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1. 토 09:26~15:38 (전체 거리 13.71km, 전체 시간 06:12, 휴식 시간 52분, 평균속도 2.5km/h) 흐리고 비 조금
지난달 여름 휴가는 울진 왕피천계곡 1~2구간과 함께 금강소나무숲길 4구간 그리고 덕구계곡을 다녀왔다.
지금까지 오직 오르기만 하는 산행을 즐겼으나 평소 산행이 뜸한 아내를 위해 옆으로 걷는 숲길을 선택한 것이다.
금강소나무숲길 4구간은 산을 다 오른 후 능선을 따라 대왕소나무까지 가야 하니 절반은 산행이다.
그러나 숲길이 더 많아 전체적으로 트레킹에 가깝다.
그때 산행 뿐만 아니라 걷는 트레킹에도 좀 더 관심을 두고 기회가 되면 이곳 금강소나무숲을 다시 찾겠단 생각을 했다.
그 시기가 단풍든 가을이면 좋겠단 생각을 했으나 기회는 예상 보다 일찍 찾아왔다.
막상 소나무숲길을 신청할 때만 해도 드문드문하던 회원이 갑자기 신청자가 급증해 금세 만석을 채운다.
그러고 보면 해설사와 함께하는 금강소나무숲길은 나만 아는 숨겨진 비경이 아니었나 보다.
신사역에서 평소대로 출발한다던 버스 시각이 갑자기 앞당겨졌다.
왕피천계곡 1구간이나 소나무숲길 4구간 모두 오전 아홉 시부터 탐방을 시작했으니 오늘도 그럴 것이다.
애초에 신사역에선 오전 07:10에 출발하려던 게 현지 탐방 시각에 맞춰 05:30으로 당겨졌으니 다소 난감하다.
오전 다섯 시가 첫차인 M버스는 신사역까지 10여 분 시간이 부족해 아내의 도움으로 여유 있게 도착했다.
너무 이른 출발이라 혹여 한두 명 지각으로 차를 놓칠까 싶었으나 다행히 만차로 출발한다.
1~2분을 당기는 건 같은 시간에 일어나야 하니 상당히 어려워도 한두 시간을 당기는 건 생각보다 쉬운 모양이다.
벌초 시기 때문인지 새벽 시간이어도 톨게이트까진 제법 차량이 많았으나 이후 차량 이동은 제법 순조로웠다.
너무 먼 거리다 보니 휴게소에서 겨우 10분 쉬고 서둘러 달렸어도 현지에 15분 늦게 도착해 호흡을 가다듬고 트레킹을 시작한다.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 트레킹 코스
트랭글 지도의 궤적은 거의 일직선 형태라 생략하고 금강소나무숲길 홈페이지의 지도로 대신한다.
기장 미역보다 좋다는 울진 장곽(길고 넓은 미역) 등 지역 특산품을 흥부장 등 울진에서 구입해 이곳 12고개를 넘어 봉화 춘양장으로 이동한다.
이렇게 소에 등짐을 씌우거나 지게에 지고 보따리를 이고 가는 보부상을 형상화한 모습
현지에 도착 후 간단하게 몸을 풀고 숲 해설사의 안내를 받아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 탐방에 나선다.
아침이 동해안고속도로를 지날 때 간간이 소나기가 내린 흔적을 몇 군데 보기도 했으나 이곳 역시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듯 구름이 잔뜩 끼었다.
저런 구름 틈새를 뚫고 내리쬐는 햇빛이 이곳에 선명한 그림자를 남기기도 한다.
울진 흥부장은 남으로는 영덕지방과 북으로는 강릉이나 속초지역을 잇는 중간에 위치한 중요한 길목이다.
이 흥부장에서 구입한 여러 물건을 이렇게 등짐에 지고 이고 이 주막에서 하룻밤 자고 첫새벽 이슬을 밟으며 봉화로 안동으로 출발하게 된다.
김주영의 객주 첫 장은 이곳 울진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979년 6월부터 1982년 2월까지 4년 9개월 동안 서울신문에 연재된 객주는 아홉 권으로 출간되었다가 몇 년 전 10권을 새로 써 전부 10권이 되었다.
