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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서원과 산지승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공주 마곡사

by 즐풍 2023. 5. 30.

2023_73

 

 

2023.4.30. (일) 오전에 잠시 탐방

 

 

아내인 목우와 공주여행 첫 일정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마곡사에 들어선다.

그동안 신라의 고도인 경주는 여러 번 다녀왔으나 한 때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는 첫 방문이다.

백제 문화권인 부여나 논산, 익산, 전주, 정읍은 다녀왔어도 공주는 처음이니 한참 늦었다.

교통 편의 상 공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마곡사부터 들린다.

 

 

 

 

ㅁ 마곡사(麻谷寺) 북쪽 권역(북원)

 

마곡사 북원은 대광보전과 오층석탑이 있는 교화의 공간이다.
마곡사는 태화산 산골짜기 평지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경내에 모두 19동의 전각과 12개의 암자가 있는데,

그 위치에 따라 남원과 북원으로 구분하고 있다.

마곡사는 약 8000여 평의 면적에 경내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마곡천 계곡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나뉘어 있어

마치 두 개의 사찰이 자리한 듯 보인다.
이 중 북쪽 권역인 복원에는 대웅보전, 대향각, 웅진전, 범종각이 있고, 승려들이 생활하는 심검당, 고방, 

요사 및 백빔 김구의 자취가 남아 있는 백범당과 향나무 등이 있다.
마곡사의 가람이 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배치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 이후의 기록을 보면, 

1650년 각순 스님이 공주목사 이태연의 도움을 받아 폐허가 된 절을 다시 지어 북쪽 구역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 무렵 예산 안곡사에서 범종을 보내왔고, 1741년 영조 17에 법당의 중종을 만들었다. 

오층석탑의 북쪽에 대광보전을 짓고, 다시 축대 위에 대웅보전이 자리한 '일탑쌍금당一塔雙金堂' 식의 배치는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마곡사는 한때 승려가 천 명에 이를 정도로 번성하였지만 1782년에 화재로 대법당을 비롯한 천여 칸의 건물이 

불에 타는 사건이 있었다.
그다음 해에도 화재가 일어나 대광보전도 소실된 채 탑과 불상, 대웅보전만 남게 되었다. 

이에 제봉당 체규 스님이 중심이 되고 충청도관찰사 심풍지 등이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1785년에 대광보전을

다시 세우고 1788년에 표암 강세황이 쓴 '대광보전'의 현판을 걸었다.

대웅보전은 본래 대장경을 보관하는 '대장전大藏殿'이었는데 이 시기에 부처를 모신 대웅보전으로 바뀌었다.

1791년 응진전, 1797년에는 심검당도 지었다. 그 후 수차례의 보수 과정을 거치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안내문)

 

 

 

 

 

ㅁ 마곡사해탈문 (麻谷寺解脫門)

마곡사는 백제 무왕 41년(640)에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절 경내에는 응진전을 비롯하여 대웅전, 

영산전, 대광보전, 홍성루 등 많은 건물이 남아 있다.
해탈문은 마곡사의 정문으로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불교 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해탈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한다. 

중앙 통로 양쪽 편에 금강역사상과 문수동자상 등을 모시고 있다.

                                                                                                            (출처_문화재청)

 

 

ㅁ 마곡사천왕문 (麻谷寺天王門)


마곡사는 백제 무왕 41년(640)에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절 경내에는 천왕문을 비롯하여 대웅전, 

영산전, 대광보전, 홍성루 등 많은 건물들이 남아 있다.
천왕문은 조선 후기에 세웠으며, 건물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 보아 1910년에 고쳐지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서 두 번째 있는 문인 천왕문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천장은 지붕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으로 꾸몄고, 안쪽에는 동서남북 4 지역을 지키는 사천왕상과 그림이 있다.

                                                                                                                                 (출처_문화재청)

 

 

사천왕

 

푸루른 봄빛이 싱그럽다.

고목은 나이가 들었어도 새봄엔 늘 청순한 새순을 싹 틔운다.

