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_24
2021.3.23. (화) 오후에 잠깐
오후에 가로수길 애플스토어에서 아이 패드 프로를 구입하고 가까운 도산공원에 잠깐 들린다.
도산공원은 독립운동가인 안창호 선생을 기리는 공원으로 설립 목적은 아래와 같다.
도산 기념관 정문
도산 안창호 선생은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워 후학을 양성했다.
나라가 망하고 의병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자 일제는 대대적인 의병 토벌작전을 수행한다.
국내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기 힘들자 홍범도, 김좌진을 비롯한 의병이 만주와 연해주 일대로 작전지역을 변경한다.
이때 계몽활동을 하던 이동녕, 이희영, 박은식, 신채호, 안창호, 이승만 등도 간도와 만주 등지로 옮긴다.
1907년 미국에서 돌아온 안창호는 양기탁, 이갑, 윤치호 등과 신민회를 결성한다.
국왕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를 수립하려는 정치단체를 지향한 것이다.
신민회는 1910년 4월 일제의 감시를 피해 국내를 탈출하여 산동반도의 청도로 자리를 옮긴다.
도산 기상
□ 도산 안창호
일제강점기 애국계몽 활동을 전개하고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로 호는 도산.
가난한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나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했으며 공부를 마친 뒤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1907년 신민회를 조직, 19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결성하였다.
1926년 2월 상하이로 돌아와서 만주에 흩어진 군사 활동을 통일하여 대독립당을 결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민족운동의 이념과 노선이 통일되지 못해 실패로 끝났다.
1932년 4월 윤봉길의 폭탄 투척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4년형을 선고받은 뒤 가출옥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병보석으로 나왔으나, 이듬해 사망했다. [다음 백과]
왼쪽부터 김구, 안창호, 이탁(1922.11.9)
동우회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될 당시의 도산 사진
안창호 선생 동상
도산 선생 내외분 묘역
두 분이 합장된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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