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_225
2022.12.24. (금) 오후에 잠시 탐방
원주에서 태어났어도 어린 시절엔 원주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나이 들며 원주를 떠났다.
어쩌다 가게 되는 고향은 신도시가 들어서며 산천이 바뀐 지 오래전이고, 친구들도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형님이나 일가친척이 계시니 명절이나 큰일이 있으면 가끔 갈 정도인 곳으로 남았다.
이번에는 당숙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기별을 듣고 문상 차 원주에 도착했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울 때 돌아가셔서 당숙부가 잠드신 봉평면 백옥포 선산에 모실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동안 묘지 관리가 힘들었는지 윤달이 낀 새해에 문중묘지로 함께 이장한다고 해 한시름 덜었다.
엄동설한에 꽝꽝 언 산비탈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니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상주인 6촌 형제들은 모두 코로나 19에 감염돼 조카들이 상주노릇을 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발인을 끝내고 이왕 원주에 왔으니 가장 손쉽게 둘러볼 수 있는 강원감영에 들린다.
잠깐이면 둘러보겠단 생각에 모자를 쓰지 않고 왔더니 귀가 떨어져 나갈 듯 시리다.
전에 원주우체국이 있던 자리를 매입해 후원과 영주관을 복원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렇게 옛것을 복원하며 문화유산을 후세에 돌려준다는 건 매우 잘 된 일이다.
□ 원주 강원감영(原州 江原監營)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의 26개 부, 목, 군, 현을 관할하던 강원도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조선 태조 4년(1395)에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실시됨에 따라
감영이 폐지될 때까지 500년 동안 강원도의 정청(政廳) 업무를 수행했던 곳이다.
감영의 규모는 선화당(정청)을 비롯하여 재은당(내아), 포정루(정문), 4대문, 객사 및 부속건물 등
31동 건물이 있었으나 원주시 청사, 재향군인회관 등이 생기면서 그 모습을 잃어버려 현재는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의 건물만이 남아 있다.
2000년 발굴조사 결과 중삼문 터, 내삼문 터, 공방고, 책방 터로 추정되는 건물터와 포정루에서
중삼문 터와 내삼문 터를 거쳐 선화당으로 이어지는 보도, 선화당을 중심으로 하여
외곽으로 둘러쳐진 담장터, 행각터 등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선화당 뒤편에 있는 연못터인 방지의 호안석축 등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잘 남아 있다.
강원감영지는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 당시의 건물이 원래의 위치에 잘 남아 있고, 중삼문, 내삼문,
공방고터, 책방고, 보도, 담장, 행각 등이 있던 흔적과 같은 관련 유구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또한 강원감영 이전의 원주목 관아의 건물터 등이 그 아래층에 그대로 잘 남아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관아 건물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유적이다.
※(원주강원감영지 → 원주 강원감영)으로 명칭변경 되었다.(2011.07.28 고시)
2008년 항공사진 2022년 항공사진
위 사진을 보면 좌측 왼쪽 상단의 2008년 사진엔 우체국 건물이 그대로 있으나 2018년 복원 공사를 거쳐
지금은 저수지와 영주관, 조오정, 봉래각 등이 들어선 걸 알 수 있다.
□ 포정루 (布政樓)
조선 태조 4년(1395) 원주에 설치된 강원감영은 강원감사의 집무처로 70여 칸의 규모였다.
임진왜란(1592) 때 부서져 다시 건물을 세웠으나 한국전쟁 때 큰 피해를 입어
현재는 관찰사 집무처였던 선화당과 정문인 문루만 남아있다.
문루에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강원감영문루’라는 현판이 달려있었으나
『여지도서』등의 문헌을 근거로 하여 1991년에 ‘포정루’로 고쳐 달았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누각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하고 있는 팔작지붕이다.
1층 가운데 칸에는 2짝의 널문을 달았다.
2층은 주위를 난간으로 돌려 사방을 개방하였고 천장은 뼈대가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감영의 자리에 군청이 들어섰지만 선화당은 그대로 남아있다.
임진왜란 이후 1667년에 다시 지은 선화당은 앞면 7칸·옆면 4칸의 1층 건물로
문루와 같은 팔작지붕인 평범한 관아 건물이다.
대청 쪽과 앞면, 오른쪽 등은 특이하게 띠살문으로 처리하였다.
포정루 및 선화당은 조선시대 감영의 형태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2004년 1월 17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호 강원감영(문루 및 선화당)에서
포정루 및 선화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출처_포정루)
안쪽에 들어서서 보는 포정루
관리사무소를 들어서면 정면으로 행각이 보이고, 좌측으로 내삼문이 보인다.