초파일을 앞두고 개울엔 연등이 띄우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범종각 지붕이 자 모양으로 펼쳐져 시원한 느낌을 준다.

 

대광보전 마당엔 연등이 달리며 시주자들의 소원 발원 글자가 걸리겠다.

언젠가 여수 돌산도 향일암에 걸린  "로또 1등 되게 해 달라"는 소원 발원 글을 봤다.

부처님께서 소원 발원을 모두 들어주시면 세상에 가난한 사람이 없겠다.

 

연등이 너무 대광보전 앞에 있어 사진 찍기가 불편해 문화재청에서 사진을 빌려왔다.

문화재청에서 가져온 대광보전

 

ㅁ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公州 麻谷寺 大光寶殿)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설과 신라의 승려 무선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신라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폐사되었던 절로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가 절을 다시 세웠으나 임진왜란 뒤 

60년 동안 다시 폐사되었다. 

훗날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대웅전·영산전·대적광전 등을 고쳐지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해탈문·천왕문과 일직선으로 놓여 있다.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건물로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불에 타버렸던 것을 조선 순조 13년(1813)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앞면 5칸에는 3짝씩 문을 달았는데 문살은 꽃 모양을 섞은 조각으로 장식하였고 가운데 칸 기둥 위로 용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천장은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꾸몄고, 불단은 서쪽으로 마련하였는데 불단 위에는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닫집을 정교하게 꾸며 달았다.
안팎으로 구성과 장식이 풍부하고 건축 수법이 독특한 건물로 조선 후기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_문화재청)

 

 

 

 

 

ㅁ 백범 김구 白凡 金九

백범 김구(1876~1949)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과 주석을 지냈으며,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의 의거와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김구의 본관은 안동, 호는 백범이다. 본래 이름은 김창암이었으나, 1893년 18세의 나이로 동학에 입교하면서

김창수로 개명하였으며, 1912년 37세에는 김구로 다시 개명하고 1898년 마곡사에서 승려가 되어

원종이란 법명을 받기도 하였다.
어린 시절을 황해도에서 보낸 김구는 부패한 사회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18세에 동학에 입교하였으며, 

19세에는 동학군의 선봉장이 되어 해주성을 공략하기도 하였다.
이후 1896년,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분노로 일본군 장교를 죽이고 체포되어 사형이 확정되었다가 고종 황제의

특사로 사형이 중지된 이후, 1898년 탈옥하여 공주 마곡사로 들어와 은거하였다.
이듬해인 1899년 마곡사를 떠나 환속하였으며 국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던 중 1919년 3·1 운동 직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이 되었다.


1931년에는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의 의거와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주도하여 지도력을 발휘하였으며, 1940년에는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하였다.
광복 후에는 남·북한에서 단독정부 수립의 움직임이 보이자 남북협상을 제의하며 단독정부 수립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였으며, 단독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재야에서 활동을 하던 중 1949년 6월 26일 자택인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하여 서거하였다.

이후 국민장으로 장례가 치러졌으며,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1962년 정부는 김구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하였다.
김구와 공주(公州)와의 인연은 1898년 김구가 마곡사에 들어와 은거하면서 시작되었으며, 

광복 후인 1946년 4월 특별 강연을 하기 위해 공주와 마곡사를 다시 방문하였다. 

1949년 6월에는 건국실천원양성소 개소식 참석을 위해 공주를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갑작스러운 서거로 인해 

취소되었다.
공주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고 한평생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숭고한 삶을 살았던 

김구의 삶과 업적을 기리고자 2019년 4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하였다.  (안내문)

 

 

 

ㅁ 마곡사응진전 (麻谷寺應眞殿)


마곡사는 백제 무왕 41년(640)에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절 경내에는 응진전을 비롯하여 대웅전, 

영산전, 대광보전, 홍성루 등 많은 건물이 남아 있다.
응진전은 철종 3년(1852)에 새로 보수한 것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짜올렸다.
안쪽에는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부처님의 제자인 16 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출처_문화재청)

 

마곡사를 중심으로 개울이 남북을 가르며 지나간다.

