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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제주도

옛 제주성터와 오현단

by 즐풍 2019. 4. 5.

옛 제주 성터

 

 

 

옛 제주성터 사이로 도로가 뚫려 성벽도 나뉘었다.

저곳엔 오현단이 자리잡고 있어 잠시 후 들어가보기로 한다.

 

 

 

제주성은 제주 시내 중심지를 빙둘러 축조되었다. 맨처음 언제 쌓았는지 분명치 않다.

1411년(태종11년) 정월 제주성을 정비토록 했다는 기록을 보면, 적어도 그 이전에 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일제가 1925년부터 1928년까지 제주항을 개발하면서 성벽을 허물어 바다를 매립하는 골재로 사용하면서 제주의

정통성을 크게 훼손하며 옛자취는 대부분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남아있는 성벽은 옛 성벽의 축성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제이각(制夷閣)

왜적을 제압하기 위한 누각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7권(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에 소개된 유적지를 따라 다니다보니 제주옛터나 오현단,

무근성까지 오게 되었다.

물론 시간이 넉넉해 다 돌아보면 좋지만, 일반인이라면 건너뛰어도 될 곳이다.

어디를 갈지 막연한 것보다 책을 읽고 오면 의미있는 탐방이 되겠지만,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곳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조선시대에 제주에 다녀간 관료 287명에 유배온 문신들은 대략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 중 후대에 널리 존중받는 다섯 분을 모신곳이 오현단이다. 

충절과 학문으로 크게 존숭받게 된 분들은,

충암 김정(유배), 동계 정온(유배), 청음 김상헌(안무사), 규암 송인수(제주목사) 우암 송시열(유배) 등이다.

 

제주 출신으로 조선조 세종 때 문신이었던 고득종의 생가터에 그를 모신 사당을 세운 것이다.

 

 

 

 

 

 

 

 

 

 

 

 

 

 

 

귤림서원

귤림서원은 1578년(선조11)에 제주판관 조인후가 기묘사화로 1520년 6월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죽은 김정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적거지에 사묘를 세운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후 1660년 제주목사 이괴가 장수당을 건립 한 것을 나중에 귤림서원이라 고쳤다.

 

 

 

장수당

장수당(藏修堂)은 1660년 제주목사 이괴가 세종 때 한성판윤을 지낸 고득종의 옛터에 세웠던 10칸의 강당이다.

1875년 봄 제주목사 이희충이 장수당 옛터에 경신재를 세워서 선비의 자제들이 학업을 닦을 수 있도록 하였다.

 

 

 

증주벽립

'증자와 주자가 이 벽에 서 있도다.'라는 뜻으로 서울 성균관에 있는 송시열의 글자를 탁본하여 새긴 것이다.

 

 

 

 

 

 

 

 

 

 

 

 

 

 

 

무근성

구성(舊城)에서 나온 말로 탐라국 시절의 성터를 말한다. 도시가 발달하면서 지금은 옛 정취를 살필 수 없는 시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