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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전라도·광주

모세의 기적을 재현한 영취산

by 즐풍 2019. 5. 29.

 

 

 

산행일자  2015.4.11.토 10:18-13:28(다섯 시간 10분 산행)    날씨: 맑음

 

 

 

산 이름이 생긴 것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전일 것이다. 흔히 거주지 앞에 개울이나 강이 흐르면 논농사를 짓기 좋고, 뒤쪽에

산을 등지면 한겨울 북풍을 막아주며 햇살 따듯하게 받아내니 대개 이런 경우는 풍수지리에서 최고의 명당으로 치는 배산임수의

양지바른 남쪽이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 조상이 선호하는 길지임이 틀림 없다. 이런 생활터전에서 바라보는 산 역시 앞산

은 당연히 남쪽에 있으니 흔히 남산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전국에 남산은 31개나 된다니 웬만한 시·도에 하나씩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기에 애국가 2절에 나오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할 때의 남산은 서울에 있는 남산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마주하

게 되는 앞산이자 소나무인 셈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지은 산 이름이 있는가 하면 도교와 불교에 기반을 둔 이름도 많다. 1993년 백제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되면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일대 사건이 있었다. 그때는 향로에 있는 용과 봉황새, 도가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산을

봉래산으로 보아 "백제금동용봉봉래산대향로"라는 제법 긴 이름을 붙였다. 봉래산이 전설상 신선이 산다는 중국 봉래산을 연상

시킨다고 자주성 회복 차원인지 몰라도 어느새 백제금동대향로라는 짤막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백제금동대향로의 센서이셔널은 설악산 신흥사의 세계최대 청동좌불상 앞에 사람 키만큼이나 크게 복제되어 있으니 설악산

을 다녀 올 때면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다. 이러한 봉래산을 포함해 무협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화산이나 아미산 등 도교적인 산은

대부분 중국에 많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주작산, 신선봉, 삼신봉, 아미산이니 하는 도교풍의 산 이름도 제법 있다.

 

불교와 관련된 이름으로 가깝게는 서울의 불암산, 김포의 문수산이 있고 미륵산이니 도솔봉, 보현산, 달마산 등 찾아보면 전국에

수두룩 하다. 북한산만 하더라도 의상봉이나 나한봉, 나월봉, 문수봉, 보현봉, 연화봉, 원효봉, 승가봉 등 불교식 이름이 산줄기

하나씩 거느리거나 봉우리 하나를 차지한다. 불교가 전래된 역사가 긴만큼 온전히 산 이름을 차지하거나 능선 하나쯤은 쉽게 거

느린다.

 

그렇다면 역사가 비교적 짧은 천주교나 기독교와 관련된 산 이름은 뭐가 있을까?

천주산과 성주산이 보이긴 하지만 천주교나 기독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미 산 이름이 다 생긴 뒤에 들어 왔으니 유감스럽게

도 있을리 만무하다.

 

오늘 가는 산은 지리산 줄기지만 그 한켠에 있는 불교식 이름인 영취산을 들어가기 위해 서두가 이렇게 길었다. 석가모니가 설법

장소로 쓰던 기사굴산을 번역한 게 어찌하다보니 영취산이 되었는데, 대동여지도에는 영취산이 전국에 여덟 개나 있다고 한다.

누구나 다 아는 여수의 영취산은 대한민국 최고의 진달래 명산이고,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인 경남 양산 통도사를 품고 있는

영축산의 한자는 여수의 영취산과 마찬가지로 靈鷲山이라 쓰는 데, 鷲는 취라고도 읽히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영취산이라

고 부른다. 

 

이번에 산행하는 영취산은 이런 불교적 의미를 떠나 백두대간의 분기점으로써 의미도 크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을

따라가다 보면 중간중간 정맥이 분리되고, 그 정맥에서 다시 지맥으로 나뉘게 된다. 영취산은 금남정맥으로 이어지는 분기점으로

금남정맥은 다시 중간에 남쪽으로 호남정맥을 가지치기 하니 실상 두 개의 정맥을 거느리는 셈이다. 이번 산행은 이런 실상을 알

고 산행을 한다면 산행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세미백두대간 제 3구간 등산코스

 

 

 

무룡고개 주차장에서 불과 15분만에 올라온 영취산 정상은 1,075.6m이다.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치고 올라온 높이가 150-200여m 남짓하니 무룡고개는 해발 약 900m 정도 되지 않을까?

대간 코스 중에 제일 편하게 정상에 올라타는 느낌이다.

