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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지질공원 탐방/울릉도·독도 지질공원

울릉도 태하 향목재로 오른 대풍감의 절경

by 즐풍 2022.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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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28 (목)  오후에 탐방

 

 

오전에 퇴소식을 갖고, 오후에 잠시 울릉군 귀농귀촌종합센터에 다녀왔다.

숙소로 돌아오니 오후 3시가 채 안 돼 시간이 많이 남는다.

그동안 탐방한 명소를 포스팅은 나중에 귀가한 다음 해도 충분하니 대풍감을 다녀오기로 한다.
울릉도에 체류하는 동안 하나라도 더 눈에 담아두고 블로그로 남기는 게 남는 것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서 담아보는 주변 풍경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보는 성인봉 가재굴 방향의 암릉

 

거북바위 뒤로 보이는 가두봉 암릉은 울릉도 공항 활주로 공사에 투입될 것이므로 없어질 것이다.

 

즐풍의 한 달간 머무르는 숙소

 

숙소 뒤 뾰족봉

 

□ 성하신당

 

조선 태종 때 김인우는 울릉도 안무사를 명 받아 울릉도 거주민을 육지로 이주시키기 위하여

병선 2척을 이끌고 이곳 태하동에 도착했다. 

관내 전역에 대한 순찰을 마치고 출항을 위해 잠을 자던 중 해신이 현몽하여 일행 중 동남동녀 2명을 

이 섬에 남겨두고 가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고 출항을 명령했다. 

그러자 갑자기 풍파가 일더니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이었다. 

안무사는 문득 전날 꿈이 떠올라 일행 중 동남동녀 2명을 섬에 남겨두고 무사히 육지로 돌아갔다. 

몇 년 뒤 다시 울릉도 안무사의 명을 받고 태하리에 도착하여 수색을 했는데, 

그때 유숙하였던 곳에는 동남동녀가 꼭 껴안은 형상으로 백골화되어 있었다. 

안무사는 동남동녀의 고혼을 달래고, 애도하기 위해 그곳에다 사당을 지어 제사 지내고 돌아갔다. 

매년 음력 3월 1일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풍어·풍년을 기원하고, 

처음 배를 띄울 땐 반드시 여기에서 제사를 올려 어로작업의 안전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한다.

                                                                                                           (출처_울릉군청)

 

전국에서 동남동녀가 있는 사당은 이곳밖에 없다고 한다.

문이 잠겨 안을 볼 수 없다.

 

차도 안쪽의 마을길 따라 내려가다 보면 태하등대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태하등대는 향목 모노레일을 타거나 태하 해안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는 방법 외에도

이곳으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낙석이 우려되는지 바위에 이리저리 쇠줄을 걸어 안정시켰다.

 

 

 

태하 포구로 들어오는 마을 길 우측의 저수지가 운동장처럼 보인다.

 

 

 

조선은 울릉도에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섬을 비우는 공도정책(空島政策)을 펼쳤다.

숙종 때 안용복의 사건 이후 3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울릉도의 내부와 주변 해안을 살피는

수토정책(搜討政策)으로 바뀌었다.

1882년 고종 19년 울릉도 개척령 반포하며 이규원을 울릉도 검찰사로, 전석규를 도장에 임명하며

수토정책 철회하였다.
이어서 1883년, 울릉도에 16가구 54명의 주민 이주가 시작되었다.
고종 32년(1895)에  삼척영장 겸임 도장제에서 전임도장을 임명하고 도장을 도감으로 개칭하였다.
1900년에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개칭하면서 강원도에 편입하고 행정구역을 남면과 북면으로 나누었다.
1903년에 군청 소재지를 태하에서 현재 울릉읍인 도동으로 이전했다.
1906년에 울릉군을 경상남도에 편입시켰다가 1914년 경상남도에서 경상북도로 이속하였다.

                                                                                                   (출처_울릉군청)

태하 포구의 마을

 

 

향목 고개를 올라왔으니 더 이상 어려울 건 없다.

이제부터는 큰 오르내리막 없이 태하등대까지 걷게 된다.

 

중간에 KBS TV "인간 극장"에 나왔다는 어느 노부부의 농가로 갔다.

두 분은 연세가 들어 나가시고 그 아드님이 가끔씩 농사를 지으러 다니다고 한다.

농가를 지나 오솔길로 들어가 본다.

