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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경상도·부산·울산·대구

울산 고래문화공원

by 즐풍 2021. 8. 22.

2021_111

 

 

2021.7.23 (금). 오전 12시에 탐방

 

 

울산 장생포의 고래잡이 역사를 살펴보면 1891년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태평양어업 주식회사를 설립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그 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포경선을 독점하면서 장생포가 포경선의 중심이 되었다.

이후 울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래잡이의 중심이 되었다

그로부터 130여 년이 지난 울산은 고래고기 사건으로 검·경간 갈등으로 떠들썩했다.

이른바 "고래고기"사건은 여전히 미궁으로 빠지며 검·경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

 

2019.12.03 자 경향신문 "여적" 「울산 고래고기 사건」을 심심풀이로 올린다. 

 

고래고기는 한국인이 먹은 지 오래됐다.

선사시대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고래 무리가 그려져 있고, 경상도에선 제사상에도 올랐다.

지금은 울산(장생포)과 포항(구룡포)의 명물이다.

수육·육회·구이·전·탕으로 먹는 고래고기는 지방이 많은 꼬리 살이 가장 맛있다고 알려져 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대체로 혀에 남는 맛은 쫄깃함, 느끼함, 고소함이다.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밍크고래는 소매가 8000만 원, ㎏당 15만 원선에 팔린다.

멸종위기에 처한 고래는 1986년 세계적으로 포획을 금지했다.

한국에서도 조사·연구 목적의 포획에 국한하고, 혼획(그물에 걸려 죽거나 좌초·표류)한 고래만 해경에 신고한 뒤

수협을 통해 유통·해체·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값비싼 고래도 ‘합법 고기’와 ‘불법 고기’로 갈라지는 셈이다.

 

2016년 4월 장생포 고래 시장이 떠들썩해졌다.

울산경찰청이 밍크고래를 불법 포획·유통한 4명을 사법 처리한 지 한 달 만에

울산지검 검사가 고래고기 압수품 27t 중 21t(30억 원 상당)을 업자에게 되돌려준 일이 벌어졌다.

“불법 구분이 어렵고, DNA 검사도 오래 걸린다”며 고래축제에서 팔 수 있게 ‘환부(還付) 지휘서’를 내준 것이다.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이 부임한 것은 다음 해 7월이다.

고래 압수품이 가짜 유통증명서로 환부된 사실을 뒤늦게 안 경찰은 반발했고, 환경단체는 검사를 직권남용으로 고발했다.

앞서 고래연구소는 환부된 고기가 불법이라는 유전자 분석을 내놨고, 업자의 변호사가 울산지검 검사였던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이 변호사를 겨눈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여러 차례 기각했다.

전관·향검(鄕檢)·환경 문제가 뒤엉킨 고래고기 사건이 검경의 수사권 충돌로 번진 격이다.

 

세상의 눈이 다시 울산 고래고기에 꽂혔다.

2018년 1월 11일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특감반원 2명이 울산에 간 이유를 두고 서다.

환경단체가 고래고기 사건을 규명해달라고 청와대에 청원한 지 이틀째 된 날이었다.

작금의 진실 공방은 당시 울산시장 측근 비리를 보러 갔는지, 고래고기 사건을 탐문했는지가 핵심이다.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

오는 9일 황 청장이 출간하는 책 제목에도 고래가 나온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도 물음표 많은 미제로 남아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래고기는 선사시대에 새긴 반도대로 암각화에서 남아있다.

당시의 눈으로 보아도 고래는 대단하게 보였을 것은 틀림없다.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있는 선사 및 역사시대의 암각화 유적으로 1971년에 발견되었다.

300여 점의 사람과 짐승, 각종 생활상만 그림이 출토되었다.

고래문화공원에 반구대 암각화를 크게 복제해 놓았다.

 

 

 

 

암각화는 비교적 정밀하여 솜씨가 좋은 천재적인 화가의 작품이다.