 

15분 정도 올라오고 나서부터 상당히 긴 거리를 편안하게 하산하는 느낌으로 걷는다

 

 

산죽이다. 강원도에선 조릿대로 불리고 충청권에선 신우대로 불리는 데 같은 건지 다른 건지 전문가가 아니니 구분하는 방법은 걍~ 패스

 

 

좀 전에 본 암봉의 뒤쪽

 

 

 

 

오늘 구간은 거의 육산인데 모처럼 만난 암봉인 전망바위다.

산이 높다보니 대부분 진달래는 이제 막 몽우리가 앉았는데 여기서 반쯤 핀 진달래를 만난다.

한 2주 후면 이 거리엔 진달래 가득한 화원이겠지만 찾는 이 별로 없는 구간이라는 게 아쉽다

 

▲▼  다른 위치에서 보는 같은 바위

 

 

지금까지 걸은 산 중에 가장 많은 산죽을 만난다. 보통은 사람키를 훌쩍 넘는 곳도 많은 데 백두대간을 전문으로 하는 산객들 외엔

일반인의 출입이 많지 않다보니 겨우 지나갈 정도의 공간밖엔 없다. 몇몇 회원분은 반팔에 반바지 차림도 있는데 팔다리를 스치다

보니 나중에 가렵지나 않을 지 모르겠다.

이런 통로를 지나며 모세를 다룬 "십계"에서 바다가 갈라지는 모습이나 우리가 산죽을 가르며 지나가는 풍경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하여 오늘 산행 제목을 뭐로 뽑을까 고민하다 "모세의 기적을 재현한 영취산"으로 낙찰본다.

사람키보다 큰 산죽거리를 지난다

저 암봉에 올라서면 논개사당이 보인다는데...

앞서 본 암봉의 다른 위치

제법 큰 생강나무

 

 

이쪽 구간은 대부분 울창한 참나무숲인 데, 어쩌다 만난 소나무가 반갑다.

 

또 하나의 특징은 간간이 만나는 억새군락이다. 참나무 숲에 산죽거리, 부드러운 육산과 더불어 오늘 산행의 특징이다.

 

K2의 어느 지역 산악회가 나무에 붙인 산행시그널을 보니 백두대간 17회차라 표시되어 있고

또 누구누구는 1,800 명산 완등했다는 축하 시그널이 있는 걸 보면 참 대단한 산꾼들이란 생각이 든다.

내 불과 6년의 산행경력으로 그들을 따라잡자면 평생의 시간으로도 부족하겠지만 나 또한 멈추지 않으리라.

온통 참나무 뿐.....

 

 

구시봉 뒷면 참조

구시형이 뭐지? 구시형은 구시의 형태라는 말로 준말로 해석한다면 구시는

"구유", "구덩이"의 방언이다. 구시봉에 있어도 구유인지 구덩인지 분간을 못 하겠다.

 

점심을 먹을 때 훤칠하고 날씬한 외국인 가족 다섯명이 지나간다. 세 명은 자녀로 귀엽고, 예쁘고, 수줍어 보이는데 함께 등산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백두대간길은 속도를 중시하다 보니 볼 거 없는 정상은 생략하고 이와 같이 질러가는 사면길을 만들어 나도 좋고 너도 좋고 모두가 좋다

 

육십령고개는 백두대간에서 덕유산과 지리산이라는 명산을 연결하는 주요한 고개다. 지난 두 번째 대간산행인 노치마을

목돌에서 보았듯이 일제는 1925년 이곳 육십령 고개에 길을 냄으로써 우리민족의 정기를 끊었다.

끊긴 백두대간을 연결하는 터널공사를 2013년 6월에 완공하면서 그 위에 육십령의 상징으로 소나무 60그루를 심었다.

또한 대간을 연결하는 터널의 완공으로 돌물이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생태통로로의 가치도 크다.

산림청은 앞으로 벌재·정령치·죽령 등 다른 단절구간을 대상으로 복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육십령전망대에서 바라본 덕유산 풍경

 

전체적으로 힘든 코스는 없으나 마지막 구간에서 진도를 빼는 바람에 좀 다리에 압박을 받는다.

오후 네 시에 출발해 매장에 오후 여덟시 10분에 도착했으니 오늘은 비교적 빠른 귀가다.

다음엔 덕유산을 지나면서부터 모모대장님이 숨겨 논 비경이 있다니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산을 그리며

 

이 세상에서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백 사람이 있다면

그 중에 한 명은 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열 사람 있다면
그 중에 한 명은 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면
그도 바로 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그것은 내가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아내 프란체스카 여사가 쓴 연서를 각색한 것으로 "당신"을 "산"으로 바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