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_142
2022.7.22 (금) 08:40~09:15, 35분 탐방
지난번에도 샛별해수욕장을 들어왔을 때 만조라 그냥 돌아갔다.
오늘은 그날보다 조금 물이 빠진 상태지만 흡족한 상태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
다시 나갈까 하다가 다시 올 기회가 없겠단 생각에 천천히 해변을 걷기로 한다.
해안 입구는 제법 크고 작은 자갈이 널렸고, 열다섯 발자국쯤 발을 떼야 모래사장에 만난다.
모래만 있는 해수욕장은 사실 별 특징이 없는 해수욕장이란 말과 다를 게 없다.
해수욕장에 들어갔다 나오면 바로 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높은 점수를 딴다.
샛별해수욕장이 바로 그런 곳이라 파라솔 임대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하지만 물때가 맞지 않아 우측 해안을 따라 산책 겸 걷기로 한다.
□ 샛별해수욕장
안면읍에서 15분 정도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혜성과 같이 나타나는 샛별 해수욕장의 안내판을 보게 된다.
해수욕장으로 개장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여느 해수욕장과 달리 특이하게 파도에 밀려온 조약돌을 보며 백사장에서 색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곤 한다.
조약돌 투성이의 넓은 해변을 마주하면 동해의 해변을 연상하게 되며 푸른 바닷물은 더없이 맑고 깨끗하다.
음식업소는 다소 부족하나 식수와 민박업소는 충분하며, 야영장의 위치도 제격이다.
- 백사장 면적(㎡) : 35,000㎡, - 백사장 길이(m) : 700m, - 폭(m) : 50m, - 해변 형태 : 규사,
- 경사도 : 6。, - 안전거리(m) : 150m
(출처_태안군청, 오감관광)
바위가 있어야 서로 부딪치며 모서리가 닳아 몽돌이 되는 데, 이 작은 돌끼리 부딪쳐 봐야 간에 기별도 안 간다.
소나무가 많아 그늘이 좋은 곳이다.
해변으로 드나드는 곳엔 까칠한 자갈이 많아 맨발은 위험해 보인다.
건너편 외도란 섬에 몇 가구 민가가 보인다.
갈매기도 집단으로 모여 쉬는 중이다.
이들의 쉼에 방해가 되지 않게 우측으로 돌아서 간다.
모두 한 방향으로 있는 건 뭔가 그쪽이 편하다는 뜻인데...
바람의 영향을 받는 걸까?
녀석들은 사람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눈치다.
돌아가긴 하지만 비킬 생각도 별로 없어 보인다.
모래에 박힌 돌 사이로 지나간 바람이 모래를 끌고 갔다.
태안의 모래 입자가 워낙 작아 해수욕장에 주차하면 차량은 밀가루 같이 고운 모래가 덮고 있다.
포클레인으로 삽질을 한 듯 일정한 간격으로 줄이 났다.
중간에 단층이 한 번 흔들리며 이만한 바위를 살짝 줄을 바꿀 정도라면 대단한 힘이다.
바위 아래쪽 규사는 눈처럼 희고 곱다.
이쪽 해안가 야산은 이런 모래가 불어와 쌓여 간혹 정원수에 쓸 모래를 판다고 한다.
여름엔 사람들 눈에 띄기 쉬우니 꽁꽁 언 겨울에 아무도 모르게 파는 일이 있다고 한다.
모래만 보이던 해수욕장에서 절벽으로 들어오니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작은 암봉이라도 길을 막고 있으니 바람이 이쪽으로 급하게 지나가며 해변에 바람의 물결을 남겼다.
이 조그만 봉우리를 비켜가는 바람도 이런 흔적을 남기는데,
해운대로 태풍이 지나갈 땐 101층이나 되는 고층 건물 통유리가 깨지고
심지어 타일이 떨어지는 불상가가 일어난다.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외계 행성에 온 듯한 느낌이다.
봉우리 그림자가 져 바람이 잔잔한 느낌을 준다.
실제 바람은 전혀 없다.
한국의 전근대 왕조는 백성에게서 거둔 쌀과 콩 등의 현물을 바탕으로 국가를 운영하였다.
이러 한 곡물은 선박을 통해 고려와 조선 두 왕조의 수도인 개경과 한양으로 수송되었다.
한반도의 주요 곡물생산지인 남부지역에서 징수한 곡물은 서해 바다를 경유해야만 했는데,
그중 선박의 침몰사고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 곳이 태안 안흥량이었다.
따라서 고려와 조선정부는 새로운 세곡운송 정책을 수립하기 위하여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잇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추진했는데, 그것이 바로 태안의 굴포공사였다.
태안의 굴포공사는 고려 인종대부터 조선 세조대까지 무려 5차례 추진하였다.
태종대 저수지에 물을 가둬두고, 배의 곡물을 옮기는 형태로 굴포가 개통되기는 했지만 활용되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4번의 굴포공사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사는 국가 차원에서 대규모 노동력과 재원을 투입한 정책사업이었고,
그 유적이 잔존했다는 이유로 조선시대를 넘어 현재까지 회자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태안의 굴포유적은 전근대 국가가 주도한 최장 프로젝트였다는 점, 국내 유일의 굴포유적지라는 점,
고려와 조선시대 조운제도의 寶庫라는 점 등의 역사적 가치를 함유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간 많은 연구성과가 축적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충남도와 태안군 등 지자체에서도
이를 문화 재로 지정하여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런데 고려와 조선시대 추진된 이 굴포공사에 대한 명칭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다.
그 결과 ‘태안 조거’, ‘안흥량 굴포’, ‘가적운하’, ‘태안 굴포운하’ 등의 명칭이 난립하였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문화재청예규 167호 ‘사적 명칭 부여 지침’에 의거하여 태안의 굴포유적 명칭을 고증하고,
이를 향후 문화재명으로 사용하기를 건의하였다.
이를 위해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의 관찬사서를 비롯하여 읍지, 문집 등
다양한 종류의 문헌자료를 통해 태안의 굴포유적의 고유명칭이 존재했음을 확인하였다.
‘태안굴포’와 ‘안흥굴포’가 그것이다.
그중 ‘안흥굴포’는 현재 국사사적 560호인 태안 안흥진성이 있는 지역과 혼동할 우려가 있었다.
본 논문에서는 역사고증과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태안의 굴포유적 명칭을 ‘태안굴포 유적’으로
명명할 것과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계획 수립의 필요성을 제안하였다.
(출처_해양문화재 13호 발췌)
서너 명 둘러앉기 좋은 쉼터
샛별해수욕장 바로 아래 손바닥만 한 쌀썩은여해수욕장이 있다.
여는 해안 사람들이 바닷속에 있는 암초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호남이나 충청지역의 곡식을 조운선에 싣고 가다가 이 암초에 부딪쳐 침몰된 배가 많다.
그때 침몰된 배에 있던 쌀이 썩어나가 쌀썩은여란 지명이 생겼다.
심지어 당나라나 개성을 또는 한양으로 가던 무역선이 침몰해 이제야 유물을 건져
문화재에 이름을 올리는 많은 보물급 유물이 쏟아져 나온다.
당시에는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있었으나 몇백 년의 타임캡슐은 뭍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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