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2. (목) 오후에 관람
한양도성을 순성 할 때 성벽은 도로가 지나며 끊기는 구간이 제법 많다.
혜화동 전시·안내센터는 한양도성이 끊긴 지점에 도로가 생기며 일제 강점기에 지은 건물이다.
돈 많은 일본인이 성곽 일부를 헐며 교통 요지에 집을 지은 것이다.
해방이 되자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며, 대법원장 공관을 거쳐 서울시장 공관까지 주체가 변경되기도 했다.
서울시장 공관으로 쓰일 때 비가 새자 헐어내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결국 존치되었다.
전시실은 크게 4개로 나누어졌다.
1층의 제1전시실에 한양도성과 혜화문 관련 자료가 전시된다.
2층에는 제2전시실의 한양도성과 도시경관, 제3전시실의 시장공관과 역대 시장,
제4전시실의 혜화동 27-1 번지의 역사, 제5전시실에는 대한뉴스로 본 서울시장 공관의 문화행사가 소개되고 있다.
2층부터 올라가 전시실을 둘러본 뒤 1층의 한양도성과 혜화문 관련자료를 관람했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27-1
혜화동 옛 시장공관 惠化洞 旧 首尔长公馆 恵化洞
1941년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2016년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 • 안내 센터>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이곳 혜화동 27-1번지 (창경궁로 35길 63)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들과 함께 하였다.
원래 개인 소유의 주택이었던 이 건물은 해방 이후 대법원장 공관을 거쳐 서울시장 공관으로 사용되었다.
한양도성의 성곽을 담장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여러 차례 철거 논란이 있었으나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하기로 결정되었다.
지금은 한양도성 순성길의 쉼터이자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This house was built in 1941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It owes its structure partly to the destruction of Hanyangdoseong.
After liberation, the building was used as the official residence of the chief justice of the Supreme Court
and from 1981 to 2013 as the residence of the mayor of Seoul.
Because Hanyangdoseong is a part of the building, there was debate on whether it should be demolished
to preserve Hanyangdoseong, but it was finally decided that the house would be preserved in recognition of
its historical value and recreated as a place for Seoul citizens and a rest place on the walking tour along the city wall.
该建筑于1941年日帝抢占期建成, 因该楼把汉阳都城城墙作为院墙, 有损汉阳都城之原貌。
解放后, 该楼被用作大法院长公馆. 自1981年至2013年被用作首尔市长公馆。
后来为保全汉阳都城的原貌, 几乎被拆除, 几经波折, 最终作为汉阳都城巡城路的歇息之地及市民空间的面貌
重新登上历史舞台。
1941 -1959 개인 주택
1899년 서대문에서 청량리를 연결하는 최초의 대중교통수단인 전차가 부설되었다.
한인 주거지를 중심으로 건설되었던 전차가 일제가 강점한 후에는 일본인 주거지를 중심으로 부설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이후 서울 인구가 급증하고 주거지가 외곽으로 확장되면서 전차와 버스는 서울의 대표적인 대중교통
수단이 되었다.
이때 한인의 주거지가 혜화동 너머로 확장되었는데, 일본인들이 북촌으로 진출하면서 혜화동에도 몰리기 시작하였다.
혜화동은 북촌에서는 드물게 문화 주택이 몰려 있던 곳이었다.
문화주택은 서양식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주택이었다.
남자를 위한 응접실, 여자를 위한 입식부엌과 뾰족 지봉을 특징으로 하는 주택에서 한인은 온들에,
일본인은 다다미방에 살았다.
혜화동 옛 시장공관은 영화 제작자였던 일본인 다나카 사부로가 지었다.
현관 입구에 응접실이 있는 문화 주택이지만 내부에는 도코노마가 있던 집이다.
이 집은 성곽 위에 지어졌는데, 이는 1907년에 성곽이 해체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해방 후 소유주가 변경된 후 1959년 대법원장 공관으로 사용되기 전까지 3명의 개인 거주자가 이 집을 거쳐 갔다.
글. 안장모
1941 ~ 1945 다나카 사부로: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사장
1945 ~ 1955 하준석: 중추원 참의
1955 ~ 1957 손원일: 독립운동가, 초대 해군참모충장, 제5대 국방부장관
1957 ~ 1959 한석진: 기업가
1941 ~ 1945 Tanaka Saburo, president of the Joseon Film Production Company
1945 ~ 1955 Ha Jun-seok, a member of the Advisory Council under the Government-General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1955 ~ 1957 Son Won-il, independence fighter, ist Chief of Naval Operations, 5th Minister of Defense
1957 ~ 1959 Han Seok-jin, businessman
1959 - 1979 대법원장 공관
1959년 이후 이 건물은 개인 소유의 주택에서 나라의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거주지인 공관이 되었다.
