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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 탐방/설악산

한여름의 설악산 50폭 100폭 희야봉 왕관봉

by 즐풍 2019. 8. 17.









2019.08.03. 토 04:00~13:17(전체 시간 09:18, 전체 거리 18km, 한 시간 휴식, 평균 속도 2.1km/h)  맑음(귀가시 비)



산행하면서 늘 고민거리가 하나 있다.

풍경 사진을 찍지 않고 산행하면 더 자세히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 그러자니 블로그 작성이 어렵다.

사진 찍기에 몰두하면 풍경이 별로 머리에 남지 않아 블로그를 통해 다시 만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을 찍느냐 마느냐의 갈등은 결국 블로그 작성으로 귀결되고 만다.

기억력이야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소멸되지만, 블로그는 인터넷 공간에 남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 둘의 타협점은 조망 없는 숲은 빠르게 걷고 풍경이 펼쳐진 곳은 좀 더 즐기며 사진 찍는 것이다.

풍경은 시각으로 들어오는 파노라마로 감상하고, 제한된 프레임에 더 많은 정보를 담아낼 능력도 중요하다.

화각 넓은 카메라를 선택하느냐, 아니면 더 먼거리를 잡아낼 배율 높은 카메라를 구입하냐의 기로에 선다.

지금까지는 화각에 중점을 뒀으나 앞으로는 더 먼 풍경까지 잡아낼 기능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

비경이 가득한 설악산은 원근을 무리없이 다 잡아낼 카메라가 필수인데, 문제는 돈이다.


무박으로 진행하는 여름철 설악산은 보통 새벽 세 시에 산행을 시작하므로 먼동이 틀 때까지 밤길을 걸어야 한다.

오늘 속초의 일출이 05:28이니 두 시간 이상 랜턴을 켜고 밤길을 걷는 동안 주변 풍경을 보거나 렌즈에 담을 수 없다.

무박 산행으로 대청봉을 찍거나 공룡능선을 타기 위해 설악산을 오른다면 두 시간 이상 조망은 포기해야 한다.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설악산은 언제나 등산객으로 붐비는 명산이다.

내 생전에 설악산은 100번 이상 등산하는 게 목표인데, 이 꿈을 언제 이룰 수 있을까?




설악산 잦은골 100폭 희야봉 설악골 등산코스




설악휴게소에서 40분 휴식을 취한 버스는 02:00에 출발해 장수대, 한계령, 오색약수에 각각의 회원을 내려준다.

한여름인데도 만차로 출발한 버스는 마지막으로 산행대장을 따라 비탐에 들어갈 10명은 설악동 신흥사입구에서 하차한다.

새벽 세 시가 좀 넘은 시각인데, 일찍 출발해야 볼 것도 없고 희야봉 코스는 산행 거리도 짧아 04:00부터 산행한다.


함께 온 공산술님은 산행지가 잦은바위골이란 걸 알고 이미 여러 번 다녀왔다며 노적봉을 갈 생각이란다.

그때 다른 산악회 용대장 일행 몇 명이 보이자 그들과 함께 산행을 나서고 우리 9명은 희야봉을 목표로 어둠속으로 스며든다.

희야봉이라면 전에 한 번 다녀갔으나 날씨가 흐려 다음 기회에 다시 찾을 생각이었는데, 오늘이 그날이다.


잦은바위골로 올라간다.

계곡이 짧은 데도 최근 내린 비로 계곡엔 제법 물이 있다.

심산유곡이라 물은 차고 맑다.




이런 절벽에 설치된 로프를 잡고 건너기도 한다.








쓰러진 고목이 폭우에 밀려온 걸 서너 명이 힘겹게 옮겨 사다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뭇가지는 겨우 발 디딜 만큼 남아 있어 타고 오르기 좋다.

이곳을 다녀간 선답자의 노고로 뒷사람들이 혜택을 받는다.




계곡은 깊고 폭이 좁아 잠깐 소나기라도 내리면 위험천만한 지역이다.

그 틈을 낙석이 가로막은 채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견뎠으리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비오듯 떨어지는데, 로프 하나에 달랑 몸을 의지하며 바위를 오르기란 쉽지 않다.

오늘같은 폭염에 전신 운동이 필요한 이런 산행을 감행하는 회원 모두 미쳤나보다.








잦은바위골이라니 바위가 계곡틈을 메운 게 너무 많아 생긴 이름일까?

