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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 탐방/지리산

성삼재에서 천왕봉 찍고 중산리로 하산한 지리산 종주

by 즐풍 2019. 8. 17.

 

 

 

 

 

 

2018.06.16. 토 ~ 17.일 지리산 종주기

 

 

설악산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너무 길어서 지루한 지리산을 밟고 싶을 때도 있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게 작년 10월 14일 중간 산악지대에 단풍이 알맞게 들던 시기다.

백무동에서 천황봉을 찍고 대원사로 내려가며 무제치기폭포를 감싼 단풍의 비경에 넋이 나갔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동안 적당히 잊고 있었는데, ㅈㅎ산악회에서 23명으로 한정하는 1무 1박 3일의 성~중 종주 산행 모집에 솔깃하다.

일정을 보니 다른 산악회보다 조금 더 시간적 여유가 있고 인원을 제한해 번잡스럽지 않아 좋다.

이번에도 지리산 바라기 솔담님과 동행한다.

 

사실, 이 코스는 2012.10.12.토~13.일 양일간 목화, 여로, 대로님 등 넷이 산행했던 경험이 있다.

제법 나이가 들어 하루하루가 다른 데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그때만큼 빠른 진행은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성삼재에서 출발해 반야봉을 거쳐 세석대피소에서 첫날 일정을 마무리한다.

 

둘째 날은 정상에서 바로 중산리로 하산하여 지루함은 던다.

사방으로 1백여 리나 된다는 넓은 지리산 자락에서 같은 곳을 두 번이나 간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20~30번 이상 지리산 산행을 이어간다면 여러 구간이 겹치기야 하겠지만, 같은 산이라면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다. 

 

 

성삼재-반야봉-천왕봉-중산리 이동 코스

 

 

 

제1부. 산행 첫날

         03:07~15:20(전체 시간 12:12, 휴식 시간 2:00, 23.48km, 평균 속도 2.3km/h)

 

         성삼재에서 반야봉 찍고 세석대피소까지

 

 

첫날 등산코스

 

새벽 세 시부터 지리산을 개방한다기에 준비하고 03:10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거센 바람에 실린 안개가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그 바람이 너무 춥다고 생각한 나머지 바지 위에 여벌로 가져온 바지를 껴입고, 상의도 덧옷을 덧입는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몸이 풀리며 땀이 나 상의는 벗고, 노고단대피소에 들어가 바지도 한 겹 벗는다. 

 

새벽이니 제대로 보이는 건 없고 간간이 드러나는 계곡엔 솜사탕이 깔린 듯 새하얀 운해가 가득하다.

모처럼 만에 반야봉을 오르는데, 여성 회원인 단비님이 따라붙어 솔담님까지 셋이 함께 오른다.

반야봉이 제법 고지대로 사방으로 트인 조망이 시원한데, 계곡으로 온통 운해가 하얗게 깔렸다.

동쪽으로 초점을 맞추니 태양과 함께 운해가 멋지게 잡힌다.

저 햇볕에 봄눈 녹듯 솜사탕마저 녹으면 어쩔까 싶도록 조심스럽게 냉기가 감싸 더 남아주길 바라본다. 

일출 순간이라면 운해도 붉은빛이 감돌아 더 황홀했겠지만, 이미 태양은 중천이라 붉은빛이 사라진 지 오래다.

벌써 해가 중천이니 이제 운해를 볼 시간도 별로 없다.  

 

반대편 운해

 

해를 등지고 찍은 반야봉 표지석

2012년 반야봉에 올랐을 때는 볼품 없던 직사각형 표지석이 이렇게 바뀌었다.

왕복 한 시간 거리다 보니 대부분 회원이 포기한 반야봉이다.

 

2012년의 반야봉 표지석

삼도봉 표지동

황동으로 만든 삼도봉으로 많은 사람이 영호남의 화합을 염원하며 인증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으며 손 한 번씩 만지고 쓰다듬은 게 닳고 닳아 윤기가 흐른다.

 

우리가 반야봉을 오를 때 바로 삼도봉으로 가던 회원들이 이 연하천대피소에서 거의 아침 요기를 끝내던 시점이다.