개울이 가까워서 그런지 초목은 더 푸르게 보인다.

 

 

 

 

 

창고 2층으로 올라가는 통나무 사다리 두 개가 나란히 놓였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견뎠는지 발판이 닳고 닳아 라운드가 졌다.

난간이 없어 위험스러워 보이지만 두 사다리를 번갈아 착지 신공을 보이며 나비처럼 사뿐히 이용하겠다.

 

 

 

안에서 다시 보는 범종각 

 

 

 

 

 

 

ㅁ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公州 麻谷寺 五層石塔)


마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구한말에는 독립운동가 김구와도 인연이 깊었던 사찰이다.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일본인 장교를 죽인 후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로 지냈는데, 지금도 대광보전 앞쪽에는 김구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절마당에 우뚝 서 있는 이 탑은 탑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基壇)을 2단으로 쌓고,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의 몸돌에는 부처, 보살 등을 조각해 놓았고,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는데, 

현재는 5층 지붕돌에만 1개의 풍경이 남아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으로, 중국 원나라의 라마탑과 

그 모습이 비슷하다.

길쭉한 감이 있어 안정감은 적으나 당당한 풍채로 버티고 서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머리장식의 독특한 모습으로 보아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후기 즈음으로 여겨진다. 

즉 고려 후기 당시 원나라와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라마교 계통의 문화도 고려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 탑은 그 문화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탑 안의 보물들을 거의 도난당하였으나, 1972년 해체하여 수리하는 과정에서 동으로 

만든 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출처_문화재청)

 

 

2층 몸돌을 둘러가며 부처님을 모셨다.

탑신이 너무 길어 다소 균형이 안 맞는다.

 

아직 부처님 오신날은 멀었지만, 벌써 시주자 명단이 많이 붙었다.

 

연등 터널을 지나 대웅보전으로 가는 계단이다.

만국기가 펄럭이는 느낌이다.

 

대웅보전

 

 

ㅁ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목조삼세불상 (公州 麻谷寺 大雄寶殿 木造三世佛像)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이다. 

17세기 이후 우리나라 불상의 형식으로 정착하는 석가, 아미타, 약사불의 삼세불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의 석가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아미타, 왼쪽에 약사불이 안치되어 있다.

중앙에 위치한 석가불은 항마촉지인의 수인에 왼손은 무릎에서 수평으로 뉘어 2지와 3지를 거의 

직각에 가깝게 구부렸다. 

아미타여래상은 중품하생인, 약사불은 반대의 중품하생인의 수인을 하였으나 약함은 놓여 있지 않다. 석

가불은 오른쪽 어깨를 둥글게 덮은 변형식의 편단우견을 입었으며, 양쪽의 여래상들은 속에 편삼을 입은 모습이다.

세 여래상은 착의법과 수인형식을 제외하면 거의 비슷한 형상인데 전체적으로 얼굴이 작고 신체의 비례가 짧은 

작고 단정한 모습이다. 

양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주름들이 한 번씩 반전되어 접혀 내려오면서 대의의 끝단을 둥글게 처리한 점이나 

양 무릎 밑으로 흘러내린 옷주름들이 가파른 속도감을 보이면서 양측으로 접혀 흘러내린 모습, 

왼쪽 무릎에 유난히 크게 표현된 소맷자락 등이 특징적이다.

머리의 육계는 밋밋하며 중간계주와 정상계주는 따로 만들어 끼워 넣었다. 

얼굴은 둥글고 작으며 거의 일자에 가깝게 처리된 얇은 입술이나 구부린 손가락의 표현 등은 같은 시기 

다른 불상에 비해 부드러우면서도 사실적이다.