□ 강원감영 선화당(宣化堂)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은 조선시대 강원도 감영의 정당(正堂)으로서
중앙에서 파견된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공간이다.
특히 강원감영 선화당은 정문인 포정문도 원형으로 남아있어 조선시대 감영의 구성 중
핵심적인 공간인 진입공간의 위계를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감영이다.
기록상 1665~1667년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는 강원감영 선화당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평면에,
팔작지붕 겹처마에 양성을 하였으며, 용마루에 용두, 내림마루와 추녀마루에는 망와를 설치하였다.
원주 선화당은 평면 구조 등은 다른 지역 감영의 선화당과 계통을 같이 하는 보편성이나,
차별되는 점은 조선후기 남부 6도 감영의 선화당 중 가장 큰 규모에 속하고,
중수와 개건 및 도시적 변화가 있었음에도 동일한 위치에 실물 그대로 전승되고 있다.
1875년 개건 당시의 건축적 양상을 보여주는 포작과 ‘주삼포’라는 구체적인 명칭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기록이 있는 점 등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1667년 중건된 이후 현재까지 주요 목조가구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강원감영 선화당은
조선시대 고급 관아건축의 전형으로 감영 정당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건축사례로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여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
(출처_문화재청)
선화당 내실
복도(화랑)
처마 밑
□ 선화당 옆 대은당(내아)
내아는 관찰사와 그의 가족들이 생활하던 공간이다.
온돌방과 창고가 함께 있는 건물로, 오랫동안 생활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이 건물은 「여지도서」의 기록에는 대은당*으로, 「관동지」에 실린 강원감영지에는 내아로 기록되었다.
내아는 17세기 후반에 관찰사가 감영에 머물면서 강원도의 다른 지방을 살펴보던
유영(留營) 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생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대은당(戴恩堂): 영조 35년(1759) 내아에서 관찰사의 노모와 가족들을 함께 생활할 수 있게 하여,
임금의 은덕과 은혜를 기리는 뜻으로 '대은당'이란 편액을 지었다. (안내문)
조선은 전국을 8도로 나누어 각도에 감영을 설치하고 관찰사를 파견하여 지방조직을 관장하였다.
초기에는 관찰사의 임기가 1년이었으므로 대부분 관할구역을 순시하면 서 도정을 종합하는
중심지로서의 의미가 강했고, 인조 16년(1638) 이후부터는 관찰사가 감영에 머무르면서
봄, 가을 1개월 이내로 관할구역을 순시하는 형태로 전환되었다.
강원감영은 태조 4년(1395) 6월 13일 영동의 강릉도(江陸道)와 영서의 교주도(交州道)가 병합되면서
강릉의 강(江) 자와 원주의 원(原) 자가 합쳐진 이름으로 고종 32년(1895) 8 도제가 폐지되어
23부제가 시행될 때까지 500년 동안 존속되었던 지방관아이다.
원주 강원감영지가 복원되면서 선화당 중심으로 세 구역으로 나누어 후원 쪽으로 별도의 담장을 만들었다.
작은 솟을대문을 통해 후원으로 나가게 된다.
영주각 앞 느티나무 노거수
사적 제439호인 강원감영은 1395년 원주에 처음 설치된 이래 1895년 23부제의 실시로 폐지되기까지
500년 동안 존속하였다.
강원감영은 관찰사의 겸목제(兼牧制) 시행으로 17세기 이후 본격적 영건이 시작되어 폐지 직전까지
약 50동 670칸 규모로 존속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전각이 훼철되어 2005년 시설 일부를 수리·복원하였고,
(구) 원주우체국을 철거 후 감영 후원(後園)에 해당되는 시설을 복원했다.
강원감영 후원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원주수비대 운동장이 조성되면서 전부 없어졌다.
후원 조성을 위한 발굴조사 결과 연못일부와 건물지가 확인되긴 했으나,
그 전모를 밝히기에는 유구의 교란과 훼손이 심하였다.
문헌과 그림 등을 통해 후원 전각들을 고찰해 본 결과 연못 안에는 봉래각(蓬萊閣)·영주사(瀛洲榭:관풍각)·
채약오(採藥塢)·조오정(釣鰲亭)·홍교가 건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연못 밖에는 환선정(喚仙亭)과 방장대(方丈臺)가 건립되어 있었다.
후원 전각의 조성경위와 명칭을 살펴보면 모두 신선과 관련되어 있다.
