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_04
2020.01.12. 일 09:40~16:03(전체 거리 19.08km, 전체 시간 06:23, 휴식 시간 25분, 평균 속도 3km/h) 흐림
이번 겨울은 유난히 따듯한 결과, 가장 추울 때인 1월 초에 많은 비가 내렸다.
기상청은 지난 6일부터 3일 동안 전국 대부분의 지역의 누적 강수량이 역대 가장 많았다고 9일 밝혔다.
7일 서울 59.7㎜, 춘천 78.8㎜, 대전 69.7㎜ 등 많은 지역이 역대 1월에 내린 것 중 가장 많은 양의 비가 하루에 내렸다.
특히 제주 삼각봉은 7일 하루 215.5㎜의 강수량은 가장 추운 겨울철에 내린 특별한 기록이다.
이렇게 많이 내린 비가 일부 산간지역엔 눈으로 변한 곳도 분명히 있겠다.
설악산이나 지리산, 태백산, 덕유산, 소백산처럼 높고, 춥고, 바람 많은 곳이 그럴 것이다.
덕유산이나 남덕유산, 설악산, 태백산의 설경이나 상고대는 이미 몇 번 봤으니 별로 궁금하지 않다.
2013년 1월에 다녀온 소백산 칼바람과 상고대를 잊을 수 없어 기회만 노리고 있다.
주초에 내린 비가 소백산에선 눈으로 바꾸고 그 이후 추위와 바람으로 상고대가 생겼겠단 생각이다.
소백산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제공되는 실시간 영상을 보니 뿌옇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보인다.
북부사무소에 전화로 확인하니 비가 내려 눈이 없다기에 이상해 실시간 영상을 다시 보니 이번엔 제법 눈이 많이 보인다.
다른 지역 사무소로 확인하니 눈이 제법 많이 내렸다기에 토요일보다 날씨가 좋다는 일요일에 소백산을 가기로 한다.
토요일 오후 6시부터 일요일 오전 8시까지 소백산 예보는 습도 75~80%, 기온 영하 6~10℃, 북서풍에 풍속 4~8m/s이다.
상고대가 형성되기 딱 좋은 조건에 날씨까지 청명하다니 예감이 좋다.
일요일 소백산 산행이 가능한 인천 어느 산악회에 가입 후 산행을 신청했다.
이 산악회에선 즐풍이란 내 닉이 "즐풍목우"의 준말이란 것과 그 뜻을 분명히 알고 환영하니 기분이 좋다.
□ 소백산 국립공원
1987년 18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322.011㎢로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에 이어 산악형 국립공원 가운데 네 번째로 넓다.
해발 1,439.5m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국망봉(1,420.8m), 연화봉(1,383m), 도솔봉(1,314.2m) 등이 백두대간 마루금 상에 솟아있다.
퇴계 이황이“울긋불긋한 것이 꼭 비단 장막 속을 거니는 것 같고 호사스러운 잔치 자리에 왕림한 기분”이라며
소백산 철쭉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것처럼 수많은 탐방객이 봄철 소백산국립공원을 방문하고 있으며,
겨울이면 장중한 백두대간 위에 설화가 만발하는 절경을 이룬다. (소백산 국립공원 안내문)
소백산 등산코스
이번에 함께하는 산악회는 친목 산악회로 처음 온 회원을 위해 회원 전체를 한 명씩 소개한다.
내 닉 즐풍목우는 "바람결에 머릴 빗고, 빗물에 목욕하는 한이 있더라도 산행을 이어간다."는 의미를 정확히 소개한다.
게다가 흰머리에 유난히 검은 눈썹이 멋지다는 설명까지 곁들여 주니 얼마나 멋진 소개인가.
처음 산행 공지를 봤을 땐 삼가리 비로봉으로 오른 후 죽령으로 하산하는 A팀과
천동리로 하산하는 B팀으로 나뉘었으나, 들머리가 어의곡리로 바뀌고 하산 코스는 같다.
전체 거리는 다소 증가했으나 즐풍에겐 별 의미는 없다.
처음엔 A팀으로 가는 회원이 10명 가까이 됐으나 대장이 시간이 촉박해 다소 힘들 거라고 한다.
게다가 대장은 금요일 자전거를 탔고 토요일엔 산행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죽령까지 리딩하는 걸 자신 없어 한다.
즐풍은 리딩 없어도 길은 잘 아니까 종주팀끼리 가겠다고 해 결국 네 명만 죽령까지 가기로 한다.
종주팀엔 그동안 블로그를 통해 암릉을 즐기는 걸 알게 된 까꿍이님 부부도 동행한다.
즐풍이 블로그를 통해 알고 있다며 인사를 건네자 그분도 전에 고봉산에서 즐풍을 봤다며 아는 채 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우연히 산에서 만나게 된다.
종주팀은 산행할 거리가 먼 만큼 서두른다는 게 늦맥이재로 오르는 들머리까지 간 후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알바 거리는 1.3km에 18분으로 B팀과 벌어진 격차를 줄여야 하는 만큼 속도전에 돌입했다.