우리야 좀 전 삼도봉에서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걸어 반야봉까지 다녀온 한 시간 거리를 따라잡은 셈이다.

수낭에 1.5ℓ 가져온 물은 먹은 거 같지도 않은 데 거의 다 떨어져 여기서 한 차례 같은 양을 보충한다.

 

지리산 국립공원

1967년 12월 29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경남, 전남, 전북 등 3개 도와 1개 시, 4개 군, 16개 읍·면에 걸친 면적은 483,022㎢로서 산악형 국립공원 중 가장 넓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능선은 25.5km이며 둘레는 320km이다.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의 3대 주봉을 중심으로 긴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지리산은 신라 5악 중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하여 지리산(智異山)이라

이름 지어졌으며, 멀리 백두대간이 흘러왔다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불린다.            (안내문 옮김)

 

지리산 성삼재에서 천왕봉 찍고 중산리나 대원리로 하산한다면, 대부분 세석대피소에서 1 박하게 된다.

이른 새벽이다 보니 반야봉까지 별로 담은 사진이 없다.

잠시 이곳에서 조망이 트이자 어디든 카메라를 갖다 댄다.

전에 왔을 때 형제봉에 나란히 서 있던 소나무 두 그루가 참 멋있다고 생각했는 데, 오늘 보니 두 그루 모두 죽었다.

멋진 소나무 두 그루가 죽었다고 안타까워했더니 솔담님이 보더니 단박에 소나무가 아니라 구상나무라고 한다.

자세히 보니 그런 것도 같은데, 뭐 여태껏 소나무로 알고 있었는데 아무렴 어떤가?

소나무든 구상나무든 형제봉을 더 멋지게 보여주던 나무가 수명을 다 해 다시 볼 수 없어 아쉽다.    

이 사진이 2012년 10월에 찍은 형제봉의 구상나무(?)다.

 

성삼재에서 영신봉 오를 때까지 그 긴 거리에 사진에 담을만한 풍경이 별로 없다.

중간에 노고단 돌탑이 있었으나 한밤중이라 사진을 찍지 못했고, 대부분 등산로는 숲이 우거져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이러다 블로그를 만들 사진도 몇 장 없겠다 싶었는데, 영신봉에 다다를 무렵부터 점차 카메라에 손이 간다.

 

 

선비샘

옛날 덕평골에 이 씨라는 화전민 노인이 살고 있었다.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던 노인은 죽어서라도 남에게 존경을 받고 싶어

자식들에게 자신의 묘를 상덕평의 샘터 위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였다.

효성스러운 자식들은 유언에 따라 샘터 위에 묻었고, 이후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샘물을 마시려면

자연히 허리를 굽혀 무덤으로 절하는 모습이 되어 죽어서 남들로부터 존경 아닌 존경을 받게 된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샘물 위에 설치된 안내문 글귀다.

그 말이 맞는다면 시신이 삭아 유골이란 정화기를 통한 정화수를 마시고 득도를 하는 셈이다.

 

지금까지 단조로웠던 숲길은 끝나고 하나둘 바위가 나타나며 기대감을 더한다.

함께한 솔담님은 이런 바위보다 소나무나 구상나무에 더 관심이 많아 어느 구상나무는 몇 번째 와서야 겨우 사진을 찍는다며 좋아한다.

 

 

 

햇살을 받아 투명한 연두색이 싱그럽다.

단풍이 고운 어느 가을에 와도 멋질 모습이다.

 

저기 보이는 하경봉을 좌로 돌아 한참을 올라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코스에 진입한다.

아침부터 걸었어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리한 산행이 계속된다.

꽤 오랫동안 산행하지 않고 지난주에 잠깐 설악산 달마봉을 밟았던 솔담님은 믿기지 않을 만큼 듬직한 호랑이 걸음이다.

비록 산행은 자주 하지 않아도 꾸준히 스쾃 등 다리 운동을 한다니 가능한 일이다.

 

 

 

나도 이참에 구상나무를 담아본다.

언뜻 주목나무와 헷갈릴 수 있는데, 주목은 줄기가 반들반들하고 붉은색이 돈다.

