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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서해 수중 문화재의 보고인 태안해양유물전시관 관람

by 즐풍 2022. 7. 17.

2022_119

 

 

 

2022.7.6 (수) 12:40~13:30, 50분 탐방

 

 

형님이 꼭 가고 싶다던 태안 해양유물전시관을 함께 생활하는 팀과 함께 오게 되었다.

같은 태안이라고 해도 숙소에서 전시관까지 61km로 한 시간 20분이나 걸려 관외 출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멀다.

무거운 쉐보레의 휘발유 차량이라 뚝뚝 떨어지는 게이지가 요즘 같은 고유가 시대에는 더 빨리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애꿎은 동승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니 부담은 온전히 즐풍의 몫이다.

 

서울서 부산만큼 멀다는 느낌을 받으며 도착한 태안 해양유물전시관은 태안에서도 오지 끝에 있다.

아무래도 땅값 싼 데를 고르다 보니 이곳에 둥지를 튼 게 아닐까 싶다.

전시관으로 들어가며 바다 건너편을 보니 안흥진성의 성벽이 이름도 없는 야산의 정상을 똬리처럼 틀고 있다.

언젠가 안흥진성에 들려 서문인 수홍루에만 들렸으니 시간을 할애해 한 번 더 다녀와야겠다.

 

인솔자가 해설사를 부탁하니 오늘은 해설사가 안 계신다며 전시해설 자동음성 안내기를 대여한다.

이 자동음성 안내기 성능이 참 좋다.

이어폰을 귀에 꽂는 게 아리라 귓바퀴에 걸게 되어 있어 위생적인 데다, 음량 조절이 가능한 게 특징이다.

전시물 별로 별도의 안내를 하게 되어 해설사라도 놓칠 수 있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 알뜰한 해설을 받을 수 있다.

 

 

□ 국립해양문화연구소 · 태안해양유물전시관

 

국립해양연구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바닷속 문화유산을 발굴·보존·전시·활용하는 문화재청 소속 기관이다.

1976년 신안선 발굴을 계기로 목포에 처음 자리한 이후 지금까지 총 14척의 배와 10만여 점의 유물을 발굴했다.

현재 5만여 점의 유물을 소속 전시관인 국립해양유물전시관(목포)과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 보관·활용하고 있다.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은 2000년대 이후 서해 중부해역의 획기적인 해양 문화유산 발굴 성과에 힘입어 탄생했다.

2007년 태안선을 발견을 시작으로 서해 중부해역 전역에서 침몰선과 유물이 지속적으로 발견되자,

2018년 이 지역 해양문화유산 조사·보존·연구·활용을 전담할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을 개관하였다.

교류와 소통의 공간 바다를 무대로 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바다에 잠든 문화유산이 빛을 보고,

바다가 역사의 현장으로 새롭게 조명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안내문)

 

 

 

 

 

 

 

 

 

 

 

 

국화 넝쿨무늬가 조각된 고려청자가 깨진 게 아깝다.

그래도 수준 높은 작품의 일부라도 볼 수 있다니 다행이다.

 

안쪽에 꽃 모양이 음각된 수준 높은 청자

 

 

 

 

줄무늬 꽃 모양의 청자 접시

 

모란 넝쿨 줄무늬를 한 청자 접시

 

분청사기 여의두 무의 접시

 

 

 

 

 

청동 숟가락이 삭아 내렸다.

 

갯벌에 묻힌 모습을 흰 규사 모래로 대신해 이해를 돕는다.

 

그릇 종류는 이런 모양으로 포개어 이동했다.

 

고려 시대의 사슴뿔은 가지 수로 보아 다섯 살 이상으로 추정한다.

높이 75cm이다.

 

 

 

청자상감 모란 연화문 표형주자

 

 

청자 연꽃 줄기 무늬 매병과 죽찰

 

 

청자 두꺼비 모양의 벼루

 

 

사자 모양의 청자 향로

 

 

청자로 만든 참외 모양의 주전자와 항아리

 

 

 

 

서해 수중에서 발굴한 유물이 워낙 많다 보니 도서관의 책꽂이를 보는 느낌이다.

서해안의 특징인 갯벌이 충격으로 그대로 흡수하며 600년 이상을 이상 없이 잠들게 하는 마법을 부렸다.

오랜 마법이 풀리며 세상에 나타나 빛을 보게 되면서 우리와 마주한다.

 

이렇게 서해에서 꺼낸 유물은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한다.

신흥 졸부 국가인 미국이 아무리 잘난 체 해도 우리 문화와 비교할 수 없는 문화 소국임에 틀림없다.

 

재현한 마도 1호선

 

 

 

 

 

 

청자 연꽃 넝쿨무늬 사발

 

 

당시의 숟가락은 포이 좁아 많은 양을 담을 수 없겠다.

손잡이를 한껏 구부려 미적 감각은 있어 보이나 잡거나 보관하는 데는 다소 불편이 따르겠다.

 

이 새 뼈는 무슨 용도로 배에 실렸을까?

뱃사람이 심심해 배 안에서 배를 키우거나, 연락을 위해 키운 비둘기였을까?

안내문에는 식용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옛날 기술로는 당연히 주물로 만든 철제 솥 밖에 없다.

요즘처럼 기계로 찍어내는 솥과 달리 투박하지만 오래 쓸 수 있다. 

 

사람의 뼈

 

 

청동 대접

맨 왼쪽 대접은 망치로 치면서 만든 방짜 유기로 보이고, 두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는 주물로 구운 것처럼 보인다.

즐풍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당시 배에 적재된 상태를 재현한 것이다.

 

 

 

 

 

 

 

 

 

서해는 조수간만의 차가 큰 만큼 배가 침몰되면 그 충격이 크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유물이 온전한 상태로 수습되는 건 갯벌의 개흙 때문이다.

바닷속 개흙이 침몰선과 유물을 진공포장처럼 감싸 수백 년의 세월을 그대로 보존해 준 덕분이다.

당시 침몰로 유명을 달리한 뱃사람과 선주, 화주의 손실은 컸겠지만 후대에게 귀중한 선물을 남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