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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 탐방/북한산

북한산 원효봉-염초봉-의상능선 환종주

by 즐풍 2020. 4. 17.

2020_23

 

 

2020.4.15. (수) 국회의원 선거일

              06:18~15:17 (전체 시간 8시간 58분, 휴식 1시간 50분, 전체 거리 12.06km, 평속 1.6km/h) 미세먼지 많음

 

 

지난 주말 이틀 주어진 사전 선거일에 미리 투표했기에 오늘은 일찍이 등산에 나선다.

선거로 하루 주어진 황금 같은 휴일을 꿀맛처럼 달달하게 즐겨야 한다.

모처럼 원효봉에서 염초봉과 서벽밴드를 지나 노적봉을 타는 근사한 산행 계획이다.

 

지금까지 염초봉은 제법 많이 다녔어도 책바위는 늘 책갈피 사이로만 다녔다.

책갈피 속 틈새와 옆의 홀더를 이용해 오르내리자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팔다리의 완력과 릿지기술에 의존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어렵게 느껴진다.

 

염초봉을 타는 많은 등산객은 책바위를 책갈피 사이가 아니라 옆으로 타고 다닌다.

지금까지는 책갈피 사이가 쉽다고 생각했으나 오늘 처음으로 옆으로 내려가야겠다.

오늘 결과에 따라 앞으로 염초봉을 지나는 방법이 달라질 것이다.

 

 

북한산 등산코스

 

탐방지원센터 주변에 주차하고 개울 건너는 첫 번째 작은 다리를 통과해 산으로 들어선다.

둘레길 주변에 난 발자국을 따라 들어선 오솔길은 천지사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길은 없는 듯 있는 듯 거미줄처럼 연결된다.

그 길을 따라 가다 성벽을 타고 넘어 서암문과 만난다. 

 

서암문 따라 오르다가 다시 오솔길로 접어들었으나 치마바위가 막아선다.

치마바위를 오르면 원효암 산신각 방향으로 오를 수 있다.

옆길로 돌았으나 바위가 너무 가팔라 오를 방법이 없어 어렵게 정상적인 등산로로 접어든다.

그 바람에 시간이 한참 지체됐다.

 

원효암을 관통해 암릉 릿지로 원효봉 정상으로 갈 생각에 들어선다.

 

길을 놓쳐 중간에서 치고 오르니 전망바위가 조망된다.

전망바위는 딱 이 위치에서 잡는 그림이 가장 멋지다.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 태양이 높지 않아 전망바위 머리만 햇빛이 들었다.

 

원효봉 정상이다.

카메라 구입한지 6년 4개월이 흘러 본체에 먼지가 많이 껴 화면에 나타난다.

렌즈에 이어 본체도 A/S를 받아야겠다.

 

북문(北門)

 

원효봉과 영취봉 사이의 해발 430m 지점에 있다.

이 안부(鞍部:산마루가 말안장처럼 움푹 들어간 지형)에 북문이 설치됐다.

주변의 상운사와 훈련도감 유영지에서 북문 지역의 수비와 관리를 맡은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산성에는 대서문, 대남문, 대동문, 대성문, 중성문, 북문 등의 6개 대문이 있다.

큰길은 대서문-중성문-대남문·대성문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였다.

북문과 대동문은 간선도로에서 벗어나 있는데, 이는 한양도성과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대문으로 북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았던 것은 북문만이 '대 大'자를 붙이지 않은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실제로 북한지(北漢誌, 1745년 간행)를 보면 북문에만 도로망이 연결돼 있지 않다.

 

성문은 석축기단 부분인 육축부(陸築部), 그 위에 올린 문루, 출입을 위한 개구부(開口部),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문짝 등으로 이어진다.

현재 북문에는 문루와 문짝이 없는 상태로 육축부와 개구부만이 남아있다.

문루 자리에는 초석만 남아 있으며,

개구부에는 문짝을 달았던 원형의 지도릿돌과 장군목을 건너질렀던 방형의 구멍이 남아있다.

 

북문이 완성된 때는 1711년(숙종 37)인데, 30여 년 후에 간행된 「북한지」에는 북문의 문루 그림이 없다.

이를 근거로 18세기 전기에 이미 문루가 없어졌으며, 그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안내문 편집)

 

북문을 지나 염초봉 가는 길은 멀다.

