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_177
2023. 10. 13. 금요일 밤에 탐방
강화산성 남문에서 서문을 거쳐 북문으로 이동할 때 언덕에 제법 불빛이 밝은 한옥이 보인다.
궁금증을 남겨 놓은 채 북문부터 들린 후 동문을 걸쳐 마지막에 들린 곳이 성공회 강화성당이다.
한밤중에 보는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이지만 우리나라 전통의 불교양식을 지은 건물이란 걸 알 수 있다.
당시 천주교 등 서양의 종교가 박해받던 시절이라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전통 양식을 따랐을 것이다.
이곳을 들어온 시각이 21:50 경이라 아무도 없는 공간을 혼자 탐방한다.
소재지 : (23031)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길 27번길 10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大韓聖公會 江華聖堂)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 11월 15일 건립된 동서 길이 10칸, 남북 길이 4칸인 한식 중층건물이다.
이 성당은 서양의 바실리카식 교회건축 공간구성을 따르고 있으나 가구 구조는 한식 목구조와 기와
지붕으로 되어있는 점이 특징이다. 구조와 외관을 한국전통 건축양식에 적응시킴으로써 외래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서쪽에 출입문을 배치하여 서구 형태를 취하면서 전체적으로는 배(船) 모양을 본떠
뱃머리인 서쪽에는 외삼문 및 내삼문과 동종을 배치하고, 중앙에는 성당을 두었다.
후미에는 사제관을 배치하여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며 우리나라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출처_문화재청)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424호
1900년에 한옥으로 지어진 대한성공회 성당이다. 대한성공회의 초대 주교인 고요한(Corfe, C.J.)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강화성당은 서유럽의 바실리카(Basilica) 양식과 동양의 불교사찰양식을 과감하게 조합시켜
건립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교회의 내부공간은 바실리카양식을 따랐고, 외관 및 외부공간은 한식 목구조와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는
불교사찰의 형태를 따랐다. 성당의 전체적인 건물 배치는 서쪽에 출입문을 두어 서구 형태를 취하면서
전체적으로는 배(船) 모양을 본떠 뱃머리인 서쪽에는 외삼문 및 내삼문과 성당종을 배치하고,
중앙에는 성당을 두었다. 후미에는 사제관을 배치하여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며 우리나라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목재는 압록강에서 운반해다가 사용하였으며, 경복궁 공사에 참여했던 대궐 목수가 건축을 맡았다.
입구 계단, 외삼문·내삼문·성당·사제관을 동남향 종축으로 배치한 외부공간의 구성이 불교사찰의
구릉지가람(丘陵地伽藍)과 비슷하며, 성당 앞마당에는 큰 보리수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외삼문, 솟을대문은 팔작지붕으로 담장과 연결되어 있으며, 동쪽 칸에는 초대 사제(司祭)의 묘비가 서 있다.
내삼문은 평대문에 역시 팔작지붕이고, 서쪽 칸은 종각으로 쓰이고 있으며, 성당은 정면 4칸, 측면 10칸의
바실리카식 평면구성이다. 성당 내외부에는 서양식 장식이 거의 없는 순수한 한식목조건축이면서도 교회
기능에 충실한 내부공간을 연출함으로써, 초기 성공회 선교사들의 토착화 의지가 나타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 역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성당건물이다.
(출처_강화군 문화관광)
공원에 있는 이 육각형 기둥은 뭘까?
기독교의 자연스러운 토착화를 위해 성당 건축 디자인부터 동서양의 조화를 꾀한 것으로 보인다.
성당과 함께 지어진 사제관은 1985년 화재로 소실되어 재건축된 건물이라고 한다.
대한성공회의 강화성당의 종은 원래 영국에서 들여온 종이 있었지만 1943년 일본이 강제로 공출해 갔다.
나중에 일본의 성공회에서 이 소식을 듣고 그들의 지원으로 1989년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병 주고 약 준 셈이다.