1979년까지 대법원장 공관으로 사용되면서, 3~4대 대법원장 조진만 판사와 5~6대 대법원장을 역임한
민복기 판사가 거주하였다.
이곳에서는 혁명재판 판결문의 초고가 작성되었으며, 1971년 검찰과 법원의 갈등으로 불거진 제1차 사법 파동이
타결된 장소이기도 하다.
입구에 들어서서 1층 서쪽에 위치한 공간이 당시 '판결문 작성실'로 사용된 방이다.
1959.8.7 대법원으로 소유권 이전
1961~1968 3~4대 조진만 대법원장
1968~1979 5~6대 민복기 대법원장
1981~2013 서울시장 공관
1981년에 대법원장 공관은 서울시장 공관으로 전환되었다.
제18대 박영수 시장부터 2013년 제35대 박원순 시장까지 33년 동안 총 13명의 서울시장이 혜화동 시장 공관에
거주하였는데, 더러는 재임기간 중 이곳에 거주하지 않았던 시장들도 있었다.
대개 시장 공관의 1층은 공직 업무를 위한 회의실과 응접실로, 2층은 가족과 생활하는 사적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In 1981, this house was made the official residence of the Seoul mayors.
Thirteen mayors lived here over thirty-three years. Some mayors did not live here during their terms of office.
The first floor was used as a meeting room for official work and a living room,
and the second floor was used as private quarters.
1979 서울특별시로 소유권 이전
1981 ~ 2013 서울시장 거주
1979 Ownership transferred to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1981 ~ 2013 Resided by mayors of Seoul. (안내문)
1991 - 2010 건물의 보수 및 증축
1991년에 노후화된 시설을 정비하고 공관의 쓰임에 맞춘 대대적인 수리가 진행되었다.
인수인계 등으로 비어 있는 동안에는 집 주변의 수목이 밀림처럼 우거져 입주를 거리는 시장들도 있었다.
서울시장 공관으로 사용되는 동안 크게 총 세 차례에 걸쳐 개 • 보수 및 증축이 진행되었고,
오세훈 시장거주 당시에는 지봉에서 비가 새기도 하였다.
한양도성 성벽의 하부 구조 위에 지어진 건물의 일부는 철거되었다.
1991 노후화 부분 수리 및 주요. 기능 삽입
1995 주요 행사를 위한 공간 증축
2010 지붕 보수
2013 성벽 하부 구조 위에 지어진 건물 일부 철거
1991 House renovated and important function added
1995 Space for important events extended
2010 Roof repaired
2013 Part of building standing on understructure of city wall removed
2007- 2014 시장공관 존치 논란과 임시개방
한양도성 복원사업 과정에서 성곽을 담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시장공관 건물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몇 차례 진행되었다.
2012년에 마련된 '한양도성 보존관리활용 마스터플랜'은 한양도성의 재현이나 복원이 아닌 원형 존중과 보존에
초점을 두고 있어 시장 공관을 존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013년 발굴 조사를 통해 시장공관이 성과의 하구 구조를 침범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면서 한양도성이 품고 있는
다양한 시간의 흔적 중 하나로 이 집을 보존하되, 시민을 위한 개방된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최종 결정되었다.
2013년 12월 13일 시장 공관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고,
2014년에 건물의 역사와 역대 서울시장의 시정 팔동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임시개방 하였다.
2007, 2011, 2012 시장공관 이전 요청(문화재청)
2009 한양도성(시장 공관 구간) 보수·복원 설계 완료(서울시)
2012 설계 승인(문화재청)
한양도성 보존관리활용 마스터플랜을 통해 시장공관 건물의 존치 계기가 됨
2013 한양도성 발굴과 전시관 조성을 위해 시장공관 이전
2014 시장공관 임시 개방
2014.7 사적분과 제8회 문화재위원회 검토에서 확대 발굴 조사가 결정됨
2014.8 확대 발굴 조사에서 성벽 뒤채움 범위 및 건물과의 저축 여부 확인 결과 건물과의 저촉은 미비한 것으로 판단됨
성벽 뒤채움 영역 위의 건물은 부분 철거 조치함
2016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 센터 개방 (안내문)
서울시장의 공관
혜화동 옛 시장공관은 다양한 서울시의 정책이 논의되는 일터이자, 서울시장이 하루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집이었다.
