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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청주박물관 고대~삼국시대의 토기와 금속문화

by 즐풍 2023.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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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1. (일)  오전에 관람

 

 

청주에 오면 늘 상당산성을 들렸다.

그때마다 상당산성 산자락에 있는 국립청주박물관을 들린다는 게 여의치 않았다.

이번엔 자차로 이동하며 쉽게 청주박물관에 들릴 수 있었다.

오후에 직지박물관에 들렸을 때 여성 해설사 님과 대화를 나누며

"충청도에는 공주와 부여, 청주까지 국립박물관이 세 개나 건립된 게 신기하다.

공주나 부여는 백제의 고도이니 백제시대의 유물이 많겠지만 청주는 좀 다르지 않냐"라고 물으니

해설사 님이 청주박물관 개관에 대해 말씀해 주시길,

청주의 유지였던 곽응종 독지가께서 토지 3만 평을 기증하였기에 박물관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곽은종 기증자는 옷 하나도 변변한 게 없을 만큼 평생을 검소하게 사신 분이라고 한다.

청주박물관은 국립부여박물관 구관, 국립진주박물관, 주한미국대산관 등을 설계한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했다.

박물관 건물은 주변 환경을 거스르지 않게 한옥형식으로 나지막한 지붕으로 마감했으나 실내는 넓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며 건축방식이 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국립청주박물관이 개관과 관련한 내용이 궁금하면...     

 

동양일보 신년특집 청주의 미래유산/ 9. 국립청주박물관 - 동양일보

[동양일보 김미나 기자]고등학교 시절, 단체 관광버스를 타고 견학(현장학습)을 갔던 일이 아마 국립청주박물관 첫 방문이었을 것이다. 그 때가 1992년이었으니 국립청주박물관 개관 이후 5년

www.dynews.co.kr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곳곳에 이런 문인석을 비롯해 많은 석재 유물이 보인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나지막한 건물 모습

 

청주박물관 입구

 

국립박물관 어딜 가든 처음 시작은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의 타제석기와 토기의 전시물부터 만나게 된다.

 

 

도구의 등장과 발전-무기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들을 누를 만큼 강한 존재가 아닙니다.

주변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인간을 먹잇감으로 노리는 큰 육식동물도 종종 마주쳤습니다.

이탈리아의 과타리 동굴에서는 하이에나가 사냥한 네안데르탈인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런 위험한 환경에서 인간은 생존 전략을 세워야만 했습니다.

그 전략에 맞추어 슴베찌르개나 화살촉과 같은 다양한 사냥도구, 무기 등이 만들어집니다.

청동기시대에 들어서면 사람과 짐승이 아닌 사람과 사람 간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좋은 무기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가장 발전된 기술로 무기를 만듭니다.

또한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를 병사들과 구별하기 위해 간돌검이나 청동검과 같은 칼이 등장합니다.

칼의 등장은 군사력의 상징이었지만 점차 실용적인 무기로 변해갑니다.  (안내문)

 

 

이런 석기시대에 태어나지 않고 현대에 태어났다는 게 늘 감사하다.

거친 자연과 동물들에게 잡아먹히느냐 마냐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살아있는 내내 직면하게 된다.

그나마 이렇게 돌을 가공하며 점차 생활이 나아지겠지만, 혹한의 겨울을 이겨내기는 어렵다.

이후 전시물 소개는 안내문으로 대신한다.

 

 

5.  간돌검 磨製石劍  Polished Stone Dagger          6.  돌창 石槍  Stone Spearhead 

     청동기시대, 청주 휴암동 등                                        청동기시대, 제천 고암동 등      

 

 

화살촉 石鏃  Stone Arrowhead

청동기시대, 제천 구룡리 등

 

 

금속이 출현하기까지

 

아프리카를 떠난 인류는 유라시아를 건너 한반도 중심의 충청북도에 도착합니다.

위험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도구를 만들고 서로 힘을 모아 살아갑니다.

인류는 주먹도끼로 가죽을 벗기거나 고기를 자르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도구를 더 쉽게 잘 만들기 위해 돌날 기술을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돌날은 점점 더 작아져 휴대할 수 있게 뼈나 나무 사이에 끼워 넣을 수 있는 도구로 발전합니다.

1만 2000년 전 기후가 온난해지면서 사람들은 식물 자원과 바다 자원에 눈을 돌리며 신석기시대가 열립니다.

토기를 만들고 계절에 따라 이동 생활을 합니다.

조, 피, 수수와 같은 작물을 키우는 초보적인 농경을 시작했습니다. 수확량은 많지 않았습니다.

바닷가에서 조개류를 주로 먹고 지내 조개무지가 만들어집니다.

충청북도 지역에서도 조개껍데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시 사람들이 멀리 이동하고 폭넓게 물건을 교환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15세기경 벼농사를 중심으로 농경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전의 수렵 채집 경제에 맞춘 이동 생활이 일 년 동안의 먹거리를 한 번에 얻는 농경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바뀐다.