흐르는 땀을 연신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올라가야 했다.
비로봉이 가까워지자 벌써 다른 코스로 올라가 비로봉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만난다.
정상엔 칼바람이 엄청나게 드세 추위가 말이 아니라고 한다.
정상을 만나기도 전에 만나는 상고대로 벌써 산행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소백산은 어의곡 삼거리에서 비로봉으로 오르는 구간과 비로봉에서 주목 군락지로 하산하는 구간의 칼바람이 유명하다.
칼바람이 너무 쎄 제대로 걷기도 힘들다.
연신 바람에 저항하며 곧게 가려고 하지만, 바람에 밀려 비틀거리기 일쑤다.
산행 시작할 땐 여러 산악회가 엉켜 진행하기도 더뎌 비로봉에서 사진이나 제대로 찍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비로봉까지 오르며 갈 길이 바빠 많은 등산객을 추월했고, 정상은 너무 추워 몇 사람 되지 않는다.
즐풍은 워낙 추위에 약해 칼바람에 머리가 빠개질 듯 고통스럽다.
사진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함께 올라온 회원을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아 결국 혼자 내려간다.
까궁이님 부부는 아직 올라오기 전이라 간다는 말도 못 하고 내려서며 각자도생에 맡기기로 한다.
비로봉에서 죽령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칼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밀려 올라오는 사람과 살짝 부딪쳤다.
(왜소한 체격이라 밀려서) 미안하다고 했으나, 그 역시 상황을 알기에 괜찮다고 한다.
비로봉은 이렇게 바람이 심해 나무조차 자라지 못하는 수목한계선이다.
새벽 다섯 시에 식사했으니 이미 점심 먹을 때는 지났다.
12:20경 주목 감시초소로 들어가 점심을 먹는데, CJ컵반의 국물이 너무 차다.
옆에 버너를 가져와 음식을 따듯하게 조리해 먹는 그들이 부럽다.
천동리 다리안관광지에서 올라와 능선과 만나는 삼거리다.
이곳만 해도 바람이 많이 잦아드는 곳이라 상고대를 만나기도 힘들다.
이런 모습으로 죽령까지 긴 거리를 이어지면 상고대 비경도 볼 수 없겠단 불길한 생각이 든다.
비로봉과 왼쪽 엔주목 감시초소
이 구간부터는 온전히 종주팀 네 명만 보게 되는 풍경이다.
반면, 종주팀은 천동리로 하산하며 보게 될 주목 군락지의 상고대는 포기한다.
즐풍은 더우나 추우나 늘 버프를 쓴다.
오늘은 바람이 심해 버프 두 개 꼈는데도, 얼굴이 시리다.
이런 날씨에도 많은 사람이 버프나 마스크 없이 맨 얼굴로 다니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얼굴이 검게 또는 푸르거나 빨갛게 언 모습이 안쓰럽다.
이런 추위나 햇볕이 따가운 여름에 얼굴이 노출되면 노화가 빨라 쉬이 늙어 보인다.
맑겠다는 일기예보는 빗나가 잔뜩 낀 구름에 안개가 밀려오며 오후 한 시가 지났는데도, 개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벼르고 별러 온 소백산인데,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상고대가 햇빛에 반짝인다면 얼마나 멋질까?
천동삼거리에서 없던 상고대가 다시 보이니 그나마 기분이 괜찮다.
바람에 실린 안개가 표지목과 안내판에 달라붙으며 언 상고대다.
오늘 설악산이나 지리산, 태백산, 함백산, 덕유산 등 전국의 고산엔 이런 상고대가 가득하겠다.
한낮에도 안개는 바람 따라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 지나가며 나무에 달라붙는다.
상고대는 밤낮으로 그 두께를 더해 간다.
블야 백두대간 인증 장소인 소백산 제1연화봉에서는 바람도 잠시 쉰다.
이런 상고대가 이번 주 내내 계속된다면 주말엔 더 두껍게 덮여 등산객을 맞을 것이다.
바닥엔 바닥대로 눈이 쌓였고, 나무엔 나무대로 활짝 핀 상고대가 아름답다.
1연화봉에서 갑자기 고도를 낮추며 떨어진 후 다시 한껏 고도를 높이며 연화봉을 올라가야 한다.
어의곡이나 죽령 또는 희방사에서 산행을 시작해 종주하자면 이곳이 절반을 지나는 지역이라 제일 힘든 구간이기도 하다.
내려갈 땐 좋았는데, 1.8km를 걸어 연화봉을 오를 땐 제법 지친다.
연화봉을 코앞에 두고 만난 이정목에 좌측은 희방사라기에 연화봉으로 가려고 우측으로 난 이 나무데코로 걸었다.
30m쯤 가다 연화봉을 우회하는 길이란 걸 알고 다시 돌아가 연화봉으로 오른다.