암벽을 배우지 않아 북문에서 바로 올라가는 바위를 탈 수 없기에 한참을 돌아 오른다.

 

이 바위를 오르기엔 다소 기술이 필요하다.

어렵게 오르고 보니 쉬운 우회로가 있는 걸 잊었다.

 

어렵게 오르면 도 제법 경사도가 높은 바위가 기다린다.

이번엔 아예 우회하여 체력을 아낀다.

 

염초봉에서 가장 멋진 소나무다.

바로 북문에서 암벽을 타고 오르든 즐풍처럼 지능선을 따라 우회하든 불구하고

이 명품 소나무가 고생을 보상이라도 하듯 우아하게 맞아준다.

소나무의 춤사위를 받으며 책바위로 오른다.

 

염초봉 오르며 보는 원효봉

 

상운사

 

 

책바위에 도착했다.

책갈피 사이를 타고 내려가려니 엄두가 안 난다.

지난번 마지막으로 내려갈 때 좀 고생했던 경험으로 이젠 겁난다.

보통 옆으로 내려가는 사람도 제법 있던 데, 어떻게 내려갈지 모르겠다.

어디에 손을 잡고 발을 디딜지 영 자신이 없다.

자일이라도 지참했으면 손쉽게 내려갈 텐데, 결국 되돌아 내려가 우회하기로 한다.

내려가다가 좀 전에 올라올 때 우회했던 바위를 다시 우회하여 샛길로 빠진다.

 

오래된 현대 걸리버 폰이다.

1990년대엔 현대에서 "걸면 걸리는 걸리버~"라고 광고했다던 핸드폰을

역사의 유물처럼 염초봉 사면에서 만난다.

처음엔 산행 대장이 쓰는 분실된 무전기인 줄 알았는데, 핸드폰인 것이다.

 

 

염초봉 사면 길을 돌아 적당한 곳에서 어렵게, 아주 어렵게 올라오고 보니 바로 책바위와 만난다.

누구의 도움도 장비도 없이 어렵게 오른 기록적인 고군분투다.

이 책바위는 매번 자일도 없이 책갈피 사이인 A코스로 오르내렸다.

딱 한 번 갯버들님과 이곳을 오를 때 먼저 진행 중이던 어느 산악회의 자일이 이용했던 기억도 있다.

A코스의 높이가 대략 4~5m 정도 되는 직벽이라 일반 등산화로 오르내린다는 건 사실 어렵다.

지난번에 내려갈 때 고생한 기억으로 오늘은 영 자신이 없다.

B코스로 내려가는 걸 몇 번 보긴 했으나 저 높은 바위를 돌아서 내려가기엔 경험이 없어 포기했다.

B코스에 인공적인 또는 자연적인 홀더가 있을지 모르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배워야겠다.

점점 근력이 떨어져 겁이 많아진다.

 

좀 더 멀리서 본 책바위

 

책바위 앞을 지나는 사람의 키로 책바위 높이를 대략 가늠할 수 있다.

언뜻 5m도 훨씬 넘어 보인다.

 

건너편 파랑새 능선의 어금니바위

 

내려온 염초봉과 산성

 

염초봉을 정상적으로 통과해 서벽밴드를 타고 바로 노적봉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책바위를 포기하며 옆으로 치고 올라오면서 무진 고생한 데다, 의기소침해져 산행을 접을 생각이었다.

그러기엔 일찍 산행에 나선 보람이 없어 건너편 의상능선의 가사당암문으로 올라가 하산하기로 맘을 바꾼다.

약수암 터로 내려와 100여 m 아래에 있는 쉼터에서 바로 노적봉 지능선으로 치고 오른다.

 

약수암터로 내려가며 보는 염초봉

 

노적봉 지능선의 의자 바위를 지나 노적사로 방향을 돌린다. 

 

노적봉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

 

 

 

아침에 올랐던 원효봉 우측 상단의 상운사와 아래쪽 대동사

 

훈련도감 유영지의 우물

 

 

훈련도감 유영지(訓鍊都監 留營址)

 

이곳은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이 축조된 뒤에 성곽 수비와 관리를 맡았던 훈련도감 유영(현지 주둔부대) 장소다.

북한산성은 중앙 군영인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등 삼군 문(三軍門)의 주관 아래

각 군문이 전체 성벽을 3분하여 축성한 이후 해당 구간을 그대로 맡아 수비했다.

