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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평택박물관 조성을 위한「기증유물 전시회」관람

by 즐풍 2023.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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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9. 12. (화) 오전에 관람

 

 

평택으로 이사 온 지 3년이 다 되어 가도 팽택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평택 8경을 검색해 봐도 눈에 띄는 건 별로 없다.

평택 박물관으로 검색하니 평택시 박물관 조성을 위해 기증받은 물품을 전시한다는 뉴스가 보인다.

어제 개관한 날이니 북적거림을 피해 오늘 둘러보기로 한다.

 

이발부터 하고 전시실에 들어가니 여직원 한 명만 지키는데, 관람을 끝낼 때까지 아무도 없다.

끝날 때 즈음 들어오신 정용훈 박물관 팀장 님과 10여 분 환담을 나눴다.

박물관 건립을 위해 380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으나 최근 건설자재 비용이 뛰어 고민이 많다고 한다.

건물 신축을 위해 설계까지 마쳤으나 공사비용 증가로 예정했던 규모가 축소될 가능성도 있겠다.

 

현재 전시된 기증유물로 박물관을 세우기엔 너무 빈약하지 않냐고 하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평택의 역사유물 약 12,000 점이 국립공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이중 약 8,000점 정도를 찾아와 평택시 박물관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하니 제법 알찬 박물관이 되겠다.

평택시는 이렇게 다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다행이고 기쁘게 생각한다.

 

 

 

 

 

서정리역의 현판을 버리지 않고 보관한 것이다.

 

 

 

 

이번엔 평택세관의 현판이다.

중국과 가까운 평택은 서해안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수출입항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평택항만의 수심은 11~18m(평균 14m)로 대형선박이 접안하기 좋은 곳이다.

선박 접안능력은 22척(3,565㎡)에 향내 수 면적은 110,965천 ㎡(33,566천 평)로 크고 넓다.

하여 1종 지정무역항이자 3대 국책항만으로 지정되었고, 9대 신항만이기도 하다.

2022년 평택항에서 수출된 자동차는 1,638천 대에 이른다.

 

평택항이 수출입항으로 기능을 시작하자 1981년 수원세관 송탄감시서로 시작해,

1996년 평택출장소를 거쳐 2002년 평택세관으로 승격했다.

2009년에는 평택직할세관으로 승격하는 등 현재 7개 과(課)에 130여 명이 넘는 직원들이 근무한다.

평택세관을 통한 수출규모는 중국, 미국, 베트남, 일본의 순서로 수출 금액이 크고, 세관별 수출 규모는 6위에 해당한다.

 

안중면, 팽성읍, 포승면사무소 현판이 보인다.

 

 

 

즐풍이 아는 사람도 초등학교만 마치고 동사무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소사로 근무하다가

글을 잘 써 공무원으로 특채되어 행정주사까지 승진해 호적계장으로 명퇴하는 걸 봤다.

글씨를 잘 쓰는 것도 많은 수련 덕분이니 보는 사람도 즐거워 복을 짓는 일이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글 잘 쓰는 사람은 군대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정형화된 기안용지다.

 

 

 

당직이 되면 야간에 시간을 정해 순찰을 돌며 정해진 위치에 있는 열쇠를 넣고 돌리면

몇 시 몇 분에 순찰을 돌았는지 종이에 체크가 된다.

보통은 소사가 체크해 줬다. 1980년대 일이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다.

 

 

 

시가 제정(市歌 制定)

평택시 기록관 | 1993~1995년

 

 

참고로 「평택시민의 노래」 가사를 올린다.

1절 : 평택항에 피어난 바다 바람이 푸른 파도 이야기 들려주는 곳 하얀 미소 머금은 배꽃 너머로 

         대자연의 숨결이 반짝이는 곳 노을 가득 흐르는 아름다운 보금자리
2절 : 평택호에 펼쳐진 오색 불빛이 꿈과 소망 환하게 비춰주는 곳 황금물결 가득한 대지 위에서 

         아름다운 땀방울 빛나는 이곳 맑은 강물 흐르는 풍요로운 보금자리
후렴 : 평택 모두가 꿈꾸는 행복한 세상 평택 삶의 기쁨 가득한 따뜻한 도시 오늘의 즐거움 내일의 희망 

          다 함께 만드는 우리의 평택

 

 

도시계획지형지적도(원도)

평택시 기록관 | 1970년

 

평택에 주변을 클로우즈 업한 사진이다. 축척 1/3,000이다.

 

평택시 박물관이 생기면서 유물을 수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유물을 기증하신 분들의 소감을 적은 글이다.

