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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등등/등산 관련

당신의 산행은 안녕하십니까?

by 즐풍 2013. 12. 20.

 

운무에 잠긴 설악산 공룡능선

 

 

2009년 하반기부터 시작한 산행은 그간 참 많은 등산으로 이어졌다. 2010년과 2011년은 각각 95회의 산행을 했으니 어느 한 해만 놓고 보더

라도 웬만한 사람들이 평생토록 할 산행보다 많이 한 셈이다. 보통 삼일, 세달, 삼년주기만 넘긴다면 영속성을 이어간다고 하니 만 4년이 지난

지금은 등산이 생활화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건강유지를 위해 시작한 산행 덕분에 이제 신체나이는 40대 후반으로 나오니 일견 성공한 듯

보이기도 한다.

 

 부천 원미산 진달래 동산

 

 

하지만 이 시점에서 그간의 산행에 대한 공과를 짚어보자.

먼저, 그동안 구매한 등산용품에 대한 검토부터 해본다. 배낭만 하더라도 아내꺼 한 개를 비롯해 여섯 개나 되고, 등산화도 릿지화와 여름용

까지 포함한다면 예닐곱 켤레나 된다. 그러다 보니 몸에 맞는 배낭이나 등산화만 선호하게 되어 나머지는 굴러다니니 잘못 선택한 제품과 비

용 지출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 것에 더하여 이제 큰 아이까지 가끔 산행에 동반하니 비용은 더 증가될 수밖에 없다.

 

 북한산 보현봉

 

 

어디 그뿐인가?

클립온이 장착된 두 개의 선글라스와 한 개의 안경 분실에 따른 과도한 지출, 그 외에 필요하다고 필요하다고 구입하긴 했지만 별 쓸모없는

물건까지 수없이 많다. 등산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등산용품이란 게 우습게 보여도 가격 거품이 너무 많아 비용지급이 만만치 않다. 여름철

등산복이 아니라면 방한, 방풍기능이 있는 고어텍스는 기본으로 장착되어야 하니 고기능을 빙자한 고가의류인 셈이다. 나야 남자니 등산패션

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아 후줄근하고 나뭇가지에 걸려 빵구가 난 옷을 입고 다녀도 상관없지만 여자들은 등산복도 패션이라 시선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그 심리를 이용한 게 몇 년전 어느 등산복 카피다. "신경써라, 산에도 시선이 있다"

 

가야산 만물상 입구

 

 

산행을 시작하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명산탐방에 대한 욕심이 많다. 국립공원, 도립공원은 물론 소위 말하는 100대명산, 200대명산 등 도처에

명산이 즐비하니 어느 산 하나라도 탐나지 않는 산이 없다. 등산을 모를 땐 산이 안 보이더니 산행을 시작하고 나자 우리나라에 70%를 차지하

는 산림은 가는 곳마다 명산이다. 백두대간에 정맥, 지맥으로 연결된 산이 온 나라와 지역을 가로지르니 강은 산을 돌아 흐르고, 도로는 산을

비켜나거나 터널을 뚫기도 한다. 이렇게 도처에 명산이 산재하다 보니 아무리 저렴한 산악회를 따라간다 해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

 

 도봉산 신선대 옆 뜀바위

 

 

2013년엔 트레킹을 포함하여 약 47회 정도의 지방산행을 했는데, 매회 산행당 싸게 잡아 평균 2만원씩 계산해도 얼추 1백만원 가까이 된다.

여기에 더하여 도시락과 행동양식은 필수 지참이니 때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많다. 그러니 남들이 볼 땐 전국 유람을 하고 다니는

듯 보이지만 근교산행이 아닌 다음에야 움직일 때마다 돈이다. 가진 것 없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사는 나로선 출혈이 크다.

 

덕풍계곡 용소폭포 앞

 

 

산행 시작 이후 개인생활은 물론 가정생활도 많이 소홀해졌다. 집안 청소나 분리수거 등 가장의 손길이 필요한 소소한 부분도 아내 차지가

될 때가 많으니 나쁜남편이 된지 오래다. 그러고 보니 이 나라에서 결혼한 여자로 산다는 건 남녀불평등을 넘어 원더우먼으로 거듭나야 한

다는 말과 같다. 우리 세대에서 누릴 수 있는 가부장의 권위를 마지막으로 잘도 누리는 것에 더해 선한 아내를 만난 덕분이다. 달라진 것도

있으니 전엔 칼같이 다려입던 셔츠나 바지도 팽개쳐 버리고 후줄근하게 다니니 더 이상 샤프하거나 깔끔한 인상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편하게 사는 장점은 챙긴 셈이다.