이 불상과 관련된 복장물은 아직 조사된 바 없어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불상이 안치된 대웅보전은 각순(覺淳) 대사와 공주목사 이주연(李奏淵)이 1651년에 중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이 시기인 1650~1659년 사이에 마곡사 주지를 지낸 운혜(雲惠)는 당시 유명한 조각장인으로 「사적기」에는 

그가 편수를 맡았다는 기록도 있어 이 불사에 총책임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삼세불상은 17세기 중엽에 조성된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목조삼세불상은 17세기의 시대적 특징을 보이면서도 둥글고 작은 얼굴에 짧은 

비례라든지 주름의 폭이 넓으면서 그 끝단을 부드럽게 둥글게 처리한 점, 그

리고 왼쪽 무릎 위에 유난히 크게 표현된 소맷자락 등은 같은 시기 다른 불상과는 다른 점이다. 

17세기 삼세불상을 대표하는 목조삼세불상 가운데 하나로 조형적으로 우수하고 연구가치도 높다.

                                                                                                                       (출처_문화재청)

 

 

 

 

ㅁ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에 의해 중수되었다.
중수기에는 대장전大藏殿으로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언제부터 대웅보전으로 바뀌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외관상으로는 2층 건물 형태인 중층 부분이나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다.

건물 내부 중심에는 석가모니불을 좌우에는 아미타불과 약사불(공주 마곡사 대응보전 목조삼세불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5호)를 모시고 있다.
현존하는 전통 목조건축물 가운데 많지 않은 중층 건물로 목조 건축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안내문)

 

조사전

 

대광보전과 대웅보전 

 

 

 

개울을 막아 연못처럼 고인 물 위로 다리와 연등이 반영돼 색다른 느낌을 준다.

 

 

 

 

ㅁ 마곡사명부전 (麻谷寺冥府殿)
마곡사는 백제 무왕 41년(640)에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절 경내에는 명부전을 비롯하여 대웅전, 

영산전, 대광보전, 홍성루 등 많은 건물이 남아 있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모시고 있어 지장전·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은 모든 인간을 교화시키는 역할을 맡았으며, 시왕은 염라대왕을 비롯한 10명의 지옥 심판관이다.

                                                                                                                          (출처_문화재청)

 

 

 

흥성루

 

 

충청남도(忠淸南道) 공주시(公州市) 사곡면(寺谷面) 운암리(雲岩里)의 태화산(泰華山) 동쪽 산허리에 자리 잡은 

마곡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6교구본사(本寺)입니다.
‘春마곡’이란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봄볕에 생기가 움트는 마곡사의 태화산은 나무와 봄꽃들의 아름다움이 

빼어 납니다.
마곡사 사적입안(事蹟立案)의 기록에 따르면 '마곡사는 640년(백제(百濟) 무왕(武王) 41년)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고려 명종(明宗) 때인 1172년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수하고 

범일(梵日) 대사가 재건하였다고 합니다.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각순 (覺淳) 대사가 보수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세조가 이 절에 들러 ‘영산전(靈山殿)’이란 사액(賜額)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신라의 고승 자장 율사가 창건할 당시만 하더라도 30여 칸에 이르는 대사찰이었으나 현재 마곡사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을 비롯한 대광보전(大光寶殿:보물 제802호), 영산전(보물 제800호), 사천왕문, 

해탈문(解脫門) 등의 전각들이 가람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도량의 성보(聖寶)로는 5층 석탑(보물 제799호)과 범종(梵鐘:지방유형문화재 제62호), 

괘불(掛佛) 1폭, 목패(木牌), 세조가 타던 연(輦), 청동 향로(지방유형문화재 제20호)가 있으며 

감지금니묘볍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제6권(보물 제270호)과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보물 제269호)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출처_마곡사 홈피)

 

매화당

 

 

 

흥성루와 해탈문

 

 

 

 

 

 

공주 여행 첫 일정으로 공주의 관문인 마곡사부터 들렸다.

고요한 사찰에 새소리와 물소리, 불경소리가 심신을 맑게 한다.

번뇌는 사라지고 마음은 평안하다.

사람들이 하나둘 많아질 때 사찰을 나서며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