훈련도감의 축성, 수비 구간은 수문에서 용암봉까지였다.

30일 미만의 구금형을 받은 죄인을 가두 어두는 구류간(久留間)이 이곳에만 있었다.

전체 건물 규모로는 총 130칸 있는데, 그중에서 창고가 60칸으로 가장 큰 건물이었다. (안내문)

 

이 넓은 공터가 훈련도감 유영지로 각종 군사 훈령을 받았던 장소이겠다.

 

 

戊는 옛날 도끼 모양의 무기이다.

훈련도감의 상징인 셈이다.

 

무법대(戊法臺) 옆 그림이 도끼와 창 모양의 결합 형태다.

 

훈련도감 유영지를 지나 노적사 방향으로 가는 데, 산불감시 초소가 있다.

말이 산불감시 초소지 사실은 노적봉으로 장비 없이 올라가는 등산객을 막는 초소다.

옆을 통과할 때 안에서 기침하는 소리가 들린다.

모른 척 아닌 척 지나간다.

 

노적사를 지나 정규 등산로에 마련된 지붕 있는 쉼터에서 쉬며 간식을 먹었다.

부황사암문으로 가기 위해 올라가는 길에 흐드러지게 핀 목련을 본다.

 

개울을 건너며 본 돌단풍 꽃

 

 

 

최송설당

'일제강점기 전재산을 희사하여 재단법인 송설학원을 설립한 육영사업가'라고 검색된다.

 

제비꽃이라고 적었는데, 갯버들 님이 각시붓꽃이라고 알려주셔서 바로잡는다.

제비꽃과 붓꽃은 이름만큼이나 차이는 큰데, 이런 것도 구별하지 못하다니...

 

 

어느 작은 암자 위 바위를 다라 오르니 제사 지내는 제기가 있다.

더 이상 갈길이 없어 되돌아 나와 증취봉 방향으로 길 없는 산을 이리저리 헤맨다.

 

암릉을 따라 오르기도 하고...

 

용출봉과 원효봉을 조망하기도 한다.

 

건너편 백운대 일대

 

이 암릉이 궁금해 일부러 들어가 보기도 한다.

 

증취봉 오르는 길엔 제법 높은 바위에 걸친 로프를 끊어놓아 어렵게 올랐다.

어깨 너비의 통로를 지나기도 한다.

 

증취봉 앞 오른쪽 바위로 올라오니 식사를 하던 장년의 여성이 위험한 데로 올라온다고 한 마디 한다.

증취봉으로 바로 올라올 길이 없으니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

 

 

 

용출봉과 의상봉

 

 

 

엄지바위(동자바위) 중간 왼쪽에 진달래꽃이 핀 게 보인다.

 

자세히 보니 제법 실하던 나무가 거의 죽고 두 가지에 겨우 살아 꽃을 피운 것이다.

예전에 월출산의 남근바위 끝에 있던 진달래나무도 죽어 이식했다는 안내문을 봤는데,

이 동자바위도 사실 월출산 남근바위처럼 양기가 많은 바위다.
부디 회춘하여 이런 봄에 진달래꽃이 가득하길 염원한다.

 

의상봉 정상에서 조금 더 내려와 대서문에서 올라오는 성벽길로 하산한다.

중간에 성벽을 넘어 내려가다 만난 담쟁이 풀이 봄을 만나 기지개를 켜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대서문에서 새로 짓는 서암사를 지나 수구문을 지나다 보니 바위에 한자가 쓰인 걸 오늘에서야 처음 발견한다.

수구*장 통덕* 서 아무개란 글자가 어렴풋 보이기도 한다.

탁본을 뜨면 수구문을 지을 때 관리대장의 직책 등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겠다.

 

 

 

 

 

가끔 블로그를 작성하는 게 실증날 때도 있다.

이번에 염초봉 책바위를 내려가는 걸 실패해서일까?

4.15 선거일이라고 선거 관련 뉴스를 보고,

어젠 즐풍이 성원하는 진영의 승리 도취감에 하루 종일 뉴스만 클릭했다.

저녁엔 가족들과 외식한다고 나갔다.

이렇게 블로그 작성을 이틀씩 방치하기도 흔치 않다.

겨우 매듭짓는다.