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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경기 인천

파주 자운서원에 내려앉은 단풍

by 즐풍 2019. 10. 17.










2018.10.18. 목  15:55~17:00(한 시간 탐방)



다음에 뜬 [포토 친구] "가을이 오는 풍경"의 느티나무에 든 단풍이 어느 절에서 본 느낌 같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거기가 어디지? "

하며 클릭해 들어가 보니 파주 법원읍 동문리에 있는 자운서원이다.

사진을 보며 언제 한번 가봐야겠단 생각을 하며 잠시 잊고 잊었으나 오후에 불현듯 다녀오자는 생각이 든다.


검색해 보니 사무실에서 불과 21km로 30여 분이면 충분히 갈 거리이기에 차에 시동을 건다.

전엔 꼬불꼬불하던 길도 이젠 제법 많이 펴지고 차선도 넓어져 전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한다.

정문을 통해 들어간 곳이 자운서원과 닿아있는 율곡교육연수원이다.

'도체 자운서원은 어디 있다고 내비가 이곳으로 안내한 거야.' 하며 둘러보니 자운서원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담장으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 내려가니 몇몇 여성분이 깔깔거리며 이리저리 사진을 찍는다.

세상이 모두 여자들처럼 별것도 아닌 거에 큰 소리로 웃는다면 사건 사고도 훨씬 줄어들겠단 생각이 든다.

그런 웃음으로 인해 스트레스도 풀리고 감정도 이완돼 여성 평균 수명이 남자보다 긴 이유 중 하나겠다.

웃고 웃자, 자꾸만 웃자면서도 남자는 그게 잘 안 된다.


사진에서 봤던 그 나무가 어딜까 하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작은 연못을 지나 율곡 묘소까지 올라가도 보이지 않는다.

율곡 묘소엔 선친이신 이원수와 신사임당, 율곡 이이의 묘가 위치한다.

묘지로 들어가기 전 여견문(如見門) 앞의 느티나무와 은행나무에 제법 단풍이 잘들었다.

이 느티나무는 제법 큰데다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해 노랗게 물든 은행과 잘 어울린다.




여견문 가는 길에 만난 연못









율곡 이이선생의 묘소로 들어가는 여견문







율곡 이이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정치가인 율곡 이이는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나 파주 율곡리에서 성장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성리학자일 뿐만 아니라 '십만양병설', 대동법의 실시, 사창 설치 등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을 주장한 대표적인 정치개혁가였다.

저서로 동호문답, 성학집요, 격몽요결 등이 있으며, 대사헌을 비롯하여 대제학, 호조, 병조, 이조판서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이이는 유학에 있어서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학자로 이황과 서경덕의 설을 절충하여 일원론적 이기이원론을 주장하였다.

기호학파를 형성하여 후세의 학계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세상을 떠난 후 이곳 파주 자운산 선산에 묻혔는데, 묘역은 부인 곡산노씨 묘와 위 아래로 조성되어 있다.  (안내문)



율곡 이이 묘



이런 망부석이 좌우로 각각 쌍으로 배치되어 있다.



선친이신 이원수와 신사임당 묘



여견문 들어갈 때 바람이 불자 은행 열매가 후두둑 떨어지며 터져 냄새가 사방으로 번진다.

머리나 옷으로 떨어질까봐 얼릉 피한다.



여견문 앞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두분은 꽤 오래된 친구인듯 다정스럽다.







자운서원


자운서원은 조선 광해군 7년(1615)에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에 의해 창건되었다.

효종 원년(1650)에 '자운(紫雲)'이라 사액을 받았으며, 그 뒤 숙종 39년(1713)에 그의 후학인

사계 김장생(1548~1631)과 현석 박세체(1631~1695) 두 분을 추가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조선 후기 고종 5년(1868)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서원 터에 제단을 세워 제사를 지내 왔다.

그 후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빈터에 묘정비(廟庭碑: 서원의 내력을 기록하여 서원 앞에 세운 비)만 남아 있다가

1970년 유림의 기금과 국가 지원을 받아 복원하였고 1973년 경내 주변을 정화하였다.

사당 내부에는 이이의 영정을 중심으로 좌우에 김장생과 박세채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봄·가을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포토친구, 가을이 오는 풍경"에 다왔던 그 나무를 드디어 찾았다.

자운서원 안 깊숙한 곳에 있어 바로 찾지 못하고 율곡 이이의 묘부터 다녀오니 벌써 그림자가 져 단풍 색이 제대로 안 나온다.



이 나무의 단풍 색깔을 제대로 보자면 정오 무렵이 가장 좋겠다.



뒤로 물러서서 두 나무를 함께 잡아보자.

왼쪽 느티나무는 제법 단풍색이 좋은 데, 두어 발자국 옆의 오른쪽 나무는 단풍이 들자면 며칠 더 있어야겠다.









강인당

유생들의 강학 장소로 지금의 학교 교실 역할을 했던 곳이다.









단풍이 들 핀 이 느티나무는 1982년 당시 수령 427년이니 올해 463년이나 되었다.






이 나무는 현재 수령 482년이다.

그런데 이 나무의 수령을 어떻게 알았을까?

선생의 묘소를 이곳에 쓸 때 심었다는 기록이라도 찾은 걸까?



문성사 출입 현관



문성사









율곡약수터로 가며 다시 본 풍경






저 반달은 하루종일 중천에 떠 있었던 걸까?



율곡 이이의 신도비

율곡 이이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이다.

이 신도비는 선생이 돌아가신지 47년이 지난 인조 9년(1631) 4월에 건립된 것으로 이항복이 글을 짓고 신익성이 글씨를 썼으며 전액은 김상용이 썼다.



이곳 이이선생 유적지는 이번 주말이 단풍 절정이겠다.









잠깐 밖으로 나왔다가 들어가니 왼쪽에 매표소가 있다.

내가 안에서 나왔가 들어가니 아무 말도 안 하지만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에겐 입장료를 받는다.

율곡교육연수원에 주차를 하고 연린 쪽문을 통해 이이유적지로 들어갔기에 따로 입장료를 내는 줄 몰랐다.

본의 아니게 꽁짜로 구경 잘한 셈이다.



율곡과 신사임당 동상






율곡기념관이다.

2층으로 된 기념관에 여러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은 많이 찍었으나 그 중 하나만 올린다.










우연히 포털에서 본 사진 한장으로 잠깐 다녀온 자운서원이다.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제법 멋진 곳을 돌아보았다.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인데도 카메라로 찍은 듯 색감이 제대로 표현된다.

특히, 파노라마 기능에선 카메라 보다 한발 더 나간 느낌이다.

자운서원은 이번 주말이 단풍 절정일 테니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 좋겠다.

참, 자운서원은 매주 화요일 문을 닫는다니 이 점 참고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