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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전라도·광주

대하예술소설 「혼불」작가인 최명희 문학관 탐방

by 즐풍 2022. 11. 6.

2022_196

 

 

 

2022.10.1 (토) 오전에 잠시 탐방

 

 

한 때 우리나라 문학은 남성이 주도한다고 생각했다.

최명희의 「혼불」이란 대하 예술 소설을 읽고 글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은 누구도 따를 수 없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체는 박경리나 박완서, 신달자, 공지영 등 쟁쟁한 여성 작가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그녀는 17년에 걸쳐 혼불을 계간지에 혼신의 힘을 다해 발표하며 후속 작품을 남기지 못하고 별이 되었다. 

 

혼불은 우리나라 관혼상제를 완벽하게 재현해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설은 일제강점기의 남원의 어느 무너져가는 종가를 지키기 위한 종부 3대와 상민들이 겪는 애환을 그린 작품이다.

최명희는 해방과 6·25, 4·19를 비롯해 5·16까지 준비했던 자료엔 손도 못 댔을 뿐 아니라 결혼도 못했다.

작가는 조정래의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처럼 시대순으로 작품을 낼 예정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난소암으로 사망했다.

 

혼불을 읽는 동안 1930년대의 남원지방 사투리를 이해하는 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대한민국 표준어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정의하며 전 국민이 서울말 쓰기에 혈안이 됐다.

교양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지역 사투리는 급속하게 사라지며 정감 넘치던 사투리는 이제 사어가 되었다.

다시 혼불을 읽는다 해도 일제강점기의 남원지역 말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버벅거리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을 거닐며 전주 경기전으로 가는 길에 「최명희 문학관」이 있다는 걸 알고 들려보기로 한다.

즐풍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의 흔적이나 그를 이해하는 조그만 끈이라도 잡고 싶기 때문이다.

 

 

 

□ 최명희 문학관

 

최명희문학관은  작품보다 ‘작가 최명희’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그래서 전시관은 녹록지 않았던 작가의 삶과 흔적이 담겨 있다. 

작가의 원고와 지인들에게 보낸 엽서·편지들을 비롯해 생전의 인터뷰·문학강연 등에서 

추려낸 말과 글로 이뤄진 동영상과 여러 작품에서 추겨낸 글이 새겨진 각종 패널을 만날 수 있다.

 

한 줄 한 줄 눈이 따르면 소리 내어 읽고 싶고, 곧 마음이 동한다.
최명희 선생은 생전 ‘아름다운 조각품을 볼 때, 

'그 아름다운 조각품이 태어나기 위해 떨어져 나간 돌이나 쇠의 

아름답고 숭고한 희생을 우러르며 가슴 아파했고,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다운 동백꽃만큼 

그 둥치에 낀 이끼의 생명력을 소중히 여겼다’ 고 한다.

 

최명희문학관 운영은 선생의 이러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시민과 함께 연구하고 학습하며 감동을 주고받는 도시형 시민 밀착형 문학관, ‘사당’처럼 적막한 곳이 아니라 

문학강연, 토론회,  세미나, 문학기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서 뜀박질하는 문학생산의 중심이 되고자 한다.

                                                                                                                                      (출처_최문희 문학관 홈페이지)

 

 

문학관인 독락재로 들어가는 출입구다.

독락재로 들어가기 전 방명록에 즐풍도 글을 남기며 이곳을 방문했다는 흔적을 남긴다.

 

 

 

혼불은 이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작품이다.

 

 

 

최명희 작가는 혼불 전권을 만년필로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작품이다.

금림 친구에게도 만년필로 한문처럼 아래 쓰기, 좌측으로 써 내려간 서한문이다.

 

 

 

 

 

 

 

 

 

 

 

 

 

 

 

 

 

"만년필, 자, 칼, 줄, 가위를 가지고 끝없이 오리고 붙이고 다시 쓰는 과정이 내 작업이다.

기억이 최초의 자료지만, 준비한 자료와 경험이 섞여 내 속에 체화되고 나와 한 몸이 될 때까지 수십만 번을 주무른다." 

 

원고지에 작품을 쓰고 퇴고를 거듭한 끝에 작품을 넘긴다.

