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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경상도·부산·울산·대구

사량도 지리망산의 진달래꽃 절경

by 즐풍 2019. 6. 27.

 

 

 

산행일자 2015.4.4.토 08:10-13:15(다섯 시간 산행)   날씨: 맑은 후 점차 흐림

 

사람들은 두 번 이상 읽는 책이 있을까? 굳이 교육 교재가 아니라면 두 번 이상 읽기는 힘들다. 나는 이상하게도 이상의 '권태'란 수필을

너댓 번 이상 읽었던 기억이 있다. 특별히 재미있었다거나 명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독특한 문장과 관찰에 매력을 느낀다.

이런 짧은 수필류가 아니라면 아무리 재미있는 책이라도 두께가 있으니 섣불리 두 번 이상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신없이 빠져들

었던 혼불, 상도 같은  대하소설이나 로마인이야기 같은 교양서적은 그 분량이 만만치 않으니 은퇴하고 마땅히 할 일이 없는 노년이라면

모를까, 더더욱 재독할 엄두가 안 난다. 더욱이 안력이 점점 줄어들어 업무용 안경과 일반 안경을 번갈아 쓰는 것도 귀찮아 뒤늦게 누진

다초점 안경을 맞추기까지 했으니 이 나이에 눈 깜빡여가며 책 보는 일은 점점 취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수불석권이니 공자

의 위편삼절(韋編三絶)이니 하며 독서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해도 큰 활자가 아니라면 굳이 눈을 혹사시키며 읽을 엄두가 안 난다.

 

하지만 산이라면 다르다. 산은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계절에 따른 변화가 심하니 같은 산 같은 코스라 해도 명산이라면 몇 번이고 빠져들

고 싶다. 웬만한 산 하나 갖고는 성에 차지 않는지 그 지루한 백두대간을 몇 번씩 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맥, 지맥까지도 찾아 다니며

온 산하를 섭렵하는 산객들이 있으니 그들의 열정은 대하소설을 몇 번씩 열독하는 이상의 열정을 산에 바친다. 아마도 단조로운 일상의

틀을 깨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산행을 하며 새로운 인생역정을 찾아나서는 건 아닌지... 내 비록 그들이 갖는 열정의 발끝만큼도 따라가지

못하지만 매주 산행을 거르진 않는다.

 

얼었던 산천이 풀리며 현호색이나 생강나무, 진달래가 봄을 알리는가 싶은데 어느새 연두색 나뭇잎이 햇볕에 사라지는 안개 사이로 나

올 때의 풍경은 마치 갓난아이의 부드러운 피부인양 만지고 쓰다듬고 싶다. 이러한 봄을 순식간에 보내고 뜨거운 여름에 온몸을 육수에

쩔며 기를 쓰고 오른 산 정상에서 맞는 바람은 에어컨의 냉기와는 또 다른 상쾌함이데, 하산길의 계곡에서 즐기는 시원한 알탕은 덤이다.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경이나, 당장은 싫지만 혹독한 바람 역시 산을 타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권한이다. 그러나 등산하는 동안 시간

은 쏜살같이 지나가니 부족한 시간은 늘 아쉽고 시간 가는 줄 모르기에 나이마저 쉽게 먹는 느낌이니 이것이 등산의 단점이기도 하다.

 

 

사량도

 

사량도의 옛 이름은 박도(樸島)였다. 사량도인 상도와 건너편 하도 사이를 가로 흐르는 물길이 가늘고 뱀처럼 길고 구불구불한 형세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옥녀의 설화에서 유래되어 사랑(愛)이 사량(蛇梁)으로 변천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에 의해 사

량도로 지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원래 섬 이름은 용태도(龍胎島)로 용이 태어난 섬이란 뜻이었지만 왜정시대 때, 용을 뱀으로 바꾸어 우리민족의 기상을 왜곡시킨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편이고 모든 것이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된다 해도 저들의 비열한 민족정신 말살 행태에서 벗어나자면 원래의 이름인 용태

도로 환원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덕이살레와산악회와 함께 한 사량도 지리산 등산코스

※ 금평항에서 돈지항까지 버스로 이동

 

 

어젯밤 12시에 일산에서 출발해 새벽 다섯 시가 지나 경남 고성군에 있는 상족암 군립공원에 도착했다. 상족암은 공룡의 발자국이 해변가

암반에 무더기로 남아있을 뿐 아니라 해안의 절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아침 일출을 보겠다고 나섰지만 버스 탑승시간과 맞물려 일출

은 버스를 탑승하고 서야 볼 수 있었다. 아직은 일출전인 여명이라 선명하지 못한 풍경이다.