 

 함백산 주목나무

 

 

지금까지 지출된 비용으로 따져본 등산이었다면 이젠 등산으로 무얼 얻었는지 살펴보자.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건강한 신체를 얻은 것이다. 동안으로 보이는 것과 신체나이가 젊어졌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비록 등산으로 얼굴에

크고 작은 검버섯이 늘어나도 근력이 튼튼해져 일상생활에 많은 도움이 된다. 쉽게 피로하지 않는 체력은 산행을 끝내고 귀가하는 차량에서

벌써 피로가 회복되는 느낌을 받는다. 산에서 마신 상쾌한 공기와 스트레스 해소 등이 착실하게 몸에 반응했기 때문이다.

 

덕유산 눈꽃설원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땐 서너시간 산행이 고작이었지만 어느 순간 내공이 더해져 이젠 이틀에 걸친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반도 견뎌내고, 밤을

새워가며 20시간 이상을 감내해야 하는 불, 수, 사, 도, 북을 단독으로 종주하고 강남7산 종주도 거뜬히 해냈으니 누구에게도 "난, 산꾼이오." 

하고 말할 단계는 되었다. 설령 산행에 지도를 지참하지 않았어도 능선에 올라서면 대략 어느 쪽으로 길이 뚫리고 가야하는 지 머리에 그려지

는 게 대부분 맞기도 한다. 힘들거나 시간을 줄이려 할 땐 길을 끊거나 거슬어 올라가기도 하니 많은 산행에 눈 뜬 결과다.

 

 황매산 모산재

 

 

고소공포증도 극복했다. 산행을 하지 않았을 때 설악산의 울산바위에 거의 수직으로 설치된 철계단을 오를 땐 정말 다리가 후둘거려 혼났다.

산은커녕 속초에서 미시령고개를 넘어 백담사 입구로 차를 몰고 넘을 때도 가파른 도로가 겁이나 다시는 이 고개를 운전하지 않겠다는 다짐

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북한산과 도봉산, 관악산을 타면서 유난히 많은 바위를 만나며 반드시 넘어보겠다는 오기가 생겨 바위를 타기 시작

했다. 그 결과, 이젠 북한산의 파랑새능선이나 염초봉능선, 웨딩슬랩, 보현봉의 직벽, 관악산의 육봉능선 등 웬만한 암봉은 더 이상 문제가 되

지 않는다. 도리어 암봉만 보면 오르고 싶은 호승심도 생기니 이젠 그 점이 더 문제다.

 

염초봉 피아노바위를 타는 탄지신공

 

 

지근거리에 있는 북한산이나 도봉산에 한정됐던 산행이 산악회를 따라 지방산행을 시작하면서 그간 140여개의 산을 탔다. 가까운 운길산은

적갑산, 예봉산을 연계하게 되니 세 산을 날로 먹은 셈이지만 각각의 고유 명칭이 있으니 당연히 산행경력에 포함된다. 이런 산이 의외로 많

다. 장거리 종주산행이긴 하지만 남양주의 천마산, 철마산, 주금산의 연계산행과 쉬운 산으로 동두천의 천보산, 칠봉산, 해룡산이 그렇다.

하지만 지리산이나 설악산은 그 면적이 워낙 커 이틀간 산을 타도 내내 그 산이 그 산인 경우도 많다. 갔던 산 계절따라 가고 또 가니 몇 번을

간 지방 산도 있어 연계산행으로 숫자를 늘린 것 보다 더 많으니 한두 개 덤으로 들어간들 대수도 아니다. 이렇게 지방산행을 하다 보니 진작

그 지역 도시가 어떤지는 알 수 없어도 어느 산이 어느 지역에 있다는 걸 알 정도니 산에 관한 한 점점 도가 튼다. 

 

백암산 바위 비경

 

 

이러한 산행 결과에 따라 2014년 새해엔 산행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겠다. 앞서 언급한 비용의 문제는 헌옷이라도 빵구날 때까지 주구

장창 입고 다녀 등산용품 지출비용을 줄여야 한다. 지방산행도 가급적 줄이되 국립공원, 도립공원을 포함하는 100대명산 등으로 범위를 제한

하여 장거리 차량 탑승에 따른 피로도 줄이자.

초심으로 돌아가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수락산, 불암산과 관악산, 삼성산 등 근교산을 샅샅이 훓어 전에 보이지 않던 명소와 비경을 찾아볼

예정이다. 산행 고수가 되면 의례 백두대간을 뛰는 거 같다만 막상 시작하면 얽매이게 될테니 백두대간만은 사양하겠다. 자유로운 등산을 추

구하되 언제나 안전산행 우선이다.

 

헌데, 귀하의 산행은 안녕하신지?

 

황매산 철쭉군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