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2016.8.27. 토 09:48~16:31(이동시간 6:47, 이동거리 11.5km) 날씨: 맑음
여름내내 전국을 달구던 찜통더위는 그제 내린 비로 하룻만에 가을 날씨로 돌아섰다.
한달을 넘게 세상을 달구던 올여름의 찜통더위를 견딜 수 있었던 건 1994년 여름의 폭염 기억 때문이다.
그때 이천의 어느 슬라브 지붕으로 된 단독에 세들어 살았다.
한낮에 벌겋게 달궈진 얇은 슬라브 지붕은 밤새도록 열기를 뿜어내 도저히 잠을 잘래야 잘 수가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밤중에 지붕 위로 몇 번이나 물을 뿌려보지만 도대체 열기는 식을 기미조차 없다.
여름 내내 잠을 설쳐 파김치로 만든 그 더위 때문일까?
폭염의 여름을 지나며 더위 먹은 머리는 하얗게 재만 남았다.
계약기간이 끝나고 서둘러 직장 근처인 빌라 1층으로 옮긴 게 또 화근이 됐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새벽에 화장실을 간다고 침대를 내려서는 순간 몸이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다.
깜짝 놀라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살펴보니 장판이 솟아올라 걸을 때마다 푹푹 빠진다.
아니 방바닥에 스펀지를 깐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난장판이지?
불을 켜고 자세히 보니 흠이 생긴 장판 틈으로 물이 솟아오른다.
폭우에 갈 데 없는 물길이 방바닥으로 솟아 장판을 들어 올린 것이다.
그 집은 밖에서 보면 1층이지만, 뒤에 언덕을 깍아 세운 빌라였다.
이런 반지하인 빌라에 속아 들어간 죄로 다음 해 또 한번의 혹독한 대가를 치뤘다.
이 모두 가난한 월급쟁이가 겪어야 했던 젊은 날의 애환이다.
처서를 지나고 비 온 뒤라 더위도 무뎌지니 폭염마저도 세월 앞에 꼬리를 내린다.
올 처서는 가을을 알리는 두 번째 절기가 아니라 여전히 더위(暑)에 처(處)해 있다며
의미를 달리 해석하던 언론도 하루 사이에 날씨가 변하자 다른 기사를 뽑아내기 바쁘다.
그나저나 다음 달에 부과될 전기요금을 어떻게 받아볼지 벌써부터 심장이 오그라든다.
낙영산 도명산 등산코스
흔히들 화양계곡 입구에서 도명산으로 올라가 낙영산 정상을 찍고 다시 화양계곡으로 하산하며 계곡을 즐긴다.
오늘은 이와 달리 낙영산 너머의 공림사에서 낙영산을 오른 후 도명산을 거쳐 화양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낙영산과 도명산을 타되 화양계곡까지 즐기는 단축코스인 셈이다.
공림사는 신라 경문왕 때 자정(慈淨)이 창건하였다니 오랜 역사를 갖는다.
어느 절이나 그렇듯 억불정책을 편 조선시대를 거치며 쇠락했다가 근래에 다시 부흥기를 갖는다.
오래된 사찰답게 주변엔 고목이 많은데, 이 느티나무는 1982년 11월에 보호수로 지정될 때 990년의 수령이다.
천년의 세월동안 우리민족의 부침을 함께 지켜 본 신목이다.
괴산(槐山)의 槐자는 느티나무란 뜻이라는데, 그래서일까 공림사 경내에 느티나무가 그득하다.
중국에선 槐자는 선비를 의미하기도 한다는데....
다행히 공림사(公林寺)에서 낙영산 대슬랩으로 올라가니 오르는 동안 바라볼 전망이 좋겠다.
능선으로 올라가며 보는 건너편 능선도 슬랩 지대가 넓다.
참 잘생긴 소나무
뒷쪽으로 보이는 능선은 속리산 묘봉구간이다.
두 개의 커다란 암봉이 나타나 잠시 암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전망을 바라보기도 한다.
잠깐 등로에서 떨어진 곳에 오니 이런 바위가 있지만, 굳이 찾을 필요는 없다.
건너편은 가령산일까?
낙영산의 미륵산성, 군데군데 훼손되긴 했으나 여전히 등산객을 지켜보고 있다.
낙영산은 화양구곡의 남쪽인 청천면 사담리에 있는 바위산으로 암곡미 (岩谷美)가 뛰어난 산이다.