그래서 한 곳에 정착하고 수확한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를 만들고 먹거리를 지키려고 전쟁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중재자가 나오고, 권력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권력자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 청동기 같은 것들을 만들고 소유합니다.  (안내문)

 

 

쇠투겁창 鐵鉾 

마한, 창주 정중리 등

 

 

갈돌과 갈판 碾石棒, 碾石 Saddle Quern(Handstone and Lower Grindstone)

청동기시대, 청주 내곡동

 

 

반달돌칼 半月形石刀  Semilunar Stone Knife

청동기시대, 청주 학소리, 봉명동 등

 

 

홈자귀 有溝石斧 Stone Adze                      돌끌 石鑿 Stone Chisel

청동기시대, 청주 봉명동 등                        신석기• 청동시대, 청주 쌍청리 등

 

 

 

 

도구의 등장과 발전-공구 비실용적 도구

 

먹거리는 항상 인류의 숙제였습니다. 맛있고 좋은 먹거리를 얻기 위해 사냥과 채집을 하며 살았습니다.

사냥을 잘하기 위해 더 날카로운 도구를 만들고 채집에서 농경으로 삶의 방식이 바뀌면서 더욱 다양한

도구들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도구들은 다양한 재질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땅을 파는 괭이는 무디게 만들지만 나무를 베는 도끼는 더 날카롭게 제작합니다.

재료의 발전은 더 많은 수확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실용성이 중요한 공구나 농구는 청동기와 같은 귀한 재료로 만들기 쉽지 않아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반면에 신분이나 재력을 나타내는 꾸미개 등은 귀한 옥이나 청동으로 만드는 차이가 있습니다.

결국 형태와 재질, 쓰임새로 도구가 가진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도끼를 만들었으나 아직 자루를 홈을 만드는 기술이 없어서 그저 나무토막에 끈으로 묶어 사용할 수밖에 없다.

 

밭을 가는 보습과 땅을 파는 삽이다.

 

청동기시대의 토기와 철제품

 

말에 쓰는 철기제품

 

 

 

동경

 

 

거울(후한경, 당경) 銅鏡(後漢鏡, 唐鏡) Bronze mirrors

삼한~통일신라 이건희 컬렉션

 

 

 

 

 

 

이건희 수집품, 거울(전한경, 삼한경) 銅鏡(前漢鏡,三韓鏡) Bronze mirrors

삼한시대

 

 

동관 (銅冠)

신라시대. 높이 26.5cm

 

관테 위로는 앞쪽과 뒤쪽 그리고 양 옆 모두 네 곳에 ‘출(出)’자 모양의 세움 장식을 붙였다.

세움 장식은 모를 죽인 긴 네모꼴의 동판에 동그란 구멍을 세로방향으로 이어서 뚫었고 달개장식을 달았다.

이 동관은 투박하고 달개장식이 드문드문 달려 있는 점 등에서 신라관의 형식이 단순화되었음을 보여 준다.

6세기 중반~7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신라 관의 변화 과정과 당시 신라가 남한강 일대를 점유하였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안내문)

 

 

판갑옷 板甲 Plate Armor

백제시대,  음성 망이산성

 

이 갑옷은 철판을 엮어 만든 판갑板甲이다.

가슴 부분 3단, 복부 4단 등 총 7단으로 엮었으며, 한쪽 측면에는 열고 닫을 수 있도록 개폐장치를 만들었다.

각 판은 못을 박아 고정시켰다.

어깨와 옆구리 부분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었는데,

이는 판갑 형태의 갑옷이 신축성이 없기 때문에 착용 후 끈을 매는 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시대 갑옷의 원형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안내문)

 

위 판갑옷은 충북 음성의 망이산성에서 발굴된 것이다.

같은 철갑옷이 용인의 경기도박물관에도 전시되어 있는데, 두 군데 중 한 곳은 복제품일 것이다.

서양 전쟁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갑옷이 부러웠는데, 우리나라도 갑옷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굽다리접시 (有蓋高杯) 

신라시대, 충주시 중앙탑면 루암리

 

뚜껑이 있는 굽다리접시로, 회청색을 띠며 모래가 섞인 점토로 만든 단단한 토기이다.

굽다리접시는 굽이 나팔모양으로 네모난 구멍이 세 곳에 뚫려 있다. 뚜껑은 단추모양의 손잡이가 달려 있다.

                                                                                                             (안내문)

 

 

“王” 명 청동 방울 王銘銅鐸 Bronze Bell with the Inscription of "King"

 

마한시대, 청주 송절동 청동, Bronze

이 방을 몸체에는 '왕王'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데, 당시 이것을 사용하던 사람의 신분을 나타낸다고 한다.

아마도 왕이 타던 수레나 말 등을 장식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방을 중에는 '대길大吉'과 같이 좋은 의미를 가진 글자가 있는 것이 확인된다. (안내문)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  青鋼虎形伊鈞 Bronze Tiger-shaped Buckle

마한시대, 청주 봉산리, 정중리 등 출토

 

충청북도에서는 말모양 허리띠고리가 주로 출토되었는데,

특이하게도 오송유적에서는 호랑이를 형상화한 것도 출토되었다.

동물모양 허리띠고리는 신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진한의 영향으로 나타난 것이다.

꼬리에 새끼 호랑이를 태운 듯한 오송유적에서 발굴된 것이 유일하다.  (안내문)

 

 

방울 金銅鈴 Gilt-bronze Bell

통일신라, 이건희 수집품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건 이건희 컬렉션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도 이건희 컬렉션을 몇 점 봤다.

일제 강점기 때는 간송 전형필이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국보급 유물을 수집하는 공을 세웠고,

현대에 들어서서는 재력을 앞세운 삼성가에서 많은 유물을 구입하여 국가에 헌납하며 이바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