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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전라도·광주

한밤중에 오른 목포 유달산

by 즐풍 2019. 5. 10.




탐방일자 2017.5.5.금(어린이날) 03:48~05:29(탐방시간 1:41, 전체거리 3.84)


유달산은 목포 사람들에게 성지와 같은 존재다.

그 유달산을 조정래가 아리랑에서 잠시 풀어낸 말이 있길래 이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유달산이 아침햇살을 받으며 그 자태를 우람하게 드러내고 있다. 

온갖 형상을 한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청옥색 투명한 겨울하늘을 배경으로 한층 더 우아하고 신비스러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수많은 바위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유달산은 언제나 전설적인 신비를 간직한 한 폭의 입체화였다. 

그런데 아침햇살이 한쪽에서 비껴 비치면서 봉우리들과 골마다 음양을 드러내자 유달산은 더욱 신묘한 입체화가 되고 있었다.

유달산은 그다지 높지도 그리 크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바위산이라 우람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거대한 바위 몇덩어리로 이루어진 산이었더라면 육중하기는 하되 둥중해 보이고 싱거웠을지 모른다. 

유달산은 바위산으로 태어나되 기기묘묘한 봉우리들을 수많은 지식인 양 품어 듬직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다양한 바위봉우리들로 모양을 갖추었다고 하나 바위만으로는 산의 구색이 모자란다고 생각한 것일까. 

중턱 아래로는 차츰 나무들을 키워내 산자락에 이르러서는 넉넉한 숲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 생김대로 사람들은 유달산을 신령스럽게 여겼다. 

안개나 구름이 중턱을 휘감고 있을 때면 그 신비스러움이 극치를 이루어 유달산에는 영락없이 영험한 신이 머무는 것처럼 신령스럽기 그지없었다. 

래서 그런지 유달산에는 유난히 무당들이 많았다. 

그 무당들이 유달산 이 골자기 저 골자기 바위 아래서 기도를 드리는 것은 물론이었다.


유달산은 언제나 목포를 굽어보고 있었다. 목포에 사는 사람들도 언제나 유달산을 바라보았다. 

목포사람들은 유달산을 에워싸듯 하면서 터를 잡고, 차츰 해변 쪽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니 목포사람들은 눈을 뜨고 고개를 들면 어디서나 유달산을 마주하게 되었다. 

목포사람들에게 바다와 더불어 유달산은 모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1무1박3일 일정으로 홍도 깃대봉과 비금도 그림산, 선왕산을 보기위해 어젯밤 11:30에 신사역을 출발했다.

버스는 천천히 달렸다고는 하지만, 밤 늦은 시각이라 도로가 한산해 목포항에 새벽 3:40에 도착했다.

인근에 있는 유달산을 다녀올 시간을 주는데 중간중간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으니 랜턴 없이도 산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몇몇 사람들이 랜턴 없이 유달산 등산을 시작한다.   

유달산 오르는 길에 처음 만난 소녀상 

이때까지만 해도 가로등 불빛이 좋아 사진이 제대로 나왔지만 이후 사진부터는 엉망이다.

하여 밤중에 올라간 유달산은 등산이라기보다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처음 소녀상만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이후부터는 아이폰 사진이다. 


마당바위까지 올라간 다음 더 올라갈 수 없는 줄 알았다. 

하산길에 정상을 다시 보니 우측으로 돌아서 가로등 불빛이 보이길래 가로등을 따라 다시 올라가 정상인 말등바위에 오른다. 

정상이래야 고작 228m에 불과하지만, 

위에 조정래가 풀어놓은 유달산처럼 "목포사람들에게 바다와 더불어 유달산은 모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유달산을 이럽게 갑작스럽게 만나 잠깐동안 가로들 불빛에 의지해 탐방했다는 건 산행에 대한 예의가 아닌듯 싶다.

언제 목포에 온다면 유달산은 정말 정성스럽게 다시 올라야겠다. 



유달산을 다녀오고도 다녀왔단 말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아니 갔다고도 말하지 못하겠다. 

국도 1.2호선 기점이 이곳 유달산 바로 아래서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