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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등등/사찰 탐방

조계종 8교구 본사인 황악산 직지사

by 즐풍 2021. 12. 12.

 

2018.1.21 (일)

 

100대 명산을 찍겠다고 김천 황악산을 등산하며 마지막 구간에 만난 직지사이다.

언제 작성하겠다는 기약도 없이 남겨뒀던 사잘 중 일부다.

이걸 끝내고도 여덟 개를 더 해야 하니 아직 갈 길은 멀다.

하루에 하나씩 작성하면 해 넘기지 않고 다 끝낼 수 있으나 별로 손대고 싶은 마음도 없다.

고름 내버려 둬 살 되는 건 아니니 하긴 얼른 해야 하는데....

 

 

 

□ 직지사

한국불교(韓國佛敎) 1천6백 년의 역사(歷史)와 그 세월(歲月)을 같이 하다.

 

서기 418년, 아도 화상에 의해 세워져 1천6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하고,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심어온 직지사는 아름다운 경내가 뭇 사찰 중에서도 으뜸이다.

소백산맥(小白山脈)의 준령(竣嶺)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서쪽 추풍령(秋風嶺)에서 잠시 머물러

관문(關門)을 이루었고,

다시 서남쪽으로 웅장(雄壯)한 산세(山勢)를 유지하며 달려와 힘차게 솟아오른

황악산(黃岳山) 동남쪽 산자수명(山紫水明) 한 곳에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直指寺)가 자리한다.

해발 1,111m에 달하는 황악산은 북쪽으로 충청도, 서쪽으로 전라도, 동남쪽으로는 경상도에

연이은 삼도(三道)의 도계(道界)에 접하였으며,

이 중심에 눌러앉은 본사는 경상북도(慶尙北道) 김천시(金泉市) 대항면 (代項面) 운수리(雲水里) 216번지이다.

 

황악산(黃岳山)의 황자는 청(靑), 황(黃), 적(赤), 백(白), 흑(黑)의 5색(色) 중에서도 중앙 색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따라서 예로부터 직지사는 해동(海東)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으뜸가는 가람이라는 뜻에서

동국제일가람(東國第一伽藍)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본사(本寺)로부터 김천까지는 12km이고, 다시 김천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230km,

부산까지는 218km로서 남한의 중앙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경부선(京釜線)을 비롯하여 태백산(太白山), 삼척(三陟)등 동해방면(東海方面)으로도 연결되는

한반도(韓半島) 교통의 요지이며,

예로부터 길상지지(吉祥之地)로 전해져 내려오는 곳에 직지사는 정좌(定座)하고 있다.

따라서 절의 위치가 산곡(山谷)이면서도 높지 아니하고, 야지(野地)인 듯하면서도 산사(山寺)의 풍취(風趣)가

항상 흘러넘쳐서 4계절 내내 도량을 참배하는 신남 신녀(信男信女)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잠시 황악산의 산세와 지형을 살펴보면, 최상봉인 비로봉(毘盧峰)에서는 경상, 충청, 전라의 3도를

한눈으로 굽어볼 수 있으며,

바로 아래에는 선유봉(仙遊峰)을 비롯하여 천룡봉(天龍峰)과 운수봉(雲水峰)이 있고,

조금 내려와서 절경대(絶景臺)가 있으며,

그 중턱에 운수암(雲水庵)이 있어 승경(勝景)을 이룬다.

운수봉(雲水峰)에서 다시 2km쯤 올라가면 백운봉(白雲峰)이 있고,

그 아래로 만경대(萬景臺)가 펼쳐진다.

다시 남서로 난 능선을 따라가면 망월봉(望月峰)과 함께 신선봉(神仙峰)을 만날 수 있으며,

그 위에 형제봉(兄弟峰)은 백운봉과 마주하여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다.

황악산은 대체로 3대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능여계곡(能如溪谷), 내원계곡(內院溪谷),

운수계곡(雲水溪谷)이 그것이다.

능여계곡에는 그 옛날 능여 대사(能如大師)가 황악산 계곡의 원천(源泉)을 찾았다는 멱원대(覓源臺)를 비롯하여

많은 대(臺)와 소(沼)가 있고, 두 곳의 폭포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능여천(能如泉)과 법수천(法水泉) 등의 약수가 있어 더욱 유명하다.

                                                                                                                [출처_직지사]

 

부도탑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제법 명찰이란 걸 알 수 있다.

 

가까이 오니 보이지 않던 부도탑이 더 많이 나타난다.

