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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전라도·광주

전라남·북도와 제주도를 관장하던 전라감영 복원

by 즐풍 2022. 11. 12.

 

 

 

 

2022.10.1 (토)  오후에 탐방

 

 

전주를 겨우 하루 다녀왔는데, 작성할 게 너무 많아 모두 처리하는 데 며칠 걸렸다.

전주 한옥마을과 경기전, 전주향교, 남고산성은 제법 시간을 들여 천천히 봤다.

나머지 유적지는 스치듯 지나갔어도 각각 별개로 작성하다 보니 시간만 낭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전라감영을 마지막으로 작성하게 되니 비로소 비밀 정원에서 탈출하는 기분이다. 

 

 

 

□ 전라감영(全羅監營)

 

전라감영은 조선 초부터 1896년까지 약 500년 동안 지금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제주도를 관할하던 

감사(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곳이다. 

조선시대의 전라감영은 정문인 포정문(布政門), 감사의 집무실인 선화당(宣化堂), 감사의 주거 공간인 연신당(燕申堂), 

감사 가족의 처소인 내아(內衙), 누각인 관풍각(觀風閣) 등 건물이 모두 40여 채가 있었다. 

1896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라감영은 전라북도 도청의 행정업무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감영 건물 대부분은 근대화 과정에서 없어지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선화당도 1951년 에폭 발 사고로 불타버렸다. 

이곳은 조선시대 전라도 행정의 중심지였으며,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 자치 기구인 집강소의 총본부 대도소(大都所)가 설치된 장소로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2015년에 옛 도청 건물을 철거하고, 

2017년부터 전라감영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선화당, 연신당, 내아, 관풍각 등을 복원하였다.

                                                                                                                                                    (안내문)

 

 

내삼문

 

내삼문은 전라감영 선화당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솟을대문 형태로 어칸에서 협칸, 퇴칸으로 가면서 지붕의 높이가 낮아지는 형태이다.

 

전라감영 밖의 이 공터는 어떤 용도로 활용할지 궁금하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호남평야에서 수탈한 양곡 수송을 위해 전주와 군산을 연결하는 전군가도를 개설(1907年) 했다. 

이 과정에서 전주성은 풍남문만 남기고  모두 철거함으로써 전주부성의 자취는 사라졌다. 

전주부성 안에 있던 전라감영이 사라진 후 전라북도 청사와 완산경찰서 등이 들어섰다. 

2015년 옛 도청 건물을 철거하고, 2017년부터 전라감영 복원공사를 시작해 

선화당, 연신당, 내아, 관풍각 등을 복원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인구와 경지면적 등의 규모에 따라 부(府), 목(牧), 군(郡), 현(縣) 등의 행정 등급을 두었다.

대체로 전주부처럼 큰 지역의 읍성은 부성으로도 불렀고, 나머지 목, 군, 현은 대체로 읍성이라 했다.

 

 

선화당

전라감사가 머물면서 집무를 보던 사무실

 

관풍각

 

 

관풍각

고위 관료를 맞아 이곳에서 연회를 하거나 시문을 짓던 곳이다.

 

관풍각

 

 

전주라는 지명은 신라 경덕왕 16년(757年)에 처음 불려졌으니 벌써 126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견훤이 세운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전주는 조선왕조 500年년을 꽃피운 조선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전라남·북도와 제주도까지 관할했던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다. 

 

 

내아와 행랑

내아는 전라감영 가족들이 거처하는 안채로 선화당 북쪽에 있다.

19세기 완산부지도에 내아가 'ㄷ' 자형 건물로 그려져 있다.

 

 

 

 

 

 

 

 

연신당

 

연신당은 전라감사의 처소이다.

1688년(숙종 14)에 전라감사 이유가 창건하였다.

연신당이란 이름은 논어 술이편에 '공자께서 쉬고 계실 때는 마음이 온화하며 너그럽고 즐거우신 듯 보였다.'

에서 나온 말이다,

감사가 편히 쉬는 처소를 의미한다.

경상감영은 징청각(澄淸閣)이라 하였다.

 

전라감영에 모아둔 공적비

 

 

전주는 조선시대 전라감영이 있던 곳으로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제주도를 관할로 둔 곳이다.

호남평야라는 거대한 미곡창고를 갖고 있어 어느 지역보다 물산이 풍부한 곳이었다.

이곳을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지키고 있어 7년 전쟁에서 식량창고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또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으로 조선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거대한 전주읍성을 일제 강점기 때 일제는 민족의 혼과 정기를 없애려고 폐성령을 단행하여 풍남문만 남았다.

최근에 전주읍성에 있던 전라감영을 복원하며 겨우 단추 하나를 끼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