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등산복이 있다. 하지만 돈이 넉넉하지 않아 광고를 때리지 않는, 그럼에도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팔리는 등산복과 등산용품으로
독일산 "사레와"가 있다. 일산사레와산악회 가입 후 몇 번 등산을 따라 다녔지만 그동안 장만한 등산복이 영 떨어질 기미가 없으니 괜히
과소비할 이유도 없고, 새로 구입할 필요가 없기에 미안하지만 그냥 다녔다. 그렇다고 늘상 사레와산악회만 다닌 게 아니라 여기저기
산악회별로 입맛에 맞는 산행을 찾다보니 사레와가 자주 가는 산악회도 아니기에 차량만 이용한 셈이다.
물론 새옷을 산다면 좋겠지만 워낙 길 없는 개척산행을 좋아했던 터라 나무가지에 걸리고 바위에 긁혀 옷에 구멍이 난 경우도 많지만
오히려 그런 옷이 내 화려한 산행 이력을 말해주기에 창피한 적도 없다. 그러다 큰딸과 산행을 동행하면서 딸에게 투자한 구매한 금액이
일정금액을 넘어 소위 말하는 VIP고객에 선정되어 '13.9.7-8일 양일간 울진에서 진행되는 "사레와 팜 투어 캠프"에 초대되었다.
6시 15분에 출발한 버스는 여주휴게소를 지나면서부터 막히기 시작하더니 강릉을 지나 삼척, 울진까지 엉금엉금 기어서 도착한 게
11:30이니 다섯 시간 넘게 걸렸다. 열차라면 이러저리 이동할 공간이라도 있겠지만 꼼작없이 갇혀 휴게소 외에는 움직일 수 없으니
좀이 쑤시고 답답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 정도의 지체도 귀로에 비한다면 착한 이동에 불과했다.
드디어 울진에 도착하여 봉평해수욕장을 앞에 둔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아침을 새벽 다섯 시에 먹고 나왔으니 시장기가 반찬이라고
생선조림이 제법 맛있게 느껴진다. 식사 후 사레와 회장이 운영중인 "Camp Horse"에 도착하여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시범을 보고
승마체험을 한다. 제주에서 사진 찍기용으로 말 안장에 앉아봤지만 이곳에서 처음으로 진지한 교육에 이어 승마를 체험한다.
처음이니 쉽지 않은 데. 이런 말을 몽고인들은 걷기 시작하면 말과 함께 생활하고, 말 여러 필을 함께 몰며 이 말에서 저 말로 옮겨
타기도 할 뿐만 아니라 화살을 쏘고 칼을 휘두르면 전쟁으로 세계를 제패했다.
중국의 고대전쟁사를 보면 대전투에서 몇 십만이 죽었네 어쨌네 하는 전투는 군인이 반에 보급대가 반이다. 중국인은 보급대는 큰
가마솥에 주식과 부식 땔깜과 이를 이동할 마차에 천막 등 보급품이 더 많은 거창한 전쟁이다. 이에 반해 몽고인은 냉동건조하여
부피가 1/10로 줄어든 양고기나 말고기를 보따리에 싸 등에 메고 투구를 벗어 물을 붓고 끓이기만 하면 한 끼 식사가 된다. 자기
보급품은 달랑 보따리와 투구, 칼뿐이니 보급대가 따로 없다. 그리고 말 두세 필로 지칠만 하며 바꿔가며 이동하니 그들은 바람보다
빠르게 적진을 파고들었다. 그러기에 유렵에서 몽고이이 쳐들어왔다는 전갈에 "어딘데?"하고 보니 사람은 없고 말만 보이는 데
그들은 말의 배를 움켜쥐고 적진에 나타나서야 말안장에 옮겨앉으며 칼을 휘둘러 댔으니 누가 이런 세계 최강의 몽고군을 당해낼까?
더우기 유목생활에서 얻어진 다부진 체력에 풍찬노숙을 하니 이부자리나 천막이 있을리 없다. 말이 하루에 가는 거리가 그들이 적을
굴복시키는 거리다. 반면에 농경생활을 한 그들과 적수가 되지 못 해 몽고인이 물이 취약하다는 걸 알고 강화도에서 제주까지 이동하며
참으로 많은 모진 생활을 하면서도 항몽생활을 끈질기게 이어갔다.
사레와 회장이 고향인 울진에 승마장을 짓고 지역주민들에게 승마장을 저렴하게 제공한다니 비용 대비 수익실현이 거의 없는 일종의
사회기부로 시설도 국내 10권 안에 든다니 승마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승마체험을 끝내고 성류굴과 울진장을 체험한다.
첫날 체험치고는 유치원생 소풍나온 기분이랄까? 오랜만에 단체로 이동하는 재미도 있다.
울진 봉평항에서 점심식사 후 잠깐 짬을 내어 보는 봉평항
봉평항 지척에 있는 죽변항
물은 티없이 맑고, 해변을 따라 갈매기가 한가롭게 휴식을 취한다
캠프홀스 관리동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사랑을 갈구하는 표정이 인상적인 석물
야외승마장과 실내승마장 전경
울진에 있는 성류굴의 매표소가 물위에 세워져 인상적으로 보인다
울진 성류굴
성류굴은 1963.5.7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일반에 개방되었다. 1976년부터 울진굴에서 관리하기 시작했으며, 삼국유사에는 장천굴로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500여명의 백성이 이곳으로 피난했는데, 왜군을 동굴의 봉쇄하여 모두 굶어 죽었다는 슬픈 야사를 간직한다.
6.25전쟁 때도 북한군이 입구를 봉쇄하여 또다시 참사를 겪는 슬픈 역사를 갖기에 지역 주민들은 유적지로 생각한다고 한다. 수평으로
발달한 수평동굴로 길이는 약 870m인데, 이중에 약 270m가 개방돼 있다.
성류굴은 큰 돌산이다
성류굴 입구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울진장에 도착했을 땐 어둑어둑해지는 시점이라 막 철수하는 곳도 있다
죽은 체 눈 껌벅이는 어물들
하수를 관리하는 실개천엔 갈대를 전부 베어낸 특이한 광경이 보인다
지금부터는 폭풍의 언덕을 촬영했던 곳이다
담장 너머로 본 죽변항로표지관리소 내부풍경
죽변항에서 저녁을 먹고 하루 일정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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