한자로 쓴 ‘천주성전(天主聖殿)’ 현판과 기둥마다 내걸린 주련도 불교양식이다.
경복궁 중건에 참여한 도편수가 지었다니 역시 보통 솜씨가 아니다.
뗏목으로 운반한 백두산 소나무를 사용했는데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전통방식대로 일일이 끼워 맞춰
만들었다. 밖에서는 2층 구조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까지 탁 트인 개방형 구조라고 한다.
늦은 밤이라 모두 문이 잠겨 밖에서만 본 풍경이다.
이 성당을 지을 때는 경의선 철도가 놓이기 전이라 선교사가 배를 타고 중국에서 넘어오는 가장 빠른 곳이었다.
한양의 길목이었던 이곳에 먼저 성공회가 정착하는 오랜 역사로 인해 이곳은 다른 지역과 달리 기독교 인구
비율이 높다고 한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을 둘러보고 차량을 회수하러 오니 바로 앞에 감화문학과 조경희 기념관이 보인다.
조경희를 검색해 보니 한때 우리나라를 대표적인 여성 수필가였다.
강화문학관이 조경희 기념관이라기에 찾아보니 우리나라 대표적인 수필가였다.
책꽂이에 있는 「한국의 명수필 88선」에서 조경희의 "얼굴"을 찾아내 서비스로 올린다.
이렇게 똑같지 않은 얼굴 중에서 종합적으로 잘생긴 얼굴 못생긴 얼굴을 발견할 수 있는 것과 생김새는 잘생겼던 못생겼 던 인상이 좋고 나쁜 것이 표정의 초점을 이루는 것이다. 첫인상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이지만 자주 만날수록 그 우락부락한 모습은 깨끗이 사라지고 차차 좋아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핏 보아서 첫눈에는 들었는데 두 번 세 번 볼수록 싫어지는 얼굴이 있다. 지금도 내 생김이 퍽 인상이 나쁘지만 일찍이 나는 얼굴이 예쁘지 못해서 비관까지 한 적이 있었다. 여학교 일학년 때라 고 생각된다. 나하고 좋아 지내던 상급생 언니가 나를 통해서 알게 된 나의 친구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일이 생겼다. 나는 한꺼번에 두 가지를 잃어버렸다. 지금까지 언니처럼 믿고 의지해 오던 상급생 언니, 그리고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절친한 친구를 한번에 잃은 섭섭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그때 나는 내 친구가 나보다 뛰어나게 예쁘기 때문에 패배한 것으로 자격지심을 먹고 그 당시 미국에 계신 아버지에게 물으로 "왜 나를 보기 싫게 낳아 주셨느냐?" 는 원망스러운 항의의 글을 보냈다. 그 때 아버지는 나 같은 철부지를 점잖게 상대를 해 주셨던 기억이 새롭다. 회답의 대답이란, 대략 인간은 본시 얼굴이 예쁜 것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마음이 아름다워야 사람 노릇을 한다 고 타이르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얼굴 외양이 예쁘고 미움 문제 때문에 고민하던 나에게 아버지의 하서(下書)가 위로가 될리 만무하였다. 얼굴 외양이 미운 모습은 영원히 가다듬기 어려워도 마음씨란 수양이나 교양으로서 선(善)을 긍지로 삼을 수 있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 었다. 그후 나는 어여쁘지 못한 내 얼굴이지만 별 구애없이 살아오게 되었다. 동무들 중에서 "왜 당신은 그렇게 못났소 ?" 하고 놀려대는 일이 있어도 나는 태연 자약할 수 있는 기품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일찍이 내 애인으로부터 당신은 과실로 치면 배(梨) 같은 사람이오."라는 찬사를 받은 기억이라든지 그 밖에 남 들이 밉다고 하건만 그와는 반대로 나를 귀엽다고 하는 R형 등이 옆에 있어서 마음 놓는 순간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도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주신 훈시가 내 나이 들면서 한층 생활의 신조로 되어졌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외양의 아름다움보다도 마음이 고와야 하느니라는 아버지의 말씀은 다분히 진리와 진실을 품고 있었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봐서 유명한 관상가(觀相家)가 관상(觀相)은 즉 심상(心相)이라는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얼굴의 아름답고 미운 생김새로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쓰기에 달려 운명이 결정된다는 이치이리라 ! 