 

바닷가로 나오니 태하등대 전망대에서 보던 것과 달리 절벽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끝 바위가 대풍감이다.

 

□ 대풍감(待風坎)

 

옛날 배가 드나들 때 배를 메어두기 위해 대풍감 바위에 구멍을 뚫어 배를 매었다.

돛단배이기 때문에 항해를 위해서는 바람이 불어야 하고 그 바람을 기다리는 곳이라 하여

기다릴 대(待) 자를 써서 待風嶺으로 명명하였다.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는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11,900㎡이다. 

향나무 자생지는 바닷가 가파른 절벽이며 심한 해풍의 영향으로 향나무들은 성장이 더디다.

이곳 향나무 집단 서식지는 오랫동안 격리되었기 때문에 향나무의 원종이  그대로 남아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으며, 괭이갈매기들의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출처_울릉군청)
 

 

태하등대 전망대

 

당겨 본 대풍감

 

현포항 방향의 해안절벽

 

□ 태하등대

 

등대 가는 길에는 50년 이상되는 해송(海松)나무 숲, 해국(海菊)이 길가에 있는데,

특히 해국이 필 때면 그꽃에 매료되어 쉬어가지 않고는 등대에 오를 수가 없다.
태하등대는 유인등대로서 표고는 111m이고, 광파표지(18마일), 음파표지, 전파표지(100해리)시설을 갖추었다.
등대 앞에서 바라본 현포해안의 절경과 대풍령 해안절벽은 울릉군내 빼어난 절경중의 하나로 

대풍령 해안절벽에 자생하는 천연기념물 제49호 대풍감 향나무는 향나무자생지로 지정되었다.

또한 오징어잡이 성수기 때의 야경과 일몰은 정말 장관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의 해질무렵 이곳에서 우리나라 백두대간의 거대한 능선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데,

울릉에서 최단 거리인 울진군 죽변항까지로 약 130km 정도된다

태하에는 현재 유인등대가 있다. 

이 등대 아래 대풍령이라는 고개 밑에는 시퍼런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 

이 곳은 옛날부터 배가 많이 드나들던 곳으로, 이 곳에 구멍을 뚫어 배를 매어 두었다고 한다. 

당시 돛단배는 바람이 불어야 운항할 수 있었기에 바람을 기다린다고 해서 대풍령이라고 불렀다. 

이 고개에는 작은 구멍뿐만이 아니고 큰 굴도 있었는데, 이 굴이 옛날에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 굴을 이용하여 큰 도둑들이 이 곳의 보물을 많이 훔쳐갔다고 한다. 

보다 못한 어떤 도인이 도술을 써서 이 굴을 막아버렸다고 한다.                   (출처_울릉군청)

 

 

울릉도등대 인근의 전망대에서 보는 대풍감

 

울릉도등대 전망대에서 대풍감 해안절벽을 보면 그 비경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무슨 일인지 대풍감으로 가는 산책로를 막아 놓았다.

일단 대풍감으로 가면 울릉도등대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던 현포항 방면의 해안절경이 뛰어나다.
대풍감에서 본 해안절벽은 울릉도내 빼어난 절경의 하나로 울릉도(태하)등대와 함께 섬 비경을 보여준다.

 

 

날씨가 흐려도 이곳에서 보는 풍경은 매우 뛰어나다.

사진작가들이 꼽은 우리나라 10대 비경에 속한다.

 

 

 

대풍감 2 전망대에서 보는 대풍감 상단의 풍경이다.

위에서 보면 삼각형 형태로 양쪽 끝이 바다로 넓게 퍼진다.

 

대풍감 2 전망대에서 보는 울릉도등대

 

날씨가 흐리니 맑은 날 다시 와 이 비경을 한 번 더 봐야겠다.

 

 

 

방향을 돌려 왼쪽 해안을 따라 이동해 보니 대풍감의 다른 면모가 보인다.

 

해안으로 흐른 절벽은 급격히 식으며 더러 주상절리 형태를 보인다.

 

이쪽 해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못 볼 비경이다.

 

 

대풍감에서 보는 풍경은 울릉도에서 볼 수 있는 절경 중 하나이다.

대풍감 2 전망대는 태하 해안산책로에서는 오를 수 있다.

그런데도 울릉도등대에서는 갈 수 없게 막아 놓은 이유를 알 수 없다.

막아 놓은 것을 풀어야 더 많은 사람이 대풍감에서 보는 해안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