던 군산은 광복 이후 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이 상실되고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일본으로 쌀이 수탈된 현장이란 상처로 국가에서 홀대 아닌 홀대를 받고, 중국도 공산화가 되자 항구로써의 위치는 급격히 제기능을 잃었다.
1990년대부터 서해안 시대에 대비하고 중부권 화물운송의 거점 항만으로 육성하기 위한 군장신항만 개발계획이 수립되었지만
이미 인천항, 평택항에 물류 이동량이 다 뺏긴 뒤다.
망주봉
칠갑산, 장안산의 회원 모집이 저조해 예정에 없이 가게 된 무녀도와 선유도 탐방이다.
일반적인 코스와 달리 해안의 비경에 빠져 정작 가야할 곳인 무녀봉, 대장봉, 만주봉을 놓쳐 다시 가게 생겼다.
뭐 두세 번 가도 좋을 만큼 풍광이 좋은 곳이니 언젠가 다시 가게 된다면 자전거를 빌려 샅샅이 탐방할 생각이다.
지난 주말까지 제법 좋던 날씨가 이번엔 중국발 미세먼지로 시야가 좋지 않은 게 흠이다.
중국의 유치한 사드 보복으로 경제가 가뜩이나 위축되는 시점에 중국의 미세먼지에 대하여 토도 달지 못하는 약소국의 비애를 느낀다.
그런 와중에 대통령 보궐선거를 앞두고 색깔 논쟁이나 벌이고 있는 정치권이 한심하다.
하루 빨리 선거가 끝나 새로운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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