 

 

동해를 끼고 강원도 최북단에 금강산과 닿아있는 고성이 있고, 그 바다 끝을 타고 남해 한려해상국립공원과

닿아 있는 경남 고성이 있다. 사량도를 가자면 고성과 통영, 삼천포에서 각각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지도를 보니 거리상 고성 용암포가 가장 빠른 길이다. 한두 사람씩 개별적으로 간다는 언제든 배를 탈 수

있겠지만 30-40명이 넘는 단체 승선은 예약을 해야만 하기에 첫배를 잡지 못한 우리는 일주일 뒤인 오늘에야

비로서 사량도에 발을 디딘다. 덕분에 도로를 따라 가득 메운 왕벚꽃과 산을 가득 채운 진달래를 원없이 본다.

 

잠깐 사이에 밝아진 해안 풍경

경남 고성군 용암포에서 사량도로 가는 배 위에서 보는 해변의 모습

 

 

사량도를 반 바퀴 돌아 금평항으로 가는 길에 보는 옥녀봉, 가마봉, 향봉 일원으로 전에 없던 구름다리가 설치돼 등산로가 안전해지고 시간은 단축된다  

맨 우측이 사량도 최고봉인 불모산(달바위)이다

 

금평항에 하선하여 싣고온 버스를 타고 돈지항까지 이동해 산행을 시작한다. 폐교된 돈지초교에 서 있는 고목의 자태가 훌륭하다.

나뭇잎 무성하다면 더 멋지겠지만 그 시기에 다시 오면 온 산을  가득 채운 진달래꽃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가까이서 처음 대면하는 지리산 암봉은 밭고랑을 간듯 골이 져있는 특이한 형상이다

돈지항

 

 

산을 타는 동안 바위틈에 핀 진달래꽃을 볼 수 있었고 하산길에 벚꽃의 낙화를 온몸으로 맞던 3년 전 4월의 사량도를 생각하며 이번엔

옆지기를 끌고 나섰다. 매번 지방산행을 나설 때 마다 싫은 내색 없이 도시락을 준비해주고 새벽이든 심야든 불구하고 버스 탑승지까지

군말없이 태워준 그간의 은공을 어찌 하루 동행으로 갚겠냐마는 이 봄에 사량도에서 같은 추억 하나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진작에 닉을 "목우"로 지은 옆지기는 아직 회원가입하지 않아 즐풍1으로 산행 신청했다. 요즘 정치적 의미로 더 많이 쓰이는 즐풍목우를

절반씩 나눈 것으로 "바람결에 머리를 빗고, 빗물로 목욕을 하면서도 산행을 꾸준히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 목우님이 근사하게 찍은 내 사진이다

사량도 지리산은 산행하는 동안 좌우로 푸른 바다가 펼쳐져 산행하는 내내 탁 트인 가슴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산이다

 

뻐꾸기 한 번 울면 진달래가 피어나고, 또 한번 울면 버들잎이 피어났다. 그 새 소리에 눈짓하며 꽃들이 진다. (혼불의 일부)

일산 근교에 강화 고려산이나 김포 가현산, 부천 원미산의 진달래가 유명하지만 이곳 사량도 지리산의 진달래는 유독 때깔이 진하고 곱다.

진달래꽃은 아름다워도 이삼일 지나면 벌써 색깔이 빠지는데 이곳 지리산 진달래는 오늘 아침에 만개한듯 진한 색상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고운 모습이다.

 

 

암봉과 어울려 핀 진달래는 그야말로 천상화원이니 산행 내내 피로를 쫒는 비타민이다  

 

좀 전의 작은 암봉을 타고 오르면 갑자기 3-4m의 수직 암봉을 만난다.

절벽은 높지 않아도 수직이라 대부분 산객들은 돌아가지만 전에도 한 번 타 본 경험이 있어 목우와 함께 내려온다.

 

여기서 보면 육지의 지리산이 보인다 하여 지리망(望)산이라 한다. 날은 맑지만 산행에 급하다 보니 지리산을 찾아 살펴볼 여유도 없다.