낙영산이란 산의 그림자가 비추다 혹은 그림자가 떨어지다는 뜻이다.
신라 진평왕 때 당 고조가 세수를 하기위하여 세숫물을 받아 들여다보니 아름다운 산의 모습이 비친지라
이상하게 여겨 신하를 불러 그림을 그리게 한 후 이 산을 찾도록 했으나 나라 안에서는 찾지 못하였다.
어느 날 동자승이 나타나 이산은 동방 신라국에 있다고 알려줘 신라에까지 사신을 보내 찾아보았으나
신라에서도 찾지 못해 걱정하던 중 한 도승의 도움으로 찾은 후 낙영산으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백과사전 편집)
낙영산 정상에 세워진 뻘쭘한 표지석
낙영산을 내려와 적당한 공터에서 점심을 먹고 이번엔 도명산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안부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도명산을 가는 길이다.
이 안부에 도명산성의 안내도와 함께 산성의 설명이 있는데, 산성을 돌아 도명산으로 가도 되는듯 보인다.
마침 흐므님도 관심을 보이길래 의기투합하여 함께 도명산성 길로 향한다.
길은 몹시 험란할 줄 알았지만, 걷기에 무난한데 산성이 훼손될까봐 금지구역으로 묶였다.
한참을 오른 후 코뿔소바위를 만난다.
도명산성
낙영산과 도명산을 남북으로 능산을 따라 성벽을 쌓고 두 산 정상 부분엔 자연 암벽을 이용했다.
전체 길이는 5.1km, 석축만 3.7km가 넘는 고려시대 방어용 산성의 전형을 보여준다.
성벽 안쪽으로 2~3단의 계단모양으로 쌓아 고려 후기에서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축조기술이다.
쌀개봉 정상의 코뿔소바위
여기서 잠시 흐므님이 어디로 갈지 지도를 본다.
나도 트랭글 지도로 도명산을 찾으니 이곳 쌀개봉과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가던 방향으로 더 가면 조봉산이 나오기에 뒤돌아 가기로 하는데, 워낙 많이(700m) 온 탓에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알바도 이런 알바가 없는데, 그래도 남들 못본 도명산성과 쌀개봉을 본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쌀개봉에서 한참을 되돌아 와 도명산 가는 길에 보는 기차바위
건너편 가령산의 한 능선
쌀개봉까지 갔다온다고 우리팀과는 상당한 거리가 벌어졌다.
트랭글 지도로 검증했을 때 편도 700m이니 왕복 약 1.5km의 거리를 따라붙어야 한다.
그 거리를 우린 능선을 따라 걸었고 팀은 계곡으로 하산했으니 격차는 더 벌어졌다.
드디어 도명산과 만나는 능선을 잡아탔을 때 왼쪽으로 보이는 도명산 방향은 거대한 암봉이 버티고 있다.
그쪽으론 위험한지 출입금지라기에 정코스로 돌아 거의 정상을 올랐을 때 하산하는 우림팀을 만난다.
비록 하산하는 팀과 만났으나 그 거리의 간격이 이만큼이나 좁아졌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정상에서 만난 또 다른 명품 소나무
드디어 도명산 정상 암봉이다.
도명산
속리산국립공원 화양지구에 속하는 도명산은 암봉이 즐비하게 늘어서 산세가 아름답다.
드명산 아래를 지나는 화양계곡의 수려한 경관과 시원한 물줄기로 여름엔 피서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화양동 계곡엔 송시열을 제향하기 위한 화양서원과 화양구곡의 곳곳에 산재한 옛 선비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이 소나무는 뿌리로 연결된 연리근이다.
저 뿌리 위로 흙이 있었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노출되어 어느새 맨살을 드러내도
서로 의지하며 사랑의 힘으로 오늘도 견디고 있다.
도명산 정상에서 그 아름다운 정취에 이끌려 한참을 보낸 후 겨우 발길을 옮겨본다.
괴산 도명산 마애삼존불상 (충북 유형문화재 140호)
꺽여진 암벽에 선각으로 조성된 불상 중 오른쪽 불상은 9.1m의 규모에 안면의 길이만 2m에 이른다.
이 마애불상은 고려 초기에 유행하던 선각 마애불상과 같은 경향을 보인다.
폭염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한낮의 무더위 속에서 낙영산 도명산을 등산하며 흘린 땀을 화양계곡에서 씻어볼까?
화양계곡을 살펴보니 모두 구곡(九曲)의 명소가 전해진다.
