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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등등/사찰 탐방

국가지질공원이자 도립공원인 선운산의 선운사와 도솔암

by 즐풍 2021. 11. 13.

 

 

2021.9.22 (수)  선운산 등산과 함께 탐방

 

 

시간은 또 흘러 추석 다음날이다.

오전에 선운산 사자바위를 오르기 직전 세상이 끝날 것처럼 거센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졌다.

20여 분 우산을 펼쳐 비를 피했으나 이내 비가 그치는 변화무쌍한 날씨였다.

전라도 일대의 국지적인 날씨 변덕인지 몰라도 몇 번 안 되는 특이한 경험이었다.

 

선운사를 먼저 거쳐 등산하고 하산할 때 도솔암의 마애여래좌상과 장사송, 진흥굴을 본다.

선운산의 특이한 암질은 마애 여래좌상의 붉은 색상과 관음굴이라는 특이한 형상을 보여준다.

이 지역은 전북 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 한 지역이다.

사찰 탐방은 이러한 지질학적으로 특별한 점을 이해하고 보면 더 재미있다.

 

 

 

□ 선운사

 

선운사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산(兜率山)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다.

 

도솔산은 선운산(禪雲山)이라고도 하며,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기도 하였다.

도솔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선운사는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서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재들을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특히 눈 내리는 한겨울에 붉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선운사 동백꽃의 고아한 자태는 시인ㆍ묵객들의

예찬과 함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 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첫 번째 설은 신라의 진흥왕(재위 기간 540∼576)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크게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함으로써 이 절의 시초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에 신라의 왕이 이

곳에 사찰을 창건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시대적ㆍ지리적 상황으로 볼 때 검단 선사의 창건설이 정설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단 스님의 창건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 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이를 신기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다.

이 자리에 절을 세우니 바로 선운사의 창건이다.
검단 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절 이름을 '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또한 이 지역에는 전쟁 난민이 많았는데, 검단 스님이 불법(佛法)으로 이들을 선량하게 교화시켜

금을 구워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스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해마다 봄ㆍ가을이면 절에 소금을 갖다 바치면서

이를 '보은염(報恩鹽)'이라 불렀으며, 자신들이 사는 마을 이름도 '검단리'라 하였다. 

선운사가 위치한 곳이 해안과 그리 멀지 않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염전을 일구었던 사실 등으로 미루어보아,

염전을 일구어 인근의 재력이 확보되었던 배경 등으로 미루어 검단 스님이 사찰을 창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_선운사]

 

선운산 도립공원 입구

 

때는 바야흐로 꽃무릇이 한창 피어난 아름다운 시절이다.   

 

선운산을 이곳 사찰에선 도솔산으로 부른다.

일주문의 도솔산 선운사 편액이 눈에 띈다.

 

만세루

 

대웅보전

 

 

□ 대웅전


선운사 대웅전은 절에서 특별히 숭배의 중심이 되는 주요 불상을 모신 법당이다.
선운산은 구름 속에서 참선 수도하여 큰 뜻을 깨친다는 뜻인 '참선와운(參禪臥雲)'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대한불교 조계종 24 교구 본사로 189개의 승려 생활시설과 89개의 작은 절
그리고 144개의 굴을 거느리던 호남 제일의 사찰이다.

선운사는 6세기 백제 위덕왕 때인 577년에 검단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대웅전은  정유재란 때 거의 불에 탄 것을 광해군 때인 1610년에 다시 건축한 모습이며
그 뒤로도 수차례 수리하였다.
선운사 대웅전은 비교적 높은 석축 위에 세웠고, 정면이 측면에 비해 2배 이상 크다.
기둥의 일부는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여 자연미가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외관은 장중하며 안쪽은 단청 벽화가 매우 아름답고 세련된 모습이다.
천장의 수많은 용들이 구름 속에 몸을 감추고서 선운사를 수호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섬세하고 화려하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가운데로 하고 좌우에 부처를 모시는 보살을 두는데,
선운사 대웅전은 비로자나불을 가운데에 두고 좌우에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인 아미타 여래불과
중생의 병을 고쳐 주는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모든 부처의 육신이 아닌  진리의 모습은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을 일체로 보는
사상적 배경에서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오른쪽 건물 영산전

 

영산전

 

명부전

 

범종각

 

배롱나무에 화사하게 핀 꽃

 

 

 

선운사 경내를 지나 선운산으로 가는 길목

 

길 양쪽으로 꽃무릇이 피어 등산객을 맞아 주니 날씨와 달리 기분은 상쾌하다.