이에 비교해 구상나무는 줄기가 검고 거칠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긴 가지에 용의 비늘을 가진 소나무나 온몸으로 풍상을 견딘 이런 구상나무도 멋지다.  

 

드디어 영신봉이다.

이들 바위 구간을 지나면 잠시 후 세석평전을 거쳐 오늘 숙소인 세석대피소에 들게 된다.

 

왼쪽으로 난 숲길을 따라 저 바위를 넘으면 세석대피소가 코앞이다.

지금 이렇게 사진으로 보며 저 바위군을 오를 생각을 못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언제 다시 기회를 만들 때 저 암봉 구간을 샅샅이 알아봐야겠다.

보이는 숲은 대개 구상나무다.

풍력 발전을 일으키는 바람개비는 바람이 없어선지 아니면 태생이 게으른지 돌 생각을 않는다.

 

세석대피소에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다 보니 이들을 위해 통신탑이 들어섰다.

드디어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세석대피소다.

여기서 다시 1.5ℓ 정도의 물을 보충하고 이른 저녁을 먹는다.

 

 

제2부. 둘째 날

         04:40~11:58(전체 시간 07:22, 이동 거리 10.4km, 휴식 시간 01:35, 평균 속도 1.8km/h)

         촛대봉에서 일출 보고 천왕봉 찍고 중산리로 하산한 지리산 종주 

 

 

누가 팔을 흔들며 깨운다.

먼저 일어난 솔담님이 촛대봉에서 일출을 보려면 04:40에는 출발해야 하니 일어나라고 한다.

 

어제 세석대피소에 도착해 팀별로 배당받은 삼겹살을 잘라 버너에 구워 맛있게 먹었다.

월출산 닉을 가진 부부가 얼려서 가져온 김치찌개를 끓였고, 각자 준비한 라면 등 반찬을 꺼내 함께 먹으니 더 맛있다.

나야 단출하게 컵밥에 반찬 두어 가지 싸 온 데 비해 김치찌개나 코펠에 버너까지 준비한 분들로 식탁이 풍성해졌다.

저녁 먹고 서둘러 배정받은 침상에 누워 준비한 귀마개부터 틀어막았다.

집에 하나 남아있던 실리콘으로 된 귀마개는 성능이 좋아 여러 소음을 잘 차단한다.

 

낮에 워낙 많은 거리를 빠르게 걸은 데다, 배낭이 무거워 피로가 쌓인 터라 바로 잠으로 빠져든다.

잠깐 잠을 깨 건너편에 빈 공간이 많아 자리를 이동한다.

좀 전까지만 해도 옆으로 돌려 누울 수도 없을 만큼 좁던 자리가 졸지에 운동장처럼 넓어졌다.

자리를 이동한 후 잠이 안 와 제법 뒤척였으나 잠든 후 솔담님이 깨울 때까지 다시 숙면에 들었다.

여기저기 코 고는 소리가 제법 요란했다는데, 성능 좋은 귀마개로 아무런 방해도 없이 잘 잤다.

산행에선 이런 조그만 준비물도 제법 요긴하게 쓰인다.

 

아침 식사는 장터목대피소에서 하기로 하고 일출을 보러 촛대봉으로 오른다.

오늘 천왕봉 일출 시각은 05:13,  30분 전 출발이라 이미 생활 여명이 시작되어 랜턴 없이 오른다.

엊저녁만 해도 오늘 산행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리가 뻐근했는데, 숙면을 취한 탓인지 제법 걸을 만하다.

촛대봉엔 벌써 많은 사람이 일출을 기다리며 인증사진을 찍는다.

드디어 붉은 기운이 쑥 올라오며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더 이상 관심도 없는 태양이지만, 붉게 떠오르는 태양엔 다들 여러 의미를 부여하며 경건해진다.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한밤중에 나간 사람도 있다지만,

우린 여유롭게 촛대봉에서 천왕봉을 배경으로 일출을 바라본다.

저 태양의 정기를 받아 올 한 해도 좋은 기운 가득 넘치기를 소망한다.

