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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경기 인천

평택의 부락산-태봉산-정도전 묘역과 사당 탐방

by 즐풍 2021. 3. 6.

2021_17(대중교통 산행 순례_08)

 

 

2021.3.5. (금) 10:12~16:36(6시간 24분 산행, 42분 휴식, 이동 거리 18.3km, 평속 3.1km/h)

 

 

지금까지 장기 휴가를 무난하게 지냈는데, 어느 순간부터 좀 지루하단 느낌이다.

직장을 다니면 일정대로 움직이니 어느 정도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긴장감 없이 나음대로 여유를 즐긴다고 생각했으나 요즘은 너무 늘어진다는 생각이다.

살아있다는 걸 느끼려면 밖으로 나가 숲과 대화하고 교감을 나누는 수밖에 없다.

 

지난번 평택의 팔룡산과 덕암산을 다녀왔다.

그때 태봉산까지 다녀올 생각이었으나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산행 동력을 잃어 바로 하산했다.

오늘은 이 산과 한 묶음에 속한 부락산에서 시작해 태봉산 찍고 정도전 묘역까지 다녀올 생각이다.

버스가 한 번에 부락산 입구까지 가니 전철로 갈아탈 일이 없어 좋다.

 

 

부락산, 태봉산, 정도전 묘역 신행 코스

 

부락산, 태봉산이 각각 150m, 159m이니 고도감이 거의 없는 산책 코스다.

산이 만만하니 동네분들 산책 삼아 편안한 복장이다.

즐풍 역시 배낭 없이 카메라와 스틱만 들었다.

아무리 반상의 계급이 엄격하던 시절이라도 이웃끼리 인사를 건넬 수 있으나 뭐가 그리 매정한가.

코딱지만큼 작은 나라에서 이것저것 다 가리니 발전이란 게 없었다.

기원전 로마에선 당시 세계라 할 수 있는 여러 나라를 정복하며 그들에게 로마 시민권까지 부여했다.

시민권은 물론 끝내 황제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으니 열린 사고를 갖아야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지금도 여전히 외국인 노동자를 벌레만큼 여기지 않는 일부 국민성을 볼 때 한심하기 그지없다.

우리도 일제 때 하와이 노동자로 끌려가 갖은 고생을 다하고,

독일의 광부, 간호사, 중동의 건설 노동자로 나가 외화를 벌어들이며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이런 과거를 잊고 좀 살만하다고 외국인 근로자를 업신여기고 임금도 떼어먹는 못된 양아치가 곳곳에 판치니 부끄럽다.

 

왼쪽으로 표시된 이정표가 좀 못마땅하다.

부락산 정상 가는 길에 부락정은 80m 지점에 있다는 뜻이다.

오른쪽 둘레길로 가면 1.2km라는 데, 왼쪽으로 가도 같은 부락산 정상인 데, 어떻게 80m 밖엔 안 될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부락정을 괄호 속에 넣으면 아래 (80m)와 같은 꼴이니 이해가 더 빠르겠다.

부락정

 

앞서 부락정이 있었으니 이건 다른 이름일 텐데, 확인을 못 했다.

옷을 가볍게 입고 덧옷을 하나 걸쳤더니 덥다.

벌써 반바지나 반팔을 입은 성급한 등산객도 눈에 띈다.

부락산 정상의 산불감시초소

불악산이 부락산으로 음이 바뀌며 한자도 따라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는 말씀

안내문을 보면 원균은 여전히 대접을 받지 못한다.

 

 

코로나가 극성이자 누군가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 우측통행이라고 일방통행로로 만들었다.

길지 않은 코스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안내문 따라 이동한다.

평택의 하얀 고개

고지도를 보면 이 고개에 흰치고개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안내문)

 

치(峙) 자에 고개란 뜻이 있으니 고개가 뒤에 더 붙어 중복됐다.

흰 고개나 하얀 고개가 맞는데, 역전앞처럼 습관적으로 붙였다.

고개를 가로지른 4차선 도로에 신호등이 없으니 차량은 쌩쌩거리며 잘 달린다.

도로 위로 생태통로를 만든 게 낮엔 사람 전용통로가 됐다.

2020년에 만들었다니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은 생태통로다.

백현원(白峴院)은 일종의 여행자를 위한 숙소로 이해하면 되겠다.

 

공당문답과 맹씨행단이 궁금하면...

 

호두과자 원산지인 광덕산과 설경이 멋지다는 설화산, 그리고 맹씨행단

2021_08(지하철 산행 순례_02) 2021.2.4. (목) 08:58~15:46(6시간 48분 산행, 30분 휴식, 이동 거리 15.9km, 평속 2.4km/h) 최저 기온 영하 8℃ 산에 가면 산이 좋아 산에서 살고 싶다. TV를 틀고 영화를 보면 하..

blog.daum.net

 

 

덕암산 방향으로 가려면 이 산불감시초소 옆길로 내려가야 한다.