가냘픈 나무는 상고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추위가 가시며 얼음이나 상고대가 녹아야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잠깐 뚫린 하늘로 햇살이 들어오자 상고대는 더 흰색으로 바뀐다.
온종일 맑은 날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산행 들머리에서 알바한 1.3km를 포함해 연화봉까지 오는데, 11.65km에 꼬박 네 시간 17분 걸렸다.
워낙 추운 날씨다 보니 주목 감시초소에서 식사한 15분 정도만 쉬었을 뿐이다.
쉬겠다고 의자 펼치고 앉으면 체온이 떨어져 바람을 막아주는 비닐 쉘터 없이는 쉬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겨울 산행은 휴식도 사치라 산행 시간이 단축된다.
소백산 천문대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멀리 희미하게 제2연화봉의 대피소가 보인다.
천둥 삼거리에서 잠깐 없던 상고대가 제1연화봉부터 제2연화봉 대피소까지 상고대 터널을 이룬다.
죽령에서 올라오는 등산객은 이곳의 상고대에서 탄성과 함께 인증샷을 찍기도 한다.
소백산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 인근엔 키 작은 관목이 많이 자란다.
이 구간만 지나면 제법 키 큰 나무들이 많아진다.
천문대
천문대에서 죽령 주차장까지 7km를 가는 동안 소백산 국립공원의 사륜구동 SUV가 한 대 올라갔다 내려간다.
청정 지역에 경유차가 지나가자 새 차인데도, 매연 냄새가 유난히 지독하게 느껴진다.
공무 수행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산에선 차량이 지나는 것도 대표적인 민폐 중 하나다.
상고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누운 나무도 자주 보이고 어떤 나무는 부러져 아예 잘라낸 것도 있다.
잠깐 사이에 하늘이 열렸다.
하늘은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며 상고대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는다.
산행 종료를 앞두고 이런 비경을 보여주니 그나마 감사한 일이다.
올해도 별로 눈이 없는 겨울인데, 연화봉에서 죽령까지 발로는 눈길의 감촉을 느끼며 눈으론 상고대를 원 없이 본다.
비로봉의 칼바람이 두렵다면 죽령에서 연화봉 찍고 희방사로 하산하거나, 그 반대로 진행하는 것도 괜찮겠다.
화창한 봄날의 벚꽃 터널보다 더 멋진 상고대 터널이다.
소백산 칼바람에 쓰러질 듯 휘청거리고, 추위를 이겨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겨울 산행의 묘미다.
어제 북한산 10.3km 산행 후 오늘도 19km를 걷는 강행군이다.
그저 강행군이라면 지루하고 힘들겠지만, 이런 환상적인 상고대 터널을 지나면 고달픔보다 환희의 비중이 크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 주에도 이런 산행을 하고 싶다.
소백산 종주는 죽령에서 연화봉, 비로봉을 거쳐 어의곡으로 하산하는 게 더 쉽다고 한다.
어의곡에서 비로봉으로 오르는 구간이 힘들고 가파르기 때문이다.
하산식 식당을 죽령탐방센터 입구에 예약했기에 오늘은 더 힘든 구간으로 종주한다.
역시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상고대나 얼음꽃을 볼 수 있다.
얼음꽃은 비가 자주 내리는 제주도 산간지역에선 간혹 볼 수 있으나 내륙에선 좀 어렵다.
이제 상고대 터널도 그 끝을 보일 때가 되어 간다.
즐풍이 리듬감이 충만하고 좀 더 젊은 나이라면 춤이라도 추며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다.
이놈의 날씨는 잠시 잠깐 푸른 하늘을 보여주고는 이내 흐린 날씨다.
겨울에도 참 변덕스런 날씨다.
저 2연화대를 돌면 죽령 주차장까지 4.6km만 걸으면 된다.
내려가는 길도 지루하겠지만, 그 정도 거리라면 기어서도 갈 수 있다.
고도가 낮아지며 점점 옅어지는 상고대 풍경
지나온 천문대 방향
천문대 방향을 더 당겨 본다.
바람이 지나가는 서쪽엔 상고대가 눈꽃인 듯 주렁주렁 열렸고, 생나뭇가인 동쪽과 대비된다.
2연화봉의 전망대
이번 소백산 산행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상고대다.
잘 있거라, 즐풍은 간다.
백두대간을 안 뛰니 대간 표지석도 별 의미는 없다.
제2연화봉에서 내려가며 눈이 적어지자 아이젠을 벗으며 10여 분 쉬었다.
2018년 1월 죽령에서 어의곡리까지 종주할 때는 6시간 10분, 같은 해 5월 철쭉꽃 폈을 땐 6시간 56분 걸렸다.
오늘은 알바한 1.3km를 더하고 하산식을 한 식당까지 200m를 더해 19.2km 거리를 6시간 23분간 걸었다.
춥다 보니 제대로 쉬지 못해 주어진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산행을 마쳤다.
청명한 날씨를 기대했건만 대부분 흐린 날씨 속에 종주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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