 

투구바위 옆 암릉에서 조망하는 선운사 전경 

 

 

선운산을 긴 타원형으로 돌고 천마봉을 끝으로 하산길에 오른다.

잠시 용문굴을 들려 옛 추억을 더듬고, 유문암에 포함된 산화철이 풍화되어 붉은 적색을 띤

마애여래좌상을 마주하게 된다.

이제부터는 선운사 말사인 도솔암에 들어선 것이다.

 

 

 

 

고창 선운산은 자연과 역사 그리고 지질의 이야기로 가득한 명소이다.

유문암질 응회암의 퇴적된 후 냉각되면서 생긴 절리 동굴과 보다 단단한 유문암으로 이루어진

낙조대와 천마봉 일대에는 유문암과 응회암 간의 차별 풍화작용이 생기면서

주로 유문암이 수직에 가까운 암석 절벽을 이루고 있다.

고려시대에 조각한 미륵불인 도솔암의 붉은 마애불상은 유문암에 포함된 산화철이 풍화되어

붉은 적색을 띠고 있고 그 아래에는 점성이 강한 유문암질 마그마가 흐르면서 생긴 유동구조가 나타난다.

                                                                                              [출처_국가지질공원]

 

□도솔암

 

도솔암의 정확한 창건 사실은 알 수 없으나,

사적기에는 선운사와 함께 백제 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이 만년에 왕위를 버리고 도솔산의 한 굴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바위가 쪼개지며 그 속에서 미륵 삼존불이 출현하는 꿈을 꾸고 이에 감응하여

중애사, 선운사, 도솔사 등 여러 사암을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백제의 영토였던 이곳에 신라왕이 머물렀을 가능성은 희박하여 창건 사항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미륵 삼존의 출현이나 ‘도솔(兜率)’이라는 이름 등은 도솔암이 미륵신앙의 배경 아래 창건된 사찰이다.

 

특히 도솔암 서편의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좌상(磨崖佛坐像)은

고려 초기의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 마애불을 ‘미륵불’이라 부르는 데서도 도솔암과 미륵신앙의 깊은 관련성을 잘 말해준다.

마애불좌상이 조성된 이래 이불 상의 배꼽에는 신기한 비결(秘訣)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하여,

동학농민전쟁 무렵에는 동학의 주도세력들이 현세를 구원해줄 미륵의 출현을 내세워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기를 꺼내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발굴조사에 따르면 이곳에서 출토된 기와에 ‘도솔산 중사(兜率山仲寺)’라는 명문이 있어

당시에는 절 이름을 중사라고도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 도솔암은 상도솔암, 하도솔암, 북도솔암 등 세 암자로 나뉜다.

상도솔암은 지금의 도솔천 내원궁으로서 1511년 지은(智誾) 스님이 중창한 뒤

1694년, 1829년에 각각 중수하고 1705년에 중종을 봉안하였는데, 조선말 이후 내원궁만 남기고 퇴락하였다.

 

하도솔암은 현재 마애불상이 있는 곳으로써 1658년에 해인(海印) 스님이 창건했다.

북도솔암은 지금의 대웅전이 있는 자리로서 1703년(숙종 29)에 최태신이 창건했다.

이처럼 각기 독자적인 암자였던 것이 근세와 와서 북도솔암을 중심으로 하나의 암자로 통합된 것이다.

현재 도솔암의 전각은 대웅전, 나한전, 도솔천, 내원궁,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솔암 내원궁에는 보물 제280호인 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마애불좌상은 보물 제1200호, 나한전과 내원궁은 각각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_도솔암]

 

 

 

 

 

내원궁으로 오르는 길은 설악산 금강굴로 오르는 것만큼 경사진 곳이다.

그래도 남는 것은 시간밖에 없는 데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 오르기 어렵겠단 생각에 올랐다.

현대적인 장비가 없던 시절, 이곳에 주춧돌과 나무, 기와를 옮기고 건물을 짓는 고생을 했다.

종교는 모든 고난을 극복할 힘이 있나 보다.

 

 

도솔천 내원궁

 

내원궁 뒤엔 조그만 산신각이 있다.

