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_69
2020.10.18. (일) 07:44~15:31(전체 거리 13.1km, 전체 시간 7시간 48분, 휴식 1시간 17분, 평속 1.9km/h) 맑음
이 가을에 뭘 하고 어딜 다녀와야 좋을까?
여행을 좋아하면 주변 들녘의 풍경이 좋겠지만, 등산객은 누가 뭐래도 산행이다.
때는 바야흐로 산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니 그 첫머리는 늘 설악산이 장식한다.
이번 설악산은 흘림골과 주전골, 울산바위, 서북능선, 12선녀탕 등 네 곳을 탐방할 계획이었다.
어제 설악산으로 가는 길목인 오대산부터 들렸다.
설악산보다 남쪽인 오대산 정상은 이미 낙엽이 진 상태이므로 한참 북쪽인 설악산은 말할 것도 없겠다.
하여 서북능선은 두 개로 나눠 귀때기청부터 대승폭포를 거쳐 장수대까지 하루 탐방하고
다음날 장수대에서 안산을 거쳐 12선녀탕을 하산하려던 계획은 접는다.
설악산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울산바위도 흔들바위 위로는 통제 중이다.
지난번 태풍이 휩쓸고 간 이후 낙석사고가 우려돼 출입금지다.
이참에 울산바위 동, 서봉을 탐방하려던 계획마저 수포로 돌아갔다.
설악산 국립공원 홈페이지를 안 봤으면 낭패 볼 뻔했다.
그래도 설악산 어느 한 곳이라도 들려야 직성이 풀리겠다.
최종 후보지는 설악산에서 가장 단풍이 아름답다는 주전골이다.
주전골만 가기엔 너무 거리가 짧다는 생각에 흘림골도 함께 탐방하기로 한다.
주전골은 이미 지난여름에 다녀왔으므로 어렵지 않게 들머리로 잡는다.
흘림골 주전골 탐방지도
흘림골을 들머리로 잡으려면 주차가 가장 걱정이다.
흘림골 공원 지킴터에서 주전골 방향으로 220m 지점에 차량 쉼터가 있는 걸 카카오 맵 스카이뷰로 알아냈다.
어렵지 않게 들머리로 들어서며 보는 칠형제봉의 위용이 마음을 즐겁게 한다.
당겨본 칠형제봉인데, 몇 번째 놈인지 모르겠다.
아래쪽은 단풍이 가득한데, 산봉우리 그림자에 잠긴 곳이 많다.
칠형제봉은 잠시 후 등선대에서 전체를 보게 될 것이다.
모두가 보고 싶어도 감히 볼 엄두가 안 난다는 여심폭포다.
여심은 깨끗하고 물이 많아야 사람 받는데, 갈수기가 물은 적고 더러 풀도 말라버려 삭막한 느낌이다.
한여름의 여심폭포가 궁금하다면...
흘림골 공원 지킴터와 등선대까지 1.2km 거리인데, 공원 지킴터에서 약 800m 지점에 있다.
여심폭포는 고도 840m로 1,002m인 등선대까지 오르려면 좀 더 힘을 써야 한다.
드디어 등선대 입구인 고개까지 올라왔으나 등선대까지 30~40m 정도 더 올라가야 한다.
여기까지 올라왔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등선대를 건너뛸 수는 없다.
등선대 오르며 보는 만물상
모든 봉우리 하나하나가 다 멋지나 이름을 붙여주기엔 너무 많아 그냥 만물상으로 퉁친다.
일주일 정도만 빨리 왔어도 저 만물상은 온통 붉은 단풍으로 불타고 있을 것인데, 조금 늦었다.
그러니 서북능선을 포기한 것은 잘한 것이다.
좀 더 아래쪽도 단풍이 끝나긴 마찬가지다.
조금 더 아래쪽에 겨우 단풍이 조금 보인다.
이쪽 만물상은 역광인 게 아쉽다.
만물상을 자세히 보려면 해가 일찍 뜨는 춘분 이후 7월 말까지가 제격이다.
왼쪽으로 갈수록 역광이다.
능력이 되어 이 만물상 구간에 들어가면 얼마나 기쁘고 가슴이 뛸까.
이 중년의 부부는 주전골로 올라와 이 등선대에서 비박했다고 한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즐풍이 강원도 말씨를 쓰는 걸 알고 강원도가 고향이냐고 묻는다.
30여 년을 객지 생활을 했는데도, 어릴 때 배운 고향 말이 남아 있나 보다.
이 분은 오늘 만난 사람이 처음이라니 주전골 갈 때까지 즐풍 또한 아무도 못 만났다.
흘림골은 오롯이 즐풍만이 발자국을 남기는 셈이다.
등성대에서 보는 칠형제봉은 이제야 맏이부터 막내까지 다 보인다.
칠형제야 잘 있거라, 다음에 또 만나자.