좁은 계곡을 어디든 이렇게 크고 넓은 바위가 방패처럼 막아서는가 하면 힘든데 쉬어 가라는 듯 평상까지 만들어 놓았다.

계곡은 온통 거대한 암봉에 막혀 바람 한 점 없다.




이 계곡 끝에 겨우 한뼘 햇볕이 들었다.








잦은바위골에서 처음 시작되는 20폭이다.




몇 년 전 설악골에서 희야봉을 오른 후 잦은바위골 20폭에서 이 계곡을 타고 올라 칠형제봉의 막내인 도깨비바위로 올랐었다.

그런 기억때문에 잦은바위골로 오르며 기억이 전혀 없다가 이제부터 기억이 소환된다.








20폭은 잛은 릿지구간이나 바위가 미끄러워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20폭 상단부




계곡은 막힌듯 해도 들어가면 좌로 우로 계속 방향을 틀며 또 다른 계곡과 마주한다.








로프를 잡기엔 중간 지점까지 너무 높이 설치됐다.

두 줄 로프 중 흰색 로프는 끊어져 한쪽으로 흘려내렸다.

바닥은 물기가 많아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50폭 입구 바위 한켠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이렇게 가까이서 잡아봐야 구멍의 일부 밖에 안 보이겠다.




50폭이다.

20폭에 비해 서너 배 큰 규모다.




50폭 위에서 아래쪽 풍경을 담는 회원




이 정도로 작은 계류나 폭포는 이곳에서 명함도 못 내민다.








드디어 100폭 코앞에 도착했다.

뒤로 보이는 바위의 검은색이 폭포가 떨어지는 곳이다.




50폭도 큰 데 그 두 배에 달하는 거대한 100폭의 모습이다.

폭우가 쏟아진 다음이면 제법 풍광이 볼만 하겠지만, 그런 조건이면 이곳 계곡엔 급류가 너무 빨라 위험해 접근 금지할 수조차 없다.

저 위가 정상인듯 보이는 데, 그 정상을 흐르는 물로 이런 폭포를 만든다니 최상의 풍경이다.




이 폭포 앞에서 아침을 먹는다.

밤 한 시 반에 설악휴게소에서 유부우동 한 그릇 먹었으니 망정이지 그런 요기도 없이 이곳까지 오려면 너무 힘들어 허기졌을 것이다.

산행할 땐 넉넉히 여유있게 먹어줘야 한다.








좀 더 올라오자 풍경이 조금 더 밝아진다.








100폭을 지나 한참 올라온 뒤에 능선에서 범봉 방향을 조망한다.

모처럼 푸른 하늘과 왼쪽 범봉 풍경이 시원하게 보인다.




가지가 많이 잘려나가 팔 떨어진 상이군경같아도 소나무의 위풍은 당당하다.

북풍한설과 이글거리는 태양도 온몸으로 받아내며 이 자리를 지켜낸 소나무에 박수를 보낸다.




왼쪽 희야봉에서 왕관봉으로 넘어가는 방향의 능선이다.

잠시 후 가게 될 능선이니 직접 저 능선을 타게 된다.




카메라 사진은 딱 여기까지다.

더위에 배터리도 한계를 버티지 못하고 빨리 닳은 건지 고작 150장 정도를 찍고 맛이 갔다.

이후 사진은 아이폰으로 찍는데, 이 역시 배터리가 빨리 나갈까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맨 위 바위가 토끼처럼 보여 토끼바위라 한다.

범봉이 옆에 있어 범봉 전위봉으로도 불린다.




요델산악회에서 설치한 석주길 명판

이들의 얘기는 애잔한 사랑의 노래로 구전되고 있으니 암벽이든 릿지든 설악에 든 모든 사람은 늘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려준다.




범봉 전위봉 뒤로 보이는 1275봉은 공룡능선에서 보이던 뾰족한 첨봉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 판이다.

저게 1275봉이라고 하니 이런 모습이 낯선 사람이 정말이냐고 묻는다.

아이폰으로도 이 정도의 화면을 보여주면 괜찮은 편이다.




이쪽은 잠시 후 돌아서 오르게 될 희야봉이다.




희야봉에 올라 저쪽 한 구석에서 휴식을 취한다.




마등령을 거쳐 금강굴로 하산하며 거치게 되는 방향의 세존봉








넓게 잡은 공룡능선의 1275봉 방향




희야봉 정상에 오른 회원




왼쪽 희야봉과 오른쪽 범봉 전위봉(작은 범봉) 



작은 범봉 뒤로 노인봉이 보인다.