 

 

둘째 날 등산코스

 

 

 

적막강산 * 백석 *

 

오이밭에 벌배채 통이 지는 때는

산에 오면 산 소리

벌로 오면 벌 소리

 

산에 오면

큰솔밭에 뻐꾸기 소리

잔솔밭에 덜거기 소리

 

벌로 오면

논두렁에 물닭의 소리

갈밭에 갈새 소리

 

산으로 오면 산이 들썩 산 소리 속에 나 홀로

벌로 오면 벌이 들썩 벌 소리 속에 나 홀로

 

정주定州 동림東林 구십九十여 리 긴긴 하로 길에

산에 오면 산 소리 벌에 오면 벌 소리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

 

 

*벌배채: 들 배추(배추의 평안, 함경 사투리)

*통이 지는 때: 배추의 속이 실하게 찰 때

*덜거기: 수꿩(수꿩의 평북 사투리)

*물닭: 비오리. 오리과에 딸린 물새

*갈새: 개개비(휘파람샛과의 새)

*동림(東林): 평북 정주에 있는 마을. 특히 동림폭포가 유명하다.

 

 

많은 사람이 천왕봉의 일출에 우선순위를 두지만, 이렇게 천왕봉을 배경으로 촛대봉에서 보는 일출도 좋다.

세석대피소에서 숙박한다면 천왕봉 찍고 중산리 또는 대원리로 하산한다고 해도 시간은 충분하다.

그러니 촛대봉에서 일출을 보고 천왕봉까지 가는 길의 비경도 놓치지 말자.  

단 하루 사이에 어제 같은 운해는 보이지 않고 옅은 안개가 계곡에 가라앉아 섬인 듯 바다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런 풍경은 고산지대의 대피소에서 숙박을 해야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다.

촛대봉을 떠나기 전 일출을 보던 사람들의 풍경을 담아봤다.

일출을 뒤로하고 천왕봉을 향해 더딘 발걸음을 옮겨본다.

매주 산행하는 나도 이렇게 긴 산행에선 힘들고 질리기 마련인데, 어쩌다 한 번 산행하는 솔담님은 지친 기색이 없다.

타고난 체력에 늘 감탄할 수밖에...

아직은 태양이 낮은 곳에 있어 산 그림자가 길게 드러누웠다.

역시 산은 바위와 소나무, 주목, 구상나무 등 멋진 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져야 화려하다.

 

 

 

왕봉이 가까워지자 지리산의 정수가 이쪽으로 다 몰린 듯 점점 화려해진다.

 

 

 

가까이 지날 땐 눈앞에 하나만 보이던 바위도 거리를 멀리할수록 전체를 조망하는 느낌이 좋다.

그냥 지나치면 볼 수 없던 풍경도 작은 바위에 올라가니 이렇게 전체를 큰 화면으로 볼 수 있다.

 

작은 바위에 선 게 제법 큰 까마귀다.

산행할 때 많은 새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그런데 유독 변성기 새소리인 까마귀 울음을 들을 때마다 좀 징그럽단 생각과 함께 귀엽단 생각도 교차한다.

 

 

늘 이곳 제석봉을 지날 때면 몇십 년 전 이곳에 불을 내 벌목 현장을 은폐하려 한 그 못된 산꾼에 대한 반감이 생긴다.

이미 고인이 됐겠지만, 참 어리석은 행동이다.

 

 

 

 

이 구상나무를 보고 겨울의 삭풍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그 바람이 얼마나 센 지 알 것만 같다.

 

드디어 통천문이다.

이 문을 지나야 천왕봉을 만날 수 있으니 이제 남은 거리는 일도 아니다.

 

천왕봉의 끝자락 암봉

 

통천문을 지나 이 바위가 천왕봉을 여는 마지막 관문이다.

 

드디어 오른 천왕봉에서 건너편 작은 암봉을 조망한다.

 

어제 성삼재에서 반야봉을 거쳐 세석대피소까지 12시간 동안 23.5km를 걸었다.

그리고 오늘 촛대봉에서 감동에 찬 일출을 본 후 세 시간 23분을 더 걸어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에 발을 디뎠다.

