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17.3.11.토 03:33~12:46(이동시간 09:13, 이동거리 24.66km, 평균속도 2.9km) 날씨: 맑음
지난 주말 전남 진도군의 동석산에 이어 일주일 만에 다시 전남 광양의 백운산을 등산하기 위해 무박 산행을 감행한다.
광양 백운산은 100명산 중 하나로 광양 매화 축제와 연계하여 봄에 많이 찾는 산이다.
하지만 올해엔 "구제역과 AI 확산 방지를 위해 3월 11일부터 3월 19일까지 계획된 광양 매화 축제가 취소"되었다는 주최 측의 안내가 있다.
작년 가을부터 AI 발생에 따라 양계가 도살 처분되면서 달걀값이 금값이 되자 결국 미국산 달걀을 수입하는 사태에 이르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제역까지 발생해 양축농가와 관련 식당의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렇게 AI와 구제역 발생에 따른 피해는 양축농가는 물론 모든 국민이 부담하게 된 셈이다.
다시 백운산으로 돌아가 보자.
등산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서로 다른 백운산을 몇 개는 뛰어야 산 좀 탄다고 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산림청에서 지정한 백운산만 하더라도 세 개나 되니 100명산을 채우자면 이 세 산은 필수 코스다.
그럼 전국에 백운산은 몇 개나 될까?
국토지리정보원의 2016년 자료를 보면 26개가 조회되니 어느 지역이나 몇 개씩은 있다는 얘기다.
백운산을 등산하는 김에 광양 매화꽃으로 새봄을 맞기 위해 전남 광양인 최남단까지 먼 거리를 달려왔다.
백운산 등산코스
신사역에서 어젯밤 11:30에 출발하여 여산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03:20분에 산행 들머리인 진틀에 도착했다.
여기서 신선대를 거쳐 백운산 정상까지는 4.3km 거리이므로 약 2시간 30여 분 예상된다.
백운산 정상에 올라간다 해도 일출은 볼 수 없는 상황이라 너무 이른 산행이 당황스럽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설치된 499개의 계단을 지루하게 밟느니 300여 m 멀더라도 신선대로 방향을 튼다.
막상 신선대 입구에 도착하자 대부분은 바로 정상으로 진행하고 신선대로 오르지 않는다.
입구를 찾으려고 암봉을 거의 반 바퀴를 돌아 겨우 올라가는 길을 찾아 오르니 쓰러질 듯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분다.
광양이 남쪽인 데다 날씨가 풀려 고어텍스 등 방한 방풍복을 준비하지 않고 코오롱고어텍스에 딸린 라이너만 빼 왔다.
그런데 이 라이너가 뜻밖에 보온성과 방풍 기능이 좋아 웬만한 바람에도 끄떡없다.
들머리인 진틀이 해발 440m인데 백운산 정상은 1,222m, 신선대가 1,198m이니 지상보다 800여 m가 높다.
그러니 기온은 뚝 떨어지고 한밤중의 바람은 세차기만 하다.
신선대 정상에서 보는 보름달
백운산 상봉에 다다르자 사진을 찍겠다고 늘어선 줄이 많아 옆으로 올랐다.
정상 인증 사진을 플래쉬를 터트려 찍는다 해도 앞서 신선대와 마찬가지로 잘 나오지도 않게 생겼다.
인증사진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강산해님의 블로그에서 양해를 받아 백운산 상봉 사진을 올린다.
백운산 상봉의 모습이 괜찮아 보이던데, 아직은 어둠이 깊어 전체적인 모습을 포기하고 간다는 게 매우 아쉽다.
산 높이 1,222.2m
오늘 산행 코스는 진틀~신선대~백운산~매봉~갈미봉~쫓비산~매화마을(청매실농장)까지 약 18.3km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정상에서 쫓비산으로 내려가는 이 코스는 17km 구간은 조망이 좋지 않다기에 억불봉코스로 하산하기로 한다.
상봉에서 억불봉으로 가는 사람은 나 혼자다.
얼마만큼 내려와 뒤돌아보니 맨 왼쪽 봉우리가 신선대이고 제일 오른쪽 봉우리가 백운산 상봉이 어둠 속에서도 존재를 알린다.
일출을 앞둔 시점의 억불봉이 아직은 너무 먼거리인 데도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태양은 진작 떠올랐지만 두꺼운 가스층을 뚫고 이제야 보인다.
지나온 능선 그 뒤로 보이는 백운산 상봉
때로는 이런 억새숲을 지나기도 하고...
태양은 진작 솟았지만 억불봉은 역광이라 시원스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노랭이봉으로 내려가는 등로에서 약 700m 정도 벗어난 곳에 억불봉이 있다.
억불봉이 워낙 뾰족하게 솟아있어 먼 곳에서도 확인히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첫 번째 바위봉우리가 위압적으로 맞아준다.
첫 봉우리에서 지나온 능선을 본다.
뒤쪽 능선이 매봉, 갈마봉으로 해서 쫓비산으로 내려가는 코스로 함께 온 회원들이 지루하게 걷고 있을 능선이다.
방금 지나온 곳의 바위
노랭이봉
억불봉의 한 구간
억불봉까지는 서너개의 암봉을 올라가야 하는데 그 중에 두 번째 봉우리 정상
두 번째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첫 번째 봉우리의 모습
세 번째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두 번째 봉우리
좀 더 멀리서 다시 보는 두 번째 봉우리
얼마만큼 걸었을까?