태초에 대폭발로 지구가 생기며 활발한 화산활동으로 수많은 암봉이 생겨났다.

크거나 작은 암봉이 영겁의 세월이 흐르며 부숴지고 흩어지며 바위가 되고 돌이 되며 자갈과 모래를 거쳐 흙이 되었다.

그 영겁의 시간을 거치면서 여전히 이 설악을 지키는 심지 굳은 암봉이 여기에 즐비하다.

1천 년이 지나고 2천 년이 지나도 큰 지진이 아니면 굳건히 이 자리를 지키리라.



설악산을 대표하는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이 있다면, 희야봉을 정점으로 이 천화대가 천불동 계곡으로 흘러내린다.

이 능선 우측에 잦은바위골을 감싼 칠형제봉이 나란히 자웅을 겨루며 천불동계곡으로 내달린다.

지난 달 칠형제봉의 안개를 헤치고 하산하고, 오늘은 천화대능선 일부를 타게 된다. 



희야봉에서 조망되는 적벽



1275봉에 눈길 한 번 더 주고 내려간다.




왼쪽 희야봉과 오른쪽 작은 범봉




지금까지 맑기만 하던 설악에 안개가 들어차기 시작한다.  



희야봉 아래쪽 바위에 오른 회원









한 칸 아레서 바라보는 희야봉




드디어 천화대 방향으로 하산한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바꾸고 나니 화각이 좁은 게 바로 티가 난다.

괴상한 돌대가리




한 칸 더 내려와 보는 돌대가리



천화대는 위치에 따라 여러 얼굴로 나타나며 등산객을 맞는다.



가운데 제일 높은 봉우리가 왕관봉이다.



설악의 수많은 명품 바위앞에 인간은 한낮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범접할 수 없는 자연앞에 겸손해야 천수를 누릴 수 있다.



이곳에서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허리를 타고 내린 땀이 바지로 흘러 내리며 하얗게 소금꽃이 펴야 비로소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시대를 앞서 가는 AI도 이런 풍경은 만들지 못한다.  







이런 저런 비경의 사진찍기에 여념없는 회원






희야봉에서 쉴 때 제법 많은 솜다리꽃을 봤으나 이미 꽃잎이 져 시든 상태였다.

희야봉 보다 낮은 이 암봉을 넘으며 수수한 상태의 솜다리꽃 두 송이를 얻었다.

지난 5월 설악산이 개방 된 그 다음 주에 솜다리꽃을 보았으니 거의 세 달만에 솜다리를 다시 본다.

9월까지도 이 솜다리꽃을 볼 수 있다고 하니 다음 산행 때도 주의 깊게 살펴야겠다.



천화대의 명물인 왕관봉이다.

앞서가던 대장은 바로 염라골로 빠지자 뒤따라 오던 일행 두 명이 왕관봉은 안 가냐고 하니까 그냥 내려간다고 한다.

나는 그 두 명을 따라 왕관봉까지 오르기로 한다.



바로 이 왕관봉 턱 밑에서 좌측으로 빠지면 염라골을 거쳐 설악골로 하산하게 된다.






왕관봉 정면 모습이다.

연두색 상의를 입은 회원이 먼저 올라가 자일을 걸고 나는 맨 나중에 자일을 이용해 오른다.



손가락바위의 손톱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봉합수술을 받아야 할 텐데, 조물주의 솜씨가 아니고선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음, 멋지다요.




왕관봉에 올라 바라본 손가락바위



좀 전까지만 해도 한 점 안개만 보이던 게 이젠 설악의 비경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 산 전체를 안개가 휘덮는다.

보이면 보이는 대로, 감추면 감추는 대로 모든 풍경이 또한 절경이다.







안개를 사위를 좁혀오며 빠르게 설악을 덮친다.







왕관봉에서 내려오니 기다리던 회원들은 이미 출발한 상태라 서둘러 뒤따른다.

일행을 따라 잡아 함께 내려가는 데 두 번째 앞서 가던 사람이 로프를 잡고 내려가다 "툭~툭~" 소리가 나더니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1m가 좀 넘는 비교적 낮은 높이라지만, 제법 체구가 큰 사람이라 충격이 큰 모양이다.

한참만에 겨우 일어나 어지럽다며 앉았는데, 머리에 피는 흐르지 않는다.

팔꿈치는 찰과상으로 피가 흐르고 양쪽 정강이는 바위에 두딪쳐 자두만한 크기의 혹이 생겼다.