조선시대에 승려로 산다는 건 그리 평탄한 삶은 아니었다고 한다.

불교를 억압하던 시절이나 양반이나 정부에선 종 부리듯 해 요즘 말로 인권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그나마 일반 백성의 존경심과 불심으로 정진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승려생활도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불심이 높은 스님의 부도탑이 이렇게 많다는 건 직지사가 명찰이란 증거가 된다.

 

 

 

 

 

 

 

안양루

 

 

 

황악루

 

비로전과 3층 석탑

 

 

 

□ 비로전(毘盧殿)

고려 태조 때 능여 조사에 의해 처음 세워진 비로전은 천불상을 모시고 있으므로 천불전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병화를 모면한 3동의 건물 중 하나로 근년에 개수하였다.

정면 7간, 측면 3간의 맞배지붕이며 크기는 53평에 금단청을 하였다.

천불상도 같은 시기에 조성되었으며 과거, 현재, 미래의 삼천불 중 현겁 천불을 모신 것으로

1992년 개금불사가 완료되었다.

또한 비로전 앞에는 수령 500년이 넘는 측백나무가 있다.

                                                                              [출처_직지사]

 

명부전

 

□ 응진전(應眞殿)

응진전은 고려 태조 14년(931) 능여 대사가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에 전소되었던 것을 효종 7년(1656) 관음전으로 중건하였다가 뒤에 응진전으로 개액 하였다.

이 건물은 그 후 주지 녹원 화상에 의하여 중수되었는데,

이때는 기와 번와, 단청 및 석조 축대까지 신축(1970.3.1~1971.11.30)되었다.

                                                                                                    [출처_직지사]

 

사명각

사명대사의 영정이 봉안된 전각

 

□ 관음전(觀音殿)

관음전은 일명 원통전이라고도 하며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이다.

협시로는 남순동자와 해상용 왕이 있으나 이들은 대부분 후불탱화로 나타난다.

대승불교가 낳은 수많은 보살 중에서 관세음보살만큼 대중의 신앙대상이 된 보살도 드물다.

모든 중생의 애환을 대자대비로 거두어 주는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근기에 맞게

32 응신으로 화현 하여 중생을 구제한다.

                                                                [출처_직지사]

 

관음전

 

 

□ 대웅전(大雄殿)

신라시대 대웅전의 규모에 대해서는 미상이나 고려 이후 조선 초기,

적어도 정종대까지는 2층 5간의 특수한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사적기에 대웅대 광명전이라 하였는데 명칭부터 특이하여

혹시 당시에는 석가모니불과 비로자나불을 동시에 봉안했는지 알 수 없다.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선조 35년(1602) 사승 인수, 명례 등에 의하여 중창되었다.

현 건물은 이로부터 150여 년 후인 영조 11년(1735) 중건되었으며 당시 중건에는 주지 수변화상,

전 주지 설운 종익 그리고 태감화상을 비롯하여 산중 대중의 협력과 시주로써 이룩되었다.

그 관계자는 상대목 동래 운수사의 치백과 도목수 설인을 비롯하여 목수 20여 명과 야장, 개와공, 도감,

그리고 화사, 총찰도감, 도와도감 등 50여 명의 산중 대중과 900여 명의 시주가 참가하고 있는데,

이 명단은 중창 상량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들은 주지 녹원 화상에 의하여 연목 교체 및 기와를 번와(1969.3.1~1970.11.30) 할 때 확인되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대웅전의 주위 석축 및 축대를 새로 조성(1973.4.10~1975.6.20)하여 필역하였다.

다시 녹원 화상에 의하여 재차 연목 및 기와가 번와(1979.10.25~1980.1.14) 되었고,

1980년 8월에는 부분적으로 고색 금단청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직지사 대웅전은 경북 유형문화재 제215호였는데, 2008년 9월 3일 보물 제1576호로 지정되었다.

                                                                                                                     [출처_직지사]

 

 

 

당간지주

 

 

 

 

 

 

 

 

□ 청풍료(淸風寮)

청풍료는 주지 녹원화상에 의하여 신축(1966.4.1~1971.11.30)되었는 데,

형태는 팔작지붕이면서 귀틀을 낸 ㄱ자형이다.

본래는 7칸이었으나 현재는 정면 9칸, 측면 5칸의 금단청 건물이며 크기는 총 92.76평이다.

이 건물은 현재 본사의 성보 유물전시관인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출처_직지사]

 

청풍료와 멋진 반송

 

범종각

 

만세루

 

천왕문

 

 

 

 

 

동국제일가람 황악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