한계령 휴게소와 서북능선
고개에선 등선대가 안 보여 건너편 능선에 조금 올라가다 보니 보이길래 얼른 찍고 주전골로 하산한다.
왼쪽으로 안전대가 설치된 게 보인다.
하산하며 다시 보는 등선봉
저 등선봉에서 보는 풍경은 정말 신선이 되어 주변을 보는 느낌이다.
오늘 흘림골은 해발 약 850m 지점 이하부터 제대로 볼 수 있다.
등선봉에서 주전골로 내려가며 우측 봉우리는 역광이 대부분이다.
지난여름에 이 길을 걸을 땐 순광이라 보기 좋았는데, 그새 해가 많이 기울었다.
높은 봉우리는 벌써 낙엽이 진 상태이고 약 850m 즈음부터 서서히 단풍 든 모습을 볼 수 있다.
등선폭포도 여심폭포와 마찬가지로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다.
지난여름의 등선폭포는 그나마 수량이 조금 있다.
어느 여름의 주전골과 흘림골이 궁금하면...
설악산은 어느 능선이나 골 모두 비경 아닌 곳이 없다.
아직은 단풍이 다 안 든 곳도 많다.
때깔 좋고 메마르지도 않았다.
이 고도는 단풍이 절정이다.
흘림골도 높낮이가 있으니 상단은 단풍이 이미 졌고, 중단부터 단풍이 절정이다.
스카이라인과 만나는 암봉은 암봉대로 멋있고, 어디든 도처에 있는 단풍대로 멋지다.
이 멋진 풍경을 즐풍만 독점한다는 게 못내 아쉽다.
단풍의 절경이구나..
설악은 주전골 단풍이 최고라는 데, 흘림골이 이 정도이니 주전골은 어떨까?
역광이라도 좋다.
언젠가 흘림골이 다시 열릴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별로 힘들 것도 없는 이 골과 주전골은 미어터지겠다.
내려갈수록 장관이다.
나무도 생로병사가 있으니 생을 다해 쓰러지면 나그네의 쉼터가 된다.
쉼터에 이런 단풍이라도 있으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탄성을 지르며 쉬어 갈까.
12폭 전망대로 오르는 길에 보는 건너편 능선
흘림골에서 주전골까지 두 개의 언덕을 넘어야 한다.
등선봉 고개가 첫 번째이고, 이 십이폭 전망대가 두 번째 고비다.
이 전망대만 넘으면 쭉쭉 내리막 구간이다.
아래쪽으로 내려 갈수록 수량이 조금씩 많아진다.
고목 하나가 쓰러지면 나무데크로 만든 길을 쓸어버렸다.
등선대 오르기 전 어느 층계참엔 거의 몇 백 kg이나 되는 커다란 낙석이 있었다.
중간중간 더러 낙석을 보기도 했고, 나무데크 계단도 훼손된 곳이 많다.
알고 보면 참 위험한 구간이다.
오가는 통로야 어떻든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고 황홀하다.
흘림골 입구인 여심폭포 주변의 단풍은 별로이더니 주전골과 가까운 골짜기는 단풍에 가득하다.
근주자적이라던가, 주전골이 가까운 이곳도 알고 보면 주전골 상단부인 셈이다.
어느 겨울 상고대가 가득할 때 다시 오고 싶다.
단풍이 화려하다면 서리꽃은 시리도록 차가운 아름다움이다.
고도가 낮아지자 단풍은 점점 옅어지더니 이제는 진녹색이 빠지고 연두색에 가깝다.
햇살 사이로 보이는 단풍
어쩌면 산에 갇혔다는 느낌도 든다.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무인지경에 단풍과 바위, 그리고 즐풍밖에 아무도 없다.
벗어나려고 걷는 건 아닌데, 내내 같은 비경의 연속이다.
이젠 단풍과 초록이 공존한다.
조금 더 내려가면 통행이 허용된 주전골을 만난다.
그곳은 더 아래쪽이니 흘림골 단풍만 못하리라.
어느 순간 고요가 깨지며 왁자지껄하는 웃음소리와 탄성이 들린다.
주전골을 오가는 탐방객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는 구간에 들어섰다.
주전골까지 다 싣기엔 사진이 너무 많아 부득이하게 다음 편을 따로 만든다.
이번 산행은 적어도 사흘간 설악산에 빠져보려 했다.
어제 설악산보다 남쪽에 있는 오대산 정상에 이미 단풍이 졌기에
설악산도 낮은 곳에만 단풍이 남았을 거란 생각의 거의 적중했다.
겨우 1,002m인 흘림골 정상의 등선대 주변에도 단풍이 다 졌다.
850m 지점부터 보이는 단풍도 주전골에 들어서자 점점 옅어진다.
다음 편에서 주전골 단풍이 어떤지 자세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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