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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뒤늦게 끝내는 제주국립박물관

by 즐풍 2019. 12. 3.

  

 

 

 

 

 

 

2019.09.08. 일  오전 10시 전후  비

 

 

지난 6월 형제들과 함께 6일간 제주 여행을 했다.

6일은 긴 거 같아도 순식간에 지나가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데 제주 여행을 다시 할 기회가 기적처럼 찾아왔다.

퇴직을 1년 앞두고 공로연수 들어간 직원이 받는 미래설계 교육이 인원 부족으로 우리 청에 7명이 배정되었다.

운 좋게 교육 대상에 선정되어 추석 다음 주부터 일주일간 교육을 받게 된다.

 

추석 연휴 전 3일 휴가를 내면 주말을 포함해 무려 9일간 여행을 즐긴 후 교육에 참석하면 된다. 

그야말로 황금 같은 연휴를 즐긴 후 교육받으면 된다.

이런 기회를 목우가 놓치지 않고 여행에 합류하며 외로움은 덜고 기쁨을 배가시킨다.

갈 곳은 많은 제주에서 이번엔 여러 오름과 곶자왈, 우도, 추자도 등 지금까지 안 가 본 곳 위주로 여행할 생각이다.

휴가 전부터 제주의 숨겨진 비경을 검색하기 바쁘다.

 

어제 제주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태풍 링링으로 새벽 비행기를 두세 번 변경했으나 결국 취소해야 했다.

태풍 링링이 빠져나가긴 했으나 오늘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해 비가 내린다.

비가 오니 실내 공간인 제주국립박물관으로 직행해 제주 도민의 생활을 전시된 유물로 짐작하기로 한다.

몇 년 전 처음 왔을 땐 일부 공사 중이었으나 이젠 모든 시설이 완비됐으므로 천천히 관람한다.

제주는 육지와 많이 떨어진 데다 예전엔 농작물 소출이 적어 척박하게 살았어도 훌륭한 유물이 많다.

 

 

 

 

 

 

 

 

 

 

 

 

 

제주섬 사람들

제주'도'는 '도 道'이자 '도 島'이다.

용암으로 만들어진 화산섬으로 살기에는 척박하고 힘겨운 생존의 공간이었다.

섬에서 농사 짓기는 어려웠고,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

해산물을 채취했고, 배를 만들어 주변 지역과 교역을 시도했다.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는 열린 섬으로 여러 문화가 들어오기도 했고, 고립된 섬으로 고유의 전통을 유지하기도 했다.

제주의 자연에서 사람들은 삶의 기본이 되는 의식주를 해결하며 곳곳에 깃들어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신을 섬겼다.

그렇게 제주인은 소박하지만 강건한 그들만의 문화를 싹틔워 나갔다.  (안내문)

 

 

 

 

 

 

 

 

 

 

 

 

 

 

 

 

 

 

 

 

 

 

 

 

 

 

 

 

 

절해고도

 

조선시대 제주도는 임금이 있는 한양과 가장 먼 지역이었다.

게다가 '섬'이라는 고립성과 폐쇄성이 더해지면서 추방과 격리라는 형벌을 내리는 최적의 장소로 원악도(遠惡島)라 불리기도 했다.

고려시대 원나라가 제주에 죄수를 보내며 시작된 유배지로써의 제주는

조선시대에 정치적인 죄인을 보내 철저하게 고립시키는 절도안치(竊盜安置)의 유배지가 되었다. (안내문)

 

 

 

 

 

 

 

 

 

 

 

 

 

 

 

 

 

 

 

 

 

제주도에 유배된 사람들

 

조선시대 제주도에 유배된 사람들은 광해군을 비롯해 왕족, 양반, 도적 등 다양한 신분을 가졌다.

사화와 당쟁이 심해지면서 제주도 유배는 정치인이 다수를 차진했다.

이들의 행동은 엄격히 제한되었지만, 성리학적 학식과 덕망을 갖춘 선비로서 후학을 양성하며 지낸 유배인도 있었다.

김정희(1766-1856)는 제주에서 추사체를 완성하였고 지제 지역의 학문과 예술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안내문)

 

 

 

 

 

 

 

 

 

항파두리성 갑옷

항파두리성 내성 터에서 출토된 철갑옷이다.

전체적 형태는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의 미늘갑옷으로 추정한다.

 

 

 

 

김정희 편지

 

김정희가 1842년 3월 4일 부인에게 보낸 한글 편지이다.

양자인 상무가 제주에 오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극구 만류하고 있다.

당시 제주 왕래는 몹시 험난하였으므로 종손의 안전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그리고 며느리를 들일 때 제사 차리는 일을 가장 먼저 가르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안내문)

 

 

 

 

 

 

감귤봉진

 

귤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따듯한 제주도에서만 재배되었고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과일로 국가에서 특별히 관리했다.

제주에 부임한 관리는 감귤나무의 수를 일일이 기록하고 수확물을 모두 거두어 한양으로 보냈다.

감귤을 운반할 때 짓눌려 훼손되는 걸 방지하고자 짚단으로 싼 후 나무통에 넣어 보냈다.

귀한 제주 감귤은 왕이나 높은 관리들만 먹을 수 있었다. (안내문)

 

해녀복

 

 

 

 

탐라토산, 제주의 특산물

 

탐라의 주요 교역품이었던 전복, 바닷말, 거북껍질 등의 물품은 조선시대에도 귀한 특산물이었다.

제주말은 가장 중요한 공납품이었으며 귤과 표고버섯, 미역 역시 특별한 진상품이었다.

공산품의 관리와 운반은 제주목사의 중요한 업무였다.

제주인은 제주의 특산물과 쌀, 소금 등 생필품을 교환하며 살아가야만 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진상품 수량은 계속 늘어나고 생필품을 얻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게다가 관리들의 착취까지 더해져 이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는 사람이 생기기도 했다. (안내문)

 

 

 

 

 

 

 

 

 

공마진상

 

제주말은 공마로 진상하기 위해 제주 섬 중산간에는 10개의 목마장을 설치했다.

제주목사의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한 가지는 공마를 점검하고 수송하는 일이다.

선택된 말은 조천과 화북의 포구에서 배로 실어 보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말의 진상 때문에 제주도 사람은 생활 속에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안내문)

 

 

 

 

 

 

 

 

 

 

 

 

특별 전시실에는 영재발굴단에 나왔던 전이수의 작품이 전시되어 잠시 돌아본다.

 

 

 

 

 

 

 

 

제주에 도착해 제일 먼저 둘러본 제주국립박물관이다.

여지껏 밍그적 거리다가 이제야 마무리한다.

이 포스팅 외에도 한두 개 더 해야 마무리 된다.

나머진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2019년은 안 넘겨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