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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전라도·광주

전북 고창 운곡습지 입구의 운곡서원

by 즐풍 2022. 12. 22.

 

 

2022.10.17. (월)  오후

 

 

지난번 고창 고인돌 유적지와 연결된 운곡람세르습지를 탐방했었다.

그때 고인돌 유적지 쪽 위주로 보고 건너편까지 넘어오기가 귀찮아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마침 오늘 시간이 나길래 서둘러 오다 보니 카메라를 지참하지 않았을 땐 너무 멀리 왔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결국 핸드폰을 빌릴 수밖에 없다.

구입한 지 6년이나 지난 아이폰 8 plus인데도 사진 화질은 여전히 쓸만하다. 

 

운곡람사르습지 자연생태공원 입구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었더니 운곡서원까지 3.2km 거리다.

이렇게 먼 줄 알았다면 평일이라 탐방객도 별로 없으니 차를 끌고 가도 되겠단 생각이 든다.

가는 동안 우측으로는 이어지는 운곡저수지는 운곡서원 어귀에서 끝난다.

운곡서원에서부터 운곡람사르습지가 시작되는 데 이곳에도 제법 많은 고창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

운곡람사르습지 탐방을 위해 들어왔으나 운곡서원이 먼저 보여 별도로 포스팅한다.

 

 

 

□ 운곡서원(雲谷書院)

 

고창군 아산면 운곡(雲谷)에 있는 선산 김 씨(善山 金氏) 서원(書院)이다.

절의와 도학의 사표인 김제, 김주, 김숙자, 김종직과 주자 (朱子)를 모신 곳이다.

1766년(영조 4년) 고창군 모양 당산에 창건되었다가 헌종 9년에 산수(山水)를 따라

자손이 세거 하는 운곡(雲谷)으로 이건 하면서 주자를 모신 것은 자양산 회암봉 아래 운곡의 지명이

주자의 서당명인 자양(紫陽), 거실명인 회암(晦庵), 거지명(居地名) 운곡과 우연히 일치하고

김숙자와 김종직의 도학이 포은, 야은을 이어 김굉필과 정여창에 전함으로써 주자의 학통을 계승하여

우리나라 도통의 연원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1868년(고종 8) 서원령으로 사우가 훼철되고 강당만 보존되어 오다가 1900년(광무 3) 복설 되었고,

1981년 아산호 축조로 자손은 떠나고 서원만 남아 호수와 산, 노거수가 그윽한 경치를 이루고 있다.

운곡서원의 내력을 기록한 운곡서원 묘정비(廟庭碑)가 있다

                                                                                                      (출처_고창군지 제7권에서 발췌)       

 

 

 

 

 

 

 

운곡저수지는 인근 영광에 있는 한빛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발전용수 취수원이다.

이 저수지는 1984년에 준공되었다.

 

운곡저수지가 생기며 수몰지구의 마을은 사라졌다.

운곡서원을 이곳으로 옮길 땐 제법 많은 주민이 살았을 텐데, 이제 주민은 볼 수 없다.

 

안곡에는 고창 고인돌 유적지가 있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에 만든 것이니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시대인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안덕샘은 언제인지 상고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샘물이다.

 

 

 

 

 

 

운곡서원으로 올라가는 동안 오른쪽은 운곡저수지가 계속 이어지고, 왼쪽엔 습지가 보이기도 한다.

 

 

 

먼저 운곡서원 묘정비가 반긴다.

1984년 운곡저수지가 준공되며 마을이 수몰되자 모든 주민이 떠났다.

그로부터 벌써 4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며 운곡서원은 건물만이 옛날을 추억한다.

 

퇴락한 건물이 문창호 지는 다 삭아 내렸고, 박스 두 개엔 소주병이 넘칠 듯 쌓였다.

관관객이 주변에서 음주를 하고 이곳에 가져다 놓은 모양이다.

 

주자학을 깊이 이어온 집이라는 뜻의 「신안구가」란 편액이 걸렸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는 데,

한지에 낙관도 없는 걸 보면 추사의 글자에서 뽑아낸 집자체겠단 생각이 든다.

 

강당에서 내삼문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이곳 운곡리의 고인돌 1호가 아직도 누워있다.

 

강당 마루 서편에 유생들의 숙소인 제생실 문 위에 주자의 가훈이라는 독서지재성현이란 편액이 걸렸다.

글을 읽는 소망은 성현이 되는 데 둔다라는 뜻이라고...

오른쪽은 스승의 거소인 제관실이 마루 끝으로 마주한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주자와 운곡서원에서 모시는 네 분의 위패가 있을 텐데, 문이 잠겨 볼 수 없다.

 

 

 

강당 앞 향나무는 전지작업을 하지 않아 더벅머리 총각처럼 제멋대로 자라고 있다.

 

강당 안쪽으로 바라보는 곳에 수선당이란 편액이 걸렸다. 

 

이번엔 반대편인 바깥쪽 풍경

 

운곡서원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니 비석이 즐비하다.

 

여러 공덕비

 

느티나무 고목이 이곳의 역사를 말해주듯 노거수로 자라 운치를 더한다.

 

 

 

 

운곡 람사르습지 탐방을 위해 들린다는 게 먼저 운곡서원을 만났다.

운곡서원 건물을 처음 지을 땐 기와지붕이었겠으나 지금은 관리 편의를 위해 함석지붕으로 바꿨다.

운치는 조금 떨어져도 오랫동안 유지되겠다.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을 내렸을 때 전라북도에서는 유일하게 정읍의 무성서원만이 살아남았다.

이 운곡서원도 철폐령을 벗어나지 못하고 강당만 남은 상태에서 이후 복원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관리되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후대로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