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_111
2021.7.23 (금) 12시 전후 탐방
장생포의 고래잡이 역사를 살펴보면 1891년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태평양어업 주식회사를 설립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그 후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포경업을 독점하여 전국에 있는 포경기지를 정비하면서
장승포가 포경업의 중심지로 주목되었다. (안내문)
□ 반구대와 암각화
예로부터 대곡천 계곡은 이름난 곳으로 인근 천전리 각석 비문을 통해
삼국시대에 이미 이 일대가 알려진 장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곡댐 건설을 위해 수몰한 지역 발굴 결과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유물이 나왔다.
18 세기에 편찬된 「여진도서」에서 "... 마치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이를 반구대라 한다."라는
기록으로 지명의 유래를 알 수 있다.
고래 말 포은 정몽주가 언양에 귀양살이를 하면서 즐겨 찾는 곳이라 하여 포은대로도 불리며,
현재 반구서원 맞은편 바위 벽면에 포은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또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반구'라는 그림이 남아있어 이곳의 풍경이 빼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반구대 암각화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한 것 같다.
과거 어떤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1971년 발견 당시 동네 주민들으 증언으로 암각화를 찾았다는 사실로 미루어,
동네 사람들은 분명 알고 있었고 혹시 이 마을에 대대로 전해오다가 잊힌 바위그림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이다. (안내문)
암각화를 현실감 있게 그림으로 표현한 것
장생포의 고래잡이가 한창이던 70~80년대 6,500여 명에 이르던 주민 수가 현재 3천 명 정도로 줄었다.
현재 울산시 남구 장생포는 전국 고래 관광도시를 지향하며,
2008년 지식경제부로부터 고래 문화특구로 지정받아 운영하고 있다.
진양 5호에 전시된 고래뼈
포경선 진양 5호 올라가는 길
국제포경위원회에서 1985년 12월 31일 이후 상업적 포경을 금지하기에 따라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고래잡이를 하던 선박들이 하나둘 방치되었다.
장생포 고래박물관은 사라져 가는 포경 유물의 보존 및 계승을 목적으로로 지난
2005년 박물관 개관에 맞춰춰폐포경선을 기증받아 복원 후 전시하고 있다. (안내문)
실제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나 2층 전시실은 폐포경선을 이용한 것이다.
고래수염
고래 턱뼈
척추뼈
참고래 수염
고래고기
고래 잡는 작살 등 도구
맨 밑의 발사물 우측엔 창을 꽂아 쏘는 것이다.
작살에 꽂는 창
국제포경위원회에서 상업적 포경을 금지하기 전인 1985년 이전엔 고래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지금도 간간이 그물에 걸려 죽은 고래는 시중에 유통되기도 한다.
그런 고기가 냉동되어 식당에서 판매하기도 한다는 데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언제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고래는 고래대로 안전하게 자신의 생명을 다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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