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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경기 인천

수원 화서공원과 축만제의 가을 정취

by 즐풍 202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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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1. 2. 오전에 탐방

 

 

카메라 다이얼 모드 수리를 위해 분당으로 가는 길목의 경유지인 수원 화서역에 내렸다.

역과 연결된 서호공원은 꽃뫼공원이라고도 불린다.

화서동 華西洞 이름은 수원화성의 서쪽문인 화서문에서 따왔다.

화서동은 수원화성의 화서문부터 성벽을 따라 팔달산 정상을 지나 효원의 문까지 서쪽 일부 지역이다.

이곳은 팔달산과 광교산에서 발원한 실개천이 모여들어 서호천이란 이름으로 흐른다.

정조가 수원화성을 만들 때 서호천에 저수지를 만들어 농사지은 쌀로 군사들의 군량미에 썼다.

이른바 '둔전芚前'으로 국가나 군사용으로 사용할 벼농사를 짓는 땅인 것이다.

이 저수지가 바로 축만제로 그때 사용하던 둔전은 지금 '국립식량과학원'의 중부작물부에서 이 지역에 맞는

쌀을 개량하기 위한 농장을 활용하고 있다.

축만제와 서호공원을 하나로 묶은 이곳은 지역주민의 여가 활용장으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외래종인 대왕참나무도 단풍만큼이나 때깔이 좋아 요즘은 조경수로 인기가 많다.

 

 

 

 

 

디에스컨벤션웨딩홀 진입로의 은행나무에 곱게 단풍이 들었다.

 

서호공원의 국철 1호선 주변엔 메타쉐콰이어 나무가 즐비해 여름엔 이곳으로 걸으면 햇빛을 받을 일이 없다.

 

 

 

 

 

축만제는 수질이 좋은지 청둥오리가 호수를 메우고 있다.

가끔씩 떼 지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 장관이다.

 

 

 

조선시대에 둔전으로 쓰이던 이곳은 이제  '국립식량과학원'의 중부작물부로 활용하고 있다.

 

수확량을 확인하려는 건지 낟알을 벼에서 하나씩 채취해 모으고 있다.

 

축만제 제방의 나무가 멋지다.

 

축만제를 처음 만들 때 심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소나무 군락도 제법 근사하게 잘 자랐다.

 

 

 

 

 

 

수원 축만제 水原 祝萬堤

경기도 기념물 제200호, 지정일:2005.10.17.

 

축제는 1799년 정조 23 화성의 서쪽 여기산 아래 길이 1,246척, 너비 720척이라는 당시로서는 최대 크기로

조성된 저수지다. 이에 앞서 정조는 1795년에 장안문 북쪽에 만석거萬石渠, 1797년에 화산 남쪽의

사도세자 묘역 근처에 만년제堤를 축조했었다.

대규모 수리시설과 둔전 개간이 크게 성공하자 정조는 만석거와 만년제의 3배 규모에 달하는 축제를 조성

하였고, 개간된 둔전에서 얻은 수익은 화성을 수리하는 비용으로 사용하였다.

축만제는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으로서 화성 서쪽에 있어 일명 서호로 불린다.

정조시대의 농업기반시설은 일제강점기 권업모범장, 해방 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과 농촌진흥청 설립으로

이어졌고, 수원은 20세기 농업 중심지가 되었다.

축만제의 가치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 2016년 11월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의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안내문)

축만제 표지석

 

 

수원 항미정 |水原 杭眉亭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98호

 

항미정은 축만제 서호에 있는 정자로 1831년 순조 31 당시 화성유수였던 박기수 1774~1845가 현재의 자리에 

건립하였다. 박기수는 1831년 2월 21일 화성유수에 임명되어 이듬해 1832년 9월 4일 대사헌으로 이임하기까지

11개월간 재임하면서 항미정을 창건하였을 뿐만 아니라, 「화성지華城誌」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항미정이라는 이름은 중국 시인 소파에 "서호는 항주杭州의 미목眉目같다"라고 읊은 데서 이름을 따라지었다고 한다.

항미정의 구조는 남북으로 ㅡ자형 4칸과 전퇴傳退가 있는 건물을 기본구조로 하고, 북쪽 끝에서 서쪽으로 2칸의

공랑公廊을 붙였고, 남쪽 끝에서 동쪽으로 1칸의 마루칸을 내어 달았다.

 

항미정은 1908년 10월 2일 순종황제가 기차를 타고 수원 능행陵行하였을 때, 융건릉 참배 후 서호 임시 정거장에

도착하여 축제 둑길을 지나 항미정에서 차를 마시며 잠시 쉬었던 유서 깊은 정자이기도 하다.

현재의 현판은 건물의 품격에 맞추어 일제강점기 사건을 바탕으로 근당 양택동 선생의 글씨를 받아 2019년 12월

제작하여 현 위치에 걸었다. 항미정은 1986년 4월 8일 수원시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받았으나, 초축(1831년) 시기에

대한 명확한 자료가 있고, 기둥·보와 같은 정자의 주요 구조부가 최초 창건 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역사적,

인물사적, 건축사적, 농업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1년 4월 16일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승격되었다.

                                                                                                        (안내문)

 

 

축만제를 지나갈 때 「국립농업박물관」에 들린 내용을 별도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축만제 입구에는 상류에서 흘러온 모래가 모래톱을 이루며 새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된다.

 

 

 

 

 

 

서호공원으로 내린 단풍과 주변풍경을 감상했다.

조선의 정조 임금이 수원화성을 만들 때 축만제도 함께 만들며 수원 시민에게 서호공원까지 선물했다.

그 선물은 자자손손 대대로 이어질 것이다.

주변의 구축 아파트도 재건축된다고 승인이 났으니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면 숲세권으로 집값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