사실 성삼재에서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로 하산한다는 건 종주도 아닌데,

그 거리마저 지난한 고통 뒤에 얻는 감동이라 요즘은 종주로 쳐주는 모양이다.

청명했던 어제와 달리 하늘엔 뿌연 구름이 덮고 있으나 그래도 제법 일출다운 일출도 보았다.

우려와 달리 천왕봉에 올라왔다고 자부하기에 충분하다.

별일 없다면 올가을 뱀사골과 피아골을 연결하는 단풍산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잘 되길 기대한다.

 

천왕봉 정상석 뒷면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는 유명한 글귀가 새겨져 있다.

처음엔 ‘경남인’이었는데, 많은 이견으로 ‘영남인’을 거쳐 지금의 ‘한국인’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한국인'이란 글자 있는 부분이 갈아낸 흔적으로 좀 더 하얗게 보인다.  

 

중산리로 하산하며 올려다본 천왕봉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천왕샘에 이를 때까지 경사가 깊다.

걸을 때마다 뚝뚝 떨어지는 고도를 느끼며 내려서면 바위틈을 비집고 나온 석간수 천왕샘이 보인다.

남한에서 제일 높은 1,850m 지점에 있는 이 천왕샘은 남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대부분 등산객이 바위 사이에 괜 이 천왕샘 물을 떠먹는 데, 난 고인 물은 위생상 먹지 않는다.

그때 일행인 몇 사람이 나누는 얘기를 들어보니 설악산 공룡능선을 오르다 마등령 아래 있던 석간수를 먹고 30분도 안 돼 모두 배탈이 났다고 한다.

관을 타고 흐르면 제법 위생적일 수 있으나 고인 물은 동물의 배설물이나 주변의 이물질이 들어갈 수 있다.

 

 

지리산 암봉군락이 천왕봉 인근에 다 모여 있는 듯 보인다.

 

 

 

 

 

 

 

 

법계사를 조금 더 내려가면 로터리대피소가 있다.

여기서 마지막 간식을 먹고 난 뒤 솔담님이 안내 창구에서 20여 분 정도 침상에서 좀 쉴 수 있냐고 묻는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둘이 배낭을 내려놓고 침상에 눕자마자 깜빡 잠이 들었다.

밖은 한여름의 태양이 이글거려도 침상에서 이불 없이 자려니 추워 두 번이나 잠을 깼다.

배낭에서 상의를 꺼내 입으면 당장 추위를 해결할 수 있겠으나 그 꿈적거림도 귀찮아 팔깍지를 하고 잔다.

20여 분 쉰다는 게 한 시간을 내리자고 일어나니 한결 개운하다.

이번 산행은 운 좋게도 이렇게 잠은 충분히 잘 수 있었다.

 

전에 못 본 바위

 

칼바위란다. 제법 큰 바위로 칼날같이 생기긴 했다.

 

지리산 등산에 앞서 오른쪽 무릎이 조금 찌릿찌릿한 느낌이 있어 지리산 종주를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첫날은 무리 없이 잘 진행됐는데, 오늘은 장터목을 지나면서부터 왼쪽 무릎이 시큰거리는 게 느낌이 안 좋다.

천왕봉부터 중산리까지 5.1km 구간을 약 1,200m의 고도를 내려서야 하니 무릎에 많은 무리가 간다.

최대한 스틱을 이용하며 사뿐히 착지해도 시큰거림은 나아지지 않았으나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무사히 종주를 마쳤다. 

 

 

로터리대피소에서 한 시간 잠을 자고 하산하니 11:58이다.

후미가 다 내려온 후 식사를 마치고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다섯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으니 대장과 굼벵이 같은 회원들이 야속했다.

대여섯 시간 산행이야 따라갈 만 하지만, 이런 장거리 산행을 함께 하긴 힘든 산악회다.

 

설악산에서도 이렇게 많은 시간을 주면 공룡능선의 1275봉을 오르고 신선봉도 오를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설악산이 아니어도 나 혼자 여기저기 누비며 다닐 자유를 즐길 수 있겠다.

다소 고민했던 산행을 솔담님의 리딩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