 

3층 석탑

 

 

□ 나한전

 

나한전은 나한, 즉 아라한을 모시는 곳으로 아라한은 공양을 받을 자격인 응공(應供)과 진리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인 응진(應眞)을 갖춘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나한전은 응진전이라고도 한다.
나한전 내부에는 흙으로 빚은 석가모니 불상과 16 나한상이 안치되어 있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보살상과 달리 나한상에는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 개성이 자유분방하게 표현되었다.
전설의 의하면 도솔암 용문굴에 이무기가 살면서 주민들을 괴롭혔는데, 이를 물리치기 위해
인도에서 나한상을 모셔와 이곳에 안치하였더니 이무기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 이무기가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도록 이무기가 밟고 간 바위 위에 나한전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안내문)

 

 

극락보전

 

수광전

 

종각

 

종무소

 

 

 

상도솔암, 하도솔암, 북도솔암으로 나뉘어 있던 걸 지금은 도솔암으로 묶어다더니

내려오면서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뉜 걸 확인할 수 있다.

이 세 암자를 다 합치면 본사인 선운사를 압도할 정도의 규모가 된다.

 

보제루 정면

 

 

□ 고창 선운사 도솔암 장사송

 

장사송은 이 지역의 옛 지명인 장사현에서 유리하여 붙은 이름이다.

옛날 신라 진흥왕이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진흥굴 앞에 있다 하여 진흥송이라고도 불린다.

장사송의 나이는 약 600살, 높이는 23m에 이른다.

장사송 가슴 높이 둘레 3m에 동서남북 17m로 가지가 퍼져 있으며,

지상 40cm쯤에서 가지가 난 흔적이 있어 키가 작고 가지가 옆으로 퍼진 소나무인 반송으로 분류된다.

나무줄기가 지상 2.2m 높이에서 크게 두 갈래로 갈라졌고, 그 위에서 다시 여덟 갈래로 크게 갈라져

자라고 있어 그 모습이 마치 우리나라 팔도의 모습을 나타내는 듯 수려하다.

나무에 모양이 아름답고 생육 상태가 양호하며, 보기 드물게 오래된 소나무로써 보존 가치가 인정돼

천연기념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장사송 옆에 있는 돌 비석 뒷면에는 장산녀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장사녀는 고려사 등에 전해지는 백제 가요 선운산곡에 나오는 인물이다.

선운산곡에서 장사녀는 선운산에 올라가 정역(征役)<조세와 부역>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노래를 부른다고 전해진다.  (안내문)

 

 

 

선운사 진흥굴

 

이 굴은 신라 24대 왕인 진흥왕이 말년에 왕위를 버리고 머물렀다고 하여 진흥굴이라 불린다.

이곳 암석은 유문질암 응회암이다.

풍화작용을 받아 갈라진 틈(절리)이 계속 성장하면서 천정과 옆면의 암석 표면이 양파 껍질처럼

층상으로 벗겨지는 박리 작용에 의해 형성된 자연동굴에 인간의 손길이 가해져 현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안내문)

 

 

 

 

 

 

 

선운사 송악

 

선운사에는 3대 천연기념 나무가 있는데 동백나무숲과 선운사 입구의 송악 나무,

그리고 장사송 나무라고 한다.

송악은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늘 푸른 덩굴식물로 줄기에서 뿌리가 나와

암석 또는 다른 나무 위에 붙어 자라는 나무다.
  
고창 삼인리의 송악은 선운사 입구 개울 건너편 절벽 아래쪽에 뿌리를 박고

절벽을 온통 뒤덮고 올라가면서 자라고 있다.

수백 년은 되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길이가 15m 정도, 가슴 높이 둘레가 80㎝ 정도의 아주 크고 오래된 수령의 나무다.      

                                                             [출처_오마이뉴스 기사]

 

 

선운산은 도립공원이자 국가지질공원이라 산행은 무척 재미있다.

등산할 땐 선운사를 거치게 되고, 하산할 땐 도솔암을 지나 다시 선운사를 통과한다.

산행은 투구바위를 거처 국기봉, 청룡산, 천마봉을 지나 용문굴을 다녀오는 등산코스가 좋다.

이런 멋진 코스에 도솔암의 마애불, 장사송, 진흥굴 등 많은 볼거리와 만나게 된다.

가을 꽃무릇이 필 때가 가장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