객주 1권을 집어 들면 10권까지 계속 빠져들 만큼 재미있으나 지금은 사라진 고어가 많아 사실 쉽게 진도를 뺄 수도 없다.
이러한 이유로 매권 뒷장에 용어 해설이 있기도 하다.
온 세상이 짙푸르른 초목으로 둘러싸인 금강소나무숲으로 들어선다.
숲에선 시원한 공기가 흐르고 날씨는 비가 내릴 듯 흐렸다.
숲길을 걸으며 들이마시는 공기는 상쾌하고 간간이 바람이 지나갈 때 나무는 아는 체라도 하듯 손을 흔든다.
울진내성행상불망비 (문화재자료 제310호)
내성행상비는 조선 시대 말 울진과 봉화를 오가며 물품을 팔거나 물물교환하며 상업활동을 하던 행상(선질꾼)들이
접장 정환조와 반수 권재만의 은공을 기르고자 세운 것이다.
선질꾼들은 흥부장 죽변장 울진장에서 주로 소금 미역 등의 해산물을 구매하여 쪽지게에 지고 십이령을 넘어
봉화장과 그 주변 시장에서 곡식 의류 잡화 등과 물물교환하거나 구매하여 되돌아 왔다.
이 불망비는 보기 다물게 철로 만든 비로 철은 다른 재질에 비에 강하고 영원하다는 믿음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철로 비를 맞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비는 당시에 울진 지역 상품의 유통 경로와 시장을 이해하는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안내문 옮김)
울진내성불망비를 보존하는 누각이다.
일제강점기 때 그들은 무기를 만든다고 백성이 가진 놋그릇이나 심지어 농기구까지 다 수탈해갈 때 철로 만든 내성행성불망비는 땅에 묻었다고 한다.
해방된 뒤 비로소 땅에서 꺼내 이렇게 누각을 세워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내성행상불망비 사진은 다른 데서 업어왔다.
철에 어떻게 글자를 새겼을까 궁금해 사진을 자세히 보니 주물의 형태가 눈에 띈다.
비석(碑石)이 아니라 비철(碑鐵) 뒤쪽 모서리가 매끈하지 않고 철똥이 붙어있는 게 주물한 흔적이다.
요즘 시대라면 그라인더로 갈아 매끈하게 처리할 수 있겠으나 당시엔 그런 공구가 없으니 당연하다.
그래서 검색하여 찾은 내용 중 일부를 옮겨본다.
권재만 비의 크기는 높이 94.5㎝, 폭 24.8㎝, 두께 2.1㎝이며, 무게는 29.4㎏이다.
정한조 비의 크기는 높이 93.3㎝, 폭 23.1㎝, 두께 2.2㎝이며, 무게는 26.4㎏이다.
울진 내성행상불망비는 비신(碑身)과 비수(碑首)를 하나로 주조하였으며,
비수의 문양과 비신의 글씨는 앞면에만 양각으로 주조하였다.
비 머리에는 반원을 그리고 그 위로 점을 여러 개 돌아가며 표시를 하였는데,
이는 태양이 빛을 발하는 문양인 일휘문(日暉紋)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재질은 철로 이는 당시 울진군 북면 하당리에 철광산과 용광로가 있어 석비보다 제작이 쉬웠기 때문으로 추정하기도 하나,
철은 다른 재질에 비해 강하고 영원하다는 믿음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돌보다 철로 만든 것으로 판단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제법 큰 소나무 아래 이 지역에 살던 힘센 장사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워낙 덩치가 크고 힘도 좋아 알아주는 사람이었는 데, 덩치만큼 입성도 좋아 밥은 큰 양푼으로 한 그릇에 술도 말술이었다.
하루는 입에 풀칠도 못할 만큼 가난한 사람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상여를 매고 정해진 시간까지 입관을 마쳐야 했는데,
상여를 맨 12명의 상여꾼이 얼만치 가다가 노자를 주지 않자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 하관해야 모든 게 순조롭게 끝나는 데 노잣돈이 없는 상주는 얼마나 답답할까?
아무리 사정을 하며 가자고 독촉을 해도 상여꾼은 그건 네 사정이란듯 꿈쩍을 않는다.