 

 

 

 

 

혼불의 원고

 

 

 

혼불은 이 시대 대학원생들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끊임없이 연구되며 자료로 남는다.

이러한 작업은 앞으로도 연년이 계속될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지금 윤석열 정부의 우리나라 통치에 분노를 느낀다.

 

 

최근 있어서는 안 될 이태원 대참사가 일어났다.

이태원 참사는 202.1029 토요일 밤 10시경 핼러윈 축제를 위해 이태원에 모인 군중이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며

길이 갑자기 좁아지자 정체되자 뒤에서 미는 힘에 앞쪽 사람들이 넘어지며 압사 사고가 발생한 사고다.

2022.11.6일 오늘 현재까지 156명으로 확인되고, 중상자도 상당수가 있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에는 이 정부의 국정운영 능력의 부재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미명 아래 나와 용산에 집무실을 마련하며

경찰의 경호 인력을 대폭으로 빼내 사고 당일 거주하지도 않는 한남동 빈 관저에 경찰이 200명 배치됐다.

빈집을 경호하기 위한 200명이 현장에 배치되기만 했어도 이런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윤석열은 2022.10.21 경찰의날 행사에서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아 한다고 강조했다.

사흘 뒤 한덕수 국무총리 회동에서도 "마약과의 전쟁이 절실하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다시 이틀 뒤인 10월 26일 국민의힘과 정부는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 관련 당정협의회를 열고, 

검찰과 경찰을 중심으로 특별수사팀을 꾸리겠다고 밝혔다.

이렇듯 당·정·청이 '마약과의 전쟁'에 보조를 맞추면서 경찰 지휘부의 관심이 마약 단속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된 셈이다

참사 당일 경찰은 광화문 일대와 용산 대통령실 인근 등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 통제에 기동대 5천명을 투입했다.

이렇게 당정청이 주도한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부담으로 이태원 현장에서도 질서 유지보다 마약 단속에 치중했다.

 

사건 당시 윤희근 경찰청장은 친목 모임에서 등산을 끝내고 충북 제천의 한 캐핑장에서 자고 있었다.

사고에 대한 문자를 보내고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잠에 든 청장을 깨울 방법이 없었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보다 늦게 사태를 파악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김경호 서울경찰청장은 이태원 압사가 예상된다는 민원이 속속 접수되는 시점에 퇴근하며 사태를 키웠다.

참사 당시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은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현장을 차량으로 이동하며 막힌 도로에서 시간을 낭비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참사 다음날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 배치로 해결됐을 문제가 아니라"며 분노를 촉발시켰다.

그는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신설하며 경찰을 지휘하는 실질적인 책임자가 됐음에도 책임을 회피한 파렴치한 발언이다.

경찰의 권한을 행안부 장관이 목을 틀어잡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21세기의 세기적 비극이자 조롱거리가 된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전 수많은 시민의 제보 민원이 쏟아지고, 소방 당국도 경찰에 인력 파견을 요청했지만

경찰 수뇌가 부재하고 무능하여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했다.

이 책임은 청와대를 나온 윤석열 대통령에게 귀결되는 만큼 그는 국민에게 사죄하고 직에서 사퇴해야 한다.

한낱 깡패나 잡아들이며 술로 세월을 보내던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 감이 아니라는 게 진작에 드러났다.

그런데도 똥오줌 못 가리는 꼴통 보수들이 선거를 잘못하는 바람에 나라가 망해가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최명희 작가의 "백성이 지키고 싶은 나라만이 진정한 힘을 가진 나라이다."란 말이 뼈아프게 맘을 쑤신다.

언젠가 이 글을 다시 읽을 때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덧붙인다.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최명희 문학관에 들리며 포스팅이 늦어지는 바람에 작가가 쓴 글귀 한 구절로

최근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가 오버 스크랩되며 국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당 태종의 「정관정요」에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능히 배를 실어 띄울 수가 있지만 한편 배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라고 설파하고 있다.

최근의 예만 보더라도 박근혜 정부가 그렇다.

유감스럽도 이제 다시 우리는 배를 전북 시킬 때가 되었다는 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