도명산에서 내려오면 먼제 팔곡에 속하는 학소대를 만나지만, 좀 더 위쪽에 제9곡인 파천이 있다.
학소대에서 1km 떨어진 거리로 산책로가 아닌 개울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개울엔 대부분 암반이 깔렸거나 집채만 한 바위도 도처에 널려있어 길을 내기도 쉽지 않다.
파천에 도착했을 때 오후 3시 43분인데, 4시 반까지 버스로 오라고 했으니 3.7km인 하산길을 서둘러야 한다.
파천으로 올라가는 길은 온통 이렇게 암반이거나 바위 투성이라 길은 더디고 어렵다.
기를 쓰고 올라온 끝에 드디어 파천이 고개를 내민다. 학소대에서 1km의 거리다.
하얀 바위 위로 용의 비늘을 꿰어놓은 것 같은 물결이 굽이친다해서 "파천" 이라고 한다는데, 잔물결만 굽이친다.
이 파천을 기준으로 주차장까지 8, 7, 6, ....2, 1의 화양구곡을 즐기면서 내려가겠지만, 시간이 촉박하니 걸음은 빨라진다.
이곳도 파천의 일부
여전히 파천이다.
파천은 화양구곡의 마지막 구간이라 그런지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이름이 여러 바위에 많이도 새겨져 있다.
제8곡인 '학소대'는 학이 바위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제7곡인 와룡암, 글자 그대로 용이 한 마리 누워 꿈틀거리는 모습이라는데....
능운대 앞 개울가에 물과 어우러진 암반
제6곡인 능운대(凌雲臺)는 우뚝 솟은 큰 바위가 구름을 찌를듯 높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제5곡으로 "큰 바위가 첩첩이 층을 이루고 있으며 그 위에서 천체를 관측할 수 있다" 하여 첨성대(瞻星臺)라 부른다.
화양구곡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의 명승지엔 여러 이름들이 그럴싸하게 지어졌다.
이곳 화양구곡만 하더라도 파천, 와룡암, 능운대, 첨성대... 등 많은 이름이 과장된다.
용의 비늘, 누운 용, 구를을 찌를듯 큰 바위, 천체를 관측할 수 있는 바위 등 모두 과장이다.
하기에 작은 것도 크게 볼 수 있는 심미안을 가진 우리네 조상님들의 배포가 부럽다.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가 보이는 계곡 속의 못이라는 금사담(金沙潭)은 미쳐 살피지 못했다.
그러니 오늘 어렵게 온 도명산과 화양계곡은 무효가 됐으니 언젠가 다시 와야할 곳이다.
읍궁암(泣弓巖)
제3곡으로 우암(尤庵) 송시열이 제자였던 효종(1619~1659)께서 북벌(北伐)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41세의 젊은 나이에
승하(昇遐)하신 것을 크게 슬퍼하시어 새벽마다 한양을 향하여 활(弓)처럼 엎드려 통곡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제2곡인 운영담(雲影潭)은 깨끗한 물이 소를 이루어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는 뜻이다.
운영담의 이름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조금 아래쪽에 보를 만들어 물을 가두었다.
덕분에 갈수기 때도 물이 고여 있어 운영담 이름에 걸맞게 늘 구름의 그림자를 비치게 된다.
운영담을 끝으로 마지막 다리를 건너기 전 행복이 회장님이 어디냐고 전화가 온다.
앞서 도명산성을 본다고 쌀개봉까지 왕복 1.5km를 흐므님과 돌고 온 후,
학소대에서 파천까지 또 1km를 더 갔다 왔으니 다른 회원보다 3.5km를 더 뛴 셈이다.
출발 예정 시간인 4시 반까지 5분 정도 더 남았는데 회원들은 벌써 차를 타고 대기 중인 모양이다.
남들보다 대략 한 시간 정도 더 걸은 셈이니 회원들과 시간을 맞추자면 들고 뛰었어야 했다.
부지런히 걸어 1분을 경과하여 버스에 오른 후 귀경길에 오른다.
덕분에 후반부에선 주로 속보로 탐방을 진행하다보니 다리가 뻐근하다. 피로가 풀리자면 제법 시간이 걸리겠다.
시간과 정보 부족으로 제1곡인 경천벽과 제4곡인 금사담을 사진에 담지 못했으니 다소 아쉬움이 남는 산행이다.
운영담 앞의 굽은 느티나무는 더 이상 쓰러지지 않고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 좋은 쉼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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