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틀 전의 등산을 제대로 재구성해낼까 의문이다. 하루살이에 비하면 영겁같은 삶을 산다고 하지만 유구한 영겁에 비하면
이 또한 찰라에 지나지 않는다. 나이 들어가며 물건을 손에 쥐고도 찾는 일이 생기니 나중을 위해서나 가보지 않은 자를 위해
참고용으로 편집하고자 한다.
일본의 원전사고가 우리 영토까지 방사능물질로 피해를 준다는 뉴스에 중부지방엔 비까지 내린다고 했을 때 혹여 방사능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적잖이 고민은 했지만 「가겠다」고 답글을 달았으니 신뢰를 져버릴 수 없어 대로님을 포함한 여덟명이 오붓하게
목적지에 도착한다.
▼ 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탑
▼ 청년부터 백발 성성한 장년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이곳부터 산행이 시작되는데 좌측으로는 선자령에 설치된 풍력발전소가 보이고 그 아래 양떼목장엔 눈 아래로 목초가 언 몸
녹여가며 움틀 준비를 하고 있겠다. 지난 겨울 전국토를 휩쓴 구제역은 잘 피했으리라 믿으며 발길을 옮긴다.
▼ 풍력발전기
산불감시초소에 이르러 제왕산과 능경봉의 갈림길에서 2km 거리에 있는 제왕산을 먼저 가 보기로 하고 제왕산에서 능경봉을 거쳐
고루포기산으로 연계산행을 하게 되니 두 산을 한꺼번에 잡는다. 우리 산방 회원님들이야 수 없이 많은 산행으로 이 산 저 산 다
다녀봤겠지만 불수사도북, 관악산을 빼고는 원행 산행 경험이 별로 없는 나로선 산행 이력이 하나 더 붙으니 다다익선이다.
▼ 점선 따라가면 제왕산에서 능경봉 거쳐 고루포기산 오른 후 하산
▼ 제왕산 2km를 왕복하며 다리힘 기르고
차를 사고자 하면 길거리에 색 다른 차만 보이고 임신하게 되면 임산부와 애기엄마만 보인다더니 이제 관심은 오직 산이다.
▼ 帝王山 보다는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우왕산이란 산명이 보다 더 현실적이란 생각이 든다
드문드문 적당히 암릉이 반겨주며 긴장감을 더하나 힘들거나 미끄러우면 우회하면 되지만 정복본능은 이 정도는 가볍다.
소나무의 고목을 본다는 것은 그가 가졌을 지난 날의 끈기, 염천의 하늘 아래 만물이 숨을 헐떡이며 말라 비틀어지는 지경에도
힘껏 뿌리의 빨대로 안간힘을 쓰며 물 한 모금도 뽑아내는 애씀이 있다. 일년에 몇 개씩 거쳐가는 태풍을 이기기 위해 몸을 비
틀며 자라고 한 겨울 눈 속에 파묻혀 뿌리가 얼어 진물이 훌러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담대함 때문일까.
우리 민족은 유난히 소나무에 대한 애정이 깊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강일세』하
며 애국가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 소나무처럼 영원하길 기대하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뿐만 아니라 많은 묵객이 소나무의 기상
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 이 나무를 보자. 이미 죽어 고목이 되었으나 하나 둘 돌을 쌓아 제단을 만들고 신성시 하여 그들의 염원을 발문하는 꼬리를
달아 놓았다. 몇 개 자세히 보니 승진, 취업 등 그 염원도 다양하다. 굳이 제왕산이라 명해 고려조의 우왕이 피난 왔음을 알게 되
니 우왕의 이름이 슬프다.
이 소나무가 무슨 영험이 있으랴만 하나 둘 토속신앙은 영혼을 부여하고 제단을 쌓아
제를 지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지고지순한 아름다움이 있어 죽어서 비로소 신이 된 나무다.
▼ 대관령 북풍한설에 가지가 얼어 죽어도 늠름한 기상은 여전히 푸르다.
드디어 제왕산을 뒤로 하고 능경봉을 향해 오르자 설원이 펼쳐지며 4월의 크리스마스가 시작된다.
올라가는 길이라 아직은 스노우체인을 감지 않았으니 박빙을 걷듯 조심하지 않으면
빙설이 언제 눈바닥으로 메다 꽂을 지 모르니 설설 기어올라야 한다.
멀리 동해의 바다내음을 품은 안개가 온 산을 휘감으며 나뭇가지에 내려 앉아 두께를 더하며 상고대를 만들어 간다.
겨울을 지나며 마지막인 이 고난을 이기면 가지에 물이 오르고 더 푸른 연초록 나뭇잎 귀엽게 돋아날테지.
지난 겨울 영동지역의 폭설은 교통불편과 제설작업의
많은 부산함을 지불하고도 한참 후에야 복구되었으니 현실의 폭설은 의미가 다르다.
▼ 능경봉(陵京峰)이라니 영동사람들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언덕이란 뜻일까?
▼ 눈에 눈이 묻어 있으니 무효다.
이산 저산 할 것 없이 돌탑 쌓는 게 유행인가 보다. 돌이나 바위는 그저 저 있던
그 자리에 있으면 좋으련만 품 들여 인간의 욕심을 돌로 채운다.
가운데 보이는 나무는 밑둥지가 붙고 중간에 도 붙어 서로가 한 몸임을 여지없이 드러내는데
세인은 이를 연리지라 부르니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 하는 속세의 기준이다.
깊이 들어 갈수록 상고대의 모습은 더 아름답고 눈은 깊으니 설상가상 점입가경이다.
사진에서는 겨우살이도 보이니 이곳이 얼마나 청정한 산골인지 알겠다.
한 분은 어디 가신걸까?
이제 고루포기산 정상이니 고생끝이라 그런지 전원이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다복솔이 많아 고루포기란 이름이 생겼다는데 다복솔은 뭐고, 그게 많다고 고루포기라니 뭔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수 많은 부대가 지나가며 가지마다 흔적을 남겼으니 나뭇가지가 가진 전리품의 무게를 나무는 알까?
▼ 깃털 같은 가벼움은 목화송이 풀어헤친 것 같다.
▼ 마지막 눈곷 터널을 지나면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산더덕이다. 하산주를 만들어 먹고 모두가 산신령이 됐다는 그 더덕...
다시 현실세계로 건너와야 한다는 오목교를 건너자 가야할 집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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