또한 미인 박명 (美人薄命)이라는 말이 있고, 고대 신화(古代神話)에도 얼굴이 예쁘기 때문에 불행했던 이야기들이 많다. 미인 박명이란 어휘는 미인이 되어서 숙명적으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옛날 약탈 결혼 시대에 예쁜 색시가 딴 곳으로 시집을 가게 되면 동리 총각이 붙잡아서 늘씬하게 뚜드려 댄다. 정신이 없어서 쓰러졌을 때 업어다가 장가를 든다. 너무 심하게 맞으면 생명이 위험하기도 하니까 미인 박명이라는 말이 나온 모양인데, 지금에 있어서도 미인 약탈전(掠奪戰)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외양이 예쁜 미인을 전취하기 위해서 급급하는 인사의 수는 많으나 마음이 고운 미인을 찾아 내려고 애쓰는 인사의 수는 극히 적음을 곧잘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호화 찬란하게 포장한 상품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곤란하듯이 최신식으로 '메이크업' 한 얼굴 속에서 누가 진정 좋은 사람인가를 발견하기 힘든 데도 이유가 있으리라. “열길의 물 깊이는 알아도 한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옛말이 있듯이 얼굴 생김새가 둥글고 길고 마르고 살찌고 한 각가지 모습에서 어느 누가 진실한 사람인가를 더욱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캄캄한 어둠만이 있는가 하면 밝은 태양과 광명이 있듯이 천차 만별의 얼굴들 중에서 사랑할 수 있는 얼굴들이 지닌 표정의 색깔이란 막연하나마 좋은 것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마디로 좋은 인간성의 표현일 것이다. 인격이나 교양 지성 등등이라고 해도 좋다. 인간과 동물을 분별할 수 있는 하나 의 진실한 의미의 표지(標識)일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좋아 달라는 말이 아니다. 어떻게 좋아야 한다는 구체성이 발견되고 표시되어야 한다. 원래 사람이 사회와는 별로 관련이 없이 지내게 된다면 홀로 좋은 것으로 시작되고 혼자 좋은 것으로 그치면 된다. 그러나 복잡하고 귀찮은 수속이나마 최고도로 발달된 문명국 사람들이 지키고 애쓰는 질서에 대해서 보조를 아니 맞출 수는 없다. 자비 (慈悲)를 목표로 삼는 종교인의 얼굴에서 무자비한 표정이 장식(裝飾)되었을 때 실망은 크다. 일반의 존경과 흠모(欽募)의 대상이 되어야 할 지도자나 교육가의 얼굴에서 지지 불그러한 야망과 욕심만이 만만한 인상을 느끼게 한다면 깨끗한 물이 흘러나가려는 정을 사심없이 바라보는 버릇을 익혀야 한다. 그 밖에 최소 한도 자기 이름 석자 밑에 집가(家) 자(字)의 글자 한자씩을 덤으로 붙여 부르는 영예를 자랑하려면 우선 얼굴의 표정부터 고처야 한다. 또한 체면이니 철면피니 하는 말에 대한 의식도 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진정 '모나리자의 미소(微笑)'를 아름답게 느끼듯이 아름다운 얼굴 바탕의 아름다운 인품을 느낄 수 있으면 이에 더한 바람은 없을 줄 안다. 미남의 남우 '로버트 테일러'의 미보다는 희(喜), 노(怒), 애(哀), 락(樂)의 곡절이 조화의 미를 가져온 버나드 쇼 옹(翁)의 얼굴에서 인간으로서의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
밤이라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내부를 둘러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검색 결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오래된 성당이다.
다시 강화도에 올 기회가 있다면 옆에 있는 용흥궁과 함께 둘러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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