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라면 의당 읽었을 무협지를 나도 고등학교 때부터 읽기 시작했던 거 같다.
그때의 무협지는 대부분 대만이나 일본의 무협지를 번역한 것으로 일정층의 매니아를 위해 출간은 했겠지만
드러내놓고 판매한다기 보다 만화방에서 빌려보는 정도라 지질도 형편 없었고 내용도 저급한 수준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참이나 잊고 지내던 무협지가 어느날 고려원이란 출판사가 김용作「소설 영웅문」을
위시한 「의천도룡기」,「녹정기」,「천룡팔부」 등의 연작물을 쏟아내자 낙양의 지가를 올리며 하루아침에
무명의 출판사 순위를 상위권에 랭크시키는 기염을 토함은 물론 무협지를 드디어 양서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영웅문과 신문광고 지면, 김용
이때가 86년 아시암 게임 전후였다고 생각하는 데 일주일간 강원도 홍천으로 예비군 동원훈련을 갈 때도
짐 속에 몇 권의 「영웅문」시리즈를 넣고 가 내무반에서 짬짜미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렇게 음지에서 일약 양지로 나온 김용의「소설 영웅문」을 위시한 일련의 시리즈는 마땅히 놀이문화가 없던 당시에
전국민을 영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고 아내 마저도 그 행렬에 동참했을 뿐 아니라 곧이어 나온 비디오 시리즈까지도
섭렵하기도 했는 데, 이는 2000년대 초를 뜨겁게 달궜던 해리포터 시리즈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각종 무협지
그리고 나서 한동안 침잠한 상태로 있다가 간혹 내부망으로 올라오는 무협지를 펼쳐보는 정도였는 데
최근엔 재미있는 「금강부동심법」「삼류무사」에 빠지며 지루하던 시간을 긴장과 흥분으로 몰아넣고 있다.
물론 무협지라는 게 대부분 현실성이 없는 황당무계함이 대부분이지만 주인공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일신의 무술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선악으로 대별되는 정(正)·사(邪)의 대결구도에서 승리한다는 뻔한 내용에
일면 식상할수도 있겠지만 그가 겪는 갈등과 사랑, 부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사실 산행도 이런 무협지와 닮아있기에 오늘 산행은 짧은 산행이었지만 오랜만에 암벽을 타는 산행이라
무협지 형식으로 풀어본다.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도봉산 송추계곡으로 올라가 포대능선을 타고 Y계곡으로 돌아
신선대를 찍고 시계방향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잠깐 타는 고속도로의 통행료가 비싸
그냥 백화사에서 북한산 의상능선 우측에 있는 계곡을 끼고 가사당암문으로 올라가려는 생각으로
둘레길로 접어드는데 근무일이라 탐방객도 없어 한적한 길을 타박타박 걷는다.
계곡으로 오르려던 계획이 적에게 발각되어 의상능선으로 방향을 틀어 오른다
용출봉이나 용혈봉, 증취봉은 등로가 아닌 사면이나 지능선으로 올라가면서 숱한 고생을 해 봤다.
중성문 성벽을 따라 의상봉으로 치고 올라가는 구간엔 간간이 와이어로프도 설치되어 있긴 하나 어느 정도 내공이 필요하다.
그 반대편 남쪽 사면은 슬랩과 암벽으로 이루어져 마땅히 길을 낼 수 없는 구간이라 고도의 릿지 기술이 없으면
처음부터 무리니 오합지졸인 적을 따돌리기엔 안성맞춤이다.
드디어 슬랩과 암벽지대를 통과하려는 데 경사도가 높거나 손을 잡을만한 홀더가 없어 애를 먹는다
간혹 암벽지대로 난 한무더기 흙무덤이나 풀잎을 밟고 지나간 선등자의 흔적이라도 보이면 가는 길이 틀리지 않다는 증거가 되므로 구세주를 만난듯 반갑다
이쪽은 경가가 너무 급해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코스니 다른 통로를 찾아야 한다.
정상을 찾아가는 길이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으니 많은 무공과 내공으로 다져야 겨우 오를 수 있다.
대부분은 이 길을 포기하고 일반적인 루트를 이용한 정상도전에 나서지만 그래도 의상능선을 이용했다면
사회 일각에선 제법 무공을 아는 중수 정도는 쳐 준다.
슬랩을 질러가기에 앞서 혹시라도 실수하여 굴러 떨어지면 최종 종착지가 어디가 될지, 중간에 어디쯤이 낙하지점일지 목측하며 안전지대를 훝어본다
이곳은 자일을 걸지 않고는 오를 수 없는 구역이라 릿지로만 갈 수 있는 루트를 찾아야 한다
적에게 들킨 건지 이 남쪽 사면을 지나는 동안 건너편 군부대에서 소총 쏘는 소리가 이 암벽에 반사되어 확성기처럼 증폭되어 들리고
교관의 사격 통제하는 소리까지도 또렷이 들린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잽싸게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
지금 사진으로 다시 보니 우측 상단 나무가 난 곳으로 올라도 되겠단 생각이 든다
이곳은 경사도 제법 있고 아래까지 거리가 제법 있으나 마땅히 잡을만한 홀더가 없어 발에 신경을 집중하고 스틱으로 바위를 찍으며 체중을 분산한다
한 고비를 넘겨 적당한 곳에서 건너편 용출봉으로 올라가는 지능선을 바라본다
암봉 어디쯤에서 치고 올라가는 데 눈으로 길을 만들며 올라간다.