보다 못해 이 힘센 사람이 나서 말하길, "당신들과 내가 서로 밀어 내가 이기면 내 말을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당연히 12명의 상여꾼이 이긴다고 생각하고 내기에 돌입해 30여 분간 대치했으나 그들이 먼저 지쳐 쓰러졌다.
시간이 없자 이 장사는 상여 대신 혼자 관을 둘러매고 시간에 맞춰 묘지에 도착해 하관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술기운이었는지 기면증이었는지 하루는 숲에서 잠들었는데, 깊은 밤중에 얼굴이 물에 질척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가만히 샛눈을 뜨고 보니 호랑이가 꼬리에 물을 묻혀 자기 얼굴에 적시더라는 것이다.
호랑이는 죽은 시체는 안 먹기에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을까?
은장도처럼 호신용으로 차고 다니던 작은 칼을 꺼내 호랑이가 다시 꼬리로 얼굴을 적실 때 갑자기 불알을 쥐고 단칼에 잘라버렸다.
호랑이는 갑자기 펄쩍 뛰며 고통에 헤아나지 못하고 이리저리 뛰며 발광을 하다 웅덩이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남자들은 낭심이 급소라 살짝 맞아도 아파 죽겠는데, 그것을 칼로 베어버렸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다음날 마을 사람들이 그 호랑이를 매고 오자 호피는 벗겨서 팔아버리고 호랑이 고기로 마을 잔치를 했다고 한다.
이 해설사가 어려서 그 장사의 무덤을 이관할 때 장대한 유골을 봤다고 하니 그리 오래된 이야기도 아닌 실화다.
보부상이 지나는 길은 간혹 산길도 넘겠지만, 이렇게 유순한 가장 낮은 고개를 선택하며 이동의 부담을 줄인다.
길은 보부상이 다녔던 길과 임도를 교차하며 1구간에선 세 번의 해설사를 만나게 된다.
두 번째 해설사 구간의 쉼터에서 잠깐 쉬며 간식을 먹는 틈에 계곡을 담아본다.
며칠 전 가을장마가 지나가며 지역마다 국지성 비를 많이 뿌린 곳은 큰 물난리가 나기도 했다.
이곳은 그렇게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데, 계곡이 깊어선지 제법 물이 흐른다.
그래서 중간중간 물에 징검다리가 잠긴 곳은 이렇게 임도를 따라 걷기도 한다.
금강소나무숲길을 걷는 트레킹이라기에 온통 금강소나무로 둘러싸인 곳인 줄 알고 나선 회원들이 대부분이다.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은 여섯 개 구간이 마련돼 있는 데, 그중에 3구간에 금강소나무가 가장 많고 나머지 구간은 그냥저냥인 상태다.
그러니 금강소나무숲길이란 제목에 끌려 덜컥 다니러 와선 속았단 느낌이 들 테니 미리 알아 두시길...
이 정도라면 어렵지 않게 건널 수 있으나...
여기선 돌다리가 물에 잠겨 대부분 등산화를 벗고 건넌다.
그러나 난 아래쪽 듬성듬성하게 솟은 돌을 찾아 스틱을 한껏 이용해 물방울 하나 묻히지 않고 나비처럼 날아 가볍게 건냈다.
트레킹을 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갈래 물길과 이런 작은 계류를 만난다.
비 온 뒤에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계곡이 제법 큰 폭포도 더러 눈에 뜨이나 숲이 젖은 데다 너무 가팔라 그냥 지나친 게 제법 있다.
올라갈수록 수량이 적어지는 오솔길은 여느 등산에서 느낄 수 없는 운치를 보여준다.
지금은 금강소나무라고 하지만, 예전엔 황장목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 이 한자를 다시 보고 황장목이란 말뜻을 비로소 이해한다.
장(腸) 字는 창자란 뜻이니 창자는 몸 안의 내장인 셈이다.
소나무 속 심재까지 온통 붉은색의 소나무란 뜻에서 황장목이라 표현한 것이다.
어느 순간 임도에서 다시 숲길로 들어설 때 해설사가 임도를 따라가면 안 된다는 주의를 준다.
13km 중 절반 정도의 지점이었으니 평소 안 걷던 사람들에겐 그 거리도 제법 된다.