연못 안에는 전설의 신선세계인 삼신산(三神山)을 의미하는 삼도(三島)를 만들고, 그 위에 전각을 지었다.
봉래각을 시작으로 후원에 건립되는 전각들에 영주·방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머지 전각들에도 선가(仙家)의 이름을 부여했다.
후원뿐 아니라 그 주변의 전각들에도 신선과 관련된 이름을 붙였다.
‘봉래산’인 금강산을 관할했던 강원감영 후원에 이와 걸맞은 신선세계를 조영하였던 것이다.
강원도관찰사들은 여가에 수시로 후원에 나가 신선이 되어 탈속하는 풍류를 즐겼고,
‘봉래주인’, 즉 신선세계의 주인이라 자처하였다.
강원감영은 금강산이 소재해 있던 강원도의 특징이 잘 반영된 신선세계가 구현되어 있었다는
매우 독특한 역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_문화재 49권 3호에서 발췌)
□ 영주관(瀛洲館)
영주관은 신선이 산다는 세 개의 산(삼신산) 중 하나인 '영주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1897년 정선군수로 부임한 오횡목이 남긴 「정선총쇄록」에 의하면 밖에는 '관풍각',
안에는 '영주관'이라는 편액을 달았다고 한다.
관풍각은 풍속을 자세히 살펴본다는 뜻의 관풍찰속(觀風察俗)에서 따온 이름이다.
연못 가운데 있는 영주관을 드나들기 위하여 건물 동쪽과 서쪽에 각각 무지개다리(虹橋)를 설치했다.
아치형 다리를 놓은 것은 뱃놀이를 즐기기 위한 것이다. (안내문)
□ 채약오(採藥塢)
신선이 먹는 불로초를 캐는 언덕이란 뜻으로 봉래산을 비롯한 삼신산에는 영험한 약인
불로초가 있다는 신선세계의 전설을 따른 것이다.
영주각
□ 봉래각
김금원
원주 출신으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여성 시인이자 여행가다.
호는 금원(錦園)이다.
금원이 14살 때 남장을 하고 첫 여행지인 금강산으로 향하는 첫걸음을 디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안내문)
김금원의 저서를 찾아보니 새소리 바람소리 님의 좋은 글이 있기에 연결시킨다.
□ 조오정
전설에 나오는 '자라는 낚는 정자'라는 뜻으로, 신선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여섯 자라는 바다에서 다섯 산을 떠받치다가 거인 용백에게 잡혀 죽었다는 전설에 나오는 자라다.
김금원 동상 앞에서 바라보는 영주관과 조오정, 봉래각
영주각
후원에서 다시 선화청이 있는 관아로 들어왔다.
영주관과 담장 하나 사이에 있는 책방이다.
책방은 도서와 출판 업무를 담당하던 곳이다.
책방에는 감영에서 수집한 도서자료 외에 강원도 각 지역에서 올라온 인구·세금·날씨 등에 대한 보고자료,
분쟁·갈등에 대한 소송관계 문서 등이 보관되었다.
관찰사의 수행비서 격인 책사가 선화당과 가까운 거리인 책방에 근무하면서 관찰사에게 조언을 하기도 했다.
(안내문)
담장 너머로 보는 영주관
선화당 측면
감영감영 사료관(행각) 앞 관찰사의 조형물
지금부터는 사료관에 있는 자료들을 찍은 것이다.
휴대용 업무 편람
분청과 백자
즐풍의 조상도 이곳에서 관찰사로 근무했다.
고지도를 바탕으로 복원한 원주 강원감영 배치도
나막신
기와
감옥
관찰사 및 목사 선정비
중삼문(中三門)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으로 출입하는 진입공간에는 포정루중삼문, 내삼문이 있다.
중삼문은 진입공간의 배치상 가운데 위치한 문으로 포정루를 지나온 사람은
중삼문에서 재차 본인의 신원과 방문 목적을 밝혀야 했다.
중삼문은 '관동관찰사영문'이라는 고유한 명칭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강원감영의 관찰사를 만나기 위해 들어서는 문을 의미한다. (안내문)
관리사무실
담장 밖에서 넘겨다 본 영주관
원주에 살 땐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강원감영을 오늘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강원도청이 춘천에 있지만, 예전에 원주에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강원도의 중심은 원주이므로 지금의 강원도청도 춘천이 아니라 원주에 있는 게 맞다.
해방 이후 춘천으로 옮겨간 강원도청을 최근 신청사를 여전히 춘천에 짓겠다고 한다.
통일된 이후엔 춘천이 중심일 수 있으니 미래를 보면 안 될 것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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