공관은 국내외의 손님이 초대되는 행사장이었고, 동네의 일원으로서 반상회를 개최하거나 새해에 떡국을 나누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텃밭을 가꾸고 평상에 누워 한숨을 돌리는 일상의 공간이었다.
1981년부터 2013년까지 13명의 역대 서울 시장이 거주하였으며 이곳에서 논의된 다양한 정책들은 서울시의 역사이자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되었다.
This old house was the home of the mayors of Seoul.
It also served as the workplace where policy of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was discussed.
Policy issues discussed here became part of the history of Seoul and modern Korea. (안내문)
이원종 시장이 도쿄에서 열린 세계수도시장회의에서 베세토(BESETO) 벨트를 제기한 후
베이징 시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년 기념 종이칼. 시장 재임기간 중 사용했던 안경과 안경집, 만보계, 만년필 (안내문)
이원종 시장이 베이징 시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세발 솥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구한 야구용품
제35대 박원순 시장
혜화동 시장공관 거주 당시 마당을 거닐며 즐겨 신었던 고무신
The rubber shoes Mayor Park Won-soon loved to wear when strolling through the courtyard when he lived
at the official residence in Hyehwa-dong (안내문)
조순 시장의 인터뷰 화면
제22대. 31대 고건 시장
집무실 책상 유리 밑에 항상 끼워두었던 (지하철 노선망도〉와 경신년(2000년) 7월부터
신묘년(20.1년) 12월까지 사용한 업무 일정표
"Subway Map" always kept under glass on the desk in the mayor's office
Work schedule notebooks used from July 2000 to December 20 (안내문)
시장공관에서 열린 다양한 행사에 사용됐던 식기들
Tableware used for various events held at the official residence of the Seoul mayors (안내문)
한양도성은 전쟁을 목적으로 산 위에 쌓은 요새가 아니라 조선왕조를 상징하고 수도 한성부의 도시 공간을
관리하기 위하여 쌓은 도시 성곽이다.
왕조의 중심인 궁궐과 종묘를 보호하고 도시의 안과 밖을 엄격히 구별하면서 사산(四山)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영조는 1751년 (영조 27)에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금송(禁松), 준천(濬川), 수성(守城)으로 이어지는 도시 관리
정책을 담아 「어제수성윤음」을 반포하였다.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사산의 숲, 도시의 물길, 도성의 방어가 한 몸같이 긴밀한 관계임을 인식하면서
이제까지 '왕의 공간'으로 여겼던 수도를 사민(士民)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선언하였다.
아울러 한양도성을 세 구간으로 나누고 도성의 방어와 관리를 맡은 훈련도감, 금위영과 어영청의 삼군문에서
관리하도록 <도성삼군문분계지도>에 표시하였다. 글. 송인호
Hanyangdoseong was built along the boundaries of Hanyang, the capital of the Joseon Dynasty.
The wall follows the ridges of four mountains surrounding Seoul.
King Yeongjo(1724-1776) published a book about the urban management policy of Hanyang in 1751 in which
he put forth directives that the city wall be protected, the river be dredged, and trees on mountains be left standing.
The city had long been space for the royal family, but King Yeongjo declared that it was to be shared with his people,
in recognition that the city and the surrounding natural environment were closely related, like a single body.
(안내문)
태조 이성계는 1394년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2년 후인 1396년(태조 5)부터 2년여 동안 강원, 경상, 전라,
서북면, 동북면의 백성 197,400여 명을 동원하여 도성을 쌓게 하였다.
처음 완성되었을 때 평지는 흙으로, 산지는 돌로 쌓았으나 1422년(세종 4)에 토성(土城)을 모두 석성(石城k)으로
고쳐 쌓았다.
세종은 성곽을 구간으로 나누어 축성과 이후 보수의 책임을 명확히 하였다.
1704년(숙종 30)에 임진왜란으로 인해 파괴된 도성의 대대적인 보수가 진행되었고,
백성이 아닌 도성의 군영이었던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이 담당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정비되었다.
한양도성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1396~ 1910) 동안 도성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King Taejo (1392~1398) built walls surrounding the capital over a period of two years starting in 1396.
A total of 197,400 people were mobilized from every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for the task.
Afterwards, repairs and reconstruction work were done several times during the Joseon Dynasty,
allowing us to observe different sizes of stones and construction methods used through the ages.
Hanyangdoseong served its original purpose longer than any other such wall in the world. (안내문)
서울 한양도성과 혜화동·전시안내센터는 전시된 내용을 안내문 내용과 함께 올리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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