쉬운 임도를 따라 걸으면 더 쉽다는 생각을 했던 것일까?
임도를 걸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듣지 못한 몇명의 회원이 임도로 진행했다는 걸 한참이 지난 뒤에 해설사가 알게 되었다.
그중 두 명은 중간에 숲길로 다시 들어섰고, 임도로 다니던 회원들은 중간에 다른 해설사를 만나 우리팀과 임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숲속으로 간 두 명과 어렵게 통화하여 나중에 만난 모양이다.
산에선 능선 하나만 잘못 들어서도 나중엔 몇 시간 거리로 틀어질 수 있는 데, 트레킹을 끝냈을 땐 함께 버스를 타고 올라왔으니 다행이다.
대부분 산은 등산 지도를 보고 대략 거리나 길을 짐작할 수 있지만, 이곳 금강소나무숲길은 해설사가 동행해야 안전하다.
이 두 노송은 나이가 제법 많아 할아버지 할머니 소나무로 불린다.
함께 오래 살다 보니 이젠 지겨운지 마주 보는 마누라가 아니라 등을 돌린 등누라가 된 지 오래다.
숲은 온통 초록색에 울긋불긋한 등산복의 부자연스러운 조화도 조화롭게 보인다.
습기 많은 숲이라 이런 멋진 버섯도 볼 수 있으니 자연히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4구간 하산길과 만나는 지점에 조령성황사가 있다.
성황사 안에 이 사당을 지을 때 돈을 낸 1천 명 이상의 명단이 편액으로 걸려있다.
보부상들이 오가며 이곳에 들려 각자의 소원성취를 빌었을 공간이다.
성황사 앞의 금강소나무 군락
이곳엔 국가에서 관리되는 금강소나무가 4,137그루나 있다고 한다.
국가에서 필요한 재래식 건물을 지을 때 이런 금강송을 베기 전 "어명이요~~"하고 알린 후 벤다고 한다.
여기서 잘려나가는 금강송은 한 그루에 7천만 원씩 받는다고 하니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 소나무는 삼공(三公,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나무다. 번성하고 당당하고 의연한 나무의 품위가 그렇다.
벼슬 세계가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소나무는 금 은 동의 경우처럼 등급을 나타내는 데 있어서 언제나 으뜸을 차지하는 상징물이다.
나무나 화초에 벼슬의 품위를 달아주는 유교적 질서와 자연관 자체가 소나무의 문화 코드와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소나무는 두말할 것 없이 대나무, 연꽃, 국화와 함께 1품으로 분류된다.
이어령의 『소나무 문화권의 텍스트 일기』중 일부 발췌
오늘 다닌 소나무숲길은 높은 데가 약 600여 m의 고도다.
제법 높아도 평원같이 평평한 지점이 많아 화전을 일구며 살던 곳인데,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이곳에 살던 화전민을 전부 마을로 소개시켰다고 한다.
그 당시 쓰던 가마솥은 이렇게 나뒹굴고 나무도 자라 제법 숲을 이루고 있다.
아무렇게나 놓인 바위를 기단으로 쓴 불망비
한 때 이곳 현령을 지냈던 이광전을 기리는 불망(비)로 당시 청나라 연호를 쓴게 이색적이다.
이 구간을 지나 대광천초소에서 다른 해설사를 만나 마지막 구간을 탕방한다.
13.7km가 넘는 긴 구간이다 보니 세 명의 해설사가 동원되며 그들은 평소 그들의 걸음으로 걸었으나 우리는 점점 지쳐간다.
그러다 보니 앞뒤 간격이 제법 벌어지기도 하고 사진을 찍다 보면 그 간격은 더 벌어진다.
마지막 해설사와 함께할 땐 잠깐 해설사를 놓쳐 불이 나게 쫒아가 저진터재에 도착했을 땐 훨씬 앞질러 온 걸 알았다.
그러니 마지막 구간은 해설을 듣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여기서부터 임도로 올라가 마지막 구간에 접어든다.
임도로 가지 않고 개울을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며 매우 운치 있는 숲길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해설사에게 왜 그쪽으로 가지 않냐고 물으니 물이 많아 개울을 건널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임도를 걷는다니 이해할 만 하다.