비탐 지역이라 일행을 위해 설치한 나이롱 로프가 시간이 지나며 삭은 게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끊어져 벌어진 참사다.

이런 비탐 지역의 로프를 신뢰하지 못해 그게 썩은 동아줄인지 아니면 생명을 지켜 줄 동아줄인지 늘 의심했다.

가능하면, 아니 어렵다고 해도 지형지물을 이용해 오르내리던 내 습관이 옳았다는 게 여기서 여실히 증명됐다.

오늘도 여러 번 설치된 로프를 잡지 않고 내 몸과 스틱 신공을 펼치며 안전하게 암봉을 오르내렸다.


그분은 하산 내내 어지럽다며 머리에서 피가 나오지 않자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서둘러 하신길을 잡는다.

맘이 급하다 보니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내가 앞에서 길잡이를 했다.

정규 등산로가 나올 때까지 제법 긴 거리를 얼마나 급하게 걷던지 무릎이 조금씩 쑤시기 시작한다.

큰길을 만나자 그분은 급한 마음에 뛰다시피 하산하고 난 그제서야 내 속도에 맞춰 하산할 수 있었다.


왕관봉을 다녀온 후 설악골로 내려가는 관문이다.

계곡으로 내려서며 일행을 따라 잡는다고 서두른 후 일행과 만난 다음 추락 사고로 더 이상 주변 풍경을 담을 기회가 없었다.



비선대다.

이곳부터 사실상 산행은 끝나고 설악동 주차장까지 약 4km는 평소엔 트레킹 수준이다.

밖에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뙤약볕에 이미 체력은 고갈 상태라 쉬운 하신길도 고역이다.

  

                              

한계령이나 오색약수에서 대청봉~공룡능선을 타고 내려올 회원을 위해 산행을 오후 다섯 시에 마감한다.

그때까지 네 시간을 기다리느니 속초로 나가 개별적으로 귀가하기로 하기로 하고 속초행 시내버스를 탔다.

이동 도중 앱으로 검색하니 서울은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야하고, 고양시는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야한다.


시외버스터미널 버스표를 예약하려고 보니 14:10과 15:25 버스는 자리가 텅텅 비어 직접 매표하기로 한다.

속초시내 도착했을 때 14시 버스는 시간상 이미 출발한 상태라 식당에서 앱을 검색하니 어느새 16:15까지 버스표가 매진됐다.

예매할 수 있는 버스가 17:40이라 산악회 버스 보다 늦게 출발하게 됐으니 시간과 돈 모두를 다 날리게 된 셈이다.


식사를 주문한 상태에서 건너편 터미널에 가 가장 빠른 표를 예매하니 마침 16:15 버스표를 겨우 구할 수 있었다.

그나마 네 시 표를 구한 걸 위안삼으며 점심 먹고 터미널에 돌아와 혹여 15:25 표가 있는지 물었다.

마침 취소자의 15:25 버스표를 구입했는데, 15:00에 14:10분 버스가 길이 밀려 지금 도착했다며 14:10 승객은 얼릉 탑승하라고 한다.


나도 얼릉 일어나 버스로 갔다.

15:25 버스표를 예매했는데, 이번 버스에 빈자리가 있으면 탈 수 있냐고 검표원에게 물으니 자리가 많으니 타라고 한다.

막상 버스에 오르니 승객은 겨우 다섯 명 밖에 안 돼 의자를 뒤로 한껏 제치고 편안히 귀가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여름 휴가 극성수기라 피서객 전부가 동해안으로 몰려 길이 막히며 버스 출발이 지연되자 취소된 걸까?

아니면 앱으로 예매만 하고 결재가 안 돼 취소된 건지 아무리 머릴 굴려봐도 뾰족한 답변이 안 나온다.

 

피서객으로 도로가 막히자 버스 기사는 내비양의 안내에 따라 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이동한다.

남양주를 지나며 한동안 장대비가 쏟아져 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내려 집으로 이동하는 동안 비를 쫄딱 맞겠단 생각이 든다.

산행하며 카메라 배터리가 나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바람에 핸드폰도 아웃된 상태라 집에 도움을 청할 방법이 없다.   


다행히 구리시를 지나며 비가 그쳐 온전한 상태로 귀가할 수 있었다.

하루 사이에 참 많은 일이 벌어졌다.

추락사고와 버스 탑승은 물론 소나기를 피해 무사히 귀가하기까지 난국을 돌파하기엔 너무도 긴 하루였다.


바위에서 추락하신 분이 무사하시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