때로는 이런 솔잎 길을 폭신폭신하게 걷거나 참나무 잎을 바스락거리며 걸을 때도 있다.

안내문에도 있듯 경주 이 씨는 우리나라 최고의 양반 가문이다.

 

 

태봉산을 가려면 고개를 살짝 오르는 마지막 구간 왼쪽에 이 묘소를 만나게 된다.

묘 우측 끝 잔디를 밟고 500m 진행하면 고압전선 탑이 선 곳이 태봉산 정상이다.

오토바이를 끌고 다녀 시끄러웠는지 등산로 옆으로 철조망 담장을 쳐 인심이 고약하게 느껴진다.

라온고등학교 버스 정류장에서 태봉산 정상까지 6.2km로 2시간 10분 거리다.

맨 위 안내지도에 6.2km를 16.2km로 잘못 표기됐다.

왼쪽 철조망이 산 주인의 인심을 대변한다.

 

아래쪽에 자작나무 숲이 보인다.

앞쪽에 다른 나무가 가린 게 좀 아쉽다.

봉화 정 씨에 우리가 잘 아는 삼봉 정도전 선생도 있다.

이 지역이 봉화 정씨의 집성촌이란 말씀

 

 

 

정도전 묘

 

정도전은 신원되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흘러오면서 무덤이 실전되어 후손들은 가묘를 만들어 제사 지내고 있다.

족보에는 경기도 광주시 사리원이며 부인 최씨의 묘는 양재역 상초리에 있다고 적혀 있다.

반계 유형원이 쓴 《동국여지지》에 의하면 '정도전의 무덤은 과천현 동쪽 18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옛날 과천현청이 있던 곳에서 동쪽으로 18리를 떨어진 곳을 분석한 결과,

서울 서초구 양재역 인근 외교안보연구원(현 국립외교원) 우면산 기슭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곳에는 오래된 무덤 몇 기가 있었는데 그중 정도전의 무덤으로 보이는 무덤을 1989년 한양대학교에서 발굴했다.

이 무덤은 오래전에 여러 번 도굴한 탓에 유물이 적었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질이 우수한 백자들이 다수 발견되었으며 목관에서 머리만 있는 유골이 발견되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몸통이 없는 걸로 보아 애초에 머리만 묻힌 무덤으로 보였다.

무덤의 규모는 조선 개국 1등 공신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초라했지만 부장품의 질,

남아있는 인골의 상태 등으로 볼 때 참수당한 정도전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쉽게도 도굴꾼들이 가져갔는지 지석이 있을 자리에 지석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에 문중에서는 결정적인 증거인 지석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배하고 찾아다녔으나,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정황상 유골이 자신들의 조상일 가능성은 높아도 물증이 없었지만 문중에서는 일단 정도전이 아니라고 해도

오래전에 돌아가신 우리의 조상이라면서 삼봉사 뒤편에 일단 가매장했다.

언젠가 정도전의 것으로 확정이 되면 정식으로 매장하려는 듯.

그래서 삼봉의 가묘는 양재동에 있는 게 아니라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 산대마을에 있다.

산대마을은 정도전의 후손인 봉화 정씨 집성촌이기도 하다.

정도전의 사당인 문헌사와 정도전 기념관도 이곳에 있다.              [출처_나무위키]

위 내용으로 보아 일단 가묘 형식으로 만든 묘지이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보니 1989년에 비를 세운 것으로 쓰여있다.

 

 

 

정도전 사당을 갔으나 전시실은 둘러보지 않고 사진 두어 장 찍고 원점 회귀한다.

귀로에 특별한 풍경이 없으니 사진 더 찍을 것도 없다.

흔치 휴게소

아침을 느지막이 먹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아무 준비도 없이 길을 나섰다.

식사 시간이야 어떻게 되든 배꼽시계는 12시가 좀 넘자 배가 고프다.

한 시간을 더 걸어 정도전 사당 주변의 식당에 들어갔으나 카드 결제가 안 된다기에 그냥 나왔다.

오후 세 시에 흔치 휴게소 아래 식당에 들어가 묵밥을 시켜 먹고 나서 겨우 기운을 차린다.

배 고픔과 피로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제부터 부락산 분수공원이다.

이곳이 분수인지 모르나 연못이 말라있어 분수는 볼 수 없고 소나무 세 그루가 멋지게 보인다.

산수유나무에 꽃이 피었다.

올봄에 보는 첫 꽃이다.

 

만만하게 보고 갔던 부락산, 태봉산, 정도전 사당까지 왕복 거리가 제법 길어 허기로 고생했다.

주머니에 육포라도 가져갔으면 면했을 허기에 기력을 잃었다.

묵밥으로 늦은 끼니를 때우고 산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