지금까지 이동거리는 10km로 백운산 정상인 상봉에서도 5.7km를 더 걸은 셈이다.
새벽 3시 반에 출발하여 어둠을 가르고 다섯 시간 8분만에 오른 억불봉 정상이다.
억불봉
신증동국여지승람(1481~1530)의 원문에 「업굴산(嶪窟山)이란 백계산 동쪽지맥이다.」라고 기록했다.
여기서의 업굴산이 지금의 억불봉(億佛峰)이고, 백계산은 백운산으로 지칭한다.
왜 업굴산(嶪窟山)이라고 했을까?
억불봉 동쪽 절벽에 굴이 있다. 업(嶪)은 높고 험준한 산봉우리란 뜻으로 험준한 봉우리에 굴이 있는 산이란 뜻이다.
안내문 편집
억불봉에 있는 안내지도를 보니 하산길이 6km로 소요시간 세 시간이나 걸린다.
이 억불봉까지 오는데 벌써 다섯 시간을 썼는데 하산해서도 쫓비산을 지나 광양 매화마을까지 가려면 주어진 여덟시간 내 도착하기엔 부족하다.
결국, 정해진 코스로 가면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어 억불봉에서 마을로 바로 빠지기로 한다.
억불봉 건너편 작은 암봉이다.
내려가 보니 저 봉우리로 올라가는 철사다리가 있는데, 너무 오래되고 낡아 발판 하나가 떨어져 너덜거리길래 위험해 보여 오르지 않는다.
좀 전에 본 그 봉우리 사이로 내려가는 구간엔 이렇게 위험구간을 알리며 절대 내려가지 못하게 막았다.
옆으로 돌아가 보니 그곳은 낭떠러지기라 다시 돌아오니 몇 번 함께 산행했던 해올산악회의 리본이 걸려있다.
해올산악회가 갔다면 나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틈사이로 빠져나간다.
막상 통제선을 통과하자 로프가 바위에 늘어져 있는데 경사도는 높다고 하지만 조심스럽게 내려갈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하니 바로 하산하는 데 길은 보이지 않고 온통 바위로 된 너덜길이다.
워낙 크고 작은 바위로 된 비탈길인 데다 경사가 심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앞서 이곳으로 가지 못하게 길을 막은 이유는 길도 없는 데다, 이렇게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기 위해 나무마다 채취용 호스를 박았다.
수액 채취용 호스는 또다시 큰 호스로 연결해 마을까지 이어진다.
수없이 많은 고로쇠나무 마다 이렇게 수액 채취용 호스가 연결돼 있어 만일에 발생할 불상사를 막기 위해 길을 막은 이유도 있겠다.
전엔 수액을 채취하는 고로쇠 나무마다 물통을 설치하여 매일 오르내리며 거둬들였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진 거다.
초기 설치부담은 늘어도 산에 오르내리는 불편이 없어진 셈이다.
길도 없는 위험한 너덜길 약 2km를 한 시간 15분 만에 겨우 탈출했다.
마을에서 버스를 기다리리다 현지인이 보이길래 매화마을까지 가는 방법을 물으니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으면 가능하다며 대략 길을 알려준다.
쫓비산을 넘어가자니 남은 한 시간 반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해 결국 마을 길을 따라 걸으면 가능하겠단 생각에 걷는다.
걷는 중간에 힘들어 카카오택시를 부르긴 했으나 택시 기사가 오기 싫었는지 매화마을에 차량이 뒤엉켜 나갈 수 없다며 웬만하면 걸어오란다.
결국, 오늘 총 이동 거리가 24.66km인데 억불봉에서 탈출한 후부터 매화마을까지 11km를 걸었다.
마을 사람이 알려준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는 내가 환산했을 때 약 6~7km 정도의 거리다.
실제 걸은 거리가 7km가 아니라 11km 거리이니 마을 사람이 생각한 거리보다 4km를 더 걸은 셈이다.
시골 사람의 부정확한 거리 감각에 속아 매화마을까지 긴 거리를 걷는 동안 개고생했다.
물론 마을 길 따라 걸었으니 산길처럼 힘들진 않았어도 포장도로라 발의 피로도가 굉장히 높았다.
걷는 동안 몇몇 차량에 손을 들어봐도 세워주는 차량이 하나도 없다.
작은 고개를 넘어 매화마을이 멀리 보일 때 벌써 주어진 마감 시간 12시를 불과 10분 남겨놓았다.
대장에게 전화를 몇 번 해도 도체 받지를 않는다.
어렵게 통화가 돼 20~30분 정도 늦을 거 같으니 기다리는 게 어렵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테니 먼저 출발하라고 한다.
대장이 여기저기 알아보더니 아직 내려오지 못한 회원이 절반 정도 된다며 출발 시각을 한 시간 뒤로 늦출 테니 걱정하지 말란다.
출발 시간이 한 시간 늦어진만큼 여유가 생겼지만, 그간 쌓인 다리의 피로도는 이미 극에 달한 상태다.
매화마을 입구의 매화꽃
매화꽃이 아무리 예쁘기로서니 쉬지 않고 걷다 보니 피로도가 너무 높아 매화꽃도 더는 꽃이 아니다.
백운산 억불봉까지의 산행 기분은 꽤 괜찮았으나 하산 시점부터 매화마을까지는 극한의 체험이었다.
백운산과 광양 매화마을은 아주 오랫동안 개고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어서오세님의 양해를 받고 올린다.
매화마을 앞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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