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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관악·삼성·수락·불암산

눈 올 때 관악산 육봉능선은 너무 위험해

by 즐풍 2023. 12. 25.

2023_217

 

 

 

2023. 12. 20. (수)  08:36~14:15, 5시간 45분 산행, 35분 휴식 및 식사, 9km 이동, 눈 온 후 점차 갬

 

 

밤새 눈이 내리고 새벽부터 날이 맑겠단 일기예보다.

내일 관악산은 영하 13℃까지 떨어진다는데, 오늘 산행할 때  덜 춥다고 해도 영하 7℃로 떨어진다.

겨울 산행이야 어느 때든 춥기 마련이지만 막상 움직이면 견딜만할 테니 현관을 나선다.

육봉능선을 오를 생각으로 과천정부종합청사역에 내렸더니 여전히 눈이 내린다.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잔뜩 낀 채 눈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기상청은 예보보다 중계가 더 정확하겠단 배신감이 든다.

며칠 사이로 간간이 눈이 내린 데다가 밤새 내린 눈까지 더해져 육봉능선으로 바로 오르긴 어렵겠다.

하여 홍촌마애승상이 있는 산불감시초소 능선으로 올라 육봉능선의 3봉과 만날 생각으로 길머리를 잡는다.

 

 

관악산 육봉의 3봉지능선~장군봉능선 코스

 

 

정부종합청사역에서 문원폭포로 가는 길목의 잣나무길 가운데 통로로 즐풍이 처음 발자국을 남긴다.

인도로는 많은 발자국이 보이지만 인도보다는 흙길이 좋기 때문이다.

 

 

홍촌마애승상

 

홍촌마애승상은 북동향의 바위에 스님 얼굴을 조각한 상이다. 5구의 스님 얼굴은 바위 위쪽에 3구,

아래쪽에 2구가 배치되어 있는데 정면상과 측면상으로 구분된다.

가느다란 눈, 오뚝한 코, 반쯤 벌려 웃고 있는 입과 귀가 공통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마애상은 부처님을 새기는 것이 보편적인 경향임에 비해 스님의 얼굴을 소재로 한 것이 독특하다.

홍촌마애승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주변의 마애명문과 흔적들로 보아 최근까지

이곳에서 불공을 드렸던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산불감시초소 아래에 있는 바위는 ㄷ 자 모양으로 특이하다.

 

건너편 육봉능선의 1, 2, 3봉이 눈에 들어온다.

 

바위에 달라붙은 눈은 바람에도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물이 흐르며 언 빙판을 눈이 덮은 곳을 밟았다간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다.

오를 때 그런 자리에 속아 한 번 넘어졌다.

 

 

육봉능선의 3봉 지능선과 접속하는 구간을 오르기가 쉽지 않다.

3봉으로 오르지 않고 4봉 방향으로 가려다 눈이 쌓이고 잡을 공간이 없어 결국 3봉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즈음 눈이 갑자기 펑펑 내려 카메라가 망가지겠단 생각에 배낭에 넣는다.

 

멀리 바라보이는 육봉능선의 암릉미가 돋보인다.

오른쪽부터 4봉에서 육봉 정상까지 한눈에 잡힌다.

 

육봉 국기봉과 5봉

 

5봉과 4봉으로 눈발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꾸역꾸역 떨어진다.

 

 

어렵게 3봉을 옆으로 치고 올라왔다.

1~2봉은 눈길도 제대로 주지 못했고, 평소 다니던 3봉의 직벽도 보지 못한 채 3봉 정상의 소나무를 만났다.

하지만, 3봉에서 4봉으로 진입하는 구간의 바위가 암초처럼 버티며 길을 가로막는다.

이곳에서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4봉으로 들어가는 진입장벽은 너무 높다.

바위가 높은 게 아니라 즐풍의 체구가 너무 작아 바위를 넘을 수 없다. 

돌아가기엔 너무 고생했으니 물러설 수 없고 눈 쌓인 바위를 넘자니 평소보다 더 어렵다.

6봉 전망대에서는 즐풍의 이 바위를 넘을 수 있는지 한 사람이 지켜보기까지 한다.

스틱을 바위 뒤로 넘기고, 바위를 손으로 잡은 후 다리로 온몸을 힘껏 도약시키며 바위에 올랐다.