다시한번 보는 좀 전의 암봉

바위에 각자의 소망 하나씩 얹고 간 모습에 신기가 서린다  

 

지리망산의 가을 단풍은 어떤지 몰라도 오늘같이 진달래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긴 쉽지 않겠다.

원래 지난 주 토요일에 사량도가 예정 돼 있었지만 아침 첫 배편을 구하지 못 해 오늘로 연기 되었다고 한다.

지난주엔 나도 다른 일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겠지만 일주일 연기되는 바람에 이런 비경을 보는 행운을 누린다.

 

 

 

   "목우"는 등산을 멀리하던 습관으로 지난 주 치악산 비로봉을 다녀온 후 3-4일 다리가 아파 혼났다더니 오늘 사량도에서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치악산의 1/3밖에 안 되니 이 정도 산행은 견딜 수 있겠지만 후미로 쳐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바다엔 사각 형태의 여러 어장들이 보인다. 내 해산물에 대한 상식이 없으니 뭐를 양식하는 지 몰라도 저런 청정해안이라면 수확물도 특급이겠다

 

오늘 산행코스 중 최고봉인 달바위

 

달바위를 지나면 지나 온 거리보다 가야할 거리가 짧으니 한결 숨통이 트이지만

산행 경력이 별로 없는 목우는 배 타는 시각을 맞추기 위해 더딘 발걸음 재촉한다고 여전히 힘들어 한다

 

 

 

산행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더 없이 청명하던 날씨도 정오를 지나면서부터 점점 날씨가 흐려져 시야가 좁아지는 게 아쉽다

 

이 바위 아래로 내려가는 게 마땅치 않은 지 잠시 쉬며 숨 고르기를 하는 산객들  

아마도 저 높은 암봉이 지리망산의 최고봉인 달바위렸다

 

갑자기 날씨가 흐리니 사진은 흐려지고 계단을 밟고 내려서는 다리의 피로도 높아진다

 

전엔 로프에 의지하다 보니 정체구간의 하나였지만 이젠 계단이 설치돼 보다 빠르고 편해졌다. 계단이 설치되지 않은 곳은 바위를 딛기 쉽게 파낸 곳이다.

 

 

 

지금 사량도와 하도를 연결시키는 다리 공사가 완공되면 어느 면에서는 지리망산 보다 더 아름답다는 하도의 칠현산을

연계하는 산행이 가능할 날도 멀지 않다. 그러자면 귀로가 너댓 시간 더 길어질테니 만만치 않은 여정이 되겠다. 

 

이곳은 전에 흔들거리던 사다리가 설치됐던 곳이지만 이젠 튼튼한 철사다리가 설치되었으나 너무 가팔라 여전히 정체구간이다.

400m의 낮은 산이라고 만만히 보고 왔던 산객들은 산행이 고되다 보니 나무막대 하나씩 구해 지팡이 삼아 이곳까지 와서는

이 사다리를 내려서기 전에 거추장스러운 나무막대를 버린 게 거짓말 좀 보태 트럭 한 대 분량이다.

왼쪽으로 우회로가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도 빠른 코스를 선택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우회로가 정답이다.

 

전엔 이곳을 어려게 올라가던지 우회를 해야했지만 지금은 구름다리가 설치돼 한결 편하고 안전해졌다

 

화각이 넓다면 더 좋았을 것을, 저렴한 카메라의 한계다  

얼추 다 내려온 거 같지만 아직 저 봉우리를 지나 옥녀봉을 찍어야 마지막 하산길이다

지나온 구름다리

드디오 오늘 마지막 관문인 옥녀봉, 옥녀봉에 대한 설화가 흥미진진 하지만 생략...

옥녀봉 하산길

 

오전엔 쾌청하던 날씨가 정오를 지나면서부터 어둑어둑 해지더니 산행을 마치고 삼천포항을 지나 남해항에서 늦은 점심을 먹을 때

갑자기 비가 쏫아진다. 어제 일기예보에서 오후엔 비가 예보되었으나 산행을 시작하면서 날씨가 너무 쾌청하여 그 예보를 의심했었다.

예보를 믿고 배낭에 우비 하나씩 넣긴 했으나 빠른 산행으로 비를 비킬 수 있어 다행이다. 다만 우리가 하산할 때 산행을 시작하던

사람들은 비를 쫄딱 맞아가며 위험스럼 산행을 했는지, 아니면 눈물을 머금고 하산을 했을지 궁금하다.

3년만에 목우와 함께 하여 더욱 즐거운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