이분들의 기증으로 박물관에 근현대사의 유물이 더해져 가치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

 

 

Department of the Army

Certificate of Serbice

DEPARTMENT OF THE ARMY IS OFFICIALLY COMMENDED 1987

양승찬 | 1987년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세르비아 육군 인증서이다.(안내문)

 

 

DEPARTMENT OF THE ARMY CERTIFICATE OF ACHIEVEMENT

양승찬 | 1982년

1989년 육군공로훈장수여증이다. (안내문)

 

 

45TH TRANSPORTATION COMPANY양승찬 | 1978

평택에 미군부대가 있다 보니 관련 유물도 많다.

 

 

만세보

성주현 / 대한제국

1906년(광무 10) 6월 17일 동학의 수장인 손병희의 발의로 천도교에서 창간한 일간신문 (안내문)

 

 

만세보 신문을 확대해 봤다.

당시 기사내용 대부분은 한자이고, 조사 정도만 한글로 표기되었다.

한문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에게  검은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일 뿐이다.

이런 걸 보면서 사용하기 쉬운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덕분에 우리는 인터넷 강국이 될 수 있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어릴 때 늘 보던 것들이다.

새끼틀과 숯울 넣는 다리미, 풍구, 되가 보인다.

 

같은 속리산이라도 왼쪽은 '송리산'이라고 소리 나는 대로 쓰고,

법주사의 한자는 法住寺인데, 法注寺로 오기했다.

어른들의 차림세를 보면 제법 글을 하시는 분들로 보이는 데 글자가 틀려 속상하셨겠다.

 

 

중등교육 일반과학 1

성주현 | 1947년

중학교 1 학년 학생들이 교육받았던 일반과학 교과서로 1947년 조선교학도서주식회사에서 발행한 교과서이다.

                           (안내문)

 

사진은 크기가 줄어 글자가 잘 안 보이지만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한자가 병기되어 있다.

우리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한자를 배우긴 했지만 여전히 한자는 어렵다.

 

 

 

 

 

비디오카메라

추영호 | 광복 이후

 

 

 

 

 

 

 

제승기

홍승옥 | 현대

 

새끼틀을 쓸 당시엔 가마니는 볏짚으로 짜던 시절이다.

볏짚 가마니를 묶거나 초가지붕을 이을 때 새끼줄은 지금의 로프를 대신했다.

며칠이고 볏짚 이엉을 만들어 지붕을 올리고 새끼줄로 지붕을 고정하던 선친의 모습이 선하다.

 

 

배달 가방

박성복 | 현대 | 평택박물관 소장

 

나무로 만든 무거운 배달 가방에서 지금은 양철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가볍고 편리하다.

 

 

(주)평택주류 간판

박성복 | 1970년대 중반 이후

 

이 시절 주류 도매상들은 주먹을 잘 쓰는 사람들을 채용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에 이천에 근무할 때 주류 도매상은 박정희 정권 때 세상을 풍미했던 정치깡패 ㅇㅈㅈ의

후배들이란 소문이 돌았다.

야간업소 상대가 많아 당연히 그들을 쓸 수밖에 없던 시절이다. 

 

다방... 지금은 빽다방이 전국을 휩쓰는데,...

오른쪽 책칼의 용도는 뭔지?

 

 

 

 

 

 

 

지금은 사라진 서정리역사

 

 

 

 

상여 장식(꼭두)

현덕황산 3리 마을회 | 1970년대

상여의 외부를 장식하는 장식품인 꼭두는 인물꼭두상, 동• 식물 꼭두상으로 나누어진다.

꼭두의 의미는 크게 네 가지인데, 첫 번째 안내하기, 두 번째 호위하기, 세 번째 즐겁게 하기, 네 번째 시중들기이다.

꼭두는 망자의 저승길을 안내하는 동반자 역할을 했다. (안내문)

 

남의 조종에 따라 주체성 없이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꼭두각시가

여기서 유래된 말이란 걸 이제야 알 게 된다.

 

 

 

 

 

보자기 

 

 

 

유물전시를 보며 큰 화면에 흐르는 사진을 잡아 두 장씩 담아봤다.

 

 

 

 

 

 

 

 

 

 

평택박물관은 평택 최초의 시립 역사박물관으로 고덕국제신도시에 있는 함박산 공원에 건립될 예정이다. 

현재 건축설계가 진행 중이며 2025년 말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국내외의 여러 문제로 인한 건설 자재비 증가로 당초 예산한 건설단가가 크게 올라 걱정이다.

예산을 증액해서라도 앞날을 내다보고 국제기준에 맞는 좋은 박물관이 건립되기를 소망한다.

박물관 신축과 관련하여 많은 정보를 주신 정용훈 관물관 팀장 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