 

□ 반구대

 

반구대(盤龜臺)는 언양읍 대곡리의 사연호 끝머리에 층을 이룬 바위 모양이 마치 거북이 넙죽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반구대 암각화는 대곡천변의 깎아지른 절벽에 너비 약 8m 높이 약 3m가량의 판판한 수직 암면에

그림이 집중적으로 새겨져 있다.

주변 10곳의 암면에서 확인되는 소수의 그림을 포함하여 모두 307점의 형상이 표현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그림은 주제에 따라 크게 인물상(人物象), 동물상(動物象), 도구상(道具象), 미상(謎象)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인물상은 측면(側面)을 표현한 전신상이 많으며 활로 동물을 사냥하거나 두 손을 치켜든 모습,

악기로 보이는 긴 막대기를 불고 있는 모습 등은 사냥과 일종의 종교적 행위를 연상시키고 있다.

측면 전신상의 대부분은 다소 과장된 남근(男根)을 표현하고 있으며,

사지를 벌리고 있는 정면상이나 가면처럼 얼굴을 표현한 그림도 있다.

동물상들은 구체적인 종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각 동물의 형태와 생태적 특징들을 잘 표현하고 있다.

동물그림에서는 고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주암면 좌측 편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사슴과 같은 발굽동물과 호랑이와 표범, 늑대와 같은 육식동물들은 주암면 우측 편에 많이 새겨져 있다.

구체적인 종 구분이 가능한 동물로는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참고래, 귀신고래, 향유고래와 같은 대형 고래류와

바다거북, 물개, 물고기, 바다 새와 같은 바다동물, 백두산사슴, 사향사슴, 노루, 고라니, 호랑이, 표범, 늑대,

여우, 너구리, 멧돼지 등의 육지동물이 있다.

도구상은 사냥·어로와 관련된 것으로 배와 부구, 작살, 그물, 어살, 활 등으로 유적의 조성시기와 당시 생활상을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미상은 정확한 주제와 내용을 알 수 없는 그림으로서 의미를 알 수 없는 것과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마모와 탈락 등으로

판독하기 어려운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유적의 조성연대는 연구자들 사이에 견해차는 있겠지만 대체로 신석기시대 말에서 청동기시대 초기까지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울산과 동남해안 일대의 패총에 포함된 동물유체 분석결과와 울산만 고(古) 환경 연구 등에 따르면,

유적 조성의 중심연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7,000년 ~ 3,500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부산 동삼동 패총출토 사슴문 토기, 그물문 토기, 조개 가면, 양양 오산리 얼굴상, 통영 욕지도 패총 멧돼지 토우,

울산 신암리 여인상, 울산 세죽리 패총 물개 토우 등 암각화에 표현된 그림의 주제와 관련된 많은 유물들은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볼 수 있다.

이외에도 2005년 창녕 비봉리 패총에서 배가 발굴된 바 있으며,

2010년 한국문물연구원이 실시한 울산 황성동 패총 발굴조사에서는

고래사냥을 실증적으로 밝혀주는 작살이 박힌 고래 뼈가 출토되었다.

보다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이들 유적은 신석기시대 전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당시의 생업 환경, 사냥과 어로 도구, 관련 유물, 시대적 맥락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볼 때

유적의 조성연대는 최소한 신석기시대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유적이 알려지기 전까지, 인간이 바다에서 처음으로 고래를 사냥한 시기는 기원후 10세기~11세기로 추정되고 있었다.

반구대 암각화는 이 보다 수 천 년이나 앞선 그림으로 인류 최초의 포경 유적일 뿐만 아니라

북태평양 연안지역의 선사시대 해양어로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_울산시청]

 

 

 

고래 조형물

 

 

 

 

 

 

구릉 정상엔 고래조각정원이 있다.

대왕고래부터 보인다.

 

 

 

 

 

 

 

 

 

 

 

 

 

 

울산 고래박물관 방향

 

 

 

배롱나무꽃 

 

 

 

고래문화공원을 간단하게 보고 고래박물관으로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