고생고생해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내려가기도 얼어 죽기도 싫으니 초인적인 힘으로 반응한 것이다.

잘 있거라 삼봉아...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더니 온 힘을 다해 높이 도약한 즐풍은 드디어 육봉을 밟게 되었다.

 

4봉은 우회하며 5봉으로 올라서며 뒤돌아 본다.

 

 

6봉 국기봉에 도착했을 때 즐풍을 지켜보던 등산객이 어떻게 올라왔냐고 묻는다.

산불감시초소 능선으로 올라왔다니까 육봉능선으로 하산할 생각이었는데, 오늘은 포기하겠다고 한다.

바위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힘들고 위험하다.

안전을 위해 잘 생각한 것이다.

관양능선으로 하산하는 구간의 암릉

 

다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먹구름 같던 하늘도 잠깐 하늘이 뚫리며 태극기는 더 세차게 펄럭인다.

 

그렇게나 어렵던 3봉을 넘어서 이렇게 육봉 국기대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다니 감개무량하다.

 

건너편 오봉능선도 눈을 뒤집어쓴 채 한기를 내뿜는다.

 

더 당겨 본 오봉능선

 

팔봉능선의 시원하게 보이는 암릉도 눈이 앉을만한 공간에 방을 튼 흰 눈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이번 겨울 들어 사실상 첫눈산행인 셈이다.

발목이 빠질 만큼 많은 눈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설경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부족함은커녕 좀 전까지만 해도 눈 때문에 무진 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8봉 국기대 

 

멀리 장군봉이 보인다.

3봉을 오를 때까지만 해도 육봉에 오르면 바로 관양능선을 타고 하산할 생각이었다.

막상 사지에서 벗어나자 그런 생각을 까맣게 잊고 비경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관악산에서 가장 양기가 센 불꽃바위다.

몇 달 전 울릉도의 거북바위가 붕괴되었고,

북한산 의상능선에서 사랑받던 강아지바위까지 떨어져 나가는 불상사가 있었다.

다행스럽게 큰 인명사고가 없었다고 한다.

이 불꽃바위는 꽁꽁 언 겨울이 지나도 영원히 온전하기를 바란다.

 

 

 

뒤에서 본 불꽃바위 

 

드디어 장군봉바위로 들어선다.

 

오늘 덕유산으로 가지 못해 섭섭하다는 이분은 사진을 찍으려니 비켜주려고 한다.

즐풍은 사람이 들어가야 바위의 크기도 가늠되고 풍경이 더 멋지게 나온다니까 부담 없이 바위로 이동한다.

 

장군봉 아래쪽 소나무와 공터가 날 좋을 땐 환상의 쉼터인데. 오늘은 바람만 쌩쌩거리며 몰아친다.

 

장군봉 정상의 또 다른 풍경 

 

오늘은 즐풍이 첫발을 딛는 데가 대부분이다.

순진무구한 이 설경에 발을 딛는다는 게 자연에 흠결을 내는 느낌이다.

 

뒤돌아 본 설경

 

 

 

장군봉을 지나며 우측으로 돌아 장군봉능선으로 하산하며 보는 장군봉 일대의 풍경이다.

 

 

가야 할 장군봉능선의 바위 

 

 

 

정군봉 암릉 

 

이젠 장군봉과 제법 멀어졌다.

건너편 케이블카능선의 새바위는 여기서 보면 바위에 새 한 마리가 앉아있는 모양이다.

 

나무가 없이 맨땅이 드러난 곳은 이렇게 멋진 설경을 보여준다.

 

 

 

어디선가 계곡을 건널 때 아차하는 순간 눈 쌓인 빙판을 건너며 휘청거렸다.

그대로 넘어지면 제법 높은 계곡의 바위로 떨어져 최소 중상 이상인데,

땅을 찍은 스틱을 잡아당기며 위기를 모면했다. 눈길에선 아이젠도 안 통할 때가 있다.

정경백 바위 앞 계곡을 건널 때도 빙판에 눈이 깔려 조심했다.

 

 

예상치 못한 관악산의 설경을 보는 대가는 혹독하리만치 힘든 고난의 산행이었다.

물러설 수 없을 땐 용기가 필요했고, 위험의 순간에서는 스틱과 찰나의 판단력이 살렸다.

눈 내린 겨울산은 어디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늘 살얼음 밟듯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