그 길이 궁금하다면 ☞ http://blog.daum.net/honbul-/1284
임도를 따라 1km 정도 내려와 마지막 구간으로 들어선다.
다시 영화의 배경처럼 아름다운 길로 들어선다.
가을엔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수놓을 멋진 숲속이다.
물봉선
해설사와 함께했다면 이 풀 이름이 뭔지 알았을 텐데,....
갯버들님께서 쇠뜨기처럼 생긴 이 식물은 <속새>라고 알려주셨기에 감사드리며, 그 내용을 검색해 올린다.
속새
고산지대의 습한 지역에 자생한다.
목적(木賊)·절골초(節骨草)·주석초·상자풀이라고도 한다.
땅속줄기가 옆으로 뻗으며 지면 가까운 곳에서 여러 개로 갈라져 나오기 때문에 여러 줄기가 모여나는 것처럼 보인다.
줄기는 속이 빈 원통형인데 짙은 녹색이고 가지가 없으며 뚜렷한 마디와 마디 사이에 10~18개의 능선이 있다.
같은 속새과의 쇠뜨기와 달리 영양줄기와 생식줄기의 구별이 없다.
속새가 습한 곳을 좋아하는 성질에 착안하여 예전에 우물을 팔 때 속새가 자라는 곳에 수맥이 있을 확률이 높아 그곳을 선택하기도 하였다.
줄기의 능선에 규산염이 많이 축적되어 딱딱하기 때문에 나무의 면을 갉아내는 목재의 연마에 사용했으므로 목적이라는 별칭이 생겼으며,
주석으로 만든 그릇을 닦는 데 쓰여 주석초라고 부른다.
또 수많은 곁가지가 상자처럼 서로 겹쳐 속새의 줄기를 이루고 있어 상자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울러 뼈·뿔·목재로 만든 기구를 문질러 닦는 데 쓰였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산제 또는 환제로 하여 사용한다.
효능: 주로 안과·순환계 질환을 다스린다.
관련질병: 결막염, 담, 명목, 붕루, 옹종, 이뇨, 인후염·인후통, 장염, 치질(암치질), 탈항, 해열
곧 숲속의 요정을 만날 수 있겠단 예감이 드는 길이다.
마지막 고개의 저진터재를 지나면 소광리 마을까지 불과 1km도 안 남았다.
하산길에 이젠 풀밭이 된 습지를 도랑 건너로 볼 수 있다.
5년 전까지 마을 노인이 논으로 부치던 땅이었으나 그가 사망하고 난 뒤 그 논도 부치는 사람이 없자 자연으로 돌아갔다.
등산은 어쩌면 시간과 돈의 낭비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산하의 자연과 역사를 함께 알아감은 물론 건강과 인간다운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이런 산행이나 트레킹을 할 때 무슨 생각으로 올라야 할까?
여러 답변이 나오겠지만,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
생각에 몰두하면 풍경은 뒷전이고 까딱 잘못하다간 돌부리나 나무뿌리에 채어 넘어질 수 있다.
복잡한 마음을 비울수록 머리와 가슴에 자연이 주는 여러 혜택을 가득 담을 수 있다.
바람이 숲을 지나며 나뭇잎을 흔들어 깨우는 소리,
빠르거나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에 새소리나 매미 소리가 화음을 넣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상쾌한 숲 내음이 오감을 자극해 살아있음을 일깨운다.
숲의 맑은 기운은 가슴에 담고 자연의 풍경과 소리는 폰에 저장해 가끔 보고 들으며 활력을 재충전해보자.
이렇게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을 걸으며 오래전에 읽었던 객주의 한 구간을 더듬어봤다.
그들처럼 짚신을 신고 몇십 kg의 무거운 등짐을 옮기는 대신 편한 등산화에 스틱을 잡고 가벼운 배낭을 멘 채 해설사와 함께한 코스다.
몸이 가벼우니 보부상처럼 온몸에 피는 소금꽃이나 쉰내도 없는 살방살방한 힐링 트레킹이다.
그분들의 한 맺힌 피나는 노력이 더해져 오늘의 우리가 이런 풍요를 누릴 수 있음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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