그런데 암벽의 발 디딜 공간이 너무 적고 위로 올라타기에 도움을 줄 홀더가 없어 몇 번을 시도하다 결국은 포기하고 좀 더 앞으로 나가니
웬걸 이곳으로 겨우 오를 공간이 있다. 하지만 오르는 길도 만만치 않아 위태롭게 바위에 오르고나니 드디어 의상봉이 나타난다.
산행을 시작한지 두 시간만에 겨우 의상봉 정상을 찍으므로써 1차 관문은 무사히 통과했다.
두 번째는 용출봉이니 용이 내뿜는 열기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이겨내야 하는 데, 그 길이야 전에도 많이 다녀봤으니 요령은 충분히 알고 있어
그리 문제될 것도 없다.
마지막 최종 목표는 희미하게 보이는 저 백운봉인데, 이미 100여년 전에 일본에 항거했던 33인의 의로움을 새긴 비문이
바닥에 새겨 진 곳으로 많은 고수들이 저곳을 다녀갔고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무협인의 선망지다.
5.10이 바위엔 착착 달라붙지만 발바닥 밑창이 얇아 좀 걸으면 발바닥이 불이 나는 것처럼 뜨겁고 발목이 없으니 하산시 체중이 실려 발가락이 아프다.
오늘은 캠프라인 로체를 신고 왔으나 5.10에 뒤지지 않을만큼 접지력이 좋은 데다 중등산화라 발목을 단단히 잡아주니 웬만한 암벽에도 견딜만
수준이라 대부분의 산행에 자주 애용한다.
그렇지만 바느질 마감 부분에 다소 문제가 있어 발목을 압박하여 망치로 두두려 숨을 죽인 다음에야 어느 정도 해소했는 데, 이 문제는 아내 등산화까지
세 개째 계속되는 문제점이다. 이 점만 해소된다면 가격 대비 훌륭한 등산화다.
이제 두 번째 관문인 용출봉을 홅어보고 운기조식을 하며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저곳 어디쯤엔 내가 올라온 곳도 있으리라
국가의 안녕을 비는 국녕대찰에 숨은 고승이 많으니 함부로 해선 안 된다
성벽에 도착했지만 성을 지키는 병사가 없으니 숨 죽여 소리없이 지나친다
한 사람만 지키고 있어도 의상능선을 온전히 막을 수 있는 지점인데 오늘따라 초병이 보이지 않는다
지나온 의상능선은 왼쪽으로 보이는 암봉지대를 맨몸으로 타고 넘었다
용출봉도 무사히 탈출하여 용혈봉으로 나가는 지점이다. 용혈봉은 그야말로 용의 혈도가 지나는 곳이니 소리 없이 접근하여 치고 나가야 한다.
듣던대로 용혈봉은 만만치 않은 요새로 치고 올라갈 틈새가 없어 보인다
저곳이 사조 어른이 한 때 이곳에서 수련하며 어느 가을 소슬한 바람이 불며 천지가 붉게 낙엽이 든 풍광이 너무 멋져
"紫明海印臺"란 글귀를 새긴 바위로 오늘 다시 보다니 감개무량이다.
엄지바위 또는 동자승바위라고도 한다
뒤에서 보니 바로 이곳이 용의 혈도가 지나는 용혈이란 생각이 드니 더욱 조심하여 전진해야 한다
무사히 통과한 용출봉이다
용혈
용혈봉 지능선으로 올라오는 불청객을 지킬 강아지 한마리가 저 암봉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자세히 당겨보니 한쪽눈은 윙크를 하고 있구나
등로에 무사가 지키고 있어 이곳 암벽을 릿지를 이용해 겨우 통과한다
용혈봉까지 무사히 통과하고 증취봉에서 나월봉 나한봉을 거쳐 문수봉을 지나야 최종 목적지인 보현봉을 만날 수
있는 데 증취봉의 경계가 너무 삼엄다.
어제 단양에 있는 옥순봉과 구담봉 원정을 갔다와 피곤하기도 하고 날도 너무 더워 다음 기회로 미루고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오솔길이 이용하여 법용사 계곡으로 내려가다 만난 바위 아래쪽엔 네모난 구멍이 있어
들여다 보니 깊지 않은 굴인 데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작은 크기다.
용도가 뭘까?
이곳은 바닥을 평평하게 시멘트를 발랐는 데 체력을 단련하기라도 하는 장소일까?
가물어 계곡의 물은 끊어졌다 생기기를 반복하더니 겨우 흐르는 시늉만 한다
아래 법용사 사찰이 보이는 폭포바위다
도깨비 방망이 같은 나무줄기를 담쟁이 풀이 먹어 삼키고 있다
계곡의 바위엔 돌나물에 꽃이 피어 노란색을 보인다
신선이 놀았다는 칠유암과 계곡탐방로
서암사 복원공사 지점을 지나면서 꽃이 핀 나무를 만나는 데 무슨 꽃인지 나비가 수백 마리 모인 이색적인 모습이다.
위쪽 꽃과 나비색이 비슷해 잘 보이지 않지만 아래쪽 바위에 흰색의 꽃잎처럼 보이는 게 나비다.
이렇게 하여 무협산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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